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12월 24일, 대림절 넷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누가복음 1:46b-55 / 사무엘하 7:1-11, 16 / 로마서 16:25-27 / 누가복음 1:26-38

하나님 아들의 거처가 된 여인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그의 영원한 거처를 주님이라고 말했었지요. 나일강 위를 위태롭게 떠내려 왔던 갈대 상자 속 아기 시절부터 파라오의 집과 광야의 시간을 거쳐 모압의 골짜기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였던 모세 말입니다.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 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과 세계가 생기기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시 90:1-2, 새번역: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중)

벽으로 둘러싸인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삶을 인도하신 여호와의 품을 거처라고 고백했던 모세.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여자의 몸을 거처로 삼아 잉태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 두셨던 그 심오한 진리는(롬 16:25, 공동번역) 어리고 여린 존재에게 깃들지요. 비천하고 유한한 인간의 몸을 통해 오실 것을 천사는 예고하고, 마리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면을 깊이 응시합니다(눅 2:19). 모세가 자신의 신을 벗고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바라본 자기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빛을 마주했듯, 마리아 또한 그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 자신을 마주하지요. 이윽고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주를 기뻐한다'는 마리아의 노래(눅 1:46-55)는 한나의 노래를 닮아 있습니다(삼상 2:1-10). 비천한 사람들에게 오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래전에 불리웠던 노래가 다시 깨어나 새 노래가 되지요. 문설주에서 괴로워하던 한나의 마음, 그리고 사무엘을 통하여 주의 뜻을 한나를 통해 이루신 여호와께 감사하는 기도는 마리아의 내면으로 다시 투영이 됩니다. 노래가 된 기도는 연기처럼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또한 공기 중에 휘발되지도 않고요. 응시된 마음 안을 휘젓는 옛 노래는 새 노래가 되어, 시간에 아랑곳없이 이곳저곳을 울리지요.

응시하는 사람

"나는 대학 1학년을 마친 후 워싱턴주 세인트헬렌스산 옆에서 산림감시원을 10주 동안 한 적이 있어요. 관리인이 일주일에 한 번 보급품을 가져올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혼자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였는데, 나의 내면을 성찰하는 것이었어요. 그 탑에 있으면서 나는 사유와 응시의 시간을 가졌어요. 그리고 인생을 바꾸는 큰 결정을 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앞으로 제 인생에서 음악을 하리라는 마음이었어요."1)

시와 역사를 공부하던 모르텐 로리센(Morten Lauridsen)이 본격적으로 작곡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음악가로서 살게 된 숙명적인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바로, 성찰과 응시의 시간 때문이었다고 고백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가 사랑하던 시와 그림에 대한 시선을 그만의 음악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외딴섬을 찾아서 사람들이 드문 곳에서 시를 읽으며 영화를 보며 또한 그림을 보며 작곡을 하였고, 침묵의 시간으로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지는 기회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발견했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그는 한적한 미술관 나들이를 정기적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의 그림 앞에 멈추지요. 그 작품은 바로 노튼사이먼박물관에 있는 바로 17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án)의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화'(Still Life with Lemons, Oranges and a Rose, 1633)입니다.

모르텐 로리센(Morten Lauridsen, 1943~)
모르텐 로리센(Morten Lauridsen, 1943~)
정물화 속 마리아

풍부한 어둠 속에 놓여 있는 정갈한 정물의 대상은 삼각 구도의 완벽한 비율로 안정감 있는 형태의 균형을 보여 줍니다. 배경의 어둠만큼이나 밤의 빛깔을 띈 묵직하고 단단한 테이블은 올려진 물건들을 하나하나 돋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은쟁반 위에 놓인 레몬들과 꽃이 핀 오렌지, 옅은 분홍색의 장미와 물이 담긴 도자기 잔이 자리합니다. 왼쪽으로부터 쏟아지는 빛의 샤워를 가득 담은 정물은 동시에 반대쪽의 그림자를 풍부하게 껴안고 있지요. 침묵의 어둠 안에 신비하게 자리한 정물들은 '로리센의 응시와 성찰'의 삶에 과연 영감을 부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깊은 숙고의 분위기 속에 드러난 사물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접근할 수 없는 평온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죠. 수르바란의 이 정물화에 대한 해석에 대해 로리센은 이 정물들이 특정한 의미를 지닌 상징적 물건들이라고 그의 인터뷰에서 다룹니다. 레몬은 부활절과 연관되는 새로운 삶을 나타내는 '부활의 과일'로 해석이 되고, 오렌지와 잎새들과 꽃은 순수함을 의미한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옅은 분홍색 장미는 '신성한 사랑', 물은 '순수'를 뜻한다고 언급해요. 순수하고 정결함 그리고 신성한 사랑의 정물은 로리센에 의해 합창곡으로 작곡이 되지요. 자신이 바라본 오래된 스페인 바로크 정물화에 드러난 숭고한 마리아의 성품은 오래된 그레고리안 찬트의 가사를 다시 만납니다. 그렇게 작곡된 곡이 'O Magnum Mysterium, 오, 위대한 신비여'라는 곡입니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화'. 사진 출처 Norton Simon Museum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화'. 사진 출처 Norton Simon Museum
오, 위대한 신비여 

