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김은석 간사] '개도 포르쉐를 타는 동네'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최근 재건축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면서 부촌으로 떠오른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을 일컫는 별명이라고 합니다. 7월 2일 개포4동에 위치한 그루터기교회(안용성 목사) 주일예배에 다녀왔습니다. 막연하게 강남 부촌 이미지를 떠올리며 찾아갔는데, 강북의 어느 오래된 주택가와 다를 게 없는 동네가 나옵니다. 저에게는 정겹지만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울지도 모르는 1990년대 정서를 머금고 있습니다.

동네 분위기처럼 정겨운 이름을 지닌 달터공원을 앞에 두고, 개포로38길과 30길이 만나는 모퉁이를 30년 넘게 지키고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 붙은 십자가와 교회 간판만 없으면, 영락없는 다세대주택인 이곳이 바로 그루터기교회입니다.

주일예배 시간은 오전 11시입니다. 10시 40분쯤 교회에 도착했는데 몇몇 교인이 1층 로비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예배당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삼면을 두른 갈색 벽돌 타일과 오래된 장의자들이 어린 시절 익숙했던 예배당 풍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강대상 오른편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체임버(chamber) 멤버들이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장년 연주자들이 젊은 연주자들과 어울려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보면대를 골똘히 바라보며 정성스럽게 호흡을 맞추는 이들의 연주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합니다. 교인들이 하나둘 빈자리를 채워 가고, 여기저기서 반가운 낯으로 소곤소곤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훈훈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4동에 위치한 그루터기교회(안용성 목사) 주일 예배에 다녀왔습니다. 건물 외벽에 붙은 십자가와 교회 간판만 없으면, 영락없는 다세대주택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서울 강남구 개포4동에 위치한 그루터기교회(안용성 목사) 주일예배에 다녀왔습니다. 건물 외벽에 붙은 십자가와 교회 간판만 없으면, 영락없는 다세대주택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주보를 살펴본 뒤 가만히 눈을 감고 오늘 어떤 예배를 드리게 될지 그려 보는 사이, 예배 시작 시간이 다 됐습니다. 130명가량이 앉을 수 있는 장의자가 교인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성가대장의 인솔하에 집례자와 성가대가 함께 입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배 시작을 알리는 오르간 연주가 흘러 나오자, 집례자인 안용성 목사가 설교대 앞으로 나옵니다.

"사랑하는 그루터기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오래된 예배당,
짜임새 있는 예배 순서,
의미 있는 노랫말로 고백되는 신앙

경배 찬송으로 다같이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를 부르는데, 찬양 소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하 예배당이어서 울림이 좋았던 걸까요. 아니면 그루터기교회에 노래 잘하는 분이 많아서였을까요. 제가 지금껏 들었던 회중 찬양 소리 중에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 말씀하신 주님, 우리도 한때는 어린이와 같이 순수하고 작은 것에도 경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욕심과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버렸습니다. 어린이의 열린 마음과 긍휼은 사라져 버리고 의심과 불신 속에 마음의 빗장을 걸어 놓고 살아갑니다. 하나님 아닌 것에 의존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오염되어 밝음과 어두움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어린이의 마음을 회복하게 하소서. 오직 주님을 신뢰하며 마음을 열고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다세대주택을 교회당으로 개조한 건물 지하 1층에 그루터기교회 예배당이 있습니다. 100여 명의 교인들이 오래된 예배당에서 잘 짜여진 순서를 따라 신앙을 고백하며 예배합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다세대주택을 교회당으로 개조한 건물 지하 1층에 그루터기교회 예배당이 있습니다. 100여 명의 교인들이 오래된 예배당에서 잘 짜여진 순서를 따라 신앙을 고백하며 예배합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안용성 목사가 올린 참회의 기도에 이어 온 교우가 눈을 감고 각자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사죄 기원송을 부르는데, 떼제 성가 '주여, 주 예수여(Jesus, remember me)'를 개사한 노래입니다.

