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11월 5일, 성령강림 후 스물셋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07:1-7, 33-37 / 여호수아 3:7-17 / 데살로니가전서 2:9-13 / 마태복음 23:1-12

이승윤 '꿈의 거처'. 뮤직비디오 갈무리
이승윤 '꿈의 거처'. 뮤직비디오 갈무리

휘청이며 걸었던 40년 광야의 세월이 모세의 죽음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라고 시작하죠. 그리고 이어지는 사사기 또한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고 첫머리를 시작하고요. 한 인물의 죽음이 오히려 새로운 기점이 되듯, 성서는 죽음을 오히려 활기 있는 시작으로 머리말을 삼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으로 입성하는 이야기는 모세의 죽음이 어떤 '돋움'1)인듯 말입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수 1:2)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개시되는 요단강을 향한 발걸음은 죽은 자들의 영혼을 '돋움' 하여 앞으로 나아갑니다. 홍해를 건너왔던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생을 다하여 요단강을 건널 수 없었으나(민 32:11), 광야에서 태어난 이들은 그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윗 세대로부터 열 가지 재앙이나 홍해의 기적 사건 등을 이야기로 들어 온 사람들이었지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을 그들의 어미와 아비들은 이야기로 들려주었을 뿐 아니라, 그 증거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토록 다다르고 싶었던 가나안의 땅은 증인들의 죽음을 돋움 하여 다음 세대가 이어 걷습니다. 여호와는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십니다(수 1:5, 3:7).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 서 있는 광야에서 태어난 이들, 그들과도 그토록 동일하게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이윽고 요단의 물 앞에 서게 되죠.

요단의 물가가 가져다주는 시간

요단의 물가는 가나안, 즉 약속의 땅을 앞에 둔 절개선 같은 곳이었지요. 아니 '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간일 테죠. 이곳은 자손 대대로 함께하신 여호와를 의지하여 발걸음을 처음 내딛는 낯선 곳이며, 한 걸음 내딛을수록 다시는 건너지 않을 과거가 되어 버릴 곳이자, 홍해를 떠올리게 해 주는 기시감이 드는, 불현듯 이미 경험한 것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신의 구원은 두려운 걸음을 걷는 자들이 믿음을 가지고 내딛는 걸음마다 완성됩니다. 고장난 나침반처럼 한 세월을 광야에서 살았던 인생들의 시간이 그 걸음에서 교차하고, 한참 전에 그 땅을 이미 다녀왔었던 갈렙과 여호수아의 젊은 기억이 물 위에 일렁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시 90:1, 새번역) 기도했던 모세의 기도가 발목에 닿습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궤를 맨 자들은 찰랑거리는 요단의 물을 발목에 느끼다가 그 물이 점점 그쳐 마르는 것을 느낍니다. 두려움이 희망으로 교차되는 웅장한 시간, 죽은 이들이 그토록 다다르고자 했던 꿈의 거처로 가는 시간, 요단의 물은 조금씩 그쳐 한곳에 쌓입니다. 죽음을 돋움 하고, 마침내 뭍이 드러나 강이 길이 되어 걷는 이들이 향하는 곳의 끝에는 오직 여호와가 계신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 여호와가 영원한 거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인 것을 요단을 건너고 있는 이들은 알고 있을까요?

우리를 데려다 주소서 오 주 하나님

'오 주 하나님, 우리가 마지막으로 깨어 있을 때

천국의 집과 문으로 데려다 주소서
그 문으로 들어가 그 집에 머물게 하소서
그곳에는 어둠도 없고 눈부심도 없지만 하나의 같은 빛이 있습니다
소음도 침묵도 없지만 하나의 같은 음악이 있습니다
두려움도 희망도 없지만 하나의 같은 몰입이 있습니다
끝도 없고 시작도 없지만 하나의 같은 영원이 있습니다
당신의 위엄과 영광이 있는 곳에 무한한 세상이 있습니다'

이승윤 '꿈의 거처'. 뮤직비디오 갈무리
이승윤 '꿈의 거처'. 뮤직비디오 갈무리

16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성직자였던 존 던(John Donne, 1572-1631)의 시, '우리를 데려다주소서 오 주 하나님(Bring us, O Lord God)'은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에 인도를 바라는 기도문입니다. 만약 모세가 죽음 앞에서 기도했다면 이 시처럼 노래했을까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막연한 요단 물가 앞에 섰을 때 기도했다면, 이렇게 노래했을까요? 여호와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존 던의 시처럼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생의 여정 한복판에서 어디인지 모르는 길을 걷는 중, 바라보는 눈길이 고정되는 곳에서 시인은 신을 몰입하여 만나고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처럼 오직 그의 거처였던 여호와를, 이 시에서는 하나의 음악으로, 영원으로, 무한한 세상으로 만나는 거지요. 이 기도문은 훗날 윌리엄 헨리 해리스(William Henry Harris, 1883-1973)가 합창곡으로 작곡하고, 전 세계 많은 합창단이 즐겨 부르게 되어요. 시가 노래가 되어 우주를 울리는 진동이 된 것이죠.

