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김은석 간사] 예배 시간에 늦은 경험, 한 번쯤 해 보셨겠지요? 이미 예배가 시작된 예배당에 빼꼼히 들어가는 기분은 여간 민망한 게 아니지요. 그놈의 내비게이션을 믿은 게 문제였습니다. 출발 전에는 분명 50분이면 도착한다고 하더니, 달리는 도로 위에서는 도착 예정 시간을 갈수록 늦춥니다. 아닙니다.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가 일요일 오전에 이렇게 막힐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제가 문제였지요.

예배 시간은 점점 가까워져 가는데 정체가 풀릴 기미는 안 보이고, 등줄기는 자꾸만 서늘해집니다. 더 빠른 길은 없는지 다시 내비게이션을 만지작 거리는데… 아뿔싸, 인터체인지를 지나쳐 버렸습니다. 원래 예배 시작 20분 전에는 도착하려 했는데, 예배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5월 14일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양지마을 나지막한 언덕 상가 건물 5층에 위치한 어.울림교회(남태일 목사) 주일예배에 다녀왔습니다.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양지마을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한 어.울림교회(남태일 목사)에 다녀왔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양지마을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한 어.울림교회(남태일 목사)에 다녀왔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어.울림교회 예배 풍경

"사랑의 하나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택하시어 벗이라 불러 주셨나이다."(인도자)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새 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썩지 않는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회중)

예배로의 부름을 함께 읽고 나니, 어수선했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집니다. 함께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한목소리로 드립니다. 예배로의 부름과 회개와 용서의 기도 기도문은 성공회 기도문을 차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주 하나님, 제가 죄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속량하시며 다시 선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제가 주께 드리는 예배를 받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찬양 시간이 이어집니다. 이제 좀 편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봅니다. 10여 명이 설교대 쪽을 향해 ㄷ 자로 둘러앉아 있습니다. 어린이 3명, 청소년 2명도 있습니다. 뒤쪽에 놓인 휴대폰은 지방에 거주하는 교우들을 위해 온라인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기타 치며 찬양을 인도하는 교인은 낯이 익습니다. <뉴스앤조이>와 인터뷰도 하고 필자로 활동한 적도 있는 용서점 박용희 대표입니다. 탐방 온 교회에 아는 사람이 다니니 괜히 더 반갑고 긴장도 풀리더군요. 책 큐레이팅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찬양 인도도 제법 능숙합니다.

교인들이 밝은 목소리로 찬양을 부릅니다. 찬양을 크게 부르는 사람도 작게 부르는 사람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밝음이 공간을 채웠습니다. 요 며칠 감기로 고생해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밝은 분위기 속에서 찬양을 부르니 충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성인들을 위한 말씀 나눔 시간 전에 어린이를 위한 말씀 나눔 시간이 있습니다. 남태일 목사는 <큐티아이>(성서유니온)를 활용해 민수기 27장 6~7절에 나오는 슬로브핫의 딸들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아들만 재산을 물려받던 시대에 슬로브핫의 다섯 딸이 모세를 찾아가 당당하게 땅을 물려받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해 주신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합니다. 아이들 눈도 똘망똘망하지만 어른들의 눈에서도 빛이 나는 듯합니다. 어린이 말씀 나눔 후 아이들은 옆 공간으로 이동해 편안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성인 교우가 함께 이동해 아이들을 돌봅니다.

어.울림교회 남태일 목사는 '성도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능력만큼 기여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하나님나라 방식을 삶에서 드러내는 것이 성도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어.울림교회 남태일 목사는 '성도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능력만큼 기여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하나님나라 방식을 삶에서 드러내는 것이 성도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성도의 능력은 무엇인가"

남태일 목사는 고린도전서 2장 6~16절을 본문 삼아 '성도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정당당하게 능력대로"를 외치지만, 자본주의사회는 돈과 권력을 독점한 사람들에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어서 능력주의가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불법과 불의가 너무도 판을 치니 "차라리 능력대로 가져가자"는 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뒹구는 하나님나라 방식은 능력대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능력만큼 기여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원시공동체에서 그 방식대로 살았고, 초대교회 공동체가 그 방식을 구현했으며, 오늘 우리도 가정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이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하게 해 줬습니다.

남 목사는 고린도전서 2장에서 나오는 '지혜'라는 단어에 '능력'을 대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 편, 아볼로 편, 베드로 편, 그리스도 편이라고 경쟁하듯 다투는 고린도교회의 모습은, 세상의 지혜와 세상의 능력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교회에 필요하고 성도들이 지녀야 할 능력은 그런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십자가 능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말로만 "하나다, 형제자매다. 가족이다" 하지 말고, 삶과 행동으로 성도의 능력을 드러내자고 했습니다.