초월적이고 아름다운 신비를 지닌 이 정물화에서 로리센은 절제된 성질을 발견합니다. 제단과 같은 테이블 위에 자리잡은 마리아의 정결한 성품과 사랑을 어두움 속에서도 그윽한 향기와 빛깔이 담긴 기도로 읽은 것이지요. 르네상스 시대의 그레고리안 찬트의 가사를 사용하고 있는 이 곡은 두 개의 다른 장면의 노랫말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한 장면은 갓 태어난 아기 예수가 구유에 뉘여 있고, 동물들이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지요. 이는 이사야 1장 3절의 말씀에서 언급된 것처럼, 구유 곁에 소와 나귀는 그 주인을 알아보나 이스라엘은 알지 못한다는 구절과 관련이 있어요. 가사 후반부는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의 놀람과 환희에 가득 찬 탄성이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이 곡의 가사는 말씀이 육신 된 구원자를 알아본 존재들이 '그를 응시하고 기뻐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로리센은 또한 음악적으로 르네상스의 음악이 가진 명료함과 순수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작곡을 합니다. 화음적 분위기는 마치 그림의 빛의 샤워와 그림자의 대비를 음악적으로 전환한듯, 화성의 베이스 음들을 전위시켜서 표현하죠. 전위된 베이스가 서서히 하강하면서 드리우는 감각은 공중에서 어떤 것이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정물들은 어둠과 별개로 반짝이며 존재하는 것처럼 그 신비를 화성으로 그려 냅니다. 그리고 내성인 테너와 알토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멈추어져 있는 듯한 긴 화음의 외성(소프라노, 베이스) 사이에서 자신감 있게 곡의 성격을 부각시켜 줍니다.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는 예언의 빛처럼 움직이지요. 여덟 파트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머무름과 움직임을 주고받아요. 로리센은 성모 마리아의 성품과 내재된 기쁨과 슬픔을 아우르며 표현합니다. 특히 39, 43마디에서 'Virgo'(동정녀)라는 단어에서는 난데없는 알토의 G#의 출현으로 화성의 표정이 찡그려지는데, 이는 성모가 본질적으로 가져가야 할 '가슴을 찌르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넣은 장치입니다. 로리센은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를 G#을 통해 이방을 비추는 일루미네이트, 즉 빛을 넣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아픈 화성이지요. 이는 레몬의 아주 신맛처럼 불편하면서도 동시에 레몬 본연의 맛을 나타내는 성질과도 관련이 있어요.

모르텐 로리센의 '오, 위대한 신비여'의 악보 중 일부
모르텐 로리센의 '오, 위대한 신비여'의 악보 중 일부

그리고 마지막 '할렐루야'라는 가사에 이르러서는 완성된 해결의 화성이 희망차게 등장합니다.

대림절 넷째 주일의 경건한 청음은 응시하며 성찰하는 작곡가, 모르텐 로리센의 '오, 위대한 신비여'입니다. 성탄절이 지난 금요일, 예수 탄생의 소식을 들은 마리아의 응시하는 마음과 내재된 기쁨과 슬픔이 쓰인 그림 같은 합창곡을 함께 들으시지요. 고요와 성찰을 사랑했던 현대 미국 작곡가가 17세기 옛 정물화를 발견하여 새 노래가 된 곡을 대림절 넷째주가 지난 성탄의 절기에 들으며 예수 탄생의 숭고한 신비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인트 야곱 청소년 합창단(St. Jacob's Youth Choir)의 실황 연주와 앤 아키코 마이어(Anne Akiko Meyer)의  연주로 된 바이올린과 피아노 편곡 버전 두 가지로 감상해 보시겠습니다.

O Magnum Mysterium

O magnum mysterium 
et admirabile sacramentum,
ut animalia viderent Dominum natum,
jacentem in praesepio!

O beata virgo, cujus viscera
meruerunt portare
Dominum Jesum Christum.
Alleluia! 

오 위대한 신비여
또한 놀라운 성사이시여
동물들도 갓 태어나 구유에 누우신
주님을 바라보았다네

그리스도 예수를 품으신
축복받은 동정녀 마리아의 태여
할렐루야!

주) 

1)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CUatUSC 유튜브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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