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11월 26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00 / 에스겔 34:11-16, 20-24 / 에베소서 1:15-23 / 마태복음 25:31-46

Nucksal – The God of Small Things. 
Nucksal – The God of Small Things. 

성령강림주일 이후의 성서 정과 말씀은 긴 호흡으로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짧고도 깊게 신명기와 여호수아, 사사기를 음미했고요. 드디어 교회력의 마지막 주인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에는 에스겔서를 끝으로 '가해'(Year A)의 교회력을 마감하게 됩니다. 삼위일체주일의 창세기 1장으로부터 시작된 창조는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신 아브라함의 서사로 전개되어 나갔고 그의 후손들이 다채롭게 맞이한 여호와와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좇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실제의 거대한 제국을 넘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에 대한 실제적 삶이 광야와 가나안에서 펼쳐졌습니다. 일반 절기로 불리는 '초록의 시간'(Ordinary Season) 동안 긴 흐름 속 유유히 흐르고 있었던 메시지는, 아마도 이번 주의 시편 본문인 시편 100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100:3)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는 시편 안에서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왕이시며, 목자가 되십니다. 그렇게 '왕이신 그리스도'를 맞이했네요. 시간은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왕이신 그리스도의 빛은 다시 시간의 처음 단락인 '대림'의 시간으로 빛무리를 드리우지요. 교회력의 시간은 그리하여 거대한 능선을 그리며 다시 처음의 시간, 기다림의 절기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여호와의 선함과 인자하심이 영원히(시 100:5) 시간의 능선에 두루 가득한 곳의 시간 위에 에스겔 선지자는 목자인 여호와와 양 떼인 백성의 관계를 강력하게 조명하며, 희망이 없는 시대에 숨겨진 베일을 들춰내며 희망을 선포합니다.

사진 출처 instagram.com/fishide
사진 출처 instagram.com/fishide
양 떼를 모으시는 여호와

흩어져 있는 양 떼들을 찾겠다는 소리의 울림은 캄캄했던 시공간을 굴절시켜 빛이 새어 오는 틈 사이에서 들립니다. 분열되어 남북이 찢겨 있고 사방의 강대국에 의해 밟히고 흩어져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에스겔은 회복과 희망을 선포하지요. 포로로 갔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은 채 자유 없는 삶으로 절망하고 있었을 때이죠. 비참한 땅에서 울려 나오는 에스겔의 날 선 빛의 예언은 궤적을 그리며 이쪽과 저쪽의 조도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겔 34:16)

시냇가와 푸른 목초지에서 좋은 꼴을 먹는 환상이 흑암의 덮은 땅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형형하게 선포되고, 여호와가 죽었다고 믿었던 포로가 된 백성들은 절망의 상황에서 예언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양과 목자의 관계를 다시 되뇌이게 되죠. 바벨론에 의해 무너진 것은 예루살렘 성만은 아니었습니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 민족성과 개인의 관계, 신과 개인의 관계 그 속에서 무엇을 재건할 수 있고 무엇을 바랄 수 있었을까요? 연결되지 않은 것들이 주는 분열과 고립의 공포 속에서 듣게 되는 목자와 양의 강력한 구속의 관계는 그들을 어떻게 희망하도록 하였을까요? 

사진 출처 instagram.com/fishide
사진 출처 instagram.com/fishide
유토피아, 자유를 갈망하는 장소

자카르타 출신의 작가 피크리 아만다 아부바카르(Fikri Amanda Abubakar)는 드넓게 펼쳐진 하늘, 열린 창문의 빛무리, 빈 방의 파스텔 일몰, 거울에 반영된 하늘 등을 통해 무한한 유토피아적 희망을 작품에 담는 3D 아티스트입니다. 아부바카르에게 있어 중심이 되는 참고 자료인 꿈은, 가능성, 정지된 상태, 애도로 가득한 세계이자, 자유하고 싶은 갈망을 지극히 담은 장소입니다. 그렇기에 작가의 이미지 안에서 주변은 둥지나 울타리와 같고, 거기에 있는 존재는 가장자리에 위치하지요.1) 공허와 심연을 극대화하는 것은 빛과 면이 만난 그림자이고, 작품을 보는 이들은 창문과 같은 경계 너머에 있는 무한과 자유를 지향하도록 만듭니다. 공간을 응시하는 것을 통해서 시간의 영원을 꿈꾸게 하는 작용이 일어나는 거죠. 사방으로 갇힌 벽과 그림자 너머 바라보는 응시의 시선을 작가는 정지된 이미지를 통해 구현하고,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시간과 공간을 관람자는 내면에서 경험합니다. 이윽고 무한한 자유가 펼쳐지는 유토피아의 세계 안에서 나는 작고 연약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거머쥘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작고 연약한 존재인 것을 깨달을수록 동시에 드러나는 경외와 찬탄의 대상을 인식하게 되고요.

