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12월 10일, 대림절 둘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85:1-2, 8-13 / 이사야 40:1-11 / 베드로후서 3:8-15a / 마가복음 1:1-8

찬송가, 'Neu Leipziger Gesangbuch,1682'에 있는 마틴 루터의 대림절 캐롤 '어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 Nun komm, der Heiden Heiland 악보.
예비 박

앞으로 나올 음악을 준비하는 박자가 존재합니다. 들리지 않죠. 하지만 연주자의 마음속에는 이미 흐르고 있어요. 템포(빠르기)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어떤 질감이 있기도 해요. 마른 가을 낙엽을 밟았을 때에 느껴지는 질감과 네모난 식빵 위에 딸기잼을 듬뿍 올려 펴 바르는 질감은 매우 다르죠. 혹은 어떤 힘의 태도도 존재합니다. 바깥바람이 휘몰아치는데 굳게 닫힌 무거운 문을 힘을 주어 여는 힘의 태도와 살랑이는 봄을 내다보기 위해서 설렘을 갖고 조심스레 커튼을 젖혀 열어 보는 섬세한 손의 힘은 달라요. 하나의 음악이 연주되기 한 박자 전에, 음악이 가진 정서와 박자 그리고 질감과 힘을 세심하게 고려해서 담은 모델링의 시간이 찰나인 '예비 박'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비 박이 있는 시간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음악의 소리가 나오기 바로 직전 연주자가 호흡을 들이마시는 순간입니다. 지휘자였다면 호흡과 함께 큐(cueing)를 주기 위해 지휘봉이 들리고, 바이올리니스트였다면 숨과 함께 활이 올라가는 순간이죠. 소리는 없고요. 보이지 않는 박자는 연주자의 호흡 위에 존재하지만 악보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리는 없으니까요. 표기할 수 없는 영역에 있으며 입체적이고 광대한 틈과 같은 순간이며, 연주자 내면이 품고 있는 응축된 세계인 것이지요. 그러나 연주될 음악의 본질을 담고 있고 시간의 양과는 상관없이 몰입된 한 박자이고요. 곧 모두가 보게 될 세계의 다만 드러나지 않은 '직전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MIT 채플, 미국 매사추세츠. 사진 출처 ribapix.com
MIT 채플, 미국 매사추세츠. 사진 출처 ribapix.com
예비 박 이전의 시간들

다만 하나의 박자이지만 그것은 씨앗과 같아서 품고 있는 세계가 광활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연주자한테는 그 예비 박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고 길어서 하나의 생명을 틔우는 고단한 시간이 그 이전의 시간에 있습니다. 적합한 템포를 찾는 것과 그에 맞추어 테크닉을 연마하는 성실한 시간이 필요하고요. 음악이 가져올 정서와 조응할 나만의 표현이 무엇인지 사색하는 시간이 요구되지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전개될 서사 안에서 작곡가가 건네는 말들을 귀 기울이고 시간을 넘어 지금의 여기서 응답하는 경로를 찾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과거에 예고되었던 음악의 울림을 미래에 구현하기 위해서 숨겨져 있는 길을 찾는 일종의 모험이죠. 많은 사람은 그것을 뭉뚱그려 '연습 시간'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연습실을 찾아서, 내면의 골방에서, 악기와 마주하여 (혹은 목소리나 손과 더불어) 울려질 것을 상상하며 준비합니다. 준비하는 것은 기다림을 동반합니다. 기다림에는 여러 종류의 애틋함이 담겨 있죠. 작곡가의 예고로부터 울린 악보의 외침이 내 악기에서 소리가 되기까지 말이에요. 까다로운 구간을 반복하여 느리고도 분명히 연습하는 것도 기다림입니다. 새로운 악장으로 옮겨 가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호흡을 가다듬는 것도 기다림이고요. 어찌 보면 연주자는 절박하게 음악을 대하는 가운데에서 기다림을 배웁니다. 연습 과정이라 불리는 긴 시간 동안 도저히 극복되지 않은 것들과 반성하고 돌이킬 것들을 그득 안고 소리를 연마하니까요. 더 좋은 소리가 울릴 시간을 고대하는 마음은 자신을 돌아보거나 새로 고치거나 더 나은 것을 품으며 자라나고, 이런 기다림의 마음은 소망과 짝을 이루어 연주자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바벨론 포로 생활 한복판에 울려 퍼진 예언자의 외침은 허공을 날카롭게 가릅니다. 마치 이 현실을 찢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구원하시는 하나님, 목자 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 다스리실 왕을 향해, 두려움 없이 눈을 들어 볼 것을 외칩니다. 새로운 미래는 열린 틈의 빛으로부터 다가옵니다. 천천히 다가오는 구원자는 희망 없는 암울한 세상에게 선포되어 걸어오십니다.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드는 시간은 우리 삶에 허무를 가져다줬지요. 언제든 시들고 죽어 갈 수 있다는 존재의 근원적 두려움 위에 새로운 염원이 얹힙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사 40:8)

