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총신대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일부 남성 신학생은 진심으로 학내에서 '사모감'을 찾으려 들었다. '사모' 되기 좋다는 직업으로 간주되던 분야의 학과를 다니고 있던 나는 들려오는 말들에 진절머리를 치며 생각했다. '아직도 아내가 자기를 뒷받침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구시대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목사란 말이야?' 어떤 면에서는 그러려니 했다. 목사가 되려면 결혼해야만 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기에. 개인의 욕망과 구조의 합작 정도로 이해했다.

가정과 사모 됨의 가치를 올려 치던 총신대는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신대원생의 조사와 징계를 차일피일 미뤘다. 피해자가 신고한 후 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징계 결과가 나오는 시점이 가해자의 졸업 이후로 예측되는 데다가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지도 미지수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가정을 교회의 근본으로 가르치고 떠받들더니, 정작 가정 폭력에는 뒷짐을 지고 있는 꼴이다. 

기사가 게재되자 소셜미디어에서는 지금이 여성 안수 지지나 성소수자 차별 반대 선언을 할 기회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 징계할 권한이 있는 자들이 뭉그적거리고 있으니, 그런 발언을 해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총신대가 성소수자 인권 모임 '깡총깡총'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일사천리로 중징계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다. 학생들이 단체 채팅방에 있던 것 외에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동성애를 찬성하느냐' 같은 사상 검증을 하고, 모조리 중징계를 내렸다. 한 학기만 다니면 졸업하는 학생에게도 징계를 내렸다. 군 복무 후 복학하는 과정을 기다렸다가, 한 학기 내내 꼼꼼히 절차를 밟고 무기정학을 처분했다. 분명한 의지는 분명한 징계로 드러났다.

한국교회의 반동성애 마녀사냥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이유는, 동성애자들이 교회에 피해를 준 적이 없다는 데 있다. 그에 비해 '가정 폭력'은 분명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총신대가 사건 처리를 회피하는 이유는, 이 사건의 방점을 '폭력'보다는 '가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총신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 사건이 가정 안에서 벌어진 '가정사'이기 때문에 학교가 개입하기 어렵다고 했다. '부부 싸움'이니 피해자에게도 책임 소재가 있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아내 폭력은 가정 문제가 아닌 '폭력'의 문제다.

2022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정 폭력 실태 조사'를 보면, '가정 폭력은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할 개인적인 문제다'라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 응답이 79.5%에 달한다. 아내 폭력은 가정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이 개입해 가해자에게 접근 금지명령과 벌금형을 내린 것이 아닌가. 

사건의 심각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지금이라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목사 아내 구타'를 검색해 보기를 바란다. 제목 몇 개만 간추려 나열하겠다. '아내 때리고 법정 선고 앞둔 한 시골 목사', '아내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목사 영장', ''기도로 부활시킨다' 구타로 숨진 아내 80일 방치', '검찰, 불륜 행위를 의심하고 아내 폭행한 목사에게 징역 1년 6개월 구형'.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목사 아내를 주로 상담하는 한 상담사는 "사모의 가정 폭력 신고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데, 이건 실제 사건이 드물어서가 아니라 신고하지 못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성 목회자 중심의 교계에서 사건을 알려 봤자 보호받지 못할 것을 아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건이 많을진대, 드러난 사건마저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피해자의 고통은 배가된다.

어쩌면 이번 총신대의 미적지근한 사건 처리는, 그간 총신대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이 여성의 인권을 무시해 온 결과가 아닐까. 스무 살 갓 넘은 남성이 대학에서 자신을 보필해 줄 '사모감'을 찾는 문화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성차별적인 개인의 욕망과 구조의 합작은 피해받는 여성을 계속 양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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