"주여, 품어 주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품어 주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교우 대표의 '교회의 기도', 다 함께 부르는 '주기도문송'과 '평화의 인사' 순서가 이어집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교우들이 일어나 양손을 뻗어 노래하며 서로를 축복합니다. 앞자리에 앉은 교우 일부는 의자 밖으로 나와 몸을 돌려 뒷자리 교우들을 향해 손을 뻗기도 합니다.

"형제와 자매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벌써 네 곡째 함께 부르는 찬양이었는데, 이후로도 다섯 곡을 더 불렀습니다. 말씀을 위한 노래, 설교가 마친 뒤 부르는 응답 찬송, 봉헌송, 성찬 전 부르는 찬송, 성찬 후 부르는 찬송까지 총 아홉 곡을 다 같이 부릅니다. 일반적인 개신교회의 예배에 비해 두 배가량 많은 편인데,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잘 짜여진 예배 순서에 맞춰 의미 있는 노랫말로 공동체의 신앙을 고백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르심과 나아감', '아룀과 사귐', '말씀과 응답', '다짐과 파송'이라는 4개의 틀로 짜여진 그루터기교회의 예배 순서는 2대 담임목사이자 예배학자인 김경진 목사(소망교회 담임)가 골격을 만들었고, 지난해 전 교인 수양회 강사로 온 안선희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과)의 조언을 따라 세부적인 부분을 다듬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오신 예수,
마음의 빗장 풀고 울타리를 넓히는 삶
안용성 목사는 이날 누가복음 2장 1~38절을 본문 삼아 '누구를 위해 오셨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안용성 목사는 이날 누가복음 2장 1~38절을 본문 삼아 '누구를 위해 오셨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안용성 목사는 누가복음 2장 1~38절을 본문 삼아 '누구를 위해 오셨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해 오셨다는 점,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만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누가복음이 1~2장 맥락 속에서 어떻게 드러내는지 차근차근 보여 줬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이 두 가지 포인트를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부류를 지목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장로들과 대제사장으로 대변되는 유대교 지도자들입니다. 안 목사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성찰해야 할 지점을 던졌습니다. 조금 길지만 제 마음에 각인된 설교 후반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많은 경우에 우리는 성경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고 선을 그으면서 이 문제를 피해 가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의 기회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결국 구별하기 좋아하는 그 사람들의 길을 답습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길을 답습하지 않는 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는 그 사람들과 달라' 하고 회피하기보다 '나는 어떤 점에서 그들과 같은가, 나는 어떤 점에서 그들의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는가' 하고 진지하게 질문하며 스스로를 깊이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성도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수혜자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는 주님께 돌아오는 백성을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백성이 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나만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중략)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오셨음을 아는 것은 예수의 오심의 목적이 됐던 그 사람들에게 우리도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부자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도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낮은 사람도 있고, (중략)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이 약하거나 투병 중인 사람도 있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듣는 사람도 있고,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치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쁜 소식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에 나와 다른 범주에 있는 그 사람들을 위한 빈 공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되어 아기로 오신 예수님이 그 빈방에 묵으실 것입니다."

그루터기교회는 한 달에 한 번 성찬을 합니다. 마침 이 날은 성찬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설교 후 봉헌 순서가 지나자 성찬이 시작됐는데요. 분병과 분잔을 시작하기 전 안용성 목사가 교우들을 성찬으로 초대하는 말씀도 깊이 와닿았습니다(성찬 초대 메시지는 매번 바뀐다고 합니다).

