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소개합니다. 성서가 강조하는 가치와 뜻을 실천하기 위해 일상에서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대학생 시절, 어느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질문'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질문이란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 선을 긋는 일'이라고요. 경계선이 명확할수록 좋은 질문이고, 불명확할수록 나쁜 질문에 가깝다고 교수님은 말했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정의에 동의하면서도 질문을 좋거나 나쁘다고 구분하는 방식이 불편했습니다. 질문 자체가 이미 무지와 배움을 전제하고 있는데, 질문으로 질문자의 지식이나 수준을 평가하는 건 오히려 질문을 위축시킨다고 생각했죠. 가뜩이나 한국 사회는 체면 문화가 강해서인지 질문들을 잘 안 하는데 말입니다.

질문은 오랜 역사를 거쳐 검증된, 지혜를 얻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공자가 그러했고 석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옛 성인들은 어떤 질문이든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하나님나라의 비밀과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 같은 질문에도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고 성실히 답했죠.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정은문고)를 쓴 저자 정한욱 선생은 문답이라는 고전적인 방식을 통해 지혜에 도달하는 경로를 우리에게 안내해 줍니다. 딸의 질문은 우리가 신앙 여정에서 마주치는 갈림길이고, 아빠의 대답은 이정표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딸의 질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각 질문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가볍지 않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갈림길이 아니라 낭떠러지로 향하는 길처럼 위험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서에는 어떠한 오류도 없나요?"

"왜 제게는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는 거죠?"

"왜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당하죠?"

"아빠는 '부활'이 진짜로 있다고 믿나요?"

"왜 다윗은 용서받고 사울은 정죄를 받아야 하죠?"

"하나님 아버지 말고 하나님 어머니일 순 없는 건가요?"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방향을 바꿔 다른 길로 가는 게 맞습니다. 불온한 생각에 사로잡혀 나쁜 마음이 번질 때, 열심히 기도하며 믿음을 간구해야 한다는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한욱 선생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네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래', '신앙이 좀 더 성숙해지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거야', '기도해 봐'라는 식으로 대답을 피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저자는 4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과 책에서 얻은 지식들을 토대로 답변에 임합니다. 뻔한 대답을 피하기 위해, 가급적 다양한 입장을 나열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차근차근 내놓습니다. 입장이 불분명하거나 자세히 알기 어려운 내용은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진솔하게 말하기도 하고요.

정한욱 선생은 보수 성향이 강한 교단 소속 교회를 평생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책에 나오는 답변은 예상과 달리 유연하고 진보적이라서 놀랍게 다가옵니다. 이를테면 "성서에 어떠한 오류도 없나요?"라는 딸의 질문에, 정 선생은 "수천 년 전 고대 근동에서 살아가던 1차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쓰인 종교적 문서가 21세기의 세상에서도 그리고 근대과학이나 역사의 관점에서도 어떠한 오류도 없는 진리여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난센스라 할 수 있어"(17쪽)라고 답하지요.

그가 어떤 신앙 여정을 걸어왔기에 이런 태도를 갖게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보수 성향 교회를 계속 출석하는 이유도 묻고 싶었고요. 정한욱 선생을 4월 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나는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이 충격적인 진실을 대면하게 해 주는 진실의 거울이거나, 죄수의 벽에 구멍을 뚫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느끼게 해 주는 분이라고 믿어. 그리고 자신이 마주한 운명이 쓴 가면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한 채 아무런 의심 없이 발아들이는 '믿음 좋은' 교인들보다, 그 가면 아래 숨겨진 진실의 맨얼굴을 집요하게 추전해 끝끝내 마주하고야 마는 오이디푸스왕이 성인이 된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제자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단다." ('진실 - 진실의 얼굴을 끝끝내 마주하는', 120~121쪽)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정은문고) 저자 정한욱 선생. 뉴스앤조이 박요셉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정은문고) 저자 정한욱 선생. 뉴스앤조이 박요셉
무명 집사의 진솔한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들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정은문고)는 두 가지 약점을 극복하고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하나는 저자가 무명의 평신도라는 점, 다른 하나는 책을 펴낸 곳이 비기독교 출판사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출판사는 이 책을 출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2쇄를 찍었습니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이 책이 종교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고요.

