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뱉다]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이 글은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한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완성반 참석자가 쓴 글입니다. '한 권의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 저술한 단행본 형식의 미출판 원고 중 일부를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어? 에이, 왜 안 나와 이거…."

심방 중이었다. 아무리 힘주어 글씨를 써 봐도 검정 잉크는 나오지 않는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하필 권사님 아드님 성함을 적을 때 이러다니…. 당황한 얼굴을 애써 감춘다. '딸깍' 소리를 내며 이번엔 파란색 펜촉을 꺼낸다. 안 나온다. 혹시 누가 볼까 손으로 가려 가며 새빨간 글씨로 이름을 적었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개신교 신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한 교회의 전임 전도사다. 이런 나 역시 생각보다 미신을 무의식적으로 의식하며 산다. 시험을 앞두면 미역국보다 찹쌀떡이 끌리고, 출근길에 까마귀라도 만나면 그날 하루가 재수 없을 것 같아 괜히 불안하다. 어느 날 스스로 물었다. '내가 왜 이런 걸 신경 쓰고 있지?'

참신이신 삼위 하나님을 굳게 믿는 사람이라도 미신을 신경 쓰는 이유는 그게 삶의 이곳저곳에서 보이기 때문일 테다. 차라리 아예 보이지 않는다면 괜찮겠는데, 미신은 여전히 삶에 끈덕지게 남아 불안을 만든다. 문제는 미신에 대한 질문 자체가 교회 안에서 계속 금기시돼 왔다는 점이다. 보이는데, 보지 말라고 한다. 무조건 덮어놓고 '아무튼 미신이니 그런 것 하지 말라'고 말하는 동안, 미신은 참신보다 훌쩍 자라서 우리 마음을 뒤덮고 말았다.

"와, 이게 진짜 우리 집이야?"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이사를 했다. 어렸을 적 살던 낡은 흙집을 부수고 그 위에 새집을 지었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처음 일주일 정도는 내가 들어온 이곳이 정말 우리 집인지 아니면 어디 다른 동네 펜션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이상하게 낯선 느낌이 들기도 했다. 새집은 정말 좋았다. 밤마다 천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소란스러운 쥐들의 발소리도, 여름이면 어딘가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던 돈벌레들도 사라졌다. 또 하나 없어진 것이 있었다. 방을 나올 때마다 애먼 발가락을 괴롭히곤 했던 문지방이었다.

"어? 진짜 없네."

"그렇다니까. 있으면 괜히 밟고 다니기나 하지."

지금은 장로, 그때는 집사였던 아버지는 문지방을 두면 괜히 찝찝하니 그냥 없애 달라고 시공 업체에 부탁했다고 말했다. '문지방 밟으면 복 나간다'는 말과 함께. 그제야 어렸을 때부터 유독 진지한 얼굴로 문지방 밟지 말라고 했던 어른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밟아서 복 나갈 거면 애초에 만들지 말지, 굳이 밟으면 안 될 걸 왜 만들어서 이 사람 저 사람 피곤하게 하는 건지 의문이었다.

지금이야 장례를 장례식장에서 치르지만,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장례 의식을 집에서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집에서 가장 큰 방에 고인을 모시고 입관을 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장례 셋째 날에는 발인을 한다. 마당에 놓인 상여에 고인을 모신 관을 실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것이 바로 '문지방'이었다.

특이한 점은 이때 문지방에 바가지 하나를 엎어 둬야 한다는 것이다. 문지방에 올려 둔 바가지를 관으로 눌러 깨뜨리고 나서야 고인을 상여에 모실 수 있었다. 이 바가지를 '삼신 바가지'라고 불렀다. 우리 민족 토속신앙에서 인간을 지켜 준다고 알려진 '삼신할머니'를 모시는 바로 그 바가지다. 고인은 자기 삶을 다하고 죽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다. 그러니 '이생의 연을 끊고 미련 없이 가라'는 뜻에서 고인을 모신 관으로 삼신 바가지를 깨뜨리는 것이다.

