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시간입니다. 우리는 한 명이 설교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도자가 말씀을 준비해 오면, 공동으로 분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한 사람의 생각, 한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것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몸 된 교회로서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서로 나눌 때, 더 풍성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뉴스앤조이-박요셉 사역기획국장] 사회자의 안내가 끝나자, 순서를 맡은 인도자가 본문을 알려 줬습니다. 사람들은 자세를 고쳐 앉고 성경을 들어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봉독이 끝나고 인도자는 본문의 의미를 짧게 설명했습니다. 그러고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습니다. 정적이 잠깐 흐르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입을 열었습니다. 평화누림교회(윤찬란 대표) 예배 모습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평화누림교회는 예배를 할 때 설교자를 따로 두지 않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모든 이가 설교자가 되고 청자가 됩니다. 대표자 1명만 말하고 나머지는 듣는 방식보다, 모두가 말하고 모두가 듣는 방식이 낫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평화누림교회를 개척한 배용하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동의 성서 해석은 우리 교회 중요한 전통입니다. 교회가 함께 묵상한 본문을 한 사람이 '이 본문은 이런 의미다’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일을 우리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만약 10명이 예배에 참여한다면, 10명 모두 이야기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10명의 삶이 우리에게 들어온다는 마음으로 듣습니다."

평화누림교회 가는 길

평화누림교회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한 마을 안에 있습니다. 야트막한 산들 사이 산기슭에 있는 조그만 동네입니다. 내비게이션만 보고 따라갔는데, 그만 막다른 길이 나와 당황했습니다. 차를 돌려 빠져나오는 길, 다행히 마을 어귀에서 할머니들을 만나 길을 물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은 교회를 알지 못했습니다. 대신 배용하 목사 이름을 말하자, 그제야 차 한 대 겨우 지날 수 있는 샛길을 가리킵니다. 그 길을 따라가니 십자가 첨탑이 달린 2층짜리 목조 주택이 보입니다. 9월 17일 평화누림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당에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몇몇은 바닥에, 몇 명은 장의자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작은 교회는 새 얼굴이 금세 티가 납니다.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무리 사이에 앉았습니다. 푹신한 카펫 위로 동그랗게 모여 앉으니 마치 어린 시절 집에서 가정 예배를 하는 느낌이 듭니다. 

평화누림교회 모습입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평화누림교회 모습입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모두를 위한 예배

평화누림교회 예배에는 교회 고유의 순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소개'입니다. 예배 시작 전, 사회자가 주제 질문을 던지면 교인들은 자신의 이름과 질문에 대해 대답합니다. 

사회를 맡은 윤찬란 대표는 지금 생각나는 사람을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 예배에 오지 못한 교인, 군대에 간 자녀 등 교인들은 저마다 보고 싶은 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저 역시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난다고 말했습니다. 

교인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으며, 저는 처음에 가졌던 어색한 느낌이 가시는 듯했습니다. 대부분 이날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약간의 친근감과 호기심도 들었고요. 그러고 보면 예배 시작 전에 나누는 자기소개는 교인들을 예배로 초대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어른·아이들이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혈기 왕성한 초등학생들이 얌전히 있지는 않습니다. 예배 시간 도중 실내 곳곳을 돌아다니기 바쁘지요. 하지만 말씀 시간이 되면 교인들이 둘러앉은 원 가운데로 모여 앉습니다.  

고학준 형제가 평화를 주제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누구 혹은 어떤 대상과 평화해야 하는지, 전쟁과 폭력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자연이요", "나 자신과 옆에 있는 사람이요", "북한과 미국, 러시아요", "비행기 타고 가서 도와줘야 해요". 고민 없이 툭툭 내뱉는 아이들의 대답이 반짝거렸습니다. 고학준 형제의 질문과 아이들의 대답이 말씀 시간을 채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 중요한 일은 기도예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는 분이라고 배웠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은 마음이 가장 따뜻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위해 기도할 수 있어요." (고학준 형제) 

말씀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옆 건물로 이동했습니다. 예배 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특별 활동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날 아이들은 평화를 위한 기도문을 각자 종이에 적어, 기도 깃발을 만들었습니다.   

기도문을 적은 종이들을 끈에 붙여서 길다란 기도 깃발을 만들었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도문을 적은 종이들을 끈에 붙여서 기다란 기도 깃발을 만들었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공동의 성서 해석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예배 순서는 '공동 성서 해석'입니다. 평화누림교회는 한 사람이 성경 해석 권한을 독점하는 방식을 지양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소속한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이 공유하는 정신이기도 합니다.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의 신앙고백문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공동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다양한 은사 안에서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존중합니다(제주 신앙고백문, '4. 공동체 ④항')."  

말씀은 매년 정회원 5~6명이 돌아가며 준비합니다. 담당자는 일주일 전 말씀 본문과 내용 요약, 질문지를 미리 교인들에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말씀 시간을 인도하죠.

이날 본문은 마태복음 20장 17~34절이었습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이야기하고, 바로 다음으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두 아들의 자리를 청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상영 자매의 인도 아래, 교인들은 약 40분 동안 본문에 관한 생각과 질문을 나누었습니다. 열심이었습니다. 저마다 예수님의 관점으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입장으로, 제자들이 느낀 마음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등장 인물들에 대입해 당시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했습니다.  

평화누림교회에서 설교는 연설이 아니라 '대화'입니다. 교회는 순서 없이 두서 없이 나누는 말이라도, 이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생각으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누가 성경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고, 탁월하게 해석했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배용하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맥락과 상관없는 말을 하면 어쩌지 하며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떤 말을 해도 모두 용납하는 분위기이거든요. 실제로 유치한 질문이 나오고, 대화 주제가 산으로 갈 때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시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거든요.

