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수 이대위원장 "책 안에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 많아"…학자들 "해외 보수 교단에서도 출판물 통째로 이단 지정 안 해"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앞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정훈 총회장) 구성원들은 <퀴어 성서 주석>을 읽거나 다른 사람에게 권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예장통합이 110회 총회에서 <퀴어 성서 주석>을 '이단'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예장통합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대위·박한수 위원장)는 "심각한 이단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총회에 보고했고, 총대들은 찬성 775표 반대 15표로 이단 결의를 통과시켰다.
사람이나 단체가 아닌 '서적'을 이단으로 지정한 것은 드문 사례인데, 이대위는 구체적으로 이 책을 '금서' 지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대위 서기 권성석 목사는 9월 3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통합 교단 (소속 목회자·교인들은) 그런 책을 읽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학자들이 비교종교학 연구를 위해 읽는다거나 학문적인 목적에서 연구하는 것까지 금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거나 전파할 때는 권면이나 권징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퀴어 성서 주석>은 퀴어 관점에서 쓰인 주석서로,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데린 게스트(버밍햄대학교), 데이비드 탭 스튜어트(사우스웨스턴대학교),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윈체스터대학교) 등 신학자·목회자 10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에 본격 소개된 건 2021년이었다. 고 임보라 목사를 중심으로 번역출판위원회가 구성돼 2015년부터 번역을 시작했고 2021년 구약 편이, 2023년 신약 편이 차례로 출간됐다. 2021년 출간을 위해 진행된 크라우드펀딩에서는 889명이 참여해, 목표액 500만 원을 훨씬 상회하는 4400만 원이 모였다.
한국어 번역판이 출간되자마자 <퀴어 성서 주석>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예장통합 충북노회는 2023년 108회 총회에 헌의안을 올렸다. 충북노회 최철용 목사는 당시 헌의안 제안 설명에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를 보면, 자신들만 동성애자를 혐오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는 영지주의의 주장을 펴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동성애를 죄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동성애의 쾌락을 넘어선 무죄 의식에 물들어져 있다"며 "(이들이) '괴상한'이란 의미의 퀴어(queer) 신학이란 것을 만들어서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축복하시며 자손을 잉태하게 하시는 축복을 거부하고 동성애를 죄악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성경의 가르침을 뒤집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건을 수임한 이대위는 연구 보고서에서 "<퀴어 성서 주석>은 보편타당한 성경 해석의 원리를 고의로 배척하여 성경 본문의 본래적 의도를 파악하는 것보다 퀴어의 주장을 대변하고 변호하기 위해 성경의 내용과 의미를 왜곡했다"고 결론지었다. 6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는 △성경론 △그리스도론(기독론) △창조론에 대한 <퀴어 성서 주석> 해석이 '심각한 이단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과 관련 본문이 담겼다.
"<퀴어 성서 주석 I, II>는 신구약 66권의 모든 본문을 다루지 않고, 단지 퀴어신학과 관련성이 높은 본문을 중심으로 주석한다고 책의 서문에 기록하고 있다. 이 점은 이 주석이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과 뜻을 전하기 위함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주장에 말씀을 끼워 맞추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퀴어 성서 주석 I, II>의 성경 해석은 소위 '퀴어신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퀴어의 주장을 전제로 하며, 전통적 성경 해석 방법과 신학을 부정한다. 이 책은 그 집필 동기부터 퀴어 확정 편향적(확증편향의 오탈자로 보임-기자 주)이며 내용에서도 학문적인 양심과 해석의 객관성을 잃어버렸다."
"<퀴어 성서 주석>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교회와 질서를 파괴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세상을 완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에 이단성이 있다."
그러나 이대위는 국내에 번역된 번역본이 '이단'인 것인지, 아니면 원서까지 이단인지, 또한 주석을 집필한 학자들이나 국내 번역에 참여한 이들까지 다 '이단' 내지는 '이단성'이 있는지 등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또 2018년 총회 결의로 퀴어신학에 '이단성'이 있다고 결의했으면서, 그 신학 사조에서 나온 연구물은 '이단성 있음'보다 더 단정적으로 '이단'으로 결정한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뉴스앤조이>는 이대위 측에 이번 연구·조사에 어떤 목회자·학자가 참여했는지와 누가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질의했으나, 이대위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연구·조사와 결과 보고서 작성 전반에 이대위원장 박한수 목사(제자광성교회)가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목사는 거룩한방파제 특별위원장을 비롯해, 탄핵 정국 교회 강단과 세이브코리아 집회 등에서 반동성애·극우 주장을 펼쳐 온 인사다.