작은 것들의 신

작고 연약한 존재들은 이미지뿐 아니라 소리의 세계를 통해서도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2016년 발표한 넉살의 정규 1집 앨범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불확실하고 정처 없는 30대를 접어든 자신의 이야기를 힙합 장르에 담고 있습니다. 그는 긴 터널과 같은 자신의 삶 속, 불안정하고 고립된 시간에 대해 풍부한 비유와 솔직한 삶의 구체성을 드러내며 앨범의 서사를 전개해 나갑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정체되어 있는 자신을 함부로 동정하거나 위로하지 않지요. 그는 삶을 지탱하기 위해 플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랩을 하고 있는, 여전히 달리는 시간의 기차 위에 있는 평범한 작은 존재이죠. '아직도 랩을 하고 있냐?'는 비아냥과 '아직도 내가 랩을 하고 있네?' 사이에서, 꾸역꾸역 삶을 사는 자조적 응시가 담백하게 존재할 뿐, 그것으로 자신의 값을 매기지 않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이 곡은 비린내 나는 삶의 면면만 드러내지 않습니다. 살기 위해서 겨우 살아가는 모든 작은 배역들이 주연으로 살아가는 구체적 개인에 대한 응원을 또한 담고 있어요. 고군분투하는 인생의 제자리와 같은 삶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희망'은 이렇게 계속되는 삶 속에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사는 삶을 우리는 기도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그리고 그런 작은 개인들의 기도를 듣는 것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작은 것들의 신'이겠지요. 

사진 출처 instagram.com/fishide

교회력의 마지막 주인,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의 끄트머리에 듣는 오늘의 경건한 청음은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의 달, 새로운 시작이 있는 교회력의 첫 달 12월, 가장 작은 것들을 위해 내 삶에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 창조를 여전히도 해 나가신 창조주, 골짜기와 초목으로 이끌어 주신 목자이신 여호와를 떠올려 본다면 좋겠습니다. 내 삶에 때로는  나그네로, 헐벗은 이로, 주린 이로 오신 그리스도(마 25:35)와 함께 앉아, 넉살의 노래  '작은 것들의 신'을 들어 보시지요. 

 작은 것들의 신

내 자리는 하수구 냄샐 맡으며
아주 작은 모니터 앞에서
그저 화면이 꺼지지 않게
마우스를 건드는 일이지
사회라는 싸움에 누군
마우스피스를 찾는데 말이지
전의를 잃은 전사에겐 남은 적이 없어
버스와 지하철조차 자리가 남은 적이 없어
날 담아두던 엄마의 뱃속도 이젠 다 식었구나
적의와 희망을 주던 열정도
구차하게 살아남았는가 나란 건
서른이 되기 전 떠나자 했지 몇 년 전
아직도 어리광이 필요한가 딸과 아들로
그저 사랑한단 말을 마음에 담아 둬
가격이 붙어 있는 스냅백을 써보다
그것이 혹시 '나의 값어치인가' 해서 놀라
살기 위해 살아 가는 모든 이들
작은 배역들이 주연으로 살아가는 film 이곳
god the god of small things
god the god of small things
god the god of small things
god the god of
작년엔 던밀스와 플스방 알바를 했지
Self-disrespect? but 지노 call 던밀스 해 냈지
그래 상황은 좋아질거야 거울은 나에게 말해 줘
너가 본 것들을 믿어 내일에 닿게
혼자서 깬 아침저녁은 team과 함께
what's up how you doing man 요즘은 좀 어때
오랜만에 본 Animato 형은 결혼 얘기를 하고
둘째 누난 둘째 아이를 가졌대
아직도 내가 rap을 하고 있네
아직도 걔가 rap을 하고 있대?
자의든 타의든 세상이 돌 때
우리도 그 기차를 타고 함께 갈 수밖에 없어
난 그중에 가사를 파는 일을 하고
누군 사무실 누군가는 밖 혹은 학교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건 중요치 않아
열심히 사는 너와 난 하나 여긴
god the god of small things
god the god of small things
god the god of small things
god the god of
함부로 동정하지 않아
누군가를 감히 용서하지 않아
생각보다 굳건히 지켜온
너 자신은 누군가의 pride
자리는 작을 수 있지만
널 여기까지 잘 몰고 왔어
눈물을 닦아 혼자서 울지 않아
본 이는 이걸 몰라
그저 아파 청춘이 아니라도
믿는 신이 없더라도
두 손 모아 바래 본 이들은
역시 나와 같아
잡초처럼 살아가는 내 친구들 나 가족
닿기 쉽지 않겠지 만족 하지만 나아가
계속 나아가 듣지 않던 기도들이
점점 하늘에 닿아가
god the god of small things
god the god of small things
god the god of small things
god the god of 

주) 

1) https://secretartlondon.uk/fikri-amanda-abubakar 시크릿 타르트 런던에 실린 작가에 대한 설명 중.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