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4년 2월 25일, 사순절 둘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22:23-31 / 창세기 17:1-7, 15-16 / 로마서 4:13-25 / 마가복음 8:31-38 

널 첨으로 스친 순간 절로 모든 시간이 멈췄고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사진 출처 Paramount Pictures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사진 출처 Paramount Pictures

테드 창(Ted Chiang, 1967~)의 2016년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는 '헵타포드'라는 외계 생명체와 언어학자 루이스의 만남 그리고 루이스의 딸과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며 전개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닙니다. 다른 언어를 지닌 타자, 헵타포드를 이해하기 위해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연구하게 됩니다. 의사소통을 위해 처음에는 인류의 익숙한 방식인 음성언어로 접근을 하죠. 혹은 문자를 보여 주고, 행동 언어와 문자와의 관계를 통해 의사소통을 시도하기도 하고요. 물리학자 게리 또한 그의 과학적 사고방식을 통해 헵타포드의 존재를 알고 싶어 합니다. 사고는 각자가 가진 언어와 관련이 있어서, 결국 루이스는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해야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결론을 갖게 됩니다.

이윽고 알게 되죠. 우주의 언어는 인류의 언어처럼 인과관계적이거나 순차적인 것이 아닌, 동시적이며 목적적이라는 것을요. 이것은 루이스가 게리를 통해 페르마의원리를 가지고 알게 된 사실이죠.  빛의 경로는 늘 최소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경로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가지는 거죠. 빛의 굴절을 인과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첫 번째 관점이고요. 그래서 빛이 수면에 도달하는 것은 원인, 굴절로 인한 방향 전환이 결과라는 도식이죠. 그리고 두 번째 관점으로서 빛은 이미 최종 목적지를 정해 놓고, 모든 계산을 끝마친 상태에서 빛이 나아간다는 것이 헵타포드의 언어와 닮아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헵타포드식 언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경험되고 있는 상태이고, 목적을 근원적으로 지각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인과론적이며 선형적 사고 체계를 가진 인간의 사유 방식과는 다른 것이었죠. 인류의 관점에서는 굴절률의 차이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꿨다고 설명하니까요.1) 언어의 차이를 공부하게 되면서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 전체를 동시에 지각하는 경험을 하게 되죠. 언어 체계가 사고의 로직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는 미래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지요.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2)

수억만 년 만에 만나는 순간 내 몸이 가벼워져

언약은 관계 안에 놓여 있습니다.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순간은, 이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맞이하고 다른 궤도에 진입합니다.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는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하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리라는 약속을 더불어 주십니다(창 17:5).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그의 말 안에서 몹시도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의 언약은 영원하다고 했으니, 자손들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아득해지죠. 자손들 안에서는 왕들이 탄생합니다. '자식이 없는 아브람' 앞에서 벌어지는 말의 향연은 숫자로도 셀 수 없고 문자로도 긁어 모아 기록할 수 없습니다. '영원'은 그런 것이니까요. 자식이 없는 아브람은 셀 수 없는 자손들을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요? 

끝도 없는 어둠 속 소리도 없는 그곳에서 다시 깨어나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본 우리 은하 중심부. 약 50광년 크기 약 50만 개의 별. 사진 출처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본 우리 은하 중심부. 약 50광년 크기 약 50만 개의 별. 사진 출처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그러나 여호와는 새로운 이름을 받은 존재로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응시하고 계십니다. 빛이 최종 목적지를 향하여 모든 경로와 방향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빛의 경로는 일정 시간이 경과해야만 깨달을 수 있고 인식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우하는 무수한 사건들은 언약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겠지요.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하여, 들리지 않는 미래를 기억하는 사건 말입니다.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는 것을 '의'라고 사도 바울은 로마에 편지합니다(롬 4:18-22). 그리고 그것은 다만 아브라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해요. 보이지 않는 중에 믿은 언약은 아브라함에게로부터 셀 수 없는 자손들에게까지 확장이 되고, '의로 여기심을 받는 우리들'은 바울의 말 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되지요.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3-25)