안용성 목사가 교인들을 성찬으로 초대하는 말씀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안용성 목사가 교인들을 성찬으로 초대하는 말씀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공생애 가운데 많은 사람과 식탁을 함께하심으로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에는 가난한 사람들, 특히 그 당시 천대받던 세리와 죄인들이 자주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7장 32절을 보면 예수님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별명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별명은 그 당시로서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리와 죄인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가까이하면 안 될 불가촉천민이었고, 그들과 가까이 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불경건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종교적·사회적 금기를 깨고 세리와 죄인들, 밀려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을 그 식탁, 하나님나라의 식탁에 초대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초대받은 것은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자리가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하나님나라의 식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이 식탁에 초대받은 자로서 우리의 눈을 열고, 우리의 마음을 우리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더 넓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의 몸과 피를 통해 얻은 영원한 생명이 온 인류에게 더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찬 시 회중석 조명은 어두워지고 성찬상이 있는 곳만 조명이 켜집니다. 한 교우는 성찬을 할 때마다 "어둠 가운데 있던 나를 끌어내어 빛의 자리에서 주님과 주님의 만찬을 누린다는 생각에 마음에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성찬 시 회중석 조명은 어두워지고 성찬상이 있는 곳만 조명이 켜집니다. 한 교우는 성찬을 할 때마다 "어둠 가운데 있던 나를 끌어내어 빛의 자리에서 주님과 주님의 만찬을 누린다는 생각에 마음에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예배를 마친 후에는 점심 애찬과 소그룹 모임이 이어집니다. 출석 교인의 80%가량이 돌아가지 않고 함께 식탁 교제를 한 뒤 오후 1시 30분부터 소그룹으로 나뉘어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조당 15~20명씩으로 구성된 9개의 소그룹(청년부 포함)이 있습니다. 매주 애찬을 준비하는 조도 8개로 편성되어, 당번조에 속한 교인들이 예배 시작 전에 미리 식사를 준비해 놓습니다.

이날 애찬 메뉴는 김밥과 수박이었습니다. 주방이 있는 교회 2층이 배식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이미 자리를 잡고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활기를 띱니다. 2019년까지는 밥과 국, 간단한 반찬을 준비해 함께 먹었는데, 팬데믹으로 한동안 애찬이 중단되었다 올해 다시 시작하면서, 샐러드·김밥 등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보는 중이라고 합니다.

10대부터 그루터기교회를 다닌 30대 교우가 "코로나19 이전의 애찬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한 이야기를 미루어 볼 때, 교인들이 애찬 준비에 진심인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긴 이날 애찬도 김밥과 수박에 한 교우가 준비해 온 백설기 한 덩이가 더해져 결코 가벼운 식사는 아니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점심 애찬이 이어집니다. 교회 2층이 배식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이미 자리를 잡고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활기를 띱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예배를 마친 후 점심 애찬이 이어집니다. 교회 2층이 배식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이미 자리를 잡고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활기를 띱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처음부터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민주적 교회

저는 안용성 목사와 정진욱 장로, 장혜경 집사와 함께 애찬을 나눴습니다. 정진욱 장로는 그루터기교회의 창립 멥버이고, 장혜경 집사는 현재 그루터기교회 운영위원회 총무입니다. 그루터기교회가 어떻게 창립되고, 현재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이미 안용성 목사에게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교인들의 육성으로 듣고 싶어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996년 4월, 고 이귀선 목사와 교인 30여 명이 세운 그루터기교회는 처음부터 평신도 중심의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교회를 지향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담임목사는 설교와 목양에만 집중하고 교회 행정과 운영은 교인들에게 일임했습니다.

"창립 당시 모인 사람들의 화두가 '한국교회 개혁'이었어요. 교회 숫자 하나 더하려고 이 교회 세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컸죠. 창립 목사님은 기복신앙·외식주의·세속주의를 가장 많이 비판하신 분이었어요. 성공을 하든 못 하든 한국교회의 잘못된 모습을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교회를 해 보자는 마음으로 목사님과 교인들이 의기투합한 거죠. 그래서 운영위원회를 만들고 목회와 행정을 분리시켰어요. 목사님은 설교와 목양에만 집중하고, 재정 집행이나 교회 운영 전반을 운영위원회 총무가 책임진 거예요." (정진욱)

그루터기교회 창립 멤버 중에는 이미 장로 안수를 받은 50~60대 교인들이 있었지만,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젊은 교우들과 모든 일을 민주적으로 논의하며 결정해 나갔다고 합니다. 초대 운영위원회 총무였던 정진욱 장로의 당시 나이는 37세였다고 합니다. 젊은 교인들이 부서장으로,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 리더로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것이지요. 이 모든 이야기가 놀라웠습니다. 한국교회 전반을 볼 때 교회의 민주적 운영과 젊은 세대로의 리더십 이양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요원한 일이니까요.

