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소개합니다. 성서가 강조하는 가치와 뜻을 실천하기 위해 일상에서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박요셉 사역기획국장] 이철빈 씨(29)는 전세 사기 피해자입니다. 철빈 씨는 2년 전 집을 계약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구한 전셋집이었습니다. 첫 전세 계약이기에 그는 꼼꼼히 알아봤습니다. 쉬는 날에 직접 발품을 팔며 집을 보러 다니고, 등기부와 건축물대장을 떼 하자가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공인중개사에게 수차례 물어봤고요. 그렇게 두 달을 고생한 끝에, 회사와 가까운 서울 송파구 한 신축 빌라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서류는 깨끗했으니까요. 등기부에는 근저당과 압류 내역이 없었고, 건축물대장에서도 위반 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임대인은 정부가 공인한 '민간 임대주택 사업자'로 보증보험 가입 의무가 있었습니다. 임대인 대리인과 공인중개사가 이 점을 강조해, 철빈 씨도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계약한 지 4개월 후 드러났습니다. 새 집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때, 철빈 씨는 임대인이 보증보험을 가입했는지 확인했습니다. 계약할 때 만났던 임대인 대리인은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서 모른다고 했습니다. 임대인은 연락이 안 됐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얼마 안 돼 그는 집에 세무서 압류가 걸린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와 함께 임대인이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대위변제 이력이 있어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도 듣게 됐고요. 말로만 듣던 전세 사기였던 겁니다. (※ 대위변제: 채무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채무를 대신 갚아 주는 것. 여기서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임대인의 채무를 갚아 줬다는 것을 의미.)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철빈 씨. 뉴스앤조이 박요셉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철빈 씨. 뉴스앤조이 박요셉

철빈 씨는 부동산 IT 스타트업에서 근무합니다. 주택 임대차 관리 업무를 경험했기 때문에 관련 법과 규정을 일반인보다 잘 아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사기를 피하기 어려웠던 건, 전세 사기가 구조적인 허점으로 인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철빈 씨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전세 사기 사건을 피해자들이 서류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것 아니냐며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임대인·임차인 간 정보 비대칭, 허술한 관리 시스템, 미온적인 수사기관 등 우리나라 부동산 제도의 허점이 문제입니다." 

전세 사기를 당한 철빈 씨는 현재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대책위)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올해 5월 피해자 구제를 골자로 하는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을 부랴부랴 내놓았지만, 피해자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데요. 철빈 씨를 지난 10월 13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피해를 인지한 순간, 이미 늦었다

- 계약 당시 이상한 점은 못 느꼈나요?

"보기 드문 좋은 매물이었어요. 요즘 등기부 보면 근저당 없는 집 찾기 어렵잖아요. 게다가 집주인은 민간 임대주택 사업자로 등록돼 있었고요. 제 입장에서는 채무 없고 보증보험 가입 의무가 있으니, 안전해 보였어요. 특히 대출 과정에서 은행 심사도 문제없이 통과하는 걸 보면서, 문제없는 집일 거라고 재차 안심했어요." 

- 피해 사실은 어떻게 인지하게 됐나요. 

"보증보험 가입을 확인할 때요. 몇 번인지 모르겠지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은 적이 몇 차례 있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임대인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놓았던 거죠. 이를 알게 된 비슷한 시기 집에 압류가 잡혔어요. 임대인이 세금을 체납했다는 이유로. 그런데 이런 내용들은 모두 나중에야 밝혀진 것들이에요. 계약할 당시 제3자인 저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정보들이었어요." 

- 공인중개사, 지자체, 은행 같은 여러 기관의 검증이 있었을 텐데, 이런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네요.

"법이 그렇더라고요. 가끔 저희에게 왜 더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냐며 피해자를 탓하는 분들이 있어요. 억울하고 답답하죠. 저는 정말 알아볼 수 있는 건 다 알아봤거든요. 전세 사기는 악의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임차인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정보가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피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에는 이미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철빈 씨의 임대인은 지난해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빌라왕' 김대성이었습니다. 그는 인천과 서울 강서구·송파구 일대에서 무자본 '갭 투자' 방식으로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 1500채 등을 사들여 전세 사기를 벌였습니다. 경찰은 피해자가 1699명, 피해액 328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피해자 중 660명의 경우 임대인이 보증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철빈 씨를 포함한 나머지 임차인 1000여 명은 보증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보증금 회수가 불확실합니다.

철빈 씨는 억울했습니다.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공인중개사는 계약 이후 발생한 일이라며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습니다. 김대성 같은 민간 임대주택 사업자는 지자체에 매번 임대차 계약을 신고하고 보증보험 가입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자체는 보증보험 가입 서류를 여러 차례 제출하지 않은 김대성에게 과태료나 사업자 말소 등 아무런 행정 처분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대출 심사를 진행한 금융기관 역시 고액의 세금을 체납한 임대인을 걸러 내지 못했고요. 공인중개사, 지자체, 금융기관 모두가 계약의 주체로 참여했는데, 모든 책임은 임차인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철빈 씨는 말했습니다.

