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학회 정기 세미나…김현준 연구원 "복음주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인큐베이터 역할"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세이브코리아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세계로교회)는 2월 18일 왕성교회에서 열린 '희망의 대한민국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 기도회'에서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김정민 목사(금란교회)는 4월 6일 설교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패배하지 않고 이 땅에 임하고, 북한 공산 정권이 붕괴되어 복음으로 통일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극우 개신교 목사들은 한국을 신정 국가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이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는데,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기독교 국가'를 만들겠다고 하는 걸까. 독재 국가라는 이유로 북한을 공격하면서도, 하나님 한 분이 통치하는 '기독교 국가'를 만들겠다며 전제정치를 표방하는 논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통적으로 복음주의 신학은 이 땅에서의 삶보다 내세를 더 강조해 왔는데, 지금의 극우 개신교는 어떻게 '기독교 국가'를 세우겠다고 주장하게 된 걸까.
극우 개신교가 주장하는 '기독교 국가론'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현준 연구원(서교인문사회연구실)이 개신교 보수 우파 유튜브가 전파하는 담론을 분석해 쓴 "한국 개신교 우파 (메타) 내셔널리즘: 개신교 극우화와 '기독교 국가'론 분석"이라는 글이다.
이를 4월 18일 한국언론학회 '종교와 커뮤니케이션' 연구회 세미나에서 소개한 김 연구원은, "보수 개신교 저변에서 암암리에 그 독소를 퍼뜨려 온 '기독교 국가론'은 이제 민주 공화국의 헌정 질서 파괴와 전복, 침탈을 노골화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개신교의 신정국가 욕망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미나는 서울 신촌 캣츠랩과 화상 회의 플랫폼(ZOOM)에서 동시 진행됐다.
김현준 연구원은 극우 개신교의 '기독교 국가론'이 더 이상 신학적 은유가 아니라 실제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개신교가 '하나님나라'나 '기독교 왕국'을 주장하는 건 신학적·신앙적 은유로 여겨져 왔지만, 이제는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 개신교는 헌법과 민주공화정을 흔드는 주요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기독교 국가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할지라도 신정 정치의 신념은 헌정 질서와 민주적 제도의 해킹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행동을 낳게 된다. 신의 주권은 세속 민주공화국의 인민주권과 트레이드 오프(trade-off·상충 관계) 구도 속에 있기 때문에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행위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극우 유튜브 콘텐츠를 분석한 그는 기독교 국가론이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라는 오래된 이분법에 기반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들은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대결 구도로 그린다. 인본주의란 하나님 대신에 인간 이성을 신봉하는 것으로, 반인본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북한의 주체사상,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가 인본주의다. 최근에는 사실상 대한민국 국교가 인본주의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세속 정치에) 맞서 싸울 명분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준 연구원은 복음주의 진영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이러한 근본주의적 주장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전통적으로 현세보다 내세의 천국을 더 바라봤던 교회가 기독교 국가론을 들고 현실 정치에 개입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중도 복음주의 신학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복음주의는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대립 구도를 영적 전쟁, 세계관 전쟁으로 환원해 왔다. 이러한 논리를 정교하게 한 건 보수 개신교가 아니라 복음주의·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었다. 2000년대 이후 극우 진영은 이를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극우 개신교 진영이 '기독교 국가론'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 그가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 문명을 한국에 이식했고, 한국도 "아시아의 이스라엘"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여러 극우 개신교 단체들은 이승만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손현보 목사도 이승만 호를 따서 '세계로우남기독아카데미'라는 대안 교육기관을 세운 바 있다.
김 연구원은 한국의 극우 개신교가 미국과 트럼프 정권을 진정한 '기독교 국가'로 해석하면서 하나님나라와 '기독교 국가'를 동일 선상에 두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미국은 '기독교 국가'일까. 김현준 연구원은 "(미국의 정치학자인) 새뮤얼 헌팅턴은 '미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를 문화적 차원에서 수용하고 도덕적 질서나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개신교 우파들은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근거로 미국 독립선언서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등장한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김현준 연구원은 이들이 나란히 등장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에는 이중 잣대를 댄다고 했다. 그는 "'자유'와 '평등'은 사람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석된다. 소수자나 이주민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저항권'으로서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수자 차별, 이주민 차별,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극우 개신교 집회에는 태극기, 이스라엘 국기와 함께 성조기가 등장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이 다양성 정책을 펼치고,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는 등 극우 개신교의 반공·반소수자 담론과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더라도, 이들은 계속 미국을 옹호해 왔다는 것이다. 김현준 연구원은 이를 두고 미국을 단순히 추종하는 게 아니라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대사관이 무지개 깃발을 내걸어도, 이들은 혼란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낸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다', '미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을 다시 회복시키는 중대한 사명을 가졌다고 정체화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보수 우파 개신교인들이 '하나님나라'를 신정 국가로, 민주주의를 세속주의·인본주의로 오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북한과 '종북 좌파'에 대한 '적대와 닮음'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북한과 종북 좌파를 적대하는 이유, 그러면서도 독재 체제를 닮아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이 하나님나라의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세속 독재 국가이지만 일종의 유사 신정 국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개신교는 북한 및 독재 체제를 혐오하면서도 선망해 왔다"고 말했다.
극우 개신교가 극우 선동 발언 앞뒤로 찬양과 기도를 배치하는 등 '감정'을 활용해 참가자를 끌어들이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김현준 연구원은 "의례는 집합 흥분을 만들고 정체성을 만든다. 이러한 파토스는 은사주의와 친연성을 갖는다. 또한 사회적 피해의식과 박탈감으로 인한 상상된 모욕감은 음모론과 반지성주의를 강화함으로써 극단적 분노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김현준 연구원은 극우 개신교인들을 타자화하거나 단순한 '사이비 광신도'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극우화는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민주주의 체화와 진보 의제 추진 과정에서의 소외와 좌절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면서 "한국 사회 구석구석의 미시적 영역에서 가시화되지 않은 공간들을 재점검해야 한다.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내부자'다. 그들을 다시 공적 영역으로 초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