- 책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보게 되는데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얼떨떨해요.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 평범한 집사의 글을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하고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매일 아침 출판사 대표님께 '오늘도 열심히 (홍보)하겠습니다'라고 연락드리며 영업 사원을 자처했는데, 이제야 면이 좀 서는 것 같아요.(웃음)"

- 출판사가 기독교 관련 기관이 아닌데도 먼저 출간을 제안했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년 반 전에 제안을 받았어요. 제가 종종 소셜미디어에 도서 리뷰를 올리곤 했는데, 그걸 보고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그런데 중간에 원고가 두 번 엎어졌어요. 처음에는 제가 직장에서 경험한 일과 책 이야기를 중심으로 썼는데 독자층이 불분명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두 번째는 주제를 책 소개로 정했는데 원고가 거의 완성됐을 때 대표님이 계획을 변경하셨어요."

세 번째 원고 방향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딸과의 문답'입니다. 정한욱 선생의 둘째 딸은 성인이 된 뒤로 기독교에 관한 질문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정 선생이 딸과 나눈 대화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는데, 그걸 본 정은문고 대표가 집필 계획을 완전히 바꾼 것이죠.

"원고를 세 번이나 다시 써야 했으니 속으로는 '아이고, 이걸 또 언제 다시 쓰냐' 했죠. 그런데 제가 출판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두말 안 하고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초고를 보내 드렸는데 바로 계약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내용은 크게 바뀐 게 없어요. 다만 대표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이었거든요. 책이 어렵다면서 비기독교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고쳐 달라고 여러 차례 주문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역시 전문가 말씀을 듣길 잘한 것 같아요."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과 나누고 싶은 질문 25가지> / 정한욱 지음 / 정은문고 펴냄 / 254쪽 / 1만 8000원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과 나누고 싶은 질문 25가지> / 정한욱 지음 / 정은문고 펴냄 / 254쪽 / 1만 8000원

- 책에는 25개 질문이 나옵니다. 성서학, 부활, 기독교 세계관, 하나님의 성 등 주제가 다양하면서도, 서문에 나온 것처럼 당돌한 물음도 있는데요. 실제로 자녀들과 이런 대화를 종종 나누시는 편인가요?

"질문들은 책을 쓰면서 조금 다듬은 형태인데요. 평소 아이들이 물어본 주제이긴 해요. 아이들마다 성향이 조금씩 달라요. 첫째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해요. 그래서인지 교회에 관한 현실적인 질문을 주로 던졌어요. 여성 안수 문제나 교회에서 겪는 고충 같은 것들이요. 둘째는 기독교와 종교에 관한 근본적인 주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셋째는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질문이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책에 나온 질문 중 10%는 그 아이의 몫인 것 같네요."

- 선생님은 질문에 관해 여러 학자와 서적, 이론들을 소개합니다.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고 가급적 다양한 입장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이는데요. 실제로도 그렇게 대답해 주시는 편인가요?

"제가 젊을 때 현대 신학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신학자들 책도 정말 많이 읽었고요. 아이들에게 제가 배운 것들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는데, 마침 관심을 보이며 물어 오니까 잘됐죠. 이런 이론도 있고, 저런 입장도 있다며 열심히 설명했던 것 같아요.

쉽게 정답을 알려 주지는 않았어요. 쉬운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여러 대답이 존재하잖아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장 알려 주고 싶었던 건,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이 기독교가 꽉 닫혀 있고 편협해 보이는 종교 같지만, 사실은 훨씬 다양하고 풍성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 이 책은 '믿음을 묻는 딸에게'라는 제목을 갖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년층에게 더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 통계에 따르면, 책을 구매한 독자들이 40~50대에 몰려 있고요. 왜 이렇게 중년층이 이 책을 찾았을까요.