'빌라왕' 김대성 사건 외에도 전국에서 전세 사기, 깡통 전세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빌라왕' 김대성 사건 외에도 전국에서 전세 사기, 깡통 전세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복잡한 상속 문제
재산 처분 1년째 답보

- 철빈 씨처럼 보증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피해자들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진행되고 있는 게 없어요. 지난해 10월 빌라왕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모든 절차가 중단됐어요." 

- 유족은 없나요?

"직계가족은 있는데 이분들이 상속을 포기했어요. 그래서 4순위 상속인(삼촌·고모·이모 등)에게 넘어갔는데, 이분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몰라요. 어떤 분은 해외에 있다고 하고. 피해자들이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법적 절차를 밟으려면 그 대상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 빌라왕이 사망한 지 1년이 지나가잖아요. 정부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정부가 이달 초, 사망한 임대인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상속재산관리인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어요. 그런데 사실 경매를 개시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요. 집이 팔려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입니다. 경매가 여러 차례 유찰돼 매각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요. 임차인 중에는 차라리 본인들이 매입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지만, 기존에 집을 구하면서 이미 큰 금액을 대출한 분들에게는 또 어려운 이야기에요." 

철빈 씨는 정부의 대책이 본질을 피한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건 보증금 회수인데, 정부는 주변 문제들만 건드린다는 지적입니다. 피해자들은 '선 보상, 후 구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전세사기특별법과 함께 이야기하겠습니다.  

지난 10월 14일, 피해자들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과 추가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습니다. 사진 제공 희년함께
지난 10월 14일, 피해자들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과 추가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습니다. 사진 제공 희년함께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선 보상 후 구상'
11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 논의

전세 사기 사건이 공론화하면서 정부는 비교적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2022년 9월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 종합 대책을 내놓았고, 올해 6월  '전세사기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전세사기특별법의 핵심은 크게 2가지입니다. 피해자 인정과 피해 지원. 누구를 피해자로 볼 것인지와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지가 쟁점입니다. 

- 전세사기특별법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대책위는 전체적으로 이 법이 부실하다고 봐요. 피해자 입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거든요. 법안 설계 과정에서부터 피해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론은 특별법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특별법은 4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피해자로 보고 있습니다.

△보증금이 3억 원 이하(경우에 따라 5억까지 인정)인 경우
△대항력(실제 거주, 전입 신고 등)을 갖추고 있는 임차인
△다수의 임차인이 피해를 입었거나 가능성이 있는 경우
△임대인의 기망 의도 등입니다.

피해자는 이 4가지 요건을 모두 입증해야 합니다.

"피해자 인정 요건이 너무 협소한 것 같아요.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항목이 문제입니다. 임차인 개인이 전체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임대인의 사기 의도도 당사자가 아니라고 잡아떼면 방법이 없고요. 이런 사안들은 모두 경찰 수사로 밝혀야 할 것들입니다. 더군다나 제 사건과 달리 피해자가 5명 이하인 경우에는, 경찰이나 지자체도 대응에 소극적이에요." 

철빈 씨는 자신이 활동하는 대책위에 전국 각지에서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이 들어와 있다고 했습니다. 빌라왕 사건은 워낙 엽기적이었고 피해자가 많아 수사가 빨랐던 반면, 소규모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임차인들이 전세 사기를 입증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철빈 씨와 희년함께 활동가들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사진 제공 희년함께 
이철빈 씨와 희년함께 활동가들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사진 제공 희년함께 

- 피해 지원에 관한 내용은 어떤가요?

"한마디로 대출받아서 집 사라는 거예요. '우선 매수권'을 줄 테니 경매에서 낙찰받고, 일부 대금은 금융 지원해 주겠다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근데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많은 피해자가 이미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은 상태입니다. 집을 매입하려면 기존 보증금 이외에도 수천 만 원은 필요할 텐데, 그만큼 추가 대출을 받을 여력이 없어요." 

- 어렵게 피해 사실을 입증했는데 금융 지원을 받는 과정도 쉽지 않네요.

"피해자들의 주장은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습니다. '선 보상 후 구상'. 정부가 공적 기금을 투입해서 보증금을 우선 보전해 주고, 이후 비용을 임대인에게 추징하거나 주택을 매각해 비용을 회수하는 방안입니다. 해외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거나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서 부동산을 매입해요. 어떻게 보면 이런 기회를 활용해 소위 '줍줍’ 하는 거죠. 이렇게 확보한 국유지는 공공 임대로 돌려서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 수 있거든요. 정부도 손해가 아니에요."

정부와 국회는 11월부터 특별법 개정과 대책 개선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책위는 특별법 개정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피해자 인정 요건을 대폭 낮추고,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 기구의 실질적인 역할도 주문하고 있습니다. (※서명하기

변화의 시작점
'땅은 자본 증식 수단이 아니다'

- 지난 2년이 폭풍처럼 지나갔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굉장히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본업이 있으니까 평일에는 출근을 하고요. 저녁이나 주말을 활용해 전세 사기 사건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각종 회의나 간담회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고요." 

- 어떻게 이런 상황을 견디시나요? 저 같으면 불안해서 잠이 안 올 것 같습니다.

