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복적정의협회 회복적정의연구소가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라는 주제로 회복적 정의의 개념과 사회 곳곳에 회복적 정의가 적용되는 모습들을 연재합니다. 격주 화요일마다 발행됩니다. - 편집자 주
연재를 시작하며 

학교폭력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학폭 당사자들을 만나게 되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상대는 잘 모르는 경우도 있고, 진정으로 사과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던 경우도 있고…. 처벌이 결정되는 마지막 절차에서도, 이 처벌로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중요한 순간에서도 당사자들은 만나서 이야기할 수 없으며 심의위원들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기계적으로 처벌을 결정하게 된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학교 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상호 분리와 처벌 강화의 대책들만 쏟아 내고 있다.

'이게 과연 정의일까'라는 의문과 무기력함이 매 순간 다가온다. 비단 학교뿐만 아니라 갈등이 빚어지는 모든 상황, 모든 현장에서 우리는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고 오직 그 기준만이 존재해 왔다. 그래서 이번 연재를 통해 새로운 정의의 문제를 고민해 보려고 한다. 9회에 걸친 9명의 필진들이 회복적 정의가 어떤 개념이고 신앙적으로는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어느 영역에서 어떤 고민과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함께 나누고자 한다. 

최초의 사건

우리 사회에 '회복적 정의'라는 가치는 이제 곳곳에 스며 있다. 학교에서의 회복적 생활교육이나 관계 회복 프로그램, 사법에서의 화해 권고나 회복적 경찰 활동 등은 회복적 정의 관점에서 실천되고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라 하겠다. 그럼 '회복적 정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회복적 정의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이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엘마이라라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두 명의 고등학생이 빈 집에 들어가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교회 탑을 무너뜨리고, 정박되어 있는 보트 바닥에 구멍을 내고, 주차된 차의 타이어를 찢는 등 22가정에 피해를 입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보호관찰관이었던 마크 얀츠와 교정 시설 자원봉사자였던 데이브 워스가 담당 판사에게 제안하여, 가해 학생들이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 대신 피해 당사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 만남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그때 받은 영향을 서로 이야기함으로써, 가해 학생들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주민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피해 주민들은 누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 확인함으로써 막연한 피해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가해 학생들의 사과와 자발적이고 실질적인 책임의 수행은 진정성을 담아 피해 회복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이례적이고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마크 얀츠(사진 오른쪽)와 데이브 워스. 사진 출처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마크 얀츠(사진 오른쪽)와 데이브 워스. 사진 출처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회복적 정의에 대한 이해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범죄·정의연구소장이었고 회복적 정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하워드 제어 박사는, 회복적 정의에 대해 "정의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패러다임이자 방식으로써, 어떤 잘못(범죄)에 연관이 있는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잘못을 바로잡고, 피해가 최대한 치유되도록 함께 피해와 필요를 확인하고, 책임과 의무를 규명해 가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 처벌을 통해 정의를 세우는 응보적 정의의 한계에서 비롯되었다.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의 중요한 차이는 범죄에 대한 이해에 있다. 응보적 정의는 범죄를 '법을 어긴 행위'로 본다. 정의는 처벌권자가 피해자를 대신하여 법을 어긴 행위자에게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이룰 수 있다. 이것이 응보적 정의의 믿음이고 방식이다. 반면 회복적 정의는 범죄를 '관계를 깨뜨린 행위'로 본다. 따라서 정의는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해자가 처벌받더라도 잘못을 깨닫거나 피해가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강제적인 처벌로 가해자는 자신이 받을 처벌에만 집중하게 되고, 처벌 이후에는 피해 회복과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의 자발적 책임을 통한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공동체의 역할을 필요로 한다.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처벌에서 회복으로 정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응보적 정의는 '누가 가해자인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한 접근이었다면, 회복적 정의는 '누가 피해자인가',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가',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의 접근으로 관점을 전환했다.  

회복적 정의에 대한 오해

회복적 정의는 다음과 같은 오해를 받는다. "그럼 가해자를 처벌하지 말자는 거냐", "다 용서하고 대화로 좋게 끝내자는 얘기냐", "처벌하지 않으면 가해자가 어떻게 잘못을 깨닫겠느냐", "당신 자식이 피해를 당해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느냐"와 같이, 가해자 처벌 회피와 온정주의에 관한 우려들이다.

이에 대해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이재영 원장은 "회복적 정의는 처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처벌이 피해 회복과 무관한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처벌은 가해자의 잘못에 대해 처벌권자가 강제적인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가해자가 더 이상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어떠한 자발적 책임도 질 필요가 없는 면죄부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가해자가 처벌받게 되면 피해자에게 별도의 사과나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게 된다.

