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회는 참혹하리만치 철저하게 바벨론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위의 문장은 두 가지 방향에서 확연히 나타납니다. 포로가 됨의 양상 중 하나는 오늘의 교회가 바벨론 포로가 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거나,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받아들인다 해도 단지 감상적 포즈로만 받아들이려 할 뿐입니다. 교우 중에서 세속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회심하고 모여든 곳이니깐 바벨론의 불손함이 교회 안에 묻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지나친 낙관주의 혹은 직무 유기적 사고방식의 발로입니다. 첫 문장에 언급된 바벨론의 포로가 된 교회는 교회라는 제도 그 자체를 표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개인들의 도덕적 불순이 쌓이고 쌓여서 타락의 바벨탑을 쌓아올린 것이 아닙니다. 개인들이 도덕적으로 서로 연대하고 소임을 다하기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고 보는 생각, 그러한 신념의 터전 위에 세워진 제도로서의 교회가 곧 교회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그 위에 세워진 건물로서의 교회가 바벨론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는 총체적 허점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의 교회는 그 허점에 너무나 무기력하게 대응해 왔으며, 문제점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조차 하지 않은 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포로 됨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교회가 바벨론 포로가 되어 있음을 철저하게 수긍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 역시 총체적 허점에 대한 인식 결여의 공산이 다분합니다. 이 포로 됨의 인식 역시 바벨론 문제의식을 단순히 맘몬의 수용, 비도덕적 태도의 받아들임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시발점은 이교 숭배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교의 신은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거부와 불인정으로부터 태동합니다. 다산, 풍요, 농경의 신, 등등 다양한 물적 축복을 담당하는 신으로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 합니다. 그러한 이교의 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신앙하는 교회 안에 끌어들이려는 태도에서부터 어쩌면 바벨론의 가치관을 직, 간접적으로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 성장 우선주의의 무비판적인 수용, 타문화와 철학에 대한 일방적 배타주의의 고수, 그로 인해 남은 건 형해(形骸)만 남아버린 성서 텍스트의 심각한 왜곡과 변질입니다. 그것은 바벨론 포로가 된 오늘의 교회를 대변하는 현주소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타당한 문제의식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벨론 포로가 된 교회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방법론에 있습니다. 과연 맘몬으로부터의 탈피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유일한 해법이 되는 걸까요. 제도를 개혁하고 배타주의의 가치관으로부터 탈주만이 해방일까요. 그렇게 해방된 이후에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프로파간다의 노예가 된 교회

탐욕의 배제와 성장 제일주의 재고(再考)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궁극적 주제의 성취라기보다 바벨론이란 대상 자체의 극복 의지를 천명하는 이른바 포즈의 차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벨론의 인식은 그러한 포즈의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바벨론 포로의 역사는 이천 년이란 장구한 교회 역사를 통해 집요하게 전개되어 왔습니다. 때문에 해방에 대한 인식을 맘몬과 탐욕으로부터의 해방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우상을 옹립시키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릅니다. 도덕적 하나님에 대한 표상으로서의 우상 말입니다.

불경스러움을 각오하고 밝히자면 타락과 부패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외침은 지나칠 만큼 단순합니다.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습니다. 그러한 구호를 외치는 것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집단적인 신념을 고취, 함양할 수 있습니다.

"보아라. 교회가 썩었다. 썩고 불온한 가르침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니 돌아가야 한다. 어디로 말인가. 바벨론 포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성서 가르침을 하나라도 더 많이 들여다보고 10분이라도 더 기도한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 성도들은 이러한 영적 지도자의 목양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등등.

이러한 구호까지도 괜찮습니다. 나름 진정성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부터 본격화되는 구호는 또 다른 우상, 악취 풍기는 바벨론의 음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최악의 선택으로 귀결됩니다.

지도자, 아니면 교회 살리는 일에 앞장서고자 하는 불굴의 신념을 소유한 이들은 이러한 구호의 궁극에 초대교회에로의 환원, 새벽을 깨우는 기도의 회복,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교회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필사즉생 각오의 천명을 거보란 듯 교회 회복의 유일한 솔루션으로 내어 놓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는 있는 걸까요.

그들은 초대교회 미덕의 핵심을 교회의 질서와 동일시합니다. 성도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예화처럼 말씀을 받은 사도들 앞에 추호의 거짓도 지껄여서는 안 되며, 순결한 터전인 교회를 모든 삶에서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행동 강령을 주입하는 것이 교회 질서의 유지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또한 교회 질서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럴수록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성도를 향한 사랑을 자신에게 채근합니다. 무한한 헌신과 박애의 깊이를 수련하기 위해 언제나 자신의 부족한 인성을 타박하며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가 과연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이란 대명제의 한 발자국이나마 근접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터무니없이 나이브한 접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정신

초대교회로의 환원은 초대교회 정신의 회복에 있지, 초대교회 형태의 복원이나 시대 가치의 맹목적 추종에 있지 않습니다. 정신의 회복은 보편성의 중심을 온전히 갈파해야만 그 회복의 진정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보편성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에 있지 않습니까.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찾고 확증하기 위해 하나둘씩 모인 모임이 교회가 아닙니다. 모임을 통해 그들이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구약이라고 부르는 텍스트에 나타난 구약의 메시아가 이 땅에 나타난 예수가 맞는지 마음속에 확증하는 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존재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편성의 중심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또 하나의 왜곡된 방법론이 존재합니다. 사회와 제도 변혁의 가치로의 몰입이 교회를 바벨론의 포로 됨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간주하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제도의 순수성과 교회의 교회다움이란 명제를 제시함에 대해선 모두 입을 모아 동의합니다. 그러나 제도의 순수성, 교회의 교회다움이 교회를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러한 방법론에 천착하는 도중 교회는 또 다른 바벨론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는 취약성에 무방비로 노출될지도 모릅니다.