네가 나를 부르면 난 다시 태어나

베드로, 제자들과 함께 예수는 빌립보 가이사랴의 길 위에 계십니다. 예수의 질문은 밖으로부터 안을 향하지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막 8:27)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가리켜 했던 말들을 전해 들은 대로 말합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라고 한다고요. 질문의 과녁은 조금 더 좁혀지죠.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9) 얼굴 없는 다수의 사람들 말고 '너와 나'의 사이가 되었을 때 그 사이의 의미는 서로의 정체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조명하게 됩니다. 베드로와 예수 사이에서 오고 가는 질문과 답은 길 위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희끄무레한 행인들이 되어 버리고, 오직 두 사람만 선명해집니다. 응시하는 예수의 눈빛에 베드로는 주저 없이 대답하죠.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리스도. 베드로는 자신이 한 말을 다시 중얼거려 보아요. 유대 땅에 닥친 지금의 현실, 로마와의 관계, 구원자, 왕, 메시아, 예언의 성취, 어린 시절부터 들어 왔던 모세의 책들과 세월의 경험 안에서 솟아오르는 '그리스도'의 인식이 분명 베드로 안에 있었죠. 그러나 예수는 장차 당신이 고난받을 것과 죽임당할 것에 대해 말하십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살아날 것도 말씀하십니다. 가야 할 곳을 분명히 알고 있는 빛은 경로를 변경하는 법이 없지요. 그 빛은 굴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다만 인간의 언어이고, 사실은 빛이 가야 할 '최소 시간의 원리'에 따라 빛이 가야 할 방향과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항변하는 베드로는 루이스가 헵타포드식 언어를 배우기 전처럼, 인과론적이고 순차적 사고를 통해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있죠. 창조의 시간부터 구속의 시간까지를 동시에 지각하는 예수는 베드로를 꾸짖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막 8:33)

너의 무엇으로 읽혀지고 또 다른 네가 되고
David Spriggs, 'Vision II' (2017). 사진 출처 artincontext.org
David Spriggs, 'Vision II' (2017). 사진 출처 artincontext.org

접촉. 서로가 닿았을 때 이름이 들려 주는 의미와 정체성을 알아보고, '너'를 해독하고, '너의 언어'를 변환시키는 것. 베드로의 항변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예수의 수제자가 되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랐으니 말입니다. 예수는 아마 항변하는 베드로를 보며 그 모든 것을 지각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접촉한 존재인 베드로는 그 모든 신호를 해독하고 변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요.

"'작용'이나 적분에 의해 정의되는 다른 것들처럼 헵타포드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물리적 속성들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해야만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목적론적인 사건 해석으로 이어진다. 사건을 일정 기간에 걸쳐 바라봄으로써 만족시켜야 할 조건, 최소화나 최대화라는 목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처음과 가장 마지막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원인이 시작되기 전에 결과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3)

사순절 둘째 주일,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성서 일과는 언약에 대한 이야기를 거듭 강조합니다. 구름 안에 숨겨 놓았던 언약의 증표였던 무지개는 '그래픽'이었다가 이번 주에 와서 아브라함과 여호와 '사이에' 놓인 언약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순차적이며 선형적으로밖에 보일 수 없을 영원한 언약을 아브라함 앞에서, 베드로와 예수 앞에서 '빛이 가야 할 곳'에 대해 달리 봅니다. 이번 주 경건한 청음은 김동률의 노래 'Contact'입니다. 이 곡은 2018년 앨범 '답장'에 수록된 곡으로 영화 컨택트 (Arrival, 2016) 영감을 받아 작곡된 노래입니다. 영화 컨택트는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니 빌뇌브의 영화이지요. 테드 창의 소설로 시작된 이야기는 영화가 되어, 노래가 되어 그 몸을 바꾸어 자유롭게 유영을 하게 되지요. 루이스가 헵타포드의 언어를 해석하고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되는 것처럼, 성서 일과가 지속적으로 내어놓는 언약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이 노래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사순절은 이전의 언어로 점철된 나 자신이 '또 다른 나'가 되는 시간일 테니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길이기도 할 테니까요. 빛에 의해 다시 발견되는 순간,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았던 아브라함과 항변하며 예수를 붙잡았던 베드로 곁에 서서 들어 보시겠습니다. 

Contact-김동률

널 첨으로 스친 순간 절로 모든 시간이 멈췄고
서로 다른 궤도에서 돌던 이름 모를 별이
수억만 년 만에 만나는 순간 내 몸이 가벼워져
두 발끝은 어느새 떠오르고
끝도 없는 어둠 속 소리도 없는 그곳에서 다시 깨어나
나를 더듬는 손길 그 하나만으로 살아 있다는 걸 난 알 수 있었지
춤추듯이 떠다니는 우릴 달의 뒷면이 비추고
이대로 다 끝나 버렸으면 우리 세상에선
이미 수천 년이 흘렀더라도
난 아무도 아니고 네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고
네가 나를 만지면 그 작은 울림에 쏜살같이 멀리 튕겨서
빛이 다른 공간에 한없이 떠돌다 타버릴지 몰라
널 놓치지 않게 나를 잡아 줘
네가 나를 부르면 난 다시 태어나
너의 무엇으로 읽혀지고 또 다른 네가 되고
우릴 끌어당기는 그 어떤 법칙도 모두 거스른 채 하나가 될 거야
그렇게 우린 사라질 거야

주) 

1)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2009), 212.
2)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2009), 207.
3)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2009),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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