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4년 2월 4일, 주현절 후 다섯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47:1-11,  20c  / 이사야 40:21-31 / 고린도전서 9:16-23 / 마가복음 1:29-39

Helgunn Bjerga Ravonsheed, 'Caring Hands'. 사진 출처 hail.to
Helgunn Bjerga Ravonsheed, 'Caring Hands'. 사진 출처 hail.to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를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따라나선 결심이 섰을 때 많은 것을 버릴 수 있다 자신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랑했던 갈릴리의 바다, 때때마다 풍족함을 안겨 주었던 바다의 품을 떠나 거기에 그물도 배도 일하는 동료들도 그대로 두고 나온 베드로. 지난 과거를 떠나 스승을 좇아 나선 그는 많은 것과 결별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감당치 못한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었어요.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가족 전체를 아프게 만듭니다. 회당에서 귀신 들린 자에게 '잠잠하고, 그에게서 나오라'(막 1:25)고 하시는 단호하고 낮은 예수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 소리가 베드로의 마음에 계속 울리지요. 회당의 벽을 이리저리 울렸던, 소란을 부리던 자의 소리를 단번에 잠재웠던 예수의 한마디 말씀이 계속해서 베드로에게는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입니다.

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다른 존재에게 말을 거시는 분, 그 음성은 몸 안에 떠나지 않은 아픔을 낫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베드로는 생각합니다. 육체의 고통은 내면을 병들게 만들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그가 아픈 장모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어머니와도 같은 장모님 또한 육체적 고통을 떠나보내고 건강한 몸으로 새 삶을 맞이하길 바랬지요. 치유는 생명의 지속 가능함과 닿아 있고 그렇게 영위된 삶이 줄 안정을 사람들은 늘 바라고 사니까요.

상처 입은 마음을 고치시고 터진 상처를 싸매 주시는 분 (시 147:3, 공동번역)

예수는 한 인생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십니다. 제자들의 일터였던 바다로 가셨고, 가버나움 회당 속 내면의 고통이 심한 '귀신 들린 자'의 심령 속으로 걸어가셨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장소는 점점 넓은 데에서 좁은 곳으로, 보이는 곳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향합니다. 거기에는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누워 있고, 그보다 더 깊이 걷는 예수는 그의 아픈 곳을 향해 정면으로,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 일으키시지요.

병상에 오랫동안 누워 있던 사람, 그저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공허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사람, 그것이 지루해 눈을 감으면 세상은 온갖 소리들로 가득 차 있지만 거기에 참여할 수도 반응할 수도 없던 사람이 예수의 손을 의지해 몸을 일으킵니다. 숨죽여 지켜보던 가족들과 사람들의 얼굴에 뜨는 해처럼 빛이 드리우고, 희망이 함께 일으켜지고, 기쁨이 더불어 일으켜집니다.

소문은 순식간에 갈릴리 사방에 퍼졌고(막 1:28), 상처 입은 마음을 가진 자들과 병마와 평생을 싸우던 육체를 가진 이들이 이제 예수에게 나아옵니다. 시몬 베드로의 집은 고침이 필요한 사람들로 가득하고, 뉘엿뉘엿 지는 해가 붉게 그들의 등을 비춥니다. 낫게 하시는 분의 손과 눈은 아픈 자들을 향하여 있고, 몸과 마음이 일으켜진 사람들의 입에서는 감사의 노래가 흐르지요. 이분은 누구신가. 고치시고 상처를 싸매 흠없이 돌려주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감사의 노래가 수여되어야 할 분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나음을 입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이제 예수를 향해 눈을 듭니다.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이사야 40:26, 새번역)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청력을 완전히 잃은 후 작곡의 독창적 방법을 수립했던 인생의 중기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적 세계를 그의 말년에 구축하게 됩니다. 실재하는 것을 넘어서서 들리지 않은 것을 듣고 보는 세계에 사는 작곡가가 할 수 있는 궁극적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지요. 육체의 질병은 그를 작곡가로서 절망하게 만들었지만, 음악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의 후기라고 볼 수 있는 1820년부터 1827년의 시기는 이전 초기와 중기의 시간과는 차별화된 심원한 내재적 음악 세계가 새롭게 열리지요.

작곡가에게 청각장애는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그는 유서를 써 놓고 사람들을 만나기를 일제히 중단합니다. 만나는 이가 없다 보니, 표정은 무심하고 어두워지고, 말수도 적어졌지요. 훗날 발견된 그의 유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Heiligenstädter Testament)에는 작곡가로서의 고뇌와 육체적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자살 시도를 하거나 생을 저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서를 쓴 이후 신이 부여해 준 재능을 충만하게 발휘하여 곡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이후로 걸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죠. 이 시기에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곡들이 대거 작곡됩니다.

영화 '불멸의 연인(1994)' 중 한 장면.
영화 '불멸의 연인(1994)' 중 한 장면.

청각장애는 이미 심각할 정도로 진행되었고, 현악사중주 15번을 쓰는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만성 하복부 염증으로 한동안 작곡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얼마 지나 고통이 다소 회복이 되자, 베토벤은 3악장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부제를 붙이게 되지요. '치유된 자가 신께 올리는 성스러운 감사의 노래, 리디아선법으로'.