"내려놓음이죠(웃음). 사실 초기 2~3개월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 상황에 너무 매몰되어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제가 큰일을 당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있으면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요. 

다른 피해자들 중에서는 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처한 분이 많아요. 장마 때 침수가 일어나서 집이 엉망인데도 집주인이 방치해서 세입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용을 부담하거나, 매달 고금리의 대출 이자 내느라 어렵게 사는 분도 있어요. 그분들과 비교하면 저는 여건이 나쁘지 않죠. 그러니까 다른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대책위 활동까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때론 나쁜 감정이 들불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그때 철빈 씨를 달래 준 건 시편 말씀이었습니다. 

"시편에 그런 내용이 많더라고요. '여호와를 의지하라', '기다려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사실 제 삶을 돌이켜 보면 지금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아예 없지는 않았거든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들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냥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구나' 싶을 때가 있잖아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가 지금 겪은 전세 사기 사건이 분명 큰 사건인 건 맞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리고 임대인에게 복수도 하고 싶었고요." 

- 복수요?

"임대인은 제가 20대 때 모은 돈을 빼앗았어요. 그런데 제가 돈 말고 일상과 행복마저도 잃어버린다면 너무 억울하겠더라고요. 나는 꼭 건강하게 잘 지내서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돌려받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최근에는 헬스장에서 PT도 받았어요."  

"최고의 복수는 결국 자신의 안녕"이라는 철빈 씨의 말에 옛 현인들의 지혜를 듣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성군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이런 말을 적었습니다. '최고의 복수는, 네 원수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 대책위 활동을 어디까지 계획하고 있나요?  

"저는 대책위 활동이 막중하다고 봐요. 단순히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걸 넘어서, 제도 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세 사기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에요.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잖아요. 이를 근본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 전세 제도 폐지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갑론을박이 굉장히 심한데요. 장기적으로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전세 제도가 생긴 건, 금융시장이 발전하지 못했던 옛날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서 기인했다고 보거든요. 전세는 사적 대출이에요. 사적 대출이 몇십 년 동안 이렇게 운영돼 오다가 사고가 터진 건데요. 이제는 공적 대출 영역으로 편입돼야 한다고 봐요. 만약 그게 어렵다면 '에스크로 제도(결제 대금 예치제)'처럼 보증금을 제3자에게 예치하는 탄탄한 안전망을 마련해야겠죠."   

꼭 건물주가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또 하나의 우상 아닐까요?
꼭 건물주가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또 하나의 우상 아닐까요?

철빈 씨는 전세 사기 전부터 부동산 시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그가 가장 천착했던 주제가 하나님나라였고, 하나님나라를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이뤄 갈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이윤 추구를 최대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부동산을 자본 증식 수단으로만 여기는 모습에도 회의적이었고요. 

- 하나님나라를 향한 고민이 국내 부동산 문제까지 이어졌군요.  

"우리는 모두 신 앞에서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이지만, 실상은 자산이 우리의 자존감이나 지위를 결정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땅이 자본 증식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니, 임대인들이 세입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당연한 제도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버리죠. 이번 전세 사기나 깡통 전세도 '무자본 갭 투자'라는 소위 '똑똑한' 투자 방식이 야기한 사건이잖아요. 빌라왕 김대성이 1500채를 소유하게 된 모든 과정도 결과적으로는 합법이었어요. 

돈이나 집, 땅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이렇게 적지 않은데, 기독교인들은 이 주제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비기독교인과 큰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교회에서는 '속되다'고 여기며 아예 다루지 않고요." 

- 기독교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말에 동의해요. 부동산 투자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관심을 보이니까요.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떤 시각으로 부동산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하나님나라의 사회경제 원리는 '희년' 정신이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해요. 희년은 땅이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소유이고, 우리는 잠깐 빌려 쓰는 존재라고 말해 주고 있잖아요. 그러니 '땅을 자산 증식 수단으로 삼는 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기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 '땅을 자산 증식 수단으로 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맞는 말씀이지만 사람들이 선뜻 동의할지 걱정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여겼던 경제 원리, 부동산 구조가 결국 이번 사태를 일으켰어요. 갭 투자를 해서 시세 차익을 남기고, 건물주가 되길 열망하는 구조가 사회적 약자인 세입자의 삶을 위협해도 괜찮은지 꼭 돌아봐야 합니다. 모두가 부동산 광풍에 사로잡혀 꼭 건물주가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또 하나의 우상이 아닐까요?

교회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교인들에게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집을 3채 이상 보유한 교인들은 2채만 남기고 집을 팔거나, 시세보다 20% 이상 저렴하게 장기간 임대하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웃음).

현실 가능한 방법으로는 교회가 대안적인 주거 형태나 재정 운영을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청년들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협동조합 주택이나 쉐어 하우스를 만드는 방법이 있고요. 생활이 어려운 지체를 도울 수 있도록 희년 기금을 운용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희년함께에서 관련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경제 문제가 우리의 영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교회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강도 만난 이들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게 시작일 것 같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관심을 갖게 될 때, 교회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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