"이분들은 기성 교회에서 겪는 상황이나 그곳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40~50대가 되면 교회에서 어느 정도 주류 그룹에 속하잖아요. 그러면 이 책에 나오는 질문과 유사한 말을 함부로 꺼내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또 체면 문화가 강하잖아요. 그런데 과연 이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질문을 한 번도 안 했을까요? 어쩌면 이 책을 통해서라도 조금이나마 그 갈증을 해결하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은 실제로 신앙을 놓고 고민하는 청년을 비롯해,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진지한 탐구자라면 누구든지 '묻고 답하는' 이 신앙의 여정에 함께하기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정 선생은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딸에게 지금까지 네가 듣고 배워 왔던 기독교는 2000년 기독교 역사라는 풍요한 대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기독교는 생각보다 훨씬 지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종교라는 사실 그리고 한국 기독교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린 혐오와 정죄는 결코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진리의 성채 안에 간직된 성배를 수호하는 기사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대양 너머 어딘가에 있을 값진 보물을 찾아 위험하지만 스릴 넘치는 항해를 떠나는 모험가가 되는 일임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중략) 이 책이 제 자녀뿐 아니라 진지한 기독교 탐구자들과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시작하며,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들에게', 11쪽)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관련 주석을 거의 다 탐독한다고 합니다. 사진 제공 정한욱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관련 주석을 거의 다 탐독한다고 합니다. 사진 제공 정한욱
독서와 성경 공부에
진심인 편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장마다 주제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도서들을 추천해 준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관한 질문이기에 그 답을 신학 서적에서만 찾을 법도 한데, 저자는 문학·페미니즘·과학·철학·사회학 등 여러 전문 분야의 서적을 균형 있게 소개합니다.

사실 정 선생은 지독한 독서광입니다. 1년에 많게는 100여 권, 적게는 70~80권을 읽는다고 합니다. 그는 독특한 독서 습관을 갖고 있는데, 바로 '요약'입니다. 읽은 책은 그 내용을 반드시 정리해서 남깁니다. 그래야 책에서 얻은 내용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서요. 책에 실린 추천 도서들 역시, 정 선생이 직접 읽고 선별했다고 합니다.

- 읽은 책을 정말 다 기록으로 남기나요? 너무 힘들 것 같은데요.

"굉장히 힘든 작업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잊어버리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아깝더라고요. 도서에 관한 감상이나 비평은 안 해요. 책이 말하는 핵심 주제를 정리하기만 하죠. 요약한 내용은 모두 블로그에 올려 놓고요. 그렇게 한 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그게 나중에 뼈가 되고 살이 됩니다."

- 언제부터 그렇게 독서를 좋아하셨나요?

"제 본령은 사실 독서가 아니라 성경 공부예요. 청년 시절부터 오랫동안 주석과 신학 서적을 살펴보며 성경을 연구했어요. 비록 책에서는 몇몇 도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난 40년간 신앙생활 하면서 성경을 읽고 공부했던 내용이 여기에 다 녹아들어 있는 거예요."

정 선생은 고등학생 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만난 교회학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질문을 잘 들어 주는 분이었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항상 성경을 펼치며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고 합니다.

"그때 제게 각인이 된 사실이 있어요. 기독교라는 종교는 '책의 종교'라는 거였죠. 몇몇 권위 있는 소수의 지도자보다 성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성경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정 선생은 인터뷰 도중 자신의 성경책 사진을 보여 줬습니다. 검은 가죽으로 덮인 그의 양장본 성경은 두껍고 허름했습니다. 쪽마다 메모장이 빼곡히 붙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본문에 관한 줄거리, 주제, 구조, 해설, 참고 지도 등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정 선생이 성경 각 권의 개론서와 주석서를 공부하면서 정리해 놓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메모는 전체 성경 66권 모두 붙어 있고, 지금도 매년 갱신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 선생의 성경은 그가 얼마나 성경을 열심히 공부했는지 보여 줍니다. 사진 제공 정한욱
정 선생의 성경은 그가 얼마나 성경을 열심히 공부했는지 보여 줍니다. 사진 제공 정한욱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비신앙의 언어로 신앙 말하기

