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복적정의협회 회복적정의연구소가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라는 주제로 회복적 정의의 개념과 사회 곳곳에 회복적 정의가 적용되는 모습들을 연재합니다. 격주 화요일마다 발행됩니다. - 편집자 주

 

회복적 정의의 뿌리

이재영은 그의 책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피스빌딩)에서 회복적 정의 운동의 탄생 과정과 발전에 영향을 준 다양한 배경을 소개한다. 그는 그 배경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는데, 첫째는 원주민 전통 문화, 둘째는 피해자 권익 보호 운동, 셋째는 기독교 평화주의이다. 한편 이상규는 그의 책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SFC)에서 기독교 평화주의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성경과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보여 주셨고, 초기 기독교회가 따랐던 삶의 방식, 폭력과 전쟁을 용인할 수 없는 입장이 기독교 평화주의(Christian pacifism)라는 것이다.

메노나이트 교회는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에 있다. 메노나이트 교회는 전통적으로 세상과 구별되는 자생적 공동체로 살아왔다. 옛날 방식으로 살아가는 아미시 공동체처럼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부터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자신의 신앙 전통을 신학적 논리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예가 1960년대부터 정부와 교회의 역할을 이론적으로 재규정한 '평화신학'이다. 이런 교회 분위기 속에서 메노나이트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회복적 정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활약하게 되었다.

회복적 정의를 태동케 한 신앙적 그룹

메노나이트 교회는 삶의 패러다임으로서 평화를 위해 실천하며 회복적 정의 운동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의 주축인 개혁교회는 그렇지 못했다. 개혁교회 전통은 초대교회의 평화 사상과 예수의 비폭력 가르침에서 '정당 전쟁론'으로 기울어졌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세 개의 그룹이 있었다. 이들 그룹 중 근원적인 종교개혁을 감행한 일군의 무리가 있었다. 루터와 칼뱅, 츠빙글리보다 더 근원적인 성경의 개혁 사상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그룹들을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라고 부른다. 그들에게는 '개혁'보다는 '복귀'라는 말이 더 타당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평화의 가르침과 초대교회의 실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다운 개혁이었다.

이들 재세례파 그룹들은 가톨릭과 개혁교회 양측에서 박해를 받아 소수의 무리로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흩어진 지역과 지도자들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예수의 평화 사상과 그 실천이 공통분모였다. 이들 그룹 중 메노 시몬스의 이름을 따서 메노파라는 뜻으로 메노나이트 교회가 시작되었다. 메노나이트 교회를 포함하여 아나뱁티스트 전통은 어떻게 예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실천한 초대교회의 평화 전통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더불어 삶으로 살아 내며 실천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들의 신앙의 전통과 유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 사진 출처 위키백과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 사진 출처 위키백과
회복적 정의와 관련한 신앙적 전통들

아래의 네 가지 전통은 스튜어트 머레이의 <아나뱁티스트 성서해석학>·<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대장간)를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공동체적 성서 해석 전통

재세례파는 성서를 해석하는 데 있어 공동체적 환경을 선택했다. 스튜어트 머레이는 <아나뱁티스트 성서해석학>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성서를 해석하는지 보여 준다.

초기 스위스 형제단의 한 소책자는 한 명의 설교자가 모든 것을 점령하고 있는 국가교회에 대해 비판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와서, 끊임없이 한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기만 하고, 모든 청중은 침묵하고 어떤 말도 어떤 예언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영적인 공동체로 그것을 간주할 수 있으며 고백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1527년 자틀러가 쓰고 슐라이트하임 고백과 함께 널리 배포된 <초기 아나뱁티스트 공동체의 질서, 스위스의 질서>는 스위스 아나뱁티스트들이 어떻게 함께 성서를 공부했는지 설명한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였을 때, 그들은 함께 읽을 무엇인가를 집어든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이해력을 주신 사람이 그것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은 조용히 듣는다." 국가교회에서 보여 주는 설교자들의 독백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이런 초기 재세례파 회중은 조용히 있는 청중을 향해 상세히 설명하는 훈련된 설교자들에게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읽도록 격려하고, 서로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이해대로 본문을 설명할 준비가 되도록 이끌었다.

교정 수용과 상호 개방성 전통

재세례파 지도자들은 대화를 하는 것과 대화를 하면서 교정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 상당한 호응을 했다. 재세례파의 진정성은 상호 간의 교정에 있다. 교정에 대한 마펙의 개방성은 <훈계>에서 "만약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좀 더 유용하고, 중요하며, 더 나은 것을 계시하신다면, 그가 그의 은사를 묻어 버리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이 그것을 모든 선한 양심의 사람들을 위하여 거룩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교제 가운데 들어갈 수 있도록 주셨으니 그 계시를 표현하게 하라." <고백>에서 "우리로 하여금 정직과 진리 안에서 서로 경고하고, 훈계하며, 가르치고, 훈련하고, 듣고 이해하게 하소서, 또한 믿음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게 하소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하나님과 진실한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굴복합니다." 마펙이 스스로 이 교회 훈련에 순종함에 따라 상호 가르침과 교정이 마펙의 의도대로 그가 지도자로 있는 교회에서 제시되었다.

