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10월 29일, 성령강림 후 스물두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90:1-6, 13-17 / 신명기 34:1-12 / 데살로니가전서 2:1-8 / 마태복음 22:34-46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노아와 무지개'. 사진 출처 myjewishlearning.com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노아와 무지개'. 사진 출처 myjewishlearning.com

모세가 걸어간 긴 길의 끝은 가나안 땅이 아니었습니다. 갈대 상자 안의 생명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이집트의 궁궐을 지나 미디안으로, 홍해를 지나 광야로 이끌려 갔습니다. 그리고 모압 땅 골짜기 어딘가에서 그의 갈대 상자는 영원히 닫히지요. 모세는 인생이 멈춘 곳이 어디이길 바랐을까요? 길고 긴 여정 동안 그토록 당도하여 모든 짐을 풀어내고 안식하고 싶었던 집은 어디이길 원했을까요? 길 위에서 시작하여 길 위에서 끝난 모세의 거처는 다름 아닌 주, 여호와였습니다.

물질의 세계가 구성하는 공간을 인간은 집요하게 물리적으로 소유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합니다. 공고한 울타리를 가진 거처는 외부의 공격에서 안전을 담보해 주고, 타자로부터 이유 있는 격리를 보장해 주며, 개인으로서 가장 내밀하며 사적인 공간을 제공해 주지요. 그리하여 끝내는 숨어 있을 수 있는 자유와 지친 몸과 영혼을 달랠 수 있는 안식의 공간을 획득하게 됩니다. 한때 웅장했던 파라오의 집이 거처였던 모세는 그것의 쓸모와 효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터, 그러나 그의 고백은 놀랍게도 주 여호와가 유일한 거처였음을 증언합니다.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 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과 세계가 생기기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시 90:1-2, 새번역: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중)

그러니 하나님의 풍요하고 넓은 거처는 그를 재우는 요람이요, 피할 피난처요, 영원히 잠들 품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갈대 상자는 다만 좁은 공간이 아닌 사방이 영원으로 확장된 아득한 시간, 무한한 세계였고, 모세의 본향은 그의 고백대로 그와 그의 조상의 거처 되신 주였던 것입니다. 

'heavenly jerusalem'. 사진 출처 catholiclane.com
'heavenly jerusalem'. 사진 출처 catholiclane.com
죽음이 데려오는 이야기

죽은 자를 애도하는 산 자의 곡은 삼십 일 동안 계속됩니다(신 34:8). 골짜기를 울리고 메아리치는 것은 육체의 소멸을 향한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골짜기는 수많은 이야기로 이 색 저 색 물들었지요. 물드는 길목마다 골짜기마다 히브리인들의 정체성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욱 짙게 채색되어 갑니다. 어떤 이들은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가 뭍이 되어 길을 걸었던 시절의 기억부터 이야기를 꺼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비처럼 내리기 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일용할 음식과 해갈의 물을 만났던 극적인 날들을 기억해 냅니다. 우리가 이렇게 광야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아이들이 묻자, 이집트의 총리였던 요셉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꽃이 피듯 골짜기를 물들이죠. 모세가 나일강에서 건져 올려진 이야기도요.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고, 더 들려 달라고 해요. 이야기는 삶을 지탱하게 해 줍니다. 나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되어질 나'를 상상하게 만들지요. 시내산을 올라 검은 구름 속으로 사라졌던 모세는 하나님의 계명을 들고 내려와 그들의 삶을 나날이 형성해 나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던 회막 앞의 모세를 기억하는 이들은, 모세를 통해 그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조금씩 조금씩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끝내 도착해야 할 곳을 꿈꾸게 만들어 줬습니다. 모세는 가지 못했지만 우리는 가야 할 곳, 모세가 이미 돌아갔기에 우리도 가야 할 곳.