- 교회와 성경을 정말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신앙을 어떻게 가르치시나요? 매주 교회에 꾸준히 나가라고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자주 권하시는 편인가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열심히 데리고 다녔지만, 지금은 그렇게 강요하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어릴 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를 처음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지, 개인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만약 아이들에게 '너 교회 안 가면 안 돼!'라고 잔소리를 했다면, 아이들은 마음을 닫았을 거예요. 제게 신앙이나 교회에 관한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않았을 거고요."

- 교회들이 이전부터 다음 세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딸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저희 교회 청년부는 목사님 세 분이 돌아가면서 설교하는데요. 어느 날 새 신자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세 사람 중 한 분의 설교만 이해하고, 나머지 분들은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거예요. 목사님들이 기독교인들만 알아듣기 쉬운 용어로 설교를 하니까, 기존 신앙 체계 안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낯설고 어려워했던 겁니다.

우리 개혁주의 같은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코넬리우스 반틸 같은 분들의 전제주의식 변증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당신이 내 말을 이해하려면, 내가 갖고 있는 체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거예요. 믿어야 알게 된다는 거죠.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방식도 상호 소통이 아니라 선포입니다. 상대가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다음 문제라는 거죠.

하지만 사회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젊은이들에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다가가면 대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비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교회가 소통이 안 되는 집단으로 보일 테고요. 결국에는 교회가 젊은이들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선생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게 무엇인지는 자신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를 쓸 때 비기독교인 독자를 염두에 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님이 여러 차례 어렵다고 지적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 역시 익숙한 기존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인정했습니다.

- 선생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수 성향이 강한 교회를 계속 출석해 오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다른 기성 세대보다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신앙관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요. 역시 독서와 성경 공부의 결과인가요?

"그럼요. 독서와 공부를 통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다니는 곳은 전형적인 보수 교회고, 제 신앙의 스승들도 전통적인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저는 지적인 관심이 많아서 비교적 일찍부터 현대 신학에 눈을 뜬 것 같아요. 총신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하비 콘 선교사(한국명 간하배, 1933~1998)님이 쓴 <현대 신학 해설>(개혁주의신행협회)을 젊었을 때 읽었는데요. 그분은 비판적인 관점으로 책을 썼지만, 저는 그때부터 현대 신학에 매료됐어요.

제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발간한 <국제 성서 주석·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입니다. 특히 게르하르트 폰 라트가 쓴 창세기 편이 제 인생의 책인데요. 그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성경을 연구할 때 본문 배후로 들어가서 역사적 배경이나 본문에 관여한 공동체 문화를 탐구해야 한다는 걸 새롭게 배웠습니다. 소위 고전적 비평이라는 방식을 통해 성경을 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죠."

- 그렇다면 교회를 다니면서 불편을 느끼신 적은 없었나요? 출석하시는 교회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동일한 신념을 가진 공동체라고 보는데요. 사실 전통 교회는 내부 구성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몇몇 목사님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회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담임목사에게 많은 권한이 부여돼 있고, 사람들이 예배 설교를 통해 영향을 받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상당히 느슨하고 유연해요. 한 사람의 뜻대로 좌우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교인들을 한 명 한 명 붙잡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점검하는 건 아니잖아요. 여러 형태의 생각과 신앙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교회에 존재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교회를 담임목사의 성향이나 소속 교단을 기준으로 평가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신앙을 지닌 교인들의 총체라는 사실을 저도 모르게 망각하고 있었던 거죠.

정 선생이 말한 교회의 정의는 여러 의미를 내포합니다. 내 생각이 중요한 것처럼 타인의 생각 역시 존중받아야 하고, 교회가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나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일에는 담임목사를 포함해 모든 교인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요.