다시 태어난 베토벤은 이전 심포니나 교향곡의 힘 있고 늠름한 기개를 펼쳤던 음악 세계와는 달라져 있습니다. 말기에 작곡한 현악사중주는 이전보다 내면적이고 정적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지요. 활기와 환희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는 전통적인 소나타의 악장 구성인 4악장을 벗어나 현악사중주 15번을 작곡할 때에는 5장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악장인 3악장에 바로 '치유된 자가 신께 올리는 감사의 노래'를 넣게 되지요. 회복된 자가 꺼내 놓는 진심이 한가운데 위치하고 나머지 1악장과 5악장, 2악장과 4악장은 아치 형태로 이 감사의 노래 3악장을 감싸안고 있습니다.

3악장의 도입은 마치 오래된 기도와 같은 회복의 선율이 첫 번째 바이올린으로 등장하고 두 번째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는 잇따라 그 선율을 모방하여 등장해요. 새로운 프레이즈가 등장하며 첼로부터 역순으로 다시 기도를 읊조리며 등장하지요. 네 개의 악기는 서로를 지탱해 주며 서서히 움직입니다. 리디아선법에 따라서 말이지요. 리디아선법(Lydian scale)은 중세, 그레고리오성가 시대의 여덟 개의 교회선법 중 하나로 '파' 음정에서 시작해서 솔, 라, 시, 도, 레, 미, 높은 파로 끝나는 음계입니다.

리디아 음계.
리디아 음계.

이 음계를 가지고 도입부 2분가량 회복의 선율이 진행됩니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첫 번째 부분.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첫 번째 부분.

이 주제로 5번 반복이 되어 가고, 31마디에서 32마디로 넘어가며 조성과 박자가 바뀌게 됩니다. Andante 3/4박자로 바뀌며 동시에 악보에는 '새로운 힘을 느끼면서 Neue Kraft fuhlend'라는 지시가 등장하죠.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두 번째 부분.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두 번째 부분.

리디아선법의 중세적 분위기를 훌쩍 뛰어넘으며 새로운 기운을 가져오는 전환이 환희를 불러오지요. 이 구간 동안에 악기들은 생명이 꿈틀하는 듯한 꾸밈음과 트릴이 곳곳에 등장해요. 무엇보다 제1바이올린의 생기 있고 힘 있는 고음으로 향연이 자유롭게 등장하죠. 나머지 악기도 그것에 능동적으로 응답하고요.

그렇게 세 번째 부분은 몰토아다지오(아주 느리게)의 변주가 다시 시작됩니다. 코랄 변주곡의 양식을 가지고 첫 번째 부분의 주제가 등장합니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세 번째 부분.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세 번째 부분.

제1바이올린이 원래 주제를 2분음표로 늘려서 연주하며 시간을 늘린 듯하며 그 안에서 다른 악기들은 8분음표를 동반한 엇박의 자유로운 변주가 메아리처럼 나타납니다. 고음에 위치한 제1바이올린의 지속적인 긴 음표들이 한없는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새처럼 활공하고 거기에 펼쳐진 하늘은 드넓게 푸르고 막원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 부분이 116마디에서 라장조로 전환이 일어나며 새롭게 등장하지요. 경쾌하고도 느긋하게 안단테로 말입니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네 번째 부분.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네 번째 부분.

네 번째 부분은 두 번째 안단테 부분의 변주에 의한 간주 형태이지요. 새로운 힘을 느끼던 두 번째 주제를 더욱 더 발전시켜 정서를 증폭시키는 구간이 나타나요. 악기들은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뜯으며 연주하는 기법)를 연주하며 생동감 있는 전개를 다채롭게 이어 갑니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다섯 번째 부분.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의 다섯 번째 부분.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다섯 번째 주제가 몰토아다지오로 나옵니다. '가장 내면적인 감동을 가지고서 Mit innigster Empfindung'의 정성스런 지시어를 가지고 말이지요. 이 다섯 번째 부분은 베토벤이 진심으로 올려 드리는 숭고한 기도문 같은 곡조입니다. 첫 주제였던 리디아의 선율로 만들어진 주제가 다시 등장하지요. 감정은 더 없이 깊어지고 내면의 소리로 작곡을 하는 베토벤의 처절한 감사는 하늘을 향해 드높이 올라갑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갈릴리의 아픈 사람들이 낫습니다. 귀는 들리지 않지만 '새로운 힘을 느끼면서'의 두 번째 주제처럼 또 다른 고통을 회복한 베토벤도 나음을 경험합니다. 그들은 모두 '가장 내면적인 감동'을 겪은 사람들이지요. 주현의 빛이 당도하는 곳은 사람들의 가장 내밀하고 아픈 곳을 향하여 있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함께 듣는 오늘의 경건한 청음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5번(String Quartet No. 15, Op. 132) 중 3악장 몰토아다지오(Molto Adagio) '치유된 자가 신께 올리는 성스러운 감사의 노래, 리디아선법으로'입니다. 베드로의 장모와 그 곁에 치유받은 사람들, 가버나움 회당에서 방금 자유를 얻어 나온 그 사람들과 함께 베토벤의 감사의 노래를 듣겠습니다. 주현절 후 다섯째 주, 덴마크 현악사중주단이 2018년 연주한 코펜하겐 실황으로 들어 보시지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