교회의 제도 개선과 지배 구조의 변화에 매진하는 것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러나 그 개혁의 과정에서 추구되는 목적들이 어느새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과 동일시되는 의도와 결탁할 때, 또 다른 바벨론이 눈을 뜨게 됩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예수의 가르침에서 제도의 개혁과 지상의 변혁을 부르짖는 메시지가 최종 목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여러 부분의 여지가 있을 순 있지만 적어도 예수의 관심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그리스도 되심을 인류에게 나타내시고자 한 목표 하나에만 매달리셨습니다.

그 하나의 집념은 그렇지만 단순한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의 집념, 그것은 곧 해체의 집념이었습니다.

해체의 집념 

예수가 그리스도였다는 명제는 결국 해체로 귀결됩니다. 무엇으로부터의 해체입니까. 바로 인간의 근원을 옥죄어드는 숙명의 악성인 바벨론으로부터의 해체입니다. 예수의 혁명적 가르침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는 요한복음 텍스트를 통해 눈에 보이는 성전을 허물면 자신이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 참고)

성전이 무엇입니까. 성전은 말 그대로 성전입니다. 성전은 메시아를 기념하고 열망하던 곳이었습니다. 예수는 그곳이 타락했다고 보셨던 걸까요. 단지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성전을 ‘λυσατε뤼사테’, 파괴하라고 하셨던 걸까요. 아니면 단지 상징적 포즈로서 성전을 파괴하라는 뉘앙스를 남기셨던 걸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혁명적 진정성의 궁극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전을 허물어야만 합니다. 이 성전은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총체적 바벨론입니다. 이 바벨론은 궁극적입니다. 단지 맘몬의 우상, 이교의 신이 바벨론의 전부는 아닙니다. 바벨론의 욕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의 위치에 복권되려 하는, 그리하여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자발적 신의지의 처참한 고양과 결속으로 존재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 원죄성의 핵심입니다. 원죄의 노예 됨은 단순한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심리적 조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실존은 자발적 신욕구神欲求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이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λυσατε뤼사테’, 해체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가 쌓아올린 욕망의 바벨탑을 우리 자신의 안팎에서 파괴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흘 만에 다시 세워지는 해체 이후의 궁극적 광명, 참 빛을 깨달을 수도, 느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사흘 만에 예수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부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의 예수가 우리 마음 안에서는 부활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해체의 삼일은 무엇입니까. 어떤 대상과 어떤 제도, 그 어떤 도그마가 해체의 필연을 대체할 수 있습니까. 오직 우리 마음 안에 좌정하신 성령이 뿌리 깊은 욕망의 원죄를 해체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교회는 이 해체의 도상, 길 위에 서 있을 때만 비로소 교회로서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이요 집단이요 사교모임, 동호회 정모에 불과합니다.

이는 교회라는 단어의미에 거창하거나 신성한 그 무언가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반대로 건물과 모임을 폄하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문제는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는 교회의 프로파간다가 너무나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마음 중심에 교회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데 사악한 왜곡 됨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서 텍스트에 대한 왜곡이 대표적입니다. 자신들의 신념과 구미에 맞는 성서 구절에 대한 무비판적인 도용, 악의적인 취사선택, 최소한의 양심도 저버린 짜깁기 식 설교, 최소한의 성찰조차 결여된 채 고급 소재의 천으로 넝마를 만들어버리는 흉물스러운 무지에 기인한 성서 해석과 적용을 종교 행위의 전부인 양 선전한다는 현실이 우리를 숨 막히게 합니다. 바벨론으로부터 벗어나자고 외치는 그들의 외침조차 해체의 도상 위에 서 있지 못한 현실 앞에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의 사건이 가져오는 충격은 결코 낭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존립하게 만들던 최소한의 기득권조차, 그 사다리조차 걷어차 버리는 해체의 집념 앞에 선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악과 전율은 우리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참된 영성을 일깨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 그 성전의 파괴로 사용된 희랍어 동사 ‘λυσατε뤼사테’의 원형 ‘λυω뤼오’는 파괴와 황폐란 뜻 외에도 '풀어 남', '해방'이란 뜻도 갖고 있습니다.

해체는 곧 해방입니다. 해체의 도상 위에 서 있는 것은 가혹한 전율과 충격의 한 복판에 서는 것이지만, 그것이 바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이란 참된 지평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의 끝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 예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확인하는 초대교회 정신의 회복이요, 맘몬의 우상에게서 벗어나 다른 차원의 길을 걷는 새로운 길, 해체로서의 길의 발견입니다.

교회는 해체되어야만 합니다. 해체의 정체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의 몫입니다.

해체의 집념을 폐허나 허무주의의 돌입으로 이해해선 안 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는 성령의 세밀함을 철저히 의지할 때, 우리는 해체의 잿더미 위에 새로운 성전을 지어가시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역사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역사,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숨 쉬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의 숨을 말입니다.

<해체의 교회> 칼럼을 마치며

해체의 집념이란 테마를 가지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해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해체하지 않고선 잠정적 새로움의 길을 발견할 수 없을지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졸고를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주원규 / <열외인종 잔혹사>·<망루> 저자, 동서말씀연구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