더 놀라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현재 그루터기교회가 사용하는 건물은 창립 멤버 중 한 분이 기증한 것인데, 그분은 당시 연배가 높은 장로였고 재정적인 기여를 가장 많이 했음에도 교회 운영에 개입하지 않고 철저히 뒤로 빠져 묵묵히 지원만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목회와 행정 분리,
당회와 운영위원회의 권력 균형

초교파 교회로 시작한 그루터기교회는 이귀선 목사가 은퇴하고 2대 담임목사로 김경진 목사가 부임한 후인 2000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 가입했습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교단에 속해 있지 않으니 부교역자 초빙하기가 너무 어려워서였다고 합니다. 교단에 가입한 뒤로도 교회의 운영 방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당회가 존재하지만, 교회 운영 전반은 설립 당시와 마찬가지로 운영위원회가 주도합니다. 그루터기교회 당회와 운영위원회의 메커니즘을 들어 보니 조금 독특합니다.

투표를 통해 교인 ⅔가 뽑은 장로들이 담임목사와 함께 당회를 구성합니다. 장로는 3년 임기이고 재신임 투표를 거쳐 한 번 연임할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도 위임 후 6년마다 재신임을 합니다. 장로교회에서 당회는 명실상부한 교회 대표 기구입니다. 그런데 그루터기교회는 당회가 교회 운영의 전권을 운영위원회에 일임합니다. 담임목사가 운영위원장이고, 장로들이 당연직 운영위원으로 들어가지만, 대개 장로는 회의에 한 명만 참석하여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조절한다고 합니다. 실질적인 살림살이가 계속해서 운영위원회 총무를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한 것이지요.

운영위원회 총무는 매년 당회가 선임하고 공동의회에서 승인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선임된 총무는 담임목사와 함께 운영위원들, 즉 각 부서장들을 선임하고요. 운영위원들은 교회 운영과 관련한 전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선출직이 아니다 보니 목에 힘을 주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안용성 목사는 "당회와 운영위원회 사이의 권위와 역학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혜경 집사는 2022년에 운영위원회 총무가 되어 한 번 더 연임하는 중입니다. 그루터기교회에서 여성이 총무를 맡은 것은 장 집사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운영위원회는 남녀가 비슷한 수로 구성되어 있고, 교인의 평균 연령보다 더 젊습니다. 교육부·예배부·선교부·관리부·친교부·멀티미디어부·봉사부·재정부 등 각 부서마다 부장과 차장이 주도적으로 부서 활동을 이끌어 가지만, 중요한 사안들은 운영위원회 총무와 조율하며 진행합니다. 일반적인 교회로 치면 행정총괄목사에 견줄 만큼 주어진 일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사역자가 아닌데도 어떻게 그런 무거운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은퇴하고 시간이 남는 걸 어떻게 아시고 총무로 임명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부장과 총무는 교인들을 남다르게 살피고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사회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교회 안에서 체계와 절차를 더 갖추어 일을 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긴 한데, 실제로 그런 방식을 정착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 같아요. 그래도 그루터기교회 교인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헌신해 올 수 있던 것은 여기가 교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니까 자아를 드러내기보다는 내려놓고 일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장혜경)

마침 운영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운영위원회 총무인 장혜경 집사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마침 운영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운영위원회 총무인 장혜경 집사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교회 탐방 후 운영위원들에게 따로 설문을 했는데, 한 운영위원이 "교회 규모가 작아 봉사할 사람이 한정되어 있음"을 어려운 점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서로 양보하며 힘든 일을 이루어 냈을 때에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도 했습니다. "운영위원회 회의가 늘 기대된다"는 다른 한 분은, 운영위원회 활동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활동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마침 이날 운영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참관할 수 있었는데, 부서별로 진행하는 활동이 원활하게 공유되고, 의견 표명과 조율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안용성 목사가 2011년 그루터기교회에 부임하기로 결심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교회의 민주적 시스템과 교인들의 민주적 역량" 때문이라고 말한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민주적 역량과 개방성을 갖춘 교회
"'회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토의 시스템 만들어지길"

