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12월 17일, 대림절 셋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26 / 이사야 61:1-4, 8-11 / 데살로니가전서 5:16-24 / 요한복음 1:6-8, 19-28

Mark Lawrence, 'VerseVisions'. 사진 출처 marklawrencegallery.com
Mark Lawrence, 'VerseVisions'. 사진 출처 marklawrencegallery.com

단조에서 장조로 변화하는 세 번째 음의 움직임은 겨우 한걸음, 반음만큼의 거리입니다. 예를 들면 '미♭'(미 플랫)에서 '미'로 미끄러져 내려갈 뿐이지요. '도' 와 '솔'이 굳건히 '미' 음을 포위하듯 아치를 만들어 어떤 문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이 중간에 있는 '미' 음정이 '플랫'(반음 내림)인지 아닌지에 따라 아치 안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작곡가들은 이 미묘한 한 끗 차이를 가지고 음악의 분위기를 단번에 전환시키죠. 

장화음과 단화음의 빈번한 교차를 가지고 조성적 확실성을 취약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규정하지 못하는 혼란을 통해 신비를 자아내고, 장화음과 단화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어떤 두근거림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요. 현실인듯 과거인듯, 긍정인듯 부정인듯, 기쁨인듯 슬픔인듯 장조와 단조의 교차적 반복은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하지요. 

뉴진스의 '어텐션'은 이런 화성의 급진적인 전환을 노래 전체에 빈번하게 담습니다. 도입부에서 나오는 가사의 끄트머리 'You see'의 반복을 3도를 살짝 비틀면서 첫 번째 You see는 단화음, 두 번째 You see는 장화음으로 만듭니다. 

이런 전환이 일어나는 구성은 클래식 음악에도 자주 사용되어요. 프랑스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César Franck, 1822-1890)의 오르간 코랄 No. 1 E장조의 곡에서 또한 장화음과 단화음의 교차 진행을 곡의 긴 서사의 큰 줄기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순환되는 주제의 풍부한 서정이 어두움을 만났다가 혹은 빛의 무리를 만났다가 하면서 슬픔 속에 장엄한 환희를 드러냅니다. 프랑크의 코랄은 긍정의 화성으로 첫 도입을 시작하지만, 주제의 전개는 뭔가 사연이 있는 듯 새로운 갈래 길로 우리를 깊이깊이 데리고 갑니다. 반음으로 내딛으며 하강하는 소리들은 지금의 현실을 보다 직면하게 해 주는 것 같고, 피했던 진실들이 파헤쳐지는 순간을 만나게 해 주지요. 그러다가 문득 처음의 주제가 다시 변형되어 활기 있게 등장하지요. 전환이 이루어지는 음악적 구성과 함께 꿈을 꾸는 것 같은 몽환적인 음색이 더해지며 아까 겪은 현실과 지금 들리는 꿈결의 소리의 격차를 듣습니다. 울음과 기쁨이 교차되는 곳의 미묘한 장소는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진동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의 완성과 승리의 결말을 향해 계속하여 움직이지요. 비록 그 길이 전환과 전복이 계속되더라도 말입니다.  

세자르 프랑크의 오르간 코랄 No. 1 E장조, 올리비에 라트리(Olivier Latry) 연주. Latry_Lee 유튜브 갈무리
세자르 프랑크의 오르간 코랄 No. 1 E장조, 올리비에 라트리(Olivier Latry) 연주. Latry_Lee 유튜브 갈무리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편 126:1)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이사야 61장은 포로로 사로잡힌 이들에게 주님의 거룩한 영이 부어질 때 일어나는 일들을 대담하게 선포하며 시작됩니다.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갇힌 자, 포로된 자, 슬픈 자에게 역설과 전복이 가득합니다. 마치 시편의 팔복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황폐한 곳을 다시 일으키는 주체가 될 것을 선포하지요. 전복을 경험한 사람들, 억눌림에서 구원을 얻은 이들이 이룰 일들에 대한 예언이 전개됩니다. 황폐했던 그들처럼 폐허가 된 곳을 다시 일으키는 사람이 될 것이고, 헐린 심령과 마음을 가졌었던 그들이 장차 옛 선조 때 헐린 집들을 새로 세운다는 희망이 선포되지요(이사야 61:4).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의의 나무'로 불리게 될 것이 선언됩니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라. 재를 뒤집어썼던 사람에게 빛나는 관을 씌워 주어라. 상복을 입었던 몸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어라. 침울한 마음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여라. 그들을 이름하여 '정의의 느티나무 숲'이라 하여라. 야훼가 자기의 자랑거리로 손수 심은 것,' (이사야 61:3, 공동번역)

대림절, 전환이 일어나는 시간들

사로잡혔던 자유 없던 자들이 해방을 맞고, 꿈꿀 수 없던 자들이 입가에 웃음 가득한 전환을 맞이하는 대림절의 이번주 본문들은 우리가 어떻게 이 땅 위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종말론적 정체성을 제시합니다. 위로를 전하는 자로,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용기와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 말입니다. 찢겨진 정의를 꿰매려 오시는 이를 갈망하며 함께 들어볼 오늘의 경건한 청음은 세자르 프랑크의 '오르간 코랄 1번, 마장조'입니다. 프랑크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절 바흐를 연구하며 대위법을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프랑스 특유의 섬세하고 신비한 정서로 그만의 음악을 구축한 벨기에 출신 프랑스 작곡가입니다. 오르가니스트로 평생 지내면서, 프랑크는 성당 안의 울림과 공간감으로 인해 생기는 화성의 이동하면서 발생되는 겹치는 소리에 대해 영감을 얻었고, 그로 인해 생기는 잔향을 곡 중에 세심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셀로판지의 색이 겹치듯 화성이 겹쳐 들리는 현상이죠. 프랑크만의 특유의 화성 전환이나 전조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받아 빛의 스펙트럼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듯 유려합니다. 작은 소리들은 그저 셈여림을 표현한 작은 소리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멀리서부터 시작하여 도착하는 '거리와 방향'을 느끼게 해 주는 소리로 존재하고요. 이 곡은 대림절을 위해 작곡된 곡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코랄이 지니고 있는 전환과 전복을 통해 꿈꾸는 이상은 포로된 자들이 맞이한 자유와 충분히 닮아있습니다. 음색의 대비, 그리고 화성의 전환과 움직임을 통해 조화의 아름다움을 만든, 세자르 프랑크의 곡을 노틀담(Notre-Dame de Paris)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라트리(Olivier Latry)의 연주로 들어 보시겠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