[인터뷰] 싱어송라이터 예람 "교회의 역할, 무감각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다짐의 연대"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 예람으로 활동하는 새민족교회 정서현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성공회대학교에 다녔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진세은의 사촌 언니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3주기입니다.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며 싸우는 교회들의 예배와 투쟁은, 이 사회의 아픔을 기억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힘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냥 슬퍼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눈물과 기도가 세상을 바꿔 내는 행진이 되리라 믿습니다."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2025년 10월 26일, 성공회대학교 존데일리홀에서 열린 '울타리를 넘는 연합 예배'에서 싱어송라이터 예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새민족교회 교인인 예람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작은 교회들의 연합 예배에서 약자들을 기억하고 모두가 안전함을 느끼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노래를 시작했다.
예람은 2017년 EP 앨범 '새벽 항해' 발매 후 꾸준히 앨범을 내고 활발하게 공연해 온 아티스트다. 포크 장르를 기반으로 시작한 그의 음악 여정은, 밴드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적으로 사용하면서 분야를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35회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에서 '허무에게'라는 노래로 수상하고, 15회 전국 오월 창작 가요제에서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로 대상을 거머쥐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촉망받는 아티스트가 신앙을 가진 계기가 독특하다. 모태신앙도 아니고, 누가 전도한 것도 아니었다. 예람은 지난해부터 제발로 서울 마포구 새민족교회(황푸하 목사)를 찾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게 그의 첫 신앙 생활이다. <뉴스앤조이>는 10월 31일 예람을 만나 교인이 된 계기와 그가 생각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함께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예람입니다. 추운 이야기를 노래로 쓰고 그 노래를 부르며 따뜻해지기를 꿈꿉니다."
예람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재주 '예', 물 맑을 '람', 활동명에도 그런 지향을 담았다. 자신이 가진 재주를 맑은 물처럼 보고, 사람들과 나눠 쓰고 싶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이름의 의미는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시점과도 맞닿아 있다. 2016년 예람은 소셜미디어에서 강제 철거로 쫓겨나게 된 곱창집 우장창창의 '음악 연대인'을 모집한다는 글을 접했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현장에 나서 보니, 이미 여러 음악가가 모여 강제집행 위기에 놓인 우장창창을 지키기 위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예람이 다른 이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대안 학교에 다니던 중, 친구들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뉴스를 보고 아픔에 공감하고 슬퍼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학생들이 아파하고 슬퍼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 학교의 영향도 있었다"고 말했다.
연대의 필요성은 이미 절실히 알고 있었지만,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은 몰랐다. 예람은 "음악이 운동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마냥 좋아했던 음악이 연대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우장창창을 시작으로, 궁중족발과 아현포차 등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을 넘어 성주 소성리 사드 배치 반대, 세월호 참사,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등 연대가 필요한 다양한 현장에서 노래하고 있다.
| "이런 하나님이면 믿을 수 있겠다" |
예람이 새민족교회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이다. '동네 음악가 어슬렁 밤산책'이라는 공연 장소로 교회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평소 황푸하 목사는 동료 음악가로 교류해 왔지만, 새민족교회와 '목사' 황푸하가 어떤 마음으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이때 비로소 처음 알 수 있었다.
초심자인 그가 보기에 새민족교회는 '교회 같지 않은 교회'였다. 보수 교회의 혐오·차별적 행태를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런 방식이지는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새민족교회는 흔히 생각하는 교회 이미지와 달랐다. 교회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새민족교회 홈페이지에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와의 연대를 비롯해 강제 철거 현장 등 사회적 현장에서 투쟁해 온 발걸음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예람이 연대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인 줄 알았던 얼굴들은, 새민족교회를 비롯한 다른 현장에서 모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예람은 새민족교회가 성서의 말씀 안에서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소외된 이들의 언어를 찾아내려고 하는 노력들이, 자신이 살면서 지향하는 가치관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가 교회에 출석하겠다고 결심하게 한 결정적 계기는, 새민족교회가 내건 '우리의 약속'이었다.