그루터기교회의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이 빛을 발한 몇몇 사례가 있습니다. 2018년에는 애찬 준비 방식을 놓고 전 교인이 5개월간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중·고등부 청소년들이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인용하며 어른들에게 "왜 애찬 준비를 하는 역할이 성별에 따라 달라져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의견이 적극 수용됐고, 그 결과 여성은 음식 준비, 남성은 설거지와 같은 방식으로 역할을 고정시키지 않게 됐으며, 남성이 요리를 맡은 애찬 준비조들이 등장하게 됐다고 합니다.

2019년 총회가 명성교회 세습안을 받아 줬을 때는 교인들이 소그룹 토의와 공동의회를 거쳐 이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성명서 초안 작성을 청년부에게 맡겼다는 뒷이야기도 신선했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에는 예배 운영과 소그룹 모임 방식을 놓고 전 교인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루터기교회 게시판에는 월별 교회 재정 결산 내역과 운영위원회 회의록 등 각종 교회 운영 관련 정보가 교인들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그루터기교회 게시판에는 월별 교회 재정 결산 내역과 운영위원회 회의록 등 각종 교회 운영 관련 정보가 교인들에게 공개돼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올해로 담임목회 13년 차에 접어든 안용성 목사는 그루터기교회가 더 나은 민주주의 체계로까지 나아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미 민주적인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데 뭘 더 바라는 걸까 의아했는데, 그의 설명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언가 결정하고 일해 온 게 '회의'라는 방식을 통해서였잖아요. 그런데 회의라는 게 때로는 목소리 큰 사람이 끌고 가기도 하고, 누군가 발언을 오래 하다 보면 시간이 없어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시간에 맞춰 끝내야 하니 급하게 결정하거나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반복되기도 하죠.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통해서 말씀하신다고 하는데, 이런 방식의 민주주의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까지 나아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모든 교인에게 자기 의견을 말할 기회가 주어지고, 그 의견들이 모두에게 전달돼 공동체의 운영에 반영될 수 있는 토의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방향으로 시스템을 발전해 가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교회 안에서 배제와 소외를 최소화하는 게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며, 더 나은 민주주의라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교회에서 회의할 때 가끔씩 속도와 효율에 사로잡혀 밀어붙이곤 하던 제 모습이 떠올라 뜨끔하기도 했고요.

어쩌면 그루터기교회는 안 목사가 바라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토양을 갖추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인들이 다름, 다양성에 대해 비교적 열린 태도를 지닌 것 같았거든요. 의사 결정 과정뿐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도요. 교회 탐방 후 교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만들어 설문 참여를 요청했는데, 그루터기교회의 좋은 점을 묻는 질문에 이런 답변들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견해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고, 성경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견해를 들을 수 있어서 신앙의 폭이 넓어짐을 느껴요." (장덕진, 60대)

"아무나 붙잡고 '하나님은 안 계신 것 같아요'라고 말해도 논리적 대화가 가능한 곳." (정우영, 30대)

"다양한 신앙 스펙트럼을 가진 교우들과 대화를 통해 일방적 주입식 공부가 아닌 나눔의 시간을 갖는 것." (김영민, 60대)

교인들의 배려로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도 참관할 수 있었는데요. 사무엘상 13장 7~14절을 다룬 성경 공부 교재를 함께 읽고 구성원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이 본문은 사무엘을 기다리던 사울이 약속한 날에도 사무엘이 오지 않자 직접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나중에 도착한 사무엘로부터 "왕조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성 예언을 듣게 되는 내용이었는데요. '과연 사울이 그 정도로 심한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하나님은 왜 그리 사울에게 가혹하신 건가', '하나님의 뜻과 결정은 때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등의 생각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함께 답을 찾아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에도 참관했는데, 교인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솔하게 생각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뒤쪽 중앙에 남색 셔츠를 입은 남성이 창립 맴버인 정진욱 장로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에도 참관했는데, 교인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솔하게 생각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색 셔츠를 입은 남성이 창립 맴버인 정진욱 장로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코로나19가 득이 된 것 같아요"

