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10월 15일, 성령강림 후 스무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06:1-6, 19-23 / 출애굽기 32:1-14 / 빌립보서 4:1-9 / 마태복음 22:1-14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사업가들. 사진 출처 레딧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사업가들. AI가 생성한 그림. 사진 출처 레딧

모세가 걸어 들어간 시내산의 흑암은 미동이 없고 고요하니,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기별 없는 그곳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하고 멈추어 있는 듯합니다. 굴곡진 탈출의 시간 그리고 장막을 들고 이곳으로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낯설음과 적응 사이에서 불안을 껴안고 사는 인생들은 그들을 안정시킬 무어라도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왜 하필 금이었을까요? 꽃의 아름다움은 세월을 맞으면 시들어 버리니, 그것보다는 아무리 만져도 닳지 않으며 누가 보아도 소유하고 싶은 그것이어야만 했을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찬란한 금을 저마다 귀에서 빼내어 아론에게로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아론은 금송아지 신상을 만듭니다. (출 32:3-4)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출 17:7) 의심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지 한참이 지나서도 소식이 없자, 공포가 극도로 치닫게 된 것이지요. 여호와의 말은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진술되었는데 이제 그 중재자의 존재가 묘연해지자 사람들은 다른 요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는 신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명쾌했죠. 너도나도 귀에 걸려 있던 금붙이들이 한데 모여 어떤 형상이 되었고 빛을 받으면 받는 대로 반짝이고, 만들어진 형상의 눈, 코, 입이 때때로 어떤 표정을 보여 주는 듯했습니다. 눈으로 만끽하는 신은 사유와 말의 신보다 월등히 명백하고, 그것을 보는 마음은 시원함을 얻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보이지 않는 신보다, 형태가 있어 만질 수도 볼 수도 있는 신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이집트의 신들은 그러했고 그것 말고는 상상할 여지가 없었으니까요.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
쇤베르크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 갈무리.
쇤베르크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 갈무리.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는 오페라 '모세와 아론'을 통해 출애굽을 관통하고 있는 '신에 대한 사유와 그것을 표상하는 문제'에 관하여 독특한 음악적 양식을 가지고 전개하고 있습니다. 표현주의 회화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회화의 이미지가 예술가 자신에게 미친 감정, 즉 무의식적인 충동이나 정서를 주관적인 방식으로 자유롭게 나타내는 음악을 표방하지요. 그렇기에 그의 음악은 조성이 파괴되어 기존의 화성적 전개가 주는 안정감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있습니다. 한 옥타브 안에 있는 열두 개의 음(흰건반 7개, 검은건반 5개)을 균등하게 사용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니 반음계적이고요. 그러한 그만의 음악 양식은 오페라 '모세와 아론'에서 두 인물이 가지는 궁극적 차이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쇤베르크는 이 오페라에서 사유와 말을 통해 하나님을 백성들에게 설파하는 모세와, 그와는 달리 상상력의 풍부한 아름다움을 신의 강력한 상징으로 믿는 아론의 갈등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며 출애굽기의 두 인물을 그만의 방식으로 조명합니다. 쇤베르크가 해석한 모세는 출애굽기 4장 10절의 말씀을 근거로 삼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그리고 아론에 대해서는 모세의 말을 해석하는 자, 대변인으로서 이해합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출 4:15-16)

그렇기에 오페라 안에서 아론은 모세가 여호와에 대한 사유와 관념을 "말"하면 그것을 "아름다운 형태로 변환"하여 사람들에게 이해할 만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구체화시키는 예술가로 존재하죠. 그렇기에 아론은 하나님의 자기 스스로 계시하심을 다만 관념이 아니라 신성의 이미지로 생산되는, 인간의 창조성으로부터 온 영감으로 이해합니다.

"오 가장 높은 상상의 창조물이여! 얼마나 영감은 당신께 감사하는가, 당신을 형상화시킬 수 있게, 당신이 그것을 매혹시켰음에." -아론의 노래1)

물론 이 오페라의 말미에서 하나님의 초월적 존재를 자유롭게 상상하고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아론의 노력과는 달리 상징 속에 갇혀 버린 우상숭배, 그리고 처절한 타락으로 끝나게 됩니다. 훼손된 표상은 어떠한 본질도 드러내지 못한 채 모세와 아론은 절망에 빠지고 말지요.