박한수 목사는 30일 통화에서 "(주석서) 저자가 외국인이고 번역서이기 때문에 그들까지 직접 검토해 보지는 않았다"면서 "퀴어신학 자체에 이단성이 있기 때문에, 그 관점에서 쓰인 주석도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다. 내용이 순수한 주해라기보다는 퀴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어 우려스럽게 봤다.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책을 이단으로 지정하는 행위가 학문의자유나 다양성을 움츠러들게 하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정명석 교리를 신학교에서 가르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책 안에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이단이라는 게 전부 틀린 게 아니라, 그중 구원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장통합의 이번 이단 결정을 두고 교단과 학계 안팎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퀴어 성서 주석> 번역·출판 과정에 참여한 자캐오 신부(성공회 용산나눔의집)는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근거를 바탕으로 성소수자 교인들을 난도질하는 무책임하고 무례한 선언"이라고 했다. 그는 "<퀴어 성서 주석>은 다양한 인종과 성별, 성적 끌림, 인식, 표현 등으로 인해 차별당하는 사람들을 환대하고 연대하며 초대하는 성서 해석의 또 다른 길"이라며 "이번 결의는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성서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한데, 한 가지만 정통이고 진리라고 얘기하는 방식은 개혁교회 정신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역사비평학자인 권지성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는, 관점이 다르다고 이단으로 규정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30일 통화에서 "퀴어신학을 허용하지는 않는 미국 복음주의 교단에서도 관련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출판물을 통째로 이단으로 결의하지는 않는다. PCA 내에도 관련 연구 그룹이 있고, 주류 교단들은 물론 영국성공회 역시 동성애와 퀴어신학을 오랫동안 학문적 연구·논의 대상으로 다뤄 왔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학문의 대상을 논의도 하지 않고 이단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것은 이단의 범주를 오용하는 것"이라며 "성서에는 열려 있는 부분이 많고, 해석에도 다양한 층위와 범주가 있다. 2000년 동안 지속돼 온 전통과 다르다고 해서 이단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보편타당한 성경 해석의 원리'는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어 왔는데, 이대위가 말하는 원리는 도그마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충분한 논의 없이 폐쇄적으로 결의가 진행된 것이야말로 성경 해석의 다양성과 학문적 자유를 말살하는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전 이화여대 신학대학원장 박경미 교수는 전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친 전광훈은 이단으로 규정하지 못하면서 <퀴어 성서 주석>을 이단시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10월 1일 통화에서 "교단이 강한 자 앞에선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힘의 논리를 따르면서, 2000년 전 예수가 했던 하나님나라 운동과는 대척점에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두고 본다면 이들의 결정이 오히려 이단적이다. 교리적 판단이라기보다, 교회가 도덕적으로 비판을 받으니 소수자 이슈를 이용해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경미 교수는 해방신학이나 여성신학처럼, 성서 해석학에는 기본적으로 텍스트 앞에 선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성서를 해석해 온 흐름이 존재한다며 "퀴어신학도 올바른 해석인지 아닌지 토론해야 할 주제이지, 책을 가지고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코미디"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이대위가 이단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누가 그 권위를 인정하겠나. 교단이나 신학자라는 이들이 기독교가 희화화되고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장통합 소속 엄기봉 목사(광주옥합교회)는 총회 회의 과정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나 반대 발언조차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9월 30일 통화에서 "총대 중 이단 결의 분위기를 반전시켜 줄 사람 한 명 없었다는 게 아쉽다"며 "이번 결의를 통해 교회가 성소수자를 환대하지 않는다는 인식만 강화할 것이다. 교단이 본질을 잃고 오히려 반면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장통합에서 안수를 받은 홍국평 교수(연세대)도 9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대위 결정이 '퀴어는 비정상'이라는 정해진 답에 근거한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단과 정통의 구분은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같은 신학적인 문제에 기초해야 한다"며 "누군가 '내가 예수다'라고 주장하면 이단 판단의 대상이 되겠지만,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이가 자신의 성적 지향에 근거해 성서를 해석하는 행위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했다. <퀴어 성서 주석>이 '보편 타당한 성경 해석의 원리를 고의적으로 배척'한다는 이대위 결론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보편타당하다는 말인가. 본문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다는 전제는 퇴행적이다. 이들이 보는 '보편'의 범주에서 퀴어 독자는 이미 배제되어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성소수자를 이단으로 규정하기 전에, 그들을 한 명의 인간으로 만나야 한다고도 썼다. 그는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으로 보면 사안은 단순해진다. 이 간단한 질문에 예수님의 사랑보다 율법적 잣대를 앞세우는 데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설득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며 "'우리 교단은 인정할 수 없다' 보다 우리 교회에, 우리 교단에 이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더 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계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도 일제히 예장통합 결정을 규탄했다. 성공회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는 26일 논평에서, 에베소서 3장 17-21절을 인용해 "무지갯빛 하느님의 넓고 길고 높고 깊은 신비와 사랑은 일부 교회와 교단 지도자들의 좁고 짧고 낮고 얕은 지식과 성서 해석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왜곡과 편견에도 포기하지 않고 무지갯빛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계속 증언하겠다"고 했다.
큐앤에이도 26일 성명을 내고 "예장통합의 졸속 결의는 자신들 내부의 도덕적·윤리적 문제는 애써 외면하며, 사회적 약자와 새로운 해석을 향한 마녀사냥을 충실히 반복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라며 "우리는 소수자와 함께 성서를 새롭게 읽어 낼 것이며, 하나님나라의 해방과 정의를 증언할 것이다. 진정한 교회는 금서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억눌린 자들의 눈물 속에서 진리를 함께 찾아가는 곳임을 우리의 실천으로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