첫 주일예배를 위해 새민족교회를 찾았다. 마침 교회에서는 여성 주일과 청년 주일을 기념하는 예배가 열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로 드려지는 예배에 감동이 있었다고 했다. 청년들이 부른 특송으로 부른 '톰 보이'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다양한 세대가 함께한다는 것이 좋았다. "한 세대에만 너무 치우쳐져 있지 않고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것,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공통된 가치를 가지고 움직이려고 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교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부르는 노래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새민족교회에서 예람이 만난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였다. 그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고통을 안다는 것이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통을 아는 걸 넘어서 도살당하기 직전의 어린양, 그 고통 자체가 되게 하는 전지전능함이 하나님인 것 같다"면서 "가장 낮은 곳, 고통받고 가난한 자를 향한 예수의 시선에 큰 울림이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언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늘 이야기해 왔던 함께 사는 삶에 가까운 모습이겠다'는 생각에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람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덜 외로워졌다고 말한다. "몰랐는데 그동안 외로웠던 것 같다. 공동체를 통해 혼자 사는 것 같지 않은 느낌, 뭔가 믿을 구석이 생긴 것 같은 점이 참 좋다"는 예람은, 청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재밌다"고 했다. 보드 게임을 하고, 같이 노래 부르거나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는 등 주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모여 놀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예람은 그 시간 속에서 각자가 발견하는 신앙적 성찰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좋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맞아 예람은 여러 현장에서 노래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순간을 같이 기억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노래를 불렀다. 참사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석열 정부가 물러나고 드디어 올해 이태원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들은 한국에서 열리는 기억식에 참석해 지난 3년간 아무도 참사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예람은 이런 시간이 진작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기억이 희미해지기도 하는데 이맘때면 다시 그날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시간이 잘 흐르지 않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려면 앞으로 진상 규명이 잘 돼야 합니다. 더 안전한 사회가 되려는 발걸음이 많아질수록 유가족의 시간이 흐르지 않을까요. 계속 아플 거라고 생각해요. 아프고 힘들지만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더 나은 세상과 순간을 기대하면서 나아가고 싶습니다."
11월 3일 발매한 싱글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2·3 불법 비상계엄을 비롯해 광장의 걸음들이 담겨 있는 노래다. 동료 음악가들과 '무기력하고 아픈 이 시대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나눴고,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예람은 희생자의 영혼이 다시 광장으로 걸어가는 장면의 문장들이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 누군가는 새벽의 깃발을 쥐고 있어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 누군가는 새벽의 총성을 쥐고 있어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 누군가는 새벽의 바다를 쥐고 있어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 누군가는 새벽의 길목을 쥐고 있어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 누군가는 새벽의 하늘을 쥐고 있어
노랫소리 울려퍼져라 수천명의 발걸음이 들려와 // 차디찬 손 희망을 들고 굳게 잠긴 새벽을 연다 // 노랫소리 울려퍼져라 수만명의 발걸음이 들려와 // 차디찬 손 희망을 품고 펄럭이는 새 날을 연다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 가사 중)"
"'그날 광주의 기억이 12·3 계엄을 막았구나', '그 발걸음이 살아서 우리 발걸음에 발맞추어 행진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과거의 발걸음이 우리의 지금 발걸음에도 발맞춰 걷고 있다는 느낌을 노래로 만들고 싶었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쥔 불빛과 깃발과 목소리를 모으면서 큰 힘이 된다는 걸 기억하려고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바다', 이태원 참사의 '골목'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썼지만, 청자 여러분들이 쥐고 싶은 것들을 쥐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각자 쥐고 있는 열쇠로 문 밖으로, 세상으로 나가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열쇠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예람은 교회가 참사의 아픔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잊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 끊임없이 운동을 하게 하는 힘이라면서 교회가 슬픔에 기도하고 연대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별도의 전도나 선교 활동보다 더욱 강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아프고 고통받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신,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고 싶어요. 우리가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으로 세상은 바뀌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무감각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다짐이 연대이고, 연대는 곧 신에게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연대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요."
예람은 11월 8일 벨로주 망원에서 싱글 발매 기념 단독 공연 '새벽의 열쇠를 쥐고 있어'를 연다. 공연에는 새민족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작은불꽃합창단이 코러스로 참여한다. 공연은 멜론 티켓에서 예매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