안용성 목사에게 들은 이야기 중 귀를 쫑긋하게 만든 내용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루터기교회에는 코로나19가 오히려 득이 된 것 같아요." 대부분의 교회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그루터기교회에는 코로나19가 왜·어떻게 득이 됐을까요?

득을 따지기에 앞서, 코로나19가 실이 되지 않은 중요한 요인을 짚어야 합니다. 첫째, 주일성수를 강조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정진욱 장로에 따르면 초대 담임목사인 이귀선 목사는 "하나님이 주일에 다른 데 가서 다른 거 해도 된다고 하면, 다른 데 갈 수 있는 거지" 하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초기부터 주일예배 참석을 강요하지 않고 전적으로 교인들의 자율적인 참여에 맡겨 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인들이 주일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혹여나 사정이 있어 누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정죄하는 눈초리를 보내지 않고, 오랜만에 출석을 해도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신앙의 자유가 존중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안 목사는 이런 문화가 있었기에 비대면 예배가 불가피했던 당시 교인들이 큰 거부감 없이 비대면 예배에 원활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둘째, 헌금 방식입니다. 그루터기교회는 설립 당시부터 무기명 헌금을 원칙으로 정해 지켜 왔다고 합니다. 담임목사가 헌금 내역을 알면 목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지요. 몇 해 전부터는 투명한 기부금 영수증 처리를 위해 연말정산이 필요한 교인들은 헌금을 계좌로 송금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헌금 내역은 담임목사를 포함해 교인 누구도 알 수 없고, 재정부장과 차장만 알게 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교인이 계좌로 헌금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대면 예배를 장기간 지속했을 때도 교회 재정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제 득이 된 것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만날 수 없게 되니 모임을 향한 갈망이 커진 걸까요? 교인들의 신앙생활이 주일예배와 소그룹 성경 공부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던 그루터기교회는, 비대면 시대를 거치며 새로운 모임이 생겨나거나 기존 모임이 활성화됐다고 합니다.

교인들은 모두 그루터기교회 밴드(band.us)에 가입돼 있는데요. 주일예배가 비대면으로 전환된 후로도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을 밴드 안에서 시작하고, 이어서 줌(Zoom)을 활용해 온라인 방식으로 지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존에 소그룹마다 달리 정했던 성경 공부 교재를 통일하자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발견했고, 공통 교재를 만들기 위해 교인들이 교재 개발팀을 결성했다고 합니다. 안 목사가 과거에 한 강해 설교문을 교인들이 직접 요약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함께 나눌 질문을 뽑아내 교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교재가 통일되고 나니 그 전에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소그룹 리더 교육을 주중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기존의 수요 모임은 독서 모임으로 성격이 전환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됐고, 성경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교인들을 위해 심화 성경 공부반도 주중에 온라인 모임으로 꾸려졌습니다. 원래 새벽 기도회가 없었는데, 작년부터는 아침 큐티 모임을 화~금 오전 6시 30분에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됐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그루터기교회 안에는 다양한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방문한 날에도 주일예배 후에 기타를 배우는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코로나19 이후 그루터기교회 안에는 다양한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방문한 날에도 주일예배 후에 기타를 배우는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이 모임들은 코로나19가 끝난 후로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주일예배 후 소그룹 모임 참여율은 팬데믹 전보다 더 높아졌다고 하고요. 최근 친교부에서는 모임을 만들기 원하는 교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 모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누구든 만들고 싶은 모임이 있으면 게시판에 제안하도록 하고, 그 모임에 참여를 원하는 사람이 세 명 이상 나타나면 모임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방문한 날에도 몇몇 분들이 교회 4층 방에 모여 환한 얼굴로 기타를 배우는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인들 간 교제를 장려하려는 교회에서는 당장 적용해도 될 만한 프로그램 같았습니다.