 

교인들은 상담사, 무역업 종사자, 농부, 학생 등 다양한 직업을 지니고 있습니다. 똑같은 본문이라 해도 삶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어린아이가 얘기해도 귀를 쫑긋 세우고 청년들이 말할 때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서로 눈치 보지 않고 말하는 분위기를 세우도록 노력해 온 것 같습니다."

동그랗게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정겹고, 교인들이 서로 대화하기에 좋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동그랗게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정겹고, 교인들이 서로 대화하기에 좋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재침례를 받기까지

평화누림교회는 오는 이를 모두 환영합니다. 누구나 예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정식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정회원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원칙은 단순하지만 난이도가 조금 있습니다. 

정회원은 기본적으로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이 공유하는 신앙고백에 동의하면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은 2016년 평화누림교회를 포함한 네 교회가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을 만들었을 때 공동으로 작성했습니다. '제주 신앙고백문'이라고 부릅니다. 

1. 예수가 우리 삶의 중심이다. 

우리는 초대교회 전통을 따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요, 주로 고백한다.

2. 제자도

가난한 자, 갇힌 자,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예수를 본받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에 헌신한다. 

3. 평화와 화해

제자 공동체로서 교회는 가정, 교회, 창조 세계에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를 이루는 일에 헌신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구현되도록 노력한다. 

4. 공동체

제자 공동 신앙 공동체는 우리 삶의 중심이라고 믿기에 우리의 시간과 재능, 물질을 통해 성경적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헌신한다. 

신앙고백의 큰 주제만 나열해 봤습니다. 이것만 보면 기성 교단과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이 보이지 않지만,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신앙고백에는 '공동 성서 해석', '전쟁 반대', '비폭력' 등에 관한 내용도 들어가 있습니다. 

평화누림교회는 새 정회원을 위한 교육과정도 두고 있습니다. 이 과정 동안 신앙고백문의 의미, 교단과 교회 역사 등을 가르칩니다. 마지막 시간으로는 교인들과 새 정회원이 서로 신앙 여정을 나누는 시간을 보내는데요. 4~5시간 충분히 서로 묻고 답하면서 각자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신앙을 갖게 됐는지 이해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약 6개월 동안 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면, 세(침)례를 받으며 정식 교인이 된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은 정회원을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평화누림교회는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새 교인에게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주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일종의 자기 성찰과 다짐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긴 시간을 보내면서 교회의 신앙고백에 정말로 동의하는지, 앞으로 내가 다른 방향의 삶을 살 수 있을지 충분히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실제로 반년 가까이 교육과정을 함께했지만 결국 정회원이 되지 않은 교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자체로 교회와 개인에게 의미 있고 도전이 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침례를 받는 모습. 정회원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 교인들과 새 정회원이 서로 알아 가는 시간을 보냅니다. 사진 제공 배용하
침례를 받는 모습. 정회원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 교인들과 새 정회원이 서로 알아 가는 시간을 보냅니다. 사진 제공 배용하
공동체의 주인은

평화누림교회 기사를 준비하면서 교회 대표자 이름을 누구로 적을지 고민했습니다. 통상 교회 이름 뒤에 괄호로 담임목사 이름을 넣었는데, 평화누림교회는 담임목사가 없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배용하 목사도 자신이 대표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5년 전 멤버가 된 윤찬란 자매가 현재 대표라고 했습니다.

평화누림교회는 목회자 없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교회와 관련한 중요한 사항은 정회원들이 함께 의논해서 결정합니다. 대표는 회의를 주재하고 행정과 살림을 책임집니다. 임기는 2년입니다. 

"정회원들이 순서를 정해서 돌아가면서 대표를 맡고 있어요. 저는 5년 전에 대표였고요. 그 다음은 고학준 형제가, 지금은 윤찬란 자매가 대표입니다. 돌아가면서 대표를 맡는 방식이 잘될지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대표 혼자 모든 일을 짊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교인들도 돕고 있으니까 서로 보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배용하 목사) 

"정회원들이 무조건 대표가 돼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냥 정회원을 하지 말까 잠깐 고민했어요.(웃음) 대표는 교회 연합 모임에도 참여해야 하는데, 그건 너무 부담스러워서 대외 활동은 다른 자매에게 부탁하고 저는 교회 안에서만 대표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라고 했으면 못 했을 거예요. 하지만 앞서 두 분이 공동체를 잘 이끌어 주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일은 제가 잘할 수 있고 어떤 사역은 도움이 필요할지 보이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까 지금은 덜 부담스러운 것 같습니다." (윤찬란 대표) 

제주 신앙고백문입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제주 신앙고백문입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배용하 목사에게 평화누림교회를 앞으로 어떤 공동체로 만들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에 관한 설명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며 대답을 피했습니다. 교회에 거는 기대와 소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은 교인 모두가 함께 꿈꾸며 그려 나가야 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말하기 조심스럽다고 말입니다. 

배 목사와 나눈 대화와 이날 함께 드린 예배를 복기하면서, 저는 교회의 모습에 관하여 생각했습니다. 공동 의사 결정과 공동 성서 해석, 대표 순번제 등 평화누림교회가 갖고 있는 이러한 제도와 전통은 소수가 군림하지 않게 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평화누림교회 예배에 참여한 10여 명의 교인들은 하나의 교회를 이루면서, 결국 그들 각자가 또 하나의 교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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