주여, 주는 나의 거처

애도의 시간은 살아남은 자들이 가고자 했던 물리적인 땅, 가나안과 영원의 공간, 천상 그 어디쯤을 헤아리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광야의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가고자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대지, 약속의 땅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공간에 대해서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모압의 골짜기에서 물드는 삼십 일의 이야기들은 끝내 애도의 시간을 넘어 그들이 가야 할 곳, 그들이 의지해야 할 존재, 그들이 궁극에 다다를 거처에 대한 이야기로 백성들을 이끕니다. 모세는 이토록 죽음으로써 사람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그들 사이에 존재합니다. 모세의 갈대 상자가 끝내 어디에 묻혔는지 지금까지 아는 자가 없으나(신 34:6) 다만 물질의 세계가 구성하는 안전한 거처가 아닌 궁극으로 안식할 곳은 오직 주, 여호와이니 모세의 무덤은 어디에 있건 중요치 않습니다.

In Paradisum
카펠라 암스테르담의 연주, 'In Paradisum' 연주 실황. 유튜브 갈무리
카펠라 암스테르담의 연주, 'In Paradisum' 연주 실황. 유튜브 갈무리

'천국에서' 혹은 '낙원가樂園歌'라고도 불리는 'In Paradisum'은 "천사들이여, 천국으로 인도하소서"라고 시작되는, 묘지를 향할 때 읊는 기도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장례미사 후 교회를 나서서 장지로 향할 때 부르는 노래이지요. 보통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레퀴엠)의 일곱 번째 가장 마지막 곡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의 작곡가, 에릭스 에센발즈(Ēriks Ešenvalds, 1977~)는 'In Paradisum'을 레퀴엠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곡으로 작곡하여 첼로와 비올라 그리고 8성부의 합창이 연주하도록 구성합니다. 미세하게 펄럭이는 듯한 첼로의 트레몰로는 천상으로 안내하는 천사의 날개처럼 부드럽고 흔들리는 형상을 묘사합니다. 비올라는 연주장의 무대보다 높은 발코니에서 연주함으로써 공간의 경계를 풀어 하늘을 더욱 상상하게 해 주지요. 작곡가인 에센발즈는 그의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 곡을 작곡하였고,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영원을 향한 별빛과 같은 하모니가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을 포착하여 그 흔적을 음악의 언어로 번역합니다. 가사는 레퀴엠의 전통적인 라틴 가사를 사용했으나, 앞서 레퀴엠을 작곡한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 1845~1924)나 모리스 뒤르플레(Maurice Durufle, 1902~1986)가 제안한 낭만적 선율과 환상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11분가량 이어지는 시간 안에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의 끈질긴 발걸음 또한 삶의 일부인 듯 처절하게 노래합니다. 발트해의 동쪽 라트비아 공화국에서 나고 자란 에센발즈는 그의 작품, 'Northern Lights', 'At the Foot of the Sky', 'The Doors of Heaven', 'Stars' 등에서 하늘을 주제로 삼은 곡들을 유난히 많이 선보였습니다. 북쪽의 하늘을 보고 자란 이가 바라보고 있는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오늘의 경건한 청음은 에릭스 에센발즈의 '천국에서(In Paradisum)'입니다. 모압의 골짜기에서 치러진 모세의 장례식에 독자님들도 함께 참석하여 들어 보시지요. 2016년 암스테르담 첼로 비엔날레 연주를 실황으로 듣습니다. 첼로에 니콜라스 알트슈태트(Nicolas Altstaedt), 비올라에 사에코 오구마(Saeko Oguma), 그리고 지휘는 다니엘 로이스(Daniel Reuss), 합창은 카펠라 암스테르담입니다.

'In paradisum deducant te angeli; 
천사가 그대를 천상으로 이끌어 주기를

in tuo adventu suscipiant te martyres, 
낙원에 도달한 당신을 순교자들이 나와 맞아 주고

et perducant te in civitatem sanctam Jerusalem. 
거룩한 예루살렘의 성으로 이끌어 주고

Chorus angelorum te suscipiat, 
천사들의 합창이 그대를 맞이하리

et cum Lazaro quondam paupere æternam habeas requiem. 
한때 가난했던 나사로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얻길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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