메노는 교정과 더 나은 계시에 대한 유사한 개방성이 있음을 고백했다. 그의 <간단하고 명확한 고백>에서 그는 자기 독자들에게 물었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이 글에 관하여 더 간단한 성서를 가지고 있고,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명확한 기초, 더 단순한 진리나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를 도우라. 나는 이 문제에 관해 나의 마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바꿀 것이며, 당신의 견해를 받아들일 것이다." 메노에게 있어서 성서 해석의 필수 요건은 성령과 형제들에 의해 지도를 받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평등의 전통

재세례파의 모임에는 강대상이 없다. 전형적인 국가교회는 한 명의 설교자가 잘 보이고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설계된다. 반면 재세례파 모임은 숲, 동굴, 배, 집 그리고 넓은 초원 같은 곳이었으므로 강대상과 같은 영향력 있는 상징은 없었다. 다수의 참여는 강대상이 없는 환경에서 훨씬 더 가능해지는 것이다. 강대상이 없이 다수의 참여를 이끌어 가는 제세례파는 농민운동에 자극을 주었다. 당대 농부들은 배우지 못하고 힘없는 자들이었다. 이들에게 강대상이 없음은 특권을 주는 것이며, 반대로 공식적인 권위를 가진 자들은 강대상이 없으므로 독점에 도전을 받는다. 평등한 공동체는 눈치 없이 자발적 참여가 가능하다.

회개의 전통

아나뱁티스트 전통은 예수 따름이라는 제자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제자도의 외적 증거는 회개로 나타난다. 회개란 무엇인가. 예수의 가르침과 본에서 벗어난 것이 죄이며, 다시 예수의 가르침과 모범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이다. 회개가 요청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직면해야 가능하다. 내적 은혜를 받고 그것이 외적 적용의 힘으로 나아가며 실천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결국 회개의 전통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 내는 아나뱁티스트를 적용의 달인으로 만든 셈이다.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에 대해서는 위 세 책에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사진 출처 대장간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에 대해서는 위 세 책에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사진 출처 대장간
회복적 정의와의 연결성

앞서 신앙적 전통 네 가지를 살펴 보았다. △공동체적 성서 해석의 전통 △교정 수용과 상호 개방성의 전통 △평등의 전통 △회개의 전통이다. 이 네 개의 전통과 아래의 회복적 정의의 정의(定義)를 곱씹어 보자.

하워드 제어 박사는 회복적 정의를 "정의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패러다임이자 방식으로써, 어떤 잘못에 연관이 있는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잘못을 바로잡고, 피해가 최대한 치유되도록 함께 피해와 필요를 확인하고, 책임과 의무를 규명해 가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를 '관계를 깨뜨린 행위'로 본다. 정의는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 피해자의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더불어 가해자에게 해명과 사과의 기회를 갖게 하여 낙인찍히지 않게 하고, 문제가 잘 해결되어 사건 이후에도 공동체에 다시금 재통합되도록 한다. 그래서 회복적 정의는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정의, 모두의 정의라 할 수 있다.

현대 회복적 정의 실천과 역사 속 신앙의 전통 간에 긴밀한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회복적 정의 실천은 공동체 회복을 목표로 한다. 높고 낮음의 신분과 관계없이 모두가, 공동체가 성서를 해석하며, 틀린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치며, 옳음을 옳다고 제안하는 개방성과 평등의 전통은 회복적 정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계의 회복을 도와준다. 관계가 회복되면 공동체가 살아난다. 반대로 공동체가 살아나면 관계가 좋아진다.

회복적 정의 실천은 당사자들이 만나 피해를 해결하고 가해 사실을 인정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이행하도록 애쓴다. 회복적 정의 실천에서 대화 모임을 진행할 때 대화 모임이 잘 진행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교정성과 상호 개방성에 근거한다.

회복적 정의 실천에서 직면은 필수적이다. 자발적으로 모여 문제를 놓고 대화할 때 당사자들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 직면은 교정 수용과 더불어 회개의 전통에 근거한다. 회개는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어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들이 드러난다. 이 또한 회복적 정의 실천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면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미친 영향이 드러난다. 그렇게 될 때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책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오랜 세월 회복적 정의를 잉태할 수 있었던 신앙적 전통들은 현대의 회복적 정의 실천에 적절한 철학과 가치, 실천 기술과 구조를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신학자·목회자와 같은 전문가들의 해석에 의존하는 개혁교회 공동체에서 발견할 수 없는 전통들이 이 시대 가운데 회복적 정의의 패러다임이라는 탑을 쌓아 올렸다.

김주용 / 목사. 현재 탈성장, 탈성직, 탈성별을 기치로 예수 생명, 예수 평화, 예수 따름(제자도)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경기 광주 태전동에서 평화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다. 사단법인 참된평화를만드는사람들의 간사로 교회 안팎에서 평화를 일구고 있다.

'이후 글 순서'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3. 회복적 정의와 회복적 생활교육 - 서동욱(한국평화교육훈련원 교육기획팀장)
4. 회복적 정의와 사법 - 김재희(성결대학교 교수)
5. 회복적 정의와 경찰 활동 - 윤구식(RJ실천센터 소장)
6. 회복적 정의와 장애 - 황필규(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장애인소위원회 위원장)
7. 회복적 정의와 사회적 참사 - 김훈태(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8. 회복적 정의와 웰엔딩 - 남태일(세사람 대표, 어.울림교회 목사)
9. 회복적 정의와 공동체 - 한정훈(한국평화교육훈련원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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