파묻힌 내 꿈의 거처는

16세기에만 시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우주를 울리는 또 다른 진동, 2023년 1월 한국의 이승윤은 정규 2집 앨범을 발매합니다. 그리고 '꿈의 거처'라는 곡을 타이틀로 발표하게 되지요. '잘못 친 코드'로부터 시작된 이 곡은 나침반 없이 헤매이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시작합니다. 걷고 걷는 시인의 방황은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걱정이 없는 초탈한 상태에 이릅니다. 잘못된 코드로 시작된 우연이 겹치고 더해지며 쌓인 걸음이 되었고, 결국 나침반의 바늘 끝을 조준하며 영혼의 방황이 종료되었음을 고백하죠.

이승윤 정규 2집 '꿈의 거처' 작업기 인터뷰. 유튜브 갈무리
이승윤 정규 2집 '꿈의 거처' 작업기 인터뷰. 유튜브 갈무리

"꿈의 거처라는 노래는 '정반합'보다는 '반정합' 같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뭔가 오묘하게 시작해서 정리가 됐다가 그 두 개가 섞여서…(완성이 되는)" - 이승윤 정규 2집 '꿈의 거처' 작업기 인터뷰 중

흔들리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잘못된 코드로부터 시작된 우연한 음악을 통해 만들어진 '꿈의 거처'는 이승윤의 인터뷰처럼 결국 만날 꿈의 거처는 '아무래도 너여야만 한다'고 숨김없이 말합니다. 길은 이미 잃었고,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시인이 결국 바라는 꿈의 거처는 누구였을까요? 휘청이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걸었던 사람들이 다다르고 싶어 했던 곳, 오늘의 경건한 청음은 한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그만의 장르를 만들어 가고 있는, 이승윤의 곡을 통해 그곳으로 가 보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끝내 다다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을지 모르겠고, 광야에서 죽은 이들에게는 그토록 원했지만 다다를 수 없었던 아쉬움의 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는 끝내 그가 고백한 대로 여호와 거처, 그곳이 꿈의 거처였을 것입니다. 시인 존 던에게는 위엄과 영광이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세상이었겠고요. 여러분이 끝내 꿈꾸어 다다르고 싶은 거처는 어디인가요? 요단이 강이었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가 다시 강이 되는 시간 동안, 여호수아, 구원의 이름을 지닌 자와 함께 들어 보시지요. 이승윤의 '꿈의 거처'를 라이브 실황 그리고 뮤직비디오 두 버전으로 듣겠습니다.

꿈의 거처 Shelter of Dreams - 이승윤

(곡·시 이승윤 / 프로듀서 조희원 / 믹싱 매니 팍 / 드럼 지용희 / 베이스 송현우 / 일렉기타 이정원 / 퍼쿠션·신디 & FX 조희원, 이승윤)

내겐 멀쩡한 나침반이 없어
따라가 봐도 북극성은 없어
어디쯤인지 대체 알 수가 없어
희한한 것은 이젠 걱정이 없어
바늘 끝엔 항상 네가 있어 (있어) 있어 (있어)
이제 와 영혼의 방황 같은 건 됐어 (됐어) 됐어
난 오직 너에게로부터
쏟아지는 햇살을 굳혀
나침반 위에
눈보란 너에게서 그쳐
파묻힌 내 꿈의 거처는
아무래도 너여야
아무래도 너여야만 해

내겐 멀쩡한 진리들이 없어
따라가 봐도 삶은 거기 없어
박제된 정답 중 살아 있는 건 없어
희한한 것은 이젠 상관이 없어
울음 끝엔 항상 네가 있어 (있어) 있어 (있어)
삶을 공허에게 바치는 건 이젠 됐어 (됐어) 됐어
난 오직 너에게로부터
쏟아지는 햇살을 굳혀
나침반 위에다 yeah yeah
눈보란 너에게서 그쳐
파묻힌 내 꿈의 거처는
아무래도 너여야
아무래도 너여야만 해

이제 더 이상
그래 더 이상
잃지 않아
길 같은 건
아니 잃어도
이젠 상관없어
결국에 내 꿈에 거처는
난 오직 너에게로부터
쏟아지는 햇살을 굳혀
나침반 위에다 yeah yeah
눈보란 너에게서 그쳐
파묻힌 내 꿈의 거처는
아무래도 너여야
아무래도 너여야만 해
아무래도 너여야만 해
아무래도 너여야만 해

주) 

1) 높아지도록 밑을 괴는 물건,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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