사막과 광야와 같은 (사 40:3) 척박한 공간과 제한된 시간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 형형히 비쳐 오는 말씀은 구원이 절박한 사람들에게 소망을 품게 하고 필연적으로 기다림이라는 복을 얻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이들은 예언자의 외침 속에서 구원하시는 이가 원하는 것을 듣습니다. 더디고 더딘 것 같은 약속은 기나긴 침묵이 아니라, 그저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는 이의 적극적인 사랑임을 말이지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도저히 극복되지 않을 것 같은 지난한 나의 옛 과거와 결별하고, 오직 여호와를 향하여 몸을 돌릴 것을 말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연주자가 긴 연습 시간 동안 자신을 돌이켜 보고 순간순간을 새로 고침하며 악보 안에 숨겨진 '예언의 빛'을 찾아가는 기다림이 있듯이, 주의 약속도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며 걸어오는 기다림이 나란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노래가 터져 나오기 직전에 숨을 들이마시는 거룩한 한숨, 예비 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작곡가에 의해 예고되었지만, 아직 그 음악이 울리지 않은 그 사이에 끼인 시간을 우리가 대망하여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고대하며 시들고 마를 존재가 영원하신 분에 기대어 구원하실 이를 기다리는 길고도 찰나의 순간을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시는 이의 발걸음

오시는 이의 길을 준비하는 대림의 계절을 보내는 시간, 한 주 쉬고 만나는 이번 주의 경건한 청음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어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시여 Nun komm, der Heiden Heiland (BWV 659)'입니다. 이 곡은 페달의 아주 낮은 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8분음표의 묵직하고 느릿한 박자는 서두르지 않고 침착히 다가옵니다. 마치 어떤 이가 멀리서부터 천천히 천천히 걸어오듯 말이지요.  

악보 '어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시여 Nun komm, der Heiden Heiland (BWV 659)'의 도입부.
악보 '어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시여 Nun komm, der Heiden Heiland (BWV 659)'의 도입부.

이웃음을 지그시 밟으며 연주되는 저음부의 베이스 소리 위에 왼손의 테너와 알토의 두 성부는 그 발걸음에 응답하는 듯 차분히 대응합니다. 푸가의 모방 기법으로 반복을 통해서 앞으로 나올 정선율을 예고하지요. 마치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미리 선포하는 세례 요한의 외침처럼 말입니다. 왼손의 모방 기법이 이어진 후에는 드디어 넷째 마디부터 독립적인 음색의 소프라노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앞서 제시되었던 코랄의 주제를 품었지만 꾸밈음과 멜리즈마의 장식으로 새로운 모습을 하고 나타나요. 이미 존재했던 땅과 하늘 위에 새로운 차원이 얹어지듯, 앞으로 펼쳐질 것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이야기하듯 말이지요. 그러는 동안에도 베이스의 발걸음은 여전합니다. 같은 보폭으로 같은 템포로 여전하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발걸음은 어디로부터, 언제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신실한 언약을 품고 저 멀리서부터 오시는 분의 소리는 태초로부터 기다리는 우리의 지금을 향해 다가옵니다.  

'어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시여 Nun komm, der Heiden Heiland (BWV 659)' 레오 반 되셀라르 연주. 유튜브 갈무리
'어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시여 Nun komm, der Heiden Heiland (BWV 659)' 레오 반 되셀라르 연주. 유튜브 갈무리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이들이 살아가는 계절인 대림절의 시간을 걸음걸음 걷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를 통해 예고되었던 구원자를 맞이할 길을 오르간 코랄 음악으로 들어봅니다. 바흐의 '어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시여 Nun komm, der Heiden Heiland (BWV 659)'를 레오 반 되셀라르(Leo van Doeselaar)의 오리지널 오르간 버전과 알브레히트 마이어(Albrecht Mayer)의 오보에와 비탈 율리안 프레이(Vital Julian Frey)의 하프시코드 편곡 버전 두 가지로 함께하시지요. 성탄을 기다리는 거룩한 숨을 들이키는 시간, 길을 예비하는 시간, 대림의 절기에 오시는 이의 발걸음을 경청해 보겠습니다. 

1. 어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
동정녀의 아들로 나타나신,
온 세상이 놀라움으로 맞이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계셔서 이 땅으로 보내신 만민의 구세주시여

2. 사람의 살과 피가 아닌
오직 성령으로부터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여자의 몸에서 난 열매로 자라신 이여

3. 동정녀의 몸은 아기를 품었으나
그녀의 순결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그녀의 수많은 덕이 빛이나 반짝이며,
하나님은 그의 왕좌에 계십니다.

4. 그는 자기의 방에서 나와
매우 순수한 왕궁으로부터 나왔으며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영웅으로
그는 자기 길을 달리기 위해 빨리 서두릅니다.

5. 그의 길을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길로 이끌립니다
그는 음부로 내려가며
하나님의 왕좌로 돌아갑니다.

6. 당신은 아버지와 동등함을 취한 자,
육체에서 승리하여
당신의 영원한 신성한 힘이
연약한 우리를 돌보게 하시옵소서.

7. 당신의 요람은 밝고 맑게 빛나고
밤에 거기에는 새 빛이 가득합니다
어둠은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믿음은 언제나 찬란하게 남아 있습니다.

8. 찬미를 성부 하나님께 돌리며
찬미를 유일한 성자 하나님께 돌리며
영원토록 찬양을 성령 하나님께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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