포스트팬데믹 그루터기교회
플로팅·SBNR 크리스천을 위한 선교

'아름다운 공동체, 소명을 다하는 삶.' 그루터기교회가 내걸고 있는 비전입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그루터기교회는 나날이 아름다운 공동체로 빚어져 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소명을 다하는 삶을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습니다. 그루터기교회는 지역 교회가 아닙니다. 등록 교인 200명가량이 서울 경기 지역 곳곳에 흩어져 살아갑니다. 매주 충남 아산에서 출석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일상의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하지만, 이를 구체화하거나 발전해 나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함께할 수 있는 선교적 소명을 찾아 나설 필요를 느꼈다고 합니다.

올해 초 안용성 목사는 '포스트팬데믹 그루터기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며 그루터기교회가 플로팅(floating)·SBNR 크리스천을 위한 선교를 새로운 선교적 소명을 삼아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플로팅 크리스천은 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거나, 현장 예배에는 안 나가도 온라인 예배는 드리는 크리스천들을 지칭합니다. SBNR 크리스천은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즉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크리스천을 표현한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지만 교회 출석은 하지 않으면서 나름의 영적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루터기교회 전 교인이 지난해 말 함께 읽고 토의한 책 <한국교회 트렌드 2023>(규장)에 이 두 부류의 크리스천이 부각돼 있습니다. 이 책은 이들을 단순히 신앙이 부족한 사람들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야 하고, 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시킬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설교에서 안 목사는 보통의 한국교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 일이 "그루터기교회로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그루터기교회 같은 교회가 아니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합니다.

등록 교인은 약 200명이지만 평균 출석 인원은 110~130명을 오가는 그루터기교회는 이미 플로팅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플로팅 현상이 교회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습니다. 안 목사의 표현을 빌리면 "그루터기교회에는 땅 위에 튼튼히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도 있고, 공중에 조금 떠 있는 사람도 있고, 인공위성처럼 지구궤도를 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을 모두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그 상태 그대로 인정해" 주는 문화가 이미 자리 잡혀 있습니다.

그렇기에 플로팅·SBNR 크리스천을 위한 선교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선교적 소명을 교회가 붙잡고 갈 것인지, 붙잡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도울 것인지, 남은 한 해 동안 그루터기교회는 토의를 거듭해 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2011년 부임해 13년째 그루터기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안용성 목사. 그루터기교회가 더 나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들고, 플로팅·SBNR 크리스천을 위한 선교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의 이야기에는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엿보였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2011년 부임해 13년째 그루터기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안용성 목사. 그루터기교회가 더 나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들고, 플로팅·SBNR 크리스천을 위한 선교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의 이야기에는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엿보였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창립 당시 교회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정진욱 장로가 해 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루터기'라는 이름은 교인들에게 공모해서 정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6장 8~13절 말씀처럼 이 시대의 진정한 그루터기가 되자'는 한 장로님의 생각에 교인들이 마음을 모은 것입니다. 개혁적인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교인들의 열망이 어땠을지 교회 이름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본문은 교회 주보 1면 하단에도 적혀 있습니다.

"그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중략)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이사야 6:8~13, 새번역)

그런데 이름을 제안한 장로님은 한 가지 의미를 더 내걸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편히 걸터앉아 쉴 수 있는 나무 그루터기 같은 교회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긴 탐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제 주변에 있는 플로팅·SBNR 크리스천들을 떠올렸습니다. 주로 교회에 상처받거나 소진된 사람들,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에 빠져 있지만 존재의 뿌리는 여전히 하나님께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든 오프라인으로든 그루터기교회와 같은 교회를 만나 쉼을 누리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그렇게 걸터앉아 쉬어 가던 사람들이 신앙이라는 순례의 새로운 국면을 만나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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