"제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교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어느 교회를 가든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그렇지 않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참된 교회는 수많은 거짓 교회들을 끝없이 배제한 끝에 마지막에 도달하는 단 하나의 종착역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장소에 존재했던 수많은 교회가 함께 모였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커다란 모자이크화에 비견할 수 있다는 것이지." ('세계 기독교 - 복음의 무한한 번역 가능성', 53쪽)

아름다운 기독교 전통을
망가뜨리는 '자칭' 수호자들
'사랑'과 '환대'야말로
기독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 선생님 말씀처럼 교회에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할 때, '과연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교회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의문을 제기했을 때, 일방적으로 반응하는 교회 모습을 보며 상처받고 떠나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가 기독교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교회를 등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겠죠.

"저는 혹시나 신앙에 회의적인 이들이 있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어떤 중요한 원칙을 두고 있긴 해도,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고요. 그 진리를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은 시대마다 달랐어요. 그러니 지금 우리가 교회에서 듣는 말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30년 전에 배웠던 것과 지금을 비교하면 내용이 좀 달라요.

진리는 평생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진리에 완벽히 도달할 수 없거든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죠. 자신이 갖고 있는 답이 완전한 진리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 모두가 그 과정에 놓여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선생은 기독교 2000년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에게 이롭고 자랑할 만한 모습이 많은데, 이 종교가 이상한 이념에 사로잡힌 혐오 집단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정말이지 풍성하고 아름다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문명을 일으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신학도 아주 심오하고요. 많은 분이 보수 신학이라고 하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체계를 저는 굉장히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자랑할 만한 것들은 내버려 두고, 기독교 하면 '무엇이든지 반대하는 집단'으로 알잖아요. 저는 이런 사실에 굉장히 분노해요. 교계 지도자들이 진리를 고수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것에 반대하는 집단,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그룹인 것처럼 기독교를 망가뜨렸어요. 도대체 왜 제가 사랑하는 기독교를 왜소한 괴물로 쪼그라뜨리냐고요."

인터뷰 내내 유머와 침착함을 유지하던 정 선생은, 이 대목에서만큼 한껏 격양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너는 느끼겠지만 성서야말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자 규범이라는 '성경주의'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의 정체성을 규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란다. 그러나 이 책의 첫 부분에서도 지적했듯 보수 기독교인들이 그렇게나 강조하는 '성경적 기독교'란 사실 수천 년 전 고대 근동이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기록된 성서의 내용 중 제왕적 가부장제나 남존여비 사상처럼 '유교적 칼빈주의'라는 자신들의 독특한 기독교 하부 문화를 정당화해 주는 일부 구절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작동하는 '선택적 문자주의'에 불과한 경우가 많아." ('유교적 칼빈주의 - 목사의 딸', 220~221쪽) 

- 우리 교회가 앞으로 사회에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교회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교회가 만약 권력을 쥐면 정치인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까요? 과학자나 기술자보다 사회를 더 이롭게 할까요? 죄송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과학은 세상을 바꿨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진 했지만, 오늘날 우리 모두 과학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잖아요. 우리가 만약 과학이 주는 혜택을 포기한다면, 병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게 될 겁니다. 그런데도 어떤 기독교인들은 과학을 대놓고 무시하죠.

결국에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저는 그게 '사랑'과 '환대'라고 생각해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조건 없는 환대를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잖아요. 다른 종교도 잘하겠지만 기독교인들 역시 어릴 때부터 성경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환대를 보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가장 잘 실천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나는 21세기의 다원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실천은 타인의 얼굴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들이 증언하는 낯선 무한과 용감하게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나그네의 삶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것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타인과의 만남과 변화를 거부하는 교회는 결국 타인뿐 아니라 초월자와도 단절된 채, 가학적인 혐오를 일삼는 소중파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환대 - 절대적 환대와 환대의 법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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