따라서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를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처벌로 끝내서는 안 되며 책임지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처벌이 곧 피해 회복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처벌은 잘못에 대해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정의 필요는 충족시킬지 모르나, 피해 회복이라는 다른 절반의 정의 필요는 충족하지 못한다. 응보적 정의에서는 처벌을 결정하는 처벌권자와 처벌을 받는 가해자가 중심에 있었다면, 회복적 정의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피해자와 공동체를 다시금 문제 해결의 주체로 소환한다. 

정의의 여신. ChatGPT로 생성
모두를 위한 정의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피해를 발생시킨 사람이기도 하지만, 피해 회복의 키(key)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위안부' 할머니나 강제 노역 피해자들이 가해자 일본 정부의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가해자의 인정과 사과가 피해자의 피해 정당성과 회복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피해자들에게 있어서도 가해자들이 법에 따라 벌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상대가 알아주고 진정한 사과와 더불어 그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는 것이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절실하고 중요한 실익이다. 그런데 가해자가 상대의 피해 앞에 직면할 기회 없이 제3자에 의해 잘못에 대한 인정이 강요되고 일방적으로 처벌이 주어지다 보니, 상대의 피해보다는 나의 처벌에 집중하게 되고 오히려 자신을 피해자화하는 왜곡 현상과 피해·가해 대립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고민은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가 아니라 '가해자가 어떻게 자기 잘못을 깨닫고 피해 회복을 위해 책임지게 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깨닫게 되는 시점은, 나의 행위가 상대에게 어떤 피해와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게 되는 시점이다. 그러한 이유로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안전한 직면'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이며, 피해자의 실익을 충족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가해자의 필요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 가해자는 해명과 사과의 기회를 갖는 것, 낙인찍히지 않고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 사건 이후에도 공동체에 다시금 재통합되는 것 등이 실익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를 위한 정의이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회복적 정의가 구성원들의 회복과 공동체의 치유에 중점을 두는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정의'라고도 불리는 이유이다.

어떻게 직면시킬 것인가

피해자가 가해자와 직면한다는 것은 2차 피해의 우려도 있고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가해자 역시 자신의 잘못 앞에 직면한다는 것은 때로 처벌보다 훨씬 가혹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면은 모두에게 안전해야 하며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의사로 마련되어야 한다. 아무리 직면이 필요하고 의미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당사자들에게 직면을 강제할 수 없다. 당사자들은 직면을 통해 본인이 얻게 될 실익을 충분히 고민할 수 있어야 하며, 직면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확히 알고 참여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직면의 과정은 훈련된 조정자들이 돕게 되며, 당사자들을 각각 따로 만나는 사전 모임, 당사자들이 함께 만나는 본모임과 후속 모임으로 진행된다. 이때 조정자는 당사자들을 공감하되 중립적으로 절차를 진행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본모임에서는 입장 나누기, 쟁점 파악, 대안 모색, 합의의 과정이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합의의 내용은 전적으로 당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고 조정자는 과정만을 돕는다. 안전한 대화를 위해서 당사자들은 반드시 대화의 규칙을 지켜야 하며 조정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대화 절차가 이미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대화를 중단할 수 있다. 

회복적 정의는 삶의 패러다임

회복적 정의는 비단 사법에서의 정의 개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는 기본 원리이며 관계와 공동체를 중시하는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뿐만 아니라 교육, 조직, 가정, 마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시도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지만 회복적 정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라 매우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패러다임이다. 잘못을 하면 벌 받을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일이 생긴다는 것', 갈등이 생기면 누가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다시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특별히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회복적 정의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이고, 복음의 핵심인 샬롬을 구현하는 일이며, 우리에게 맡기신 화목케 하는 직분을 수행하는 일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18-19)

이형우 / 청년 시절 '개척자들'이라는 기독교 평화 단체 스태프로 일했고, 지금은 한국회복적정의협회 회복적정의연구소장으로 섬기고 있다. 카툰 그리기를 즐기고 어여쁜 아내와 길냥이 세 마리를 돌보며 양평에서 살고 있다.

'이후 글 순서'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2. 회복적 정의와 신앙적 전통 - 김주용(평화교회 목사)
3. 회복적 정의와 회복적 생활교육 - 서동욱(한국평화교육훈련원 교육기획팀장)
4. 회복적 정의와 사법 - 김재희(성결대학교 교수)
5. 회복적 정의와 경찰 활동 - 윤구식(RJ실천센터 소장)
6. 회복적 정의와 장애 - 황필규(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장애인소위원회 위원장)
7. 회복적 정의와 사회적 참사 - 김훈태(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8. 회복적 정의와 웰엔딩 - 남태일(세사람 대표, 어.울림교회 목사)
9. 회복적 정의와 공동체 - 한정훈(한국평화교육훈련원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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