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 리스크'라는 말이 기우가 되길 바라며
옛 속담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주로 사람을 평가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반면 "넘겨짚다 팔 부러진다"는 속담도 있다. 성급한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우는 말이다. 때문에 어떤 판단이든 단면만 보고 내려서는 안 되며,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평생 목사로 살며 수많은 인간 군상을 경험한 결과, 한 가지 부정하기 어려운 선입견이 있다. 그것은 첫인상으로 평가된 그 사람의 본질이 십중팔구 맞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외모는 가장 직접적인 인상을 주기에 사람들은 외모를 꾸미고 다듬는다. 학력이나 경력이 주는 이미지도 크다. 그래서 저마다 화려한 스펙을 쌓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정직, 성실, 겸손, 책임감, 배려, 공감 능력 같은 내면의 가치야말로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문제는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눈이 닫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외적 기준으로 내면까지 평가하는 오류를 범한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인격과 품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언어'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 수준을 넘어 거의 확증적으로 드러난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은 그 사람의 지성, 감성, 의지, 성격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창과 같기 때문이다. 단순히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투'이며, 그 말투에 묻어나는 '감정'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지표가 된다.
지난 제110회 총회를 지켜보았다.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개회되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긍정과 부정, 두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긍정적인 면은 복잡한 사안들을 무리 없이 풀어 가는 성숙함이었다. 반면 부정적인 면은 총대들의 무관심이었다. 예배와 예식, 그리고 내빈 인사 시간을 제외하면, 현안과 의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다. 토론과 표결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들조차 "유인물대로 받기로 동의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지나치는 장면은 안타까움을 넘어 허탈함을 주었다. 이럴 거라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총회를 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특히 신경이 쓰였던 것은 신임 총회장의 회의 진행 방식이었다.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주도적이며, 때로는 무례하게 비쳤다. 총회를 보다가 유력한 총대에게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총회장의 일방적 사회 진행 방식을 바로잡아 달라"는 문자까지 보내야 할 지경이었다. 보고자나 발언자를 통제하고, 짧은 동영상 상영조차 허락하지 않는 모습에서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총대들은 69개 노회를 대표하는 200만 교인의 대표들이다. 그 앞에서의 거만한 태도는 민망함을 넘어 불쾌감을 자아냈다. 이런 분위기에서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하겠는가. 만약 총회 장소에서조차 그와 같은 언어와 태도가 나타난다면, 각 부서와 위원회에서는 어떨까. 상명하복식 리더십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곧 교단의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컸다.
필자는 현 총회장이 107회기 서기를 맡았을 시절에 그를 처음 알았다. 당시에도 다소 강압적 인상과 통제적 태도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부총회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릴 때, 여러 경로를 통해 그의 스타일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그 말에 스며 있는 '태도'다. 교단의 대표로서 그 같은 태도로 인해 소통이 막히고, 내부 불만이 쌓이게 된다면 또다시 교단 내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미 권위적이고, 일방주도적일 뿐 아니라 상명하복적 리더십이 한 집단의 수장을 맡았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했는지를 절절하게 경험한 바 있다. 리더십의 분노와 독선으로 인해 참모들이 침묵했고, 결국 조직 전체가 굴종했던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얼마나 깊고 크며, 나라 전체가 겪은 피해가 얼마나 천문학적인지 분통을 터뜨리며 보고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리더십에 의해서 집단이 무너질 수도 있고 세워질 수도 있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마도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교단의 리더십의 품위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10회기가 시작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교단 내에서 총회장의 권위적인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겠는가. 리더를 존경이 아닌 두려움으로 대하게 되면, 구성원들은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 보고나 과장된 충성으로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며, 침묵 카르텔에 빠져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권위적인 리더십이 위험한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그간의 아픔과 상처가 크다. 교단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은 매우 인색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점의 리더십이 더욱 중요하다. 타인의 의견에 배적하지 않고 경청해야 한다. 명령하기보다 이해와 설득을 통해서 공감해야 한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고 물는 겸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직책으로 사람을 누르지 않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진정한 권위는 통제에서 오지 않고, 진실한 사랑과 신뢰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단에 속한 목사의 한 사람으로 교단이 세상에 빛과 같은 영향을 주며 교인들이나 목회자들에게 자부심이 되는 교단이 되기를 바란다. 제발 위에서 언급한, 소위 '교단장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기우가 되기를 바란다. 부디 필자가 품은 우려가 기우로 끝나기를, 그 모든 걱정이 '빗나간 확증편향'으로 판명되기를 바란다.
"용서, 사랑의 시작입니다"라는 표어가 단지 구호로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선한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이 말함이라"(눅 6:45)는 말씀이 이 회기의 총회를 통해 긍정적으로 입증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철학자로 <명상록>을 기록하여 인류 사상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유명한 말을 인용하여 글을 맺고자 한다.
"한 사람의 품격은 권력을 잡았을 때 드러난다!"
박상기 / 예장통합 빛내리교회 담임목사, 시인·수필가, 로뎀미션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