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4년 1월 14일, 주현 후 둘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39:1-6, 13-18 / 사무엘상 3:1-10, (11-20) / 고린도전서 6:12-20 / 요한복음 1:43-51

마크 샤갈, '인간 창조'. 사진 출처 mutualart.com
마크 샤갈, '인간 창조'. 사진 출처 mutualart.com

둘째 아이가 자꾸 제 손을 잡는 바람에 지난밤에 벌떡 깨고 말았습니다. 한밤중이었는데 아이의 손 온도가 뜨끈한 게 심상치 않았어요. 눈을 간신히 뜨고 체온계를 가져와 아이 귓속 온도를 재어 보니 38.9도였어요. 3주 전부터 열이 올랐다 내렸다 콜록거렸다 나았다를 반복했는데, 약을 다 먹고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하얀색 해열제 7.5mm를 밥숟가락에 얼른 담아 "한입에 먹자"고 엄정한 말투로 아이를 일으켰습니다. 밤새 잠을 안 잔 거냐는 퉁명 섞인 질문에 아이는 "조금은 잤고, 자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의 소리가 빠르고 톤이 높은 게 열이 펄펄 끓을 때마다 나오는 아플 때 아이만의 음성이었습니다. 이런 적은 전에도 종종 있었지요. 가슴이 쿵 내려앉습니다. 어지간히 괴로웠을 텐데 도대체 몇 시간을 깨어 있었던 거고 어떻게 그 시간들을 버텼을까요.

아이가 뒤척이는 동안 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흰색의 길고 둥그런 회의 테이블에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나는 경쾌하고도 해맑게 인사하며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갔죠. 그런데 어느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겁니다. 손을 흔들고 웃으며 들어오는 사람에게 아는 척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단발머리를 한 팀장님께 "왜 저를 모른 척하시는 거예요? 인사를 했는데도요"라며 두려움과 불만이 뒤엉킨 말을 뱉어 봤지만, 약간의 비릿한 표정으로 나를 볼 뿐 대꾸하지 않았어요. 한참 회의가 진행되고 나는 몰입도 있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당 사안에 대해 신이 나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했죠. 사람들은 삼삼오오 웅성웅성 자기들 이야기하느라 즐거울 뿐,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내 말에 관심을 갖고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 소리는 사람들의 말과 웃음에 묻히고 내 존재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죠. 무슨 영화 '식스센스'처럼 내가 꿈에서 죽은 거라든지 그걸 나만 혼자 모른다든지 이런 반전 있는 스토리는 전혀 아니었어요. 그저 아무도 나를 듣지 않는 겁니다.

데이비드 머슬먼, '시편 139편'. 사진 출처 davidmusselman.com
데이비드 머슬먼, '시편 139편'. 사진 출처 davidmusselman.com

삶에서든지 꿈에서든지 이런 유의 상황은 '절대적 제외 혹은 무시, 고립, 도태' 등의 감정으로 직결되고, 어린 시절의 분리 불안부터 학령기의 또래 집단에서 기민하게 느꼈던 따돌림, 버려짐의 감정들이 어지럽게 촉수를 바짝 세우며 돋아났습니다. 이것은 살아오며 느껴 온, 제가 몹시도 괴롭고 분노하는 삶의 이슈였고, 꿈은 고스란히 그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꿈에서는 현실과 달라서 체면이나 배려는 없었어요. 가차 없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저의 잘못과 모순이 드러나 버렸죠. 무안하고 당황스러운 감정이 진하게 느껴지며, 내 안에 있는 가장 부끄럽고 아픈 부분이 문득 과거의 잘못과 연결되는 겁니다. 삶에서는 아리송했던 것들이, 무의식 저편에서 길어 올린 상처와 두려움이 꿈에서는 인정사정없이 드러나는데, 이런 저를 구원해 달라고 매달리는 그 순간에, 딸이 뜨거운 손으로 제 손을 잡은 거였죠.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시139:1, 새번역)