황푸하의 두 얼굴
황푸하 정규 3집 '두 얼굴' 앨범 이미지.
황푸하 정규 3집 '두 얼굴' 앨범 이미지.

그리고 쇤베르크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에 영감을 받은 한국의 포크 음악가 황푸하는 2022년 12월, 정규 3집 '두 얼굴'이라는 앨범을 발표합니다. 두 얼굴로 상징된 모세와 아론의 얼굴은 앨범 전체 10곡이 즉흥연주 밴드와 독특한 그만의 시적 언어로 전개해 나갑니다. 실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예술가, 아론과 실재를 표현할 수도 없고 표현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유가, 모세의 긴장과 투쟁이 이 앨범 안에서 '두 얼굴'로 은유되지요. 황푸하 자신은 사유하는 모세와 노래하는 아론의 두 자아를 내재하여 노래합니다. 그럼에도 언어라는 표상 또한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도출한 것에 불과하지요. 여기서 즉흥연주 밴드 테호TEHO와 밴드 자화상은 언어가 포집하지 못하는 사유의 영역을 회화적으로 그려 냅니다. 지속음으로 연주되는 바이올린의 소리는 날씨인듯 배경인듯 공간을 두르는 듯하고, 간질간질한 잘게 쪼개진 기타와 타악기 소리의 불안은 두 존재가 명료한 구분 없이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현재성을 제공합니다. 그 위를 타고 흐르는 색소폰의 즉흥적인 춤사위는 표현주의 화가의 자유로운 붓질처럼 이곳 저곳을 함부로 돌아다닙니다.

이 곡은 '두 얼굴' 모세와 아론의 서사가 담긴 노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황푸하 자신 안에 음악가와 목회자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는 말과 글의 한계를 숨쉬듯 경험하지만 신의 계시를 어찌되었든 말과 글로 풀어내야 하는 모순된 영역에 자리한 사람이니까요. 그렇기에 '두 얼굴'은 자전적 성격을 지닌 노래이고, 응집된 회화적 상념이 소리가 된 노래입니다. 포크 음악을 하는 음악가이지만, 동시에 그는 다만 교회 안에만 있는 목사로 존재하지 않고, 도시 빈민 운동 활동가로 투쟁 현장에 나서는데요. 목회 노동자로서 존재하는 황푸하의 노래를 들어 보시겠습니다. 오늘의 경건한 청음은 황푸하의 정규 앨범 3집에서 '두 얼굴' 그리고 '황금'입니다. 함께 연주하는 밴드 자화상(황푸하, 정수민, 황예진) 그리고 즉흥연주 밴드 테호(TEHO: 민상용, 이태훈, 진수영, 김성완)가 함께 연주합니다. 황금 송아지상 앞에서 도취된 백성들, 율법이 새겨진 두 돌판을 던지는 모세 그리고 아론 곁에서 들어 보시지요. 

'두 얼굴'

노래하는 것도
나였고
그냥
가만히 있자
하던 것도
나야
그저 당신 얼굴을
보고 싶을 뿐인데
나는 그댈 꿈꾸는
사유가
포기하는 것도
나였고
계속
가 보자
하던 것도
나야
그저 당신 얼굴을
보고 싶을 뿐인데
나는 그댈 그리는 예술가
나의 모든 나들아!
나는 그댈 그리는 예술가

'황금'

기다려도
오지 않는 밤
길어진 침묵
두려운 마음
아무나 잡고
매달려 본다
돈, 호화로운
그 자태에
내 맘을 뺏겨
그대 품속에서
사람들의 손때를 맡아 본다
혼, 그대에게
나 바쳐서
무슨 짓도
할 수 있다
아- 아-
무슨 짓도
아- 아-
영원하지
않아도 좋아요
미뤄진 진실
솔직한 욕망
탐스러운 몸
밤새도록
돈, 호화로운
그 자태에
내 맘을 뺏겨
그대 품속에서
사람들의 손때를 맡아 본다
혼, 그대에게
나 바쳐서
무슨 짓도
할 수 있다
아- 아-
무슨 짓도
아- 아- 

주)

1) 리차드 빌라데서(2001). <신학적 미학>(한국신학연구소)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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