관이 문지방에 놓인 바가지를 깨는 순간, 고인은 평생을 살았던 집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을 함께한 가족과도 이별한다. 이때 마지막으로 밟고 가는 생사의 경계가 문지방이었다. 문지방에 대한 미신은 이런 맥락을 먹고 커졌다. '문지방 밟으면 복 나간다'는 말은 죽음 너머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미신이었던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심리는 만국 공통이다. 심지어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도 비슷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스올'로 간다고 생각했다. 스올은 단순히 죽어서 가는 이곳 너머의 저곳이 아니었다.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곳'이었다. 시편 6편에는 이런 생각이 잘 반영돼 있다.

"돌아와 주십시오, 주님. 내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 주님의 자비로우심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죽어서는, 아무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스올에서, 누가 주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새번역, 시편 6편 4~5절)

시인은 "죽어서는, 아무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스올에서, 누가 주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스올을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말했지만, 현대인에게 스올은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이유 모를 괴로움 때문에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과도 단절됐다고 느끼는 삶의 현장이 곧 스올이다. 

"전도사님, 수술해 보는 게 어때요?"

나는 초고도 근시다. 늘 두꺼운 안경을 썼고, 어린 시절엔 놀림도 많이 당했다. 더 커서는 시력 때문에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거나 불편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역하던 교회에서 수술을 권유받았다. 두꺼운 안경이 성도님들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별말 없이 알겠다고 했지만, 당장 수술비가 없었다. 단골 안경점에서 렌즈를 구했다. 처음 해 보는 일은 다 어렵다. 교회 갈 때마다 안경을 벗고 렌즈를 착용하느라 심할 때는 반나절을 씨름한 적도 있었다. 고작 렌즈 하나 끼자고 몇 시간 난리를 떨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화가 났다. 도대체 누가 내 안경이 보기 싫다고 했는지,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안경을 사 줬는데 왜 굳이 렌즈를 착용하느냐"는 부모님의 말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안경이 불편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두 눈 뜨고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고 말하곤 했다. 늘 그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는데, 그 순간에는 그 말조차 집어던지고 싶었다. 하나님이 미웠다. 볼 수 있게 만들 거면 더 잘 보이게 만들어 놓지, 왜 늘 두꺼운 안경 너머로 세상을 봐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과 끊어진 것 같은 괴로움은 꼭 죽음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는 삶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의 스올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올 수 없는 구덩이 속에서 내뱉는 절망만이 우리의 운명일까?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새번역, 시편 139편 7~8절)

놀랍게도 시편 후반부에는 스올이라는 절망을 이겨 낸 작품이 있다. 시편 139편의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고,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하신다고 고백한다. 이 선언은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라는 구절에서 정점에 이른다.

시인은 전통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절망의 장소로 여겨진 스올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과 함께하신다고 담대하게 말한다. 깨진 바가지와 함께 인연이 끊어지는 삼신할머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오래된 믿음의 고백은 성서의 한 구절로 남아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는 보편적인 심리다. 문지방 미신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단절,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늘 미신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어서 스올에 가면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된다'는 생각에서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고백은 스올에까지 까닿았고, 결국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라는 믿음이 됐다.

신앙이 있는 사람도 죽음이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문지방에 대한 미신뿐만 아니라 스올까지 찾아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길 바란다. 문지방 미신을 억지로 마음속에서 지우지 않아도 상관없다. 두려움은 누가 강제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죽음에 대한 강한 두려움만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역시 강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괴로움과 고난이 우리 삶을 또 다시 스올로 만들 때면, 사도 바울의 말을 생각하자.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영원한 단절 같은 죽음조차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그러니 괜찮다. 당신이 문지방을 밟을까 걱정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과 함께하신다.

쓰는 인간 / 삶이 달지 않아 차라리 쓰기로 했다. 글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