나를 샅샅이 아시는 여호와는 시편에만 계신 게 아니었지요. 뜨거운 손으로 나를 만지시며 살펴보셨습니다. 자는 동안에도 듣고 계시고, 보고 계시지요. 살며시 오시는 주님은 오래된 나의 이야기로 다가와 나의 무의식과 감정을 통해 조용히 설득하시며, 구원하러 오시는 분이셨어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1:48)

알아차림의 순간은 시간차를 두고 발생합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를 알아차린 순간과 예수가 이미 나다나엘을 살펴본 순간은 다르지요. 하나님이 모세를 살펴보신 것과 모세가 떨기나무 불타는 장면을 통해 자기 내면을 보고 그 안에 빛나는 빛으로 무한히 반사하고 계신 여호와를 뒤늦게 알아차린 것 또한 시간차가 있지요. 주의 눈은 늘 선행합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은 나를 보시고, 조형하고 계셨지요. 이건 내가 당신을 알아차리기 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보시고 생각을 밝히 아시는 분은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요1:50)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 달음질한 야곱이 벧엘에서 하늘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황홀경을 본 날처럼 말입니다.

the Kings singers 유튜브 갈무리.
the Kings singers 유튜브 갈무리.

빛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절기, 주현절이 지난 두 번째 주의 경건한 청음은 미국 현대 작곡가 파트리샤 반 네스(Patricia Van Ness, 1951~)의 '내 마음은 거룩한 공간 My heart is a Holy Place'입니다. 그의 음악은 저 멀리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가 담고 있는 고요의 공기를 안고 있어요. 기교 없이 정갈한 화성은 깊은 내면에서 경이와 감탄으로 창조를 하고 계시는 창조주를 온전하게 바라보게 해 줍니다. 남성 6성부로 구성된 이 곡은 알토 두 명, 테너 두 명 그리고 베이스 두 명이 각자의 파트를 하나씩 맡아서 간결히 연주한 영국의 킹스싱어즈(The Kings Singers)에 의해 더욱더 알려지게 되었어요. 악기 없이 오직 아카펠라로 연주되는 남성들의 넓은 음역대가 하나님의 세심하고도 인자한 성품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지요. 

주현절기에 우리는 동방박사, 시므온, 세례 요한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에게 나타나신 숭고한 빛의 본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를 깊은 곳으로부터 살피시고 알아보셨지요. 합창곡 '내 마음은 거룩한 공간 My heart is a Holy Place'은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우리를 은밀하고도 깊게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살피심과 우리를 계속 빚으시는 신비의 손길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빛의 계절, 이전보다 미리 알고 부르신 나다나엘, 그 곁의 빌립,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어린 사무엘과 함께 들어 보시지요. 킹스싱어즈의 연주로 듣습니다. 

'내 마음은 거룩한 공간 My heart is a Holy Place'

My heart is a holy place
Wiser and holier than I know it to be
Wiser than my lips can speak
A spring of mystery and grace
You have created my heart
And have filled it with things of wonder
You have sculpted it, shaped it with your hands
Touched it with your breath
In its own season it reveals itself to me
It shows me rivers of gold
Flowing in elegance
And hidden paths of infinite beauty
You touch me with your stillness as I await its time
You have made it a dwelling place of richness and intricacies
Of wisdom beyond my understanding
Of grace and mysteries, from your hands
 
내 마음은 성스러운 곳이랍니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현명하고 숭고합니다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보다 지혜로운 곳이지요
당신은 내 내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경이로운 것들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조각하고 모양을 잡았습니다
당신의 숨으로 그것을 만지셨지요
그만의 계절에 따라, 내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내게 금빛 강을 보여 주었고요
우아하게 흘러가는
그리고 무한한 아름다움의 숨겨진 길
당신은 내가 때를 기다리는 동안 당신의 고요함으로 나를 만드셨습니다
당신은 그곳을 풍요롭고 미묘한 것들의 거주지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지혜로
은혜와 신비로, 당신의 손에서
(번역: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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