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10월 22일, 성령강림 후 스물한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99 / 출애굽기 33:12-23  / 데살로니가전서 1:1-10 / 마태복음 22:15-22

리처드 맥비(Richard Mcbee), 틈새에서. 사진 출처 richardmcbee.com
리처드 맥비(Richard Mcbee), 틈새에서. 사진 출처 richardmcbee.com
너는 잊을 수 없는 이름, 너는 내 눈에 든 사람

여호와 하나님과 긴 시간 동행해 온 모세의 발걸음은 반석 위에 다시 멈춰 섰습니다. 그곳은 '내 곁', 곧 하나님 곁에 한 장소였어요(출 33:21). 주의 영광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하나님이 보았던 모세의 모든 순간이 촘촘한 빛의 선이 되어 반석을 빈틈없이 두릅니다. "모세, 너는 잊을 수 없는 이름, 너는 내 눈에 든 사람."(출 33:12, 공동번역) 나일강의 물결 위를 떠다니던 갈대 상자가 건져지며 얻게 된 모세의 이름을, 하나님은 '이름으로도 너를 안다'고 말씀하셨지요. 건져 내어 올라온 인생을 하나님은 이제껏 보고 계셨습니다. 미디안의 광야의 세월을 지나 호렙산 떨기나무를 향하여 '다시 돌이켜 오는 것'을 보셨고(출 3:4)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세에게 알려 주시지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이렇게 '건져 내어진 자'와 '스스로 있는 자'의 동행은 계속됩니다. 시내산 반석 위 여호와의 영광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여호와의 덮은 손 사이로 그 빛은 모세의 몸을 따듯하게 덥히고 조명된 영혼은 충만해집니다(출 33:20-23). 비록 여호와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등을 본 것은 이제껏 '들으시고, 보시며, 말하시는' 하나님을 모자람 없이 겪었기에 모세는 존엄하신 하나님의 뒷모습을 바위틈에서 봅니다. 

이제껏 이끌어 온 하나님 

긴 박자가 계속될 동안 하나님은 모세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회막에 모세가 들어갈 때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회막 문에 서며,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지요. 모든 백성의 모든 눈이 회막 문을 향하여 있고, 그곳은 하나님과 모세의 '동행'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상징의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도 그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함께하시는 여호와는 아브라함부터 이제껏 함께하셨습니다. 긴 시간의 박자는 온음표로 한마디를 온전히 덮듯이 아브라함의 인생, 이삭의 인생, 야곱의 인생 그리고 요셉, 마침내 모세와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까지 길게 이어지는 붙임줄로 길게도, 길게도 함께 동행하십니다. 이렇게 긴 지속음을 은총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나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주마." (출 33:15-17, 새번역)

은총, 긴 지속음

음악에서 화음은 소리를 쌓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소리의 어울림에 의해서 분위기가 형성이 됩니다. 어우러진 소리들은 지속하기도 하고 다른 음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끊기기도 하지요. 이렇게 가로를 향하여 움직이는 소리 말고, 머물러 있는 세로의 소리들, 즉 화성은 어떤 색채 같기도 하고 때론 안개 같기도 해요. 낮은음으로부터 높은음까지 층층이 쌓인 소리의 구성들을 단면으로 듣다가 혹은 흐르는 길을 유유히 따라가며 듣다가 우리는 음악의 서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서사의 복판에 중심이 되는 음정이 존재합니다. 현대음악의 몇몇 양식을 제외하고서 이런 중심이 되는 음정은 보통 뿌리 같은 깊고 안정적인 속성을 지녔지요. 그것을 흔히 으뜸음(tonic)이라고 부릅니다.  

페달 포인트(Pedal Point): 장음계의 '도'에 해당하는 으뜸음(tonic)이나 '솔'에 해당하는 딸림음(dominant)을 지속적으로 길게 연주하는 주법, 오르간포인트라고도 불림

한 음이 길게 지속되는 동안 윗 성부에서는 페달 포인트와 관계없이 다양한 종류의 코드가 전개됩니다. 지속음은 조성의 확립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높은 파트에서 어떤 코드의 방임이 일어나더라도 베이스에서 페달 포인트가 지속음을 긴 시간 동안 연주하고 있다면 긴장되고 미해결의 음들이 나타나도 결국은 으뜸음으로 회귀할 것을 기대하고 신뢰하게 되지요. 그렇기에 긴 긴장의 시간들이 오히려 새로운 활력과 환기를 가져다 줍니다. 동시에 불안 속에서도 안정을 향한 조급함을 다소 덜어 내게 해 줍니다. 이렇듯 '신뢰의 지속음'은 결국 종결을 향한 실마리로 작용하기에, 수많은 이탈과 흐릿해진 조성적 느낌을 다시 바로잡고 설정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페달 포인트인 긴 지속음이 계속되는 구간에서는, 비록 그 음에 속하지 않은 성격의 화성들이나 음계가 전개되어도 특유의 불안감과는 별개로 긴 호흡처럼 느껴지고 안전한 회귀를 향한 굳건함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은 그곳에서만 발생되는 독특한 울림을 만끽하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지요. 페달 포인트는 바로크 이전 시대부터 현대음악, 재즈, 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 안에서 나타나곤 하는데, 특유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기에 영화 '인터스텔라'의 OST에서도 페달 포인트 효과를 빈번히 사용했지요.  

한 음 위에서 연주되는 환상곡

여호와가 함께하시는 긴 지속음의 시공간을 음악으로 경험해 볼 수 있을까요? 오늘 함께 듣고 싶은 경건한 청음은 영국의 바로크 시대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의 곡, '한 음 위에서 연주되는 환상곡(Fantasia upon One Note)'입니다.  

Southwell Festival Chamber Soloists 연주. 유튜브 영상 갈무리
Southwell Festival Chamber Soloists 연주.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 곡은 다섯 대의 현악기가 연주하는 곡입니다. 두 대의 바이올린, 두 대의 비올라, 그리고 한 대의 첼로가 연주하지요. 여기서 테너의 파트에 해당하는 비올라는 처음부터 곡이 끝나기까지 '도' 음정만을 연주합니다. 지속음으로 쓰인 페달 포인트를 중심으로 궤도를 형성하듯이 다른 성부의 악기들은 그 주변을 떠다니며 연주하지요. 조화와 왜곡 가운데에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는 긴 지속음 'C' 음정을 모세와 긴 시간 동행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상상해볼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말씀하시는 소리의 울림은, 모세와 백성들을 거쳐 훗날 마리아에게 약속된 '임마누엘'까지 길게 울리는 지속음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까요? 2016년 사우스웰 음악 축제(Southwell Music Festival)에서 연주된 Southwell Festival Chamber Soloists의 연주를 실황으로 들어 보겠습니다. 비올라의 지속되는 음정을 들으며 내 인생의 궤도의 페달 포인트 되시는 중심음, 주님을 들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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