예배 말미에 다같이 고백하는 다짐의 선언 내용도 인상적입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문장들인데 사도신경과는 또 다른 모양으로 신앙의 결기를 북돋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을 믿습니다." (인도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실' 모든 일을 믿습니다." (회중)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선물, 성령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인도자)
"우리는 어둠이 아니라 '빛'에 거함을 믿습니다." (회중)
"우리는 사망이 아니라 '생명'에 거함을 믿습니다." (인도자)
"우리는 '의'의 병기로 드려짐을 믿습니다." (회중)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제자'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 것입니다." (다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우리 아래에, 우리 앞에, 뒤에, 옆에,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어.울림 성도 여러분, 말씀 안에 평안히 가십시오. 아멘."

공동 축도로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흩어지지 않습니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둘러앉습니다. 서클 대화 시간입니다. 예배 2부 순서로 서클 대화라니, 신선했습니다. 녹색 '토킹 스틱(Talking Stick)'을 돌려 가면서 각자 오늘 몸과 마음의 상태는 어떤지, 한 주를 시작하면서 무엇을 기대하고 걱정하는지 이야기 나눴습니다.

서클 대화의 규칙 중 하나가 대화 내용을 비밀로 하는 것이라, 이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들 진솔하고 편안하게 일상의 기쁨과 고충을 풀어놓고 경청하는 분위기여서, 저도 처음 보는 분들에게 요 며칠 힘들었던 속내를 열어 보일 수 있었습니다.

어.울림교회는 예배 후 2부 순서로 서클 대화 시간을 갖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어.울림교회는 예배 후 2부 순서로 서클 대화 시간을 갖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작은 도서관 '언덕위광장'

어.울림교회 예배당은 사방이 책으로 가득합니다. 이 공간의 또 다른 이름은 '언덕위광장' 작은 도서관이거든요. 어.울림교회는 2015년 개척 당시부터 도서관을 운영했습니다. 주중에 빈 예배당 공간을 지역 주민을 위해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작은 도서관으로 꾸몄다고 합니다. 이웃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을 일구기 위해, 이 공간에서 여러 독서 모임과 다양한 강좌를 열었습니다. 도서관은 때로는 지역 주민들이 찾아와 수다를 떨고 마음을 여는 공간이 됐고, 때로는 배움을 나누고 시민 의식을 고양하는 공론장이 됐으며, 고된 일상에 지친 아빠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부천시 마을 공동체 사업에 공모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남 목사가 소개해 준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매년 12월과 1월에 진행하는 '가족회의 하는 날'이었습니다. 가족회의를 하려는 가족에게 회의 매뉴얼을 알려 주고, 도서관 공간을 통째로 빌려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요즘은 기타와 하모니카 교습 강좌, 책 쓰기 강좌 등을 진행 중입니다. '언덕위광장'은 그렇게 지역 청소년들과 주민들의 사랑방이 됐습니다. 도서관 운영비는 지금껏 어.울림교회 재정에서 전액 지원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 '세사람'

도서관 문을 열고 나오면 오른쪽에 '문화 공간 더 써드'라고 이름 붙인 공간이 있습니다. 어.울림교회 어린이들이 어린이 설교가 끝나면 이동해 별도의 시간을 갖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주중에 이곳에서는 주로 회복적 정의 운동 단체 '세사람'의 활동이 이뤄집니다. 회복정 정의 운동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회복적 서클 등 대화 모임을 진행하는 공간입니다. 회복적 정의 전문가 양성 과정 교육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어.울림교회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 '언덕위광장' 옆에는 문화 공간 더 써드가 있습니다.  주로 '세사람'이라는 회복적 정의 운동 단체의 활동이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어.울림교회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 '언덕위광장' 옆에는 문화 공간 더 써드가 있습니다. 주로 '세사람'이라는 회복적 정의 운동 단체의 활동이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어.울림교회가 예배 후 2부 순서에서 서클 대화를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남태일 목사는 2017년부터 회복적 정의 활동을 해 왔습니다. 현재 '세사람'의 공동대표이고, 회복적 정의 전문가 1급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다니던 학교 학부모회 활동을 하다가 회복적 정의 강의를 듣고 난 후 '오! 이거 완전 하나님나라 가치와 딱 맞는데!'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아, 혹시 회복적 정의에 대해 아직 들어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세사람'이 단체 브로슈어에 소개해 놓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공동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는 방식을 넘어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에 초점을 맞춥니다. 상호 존중과 자발적 책임을 통해 갈등 당사자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공동체가 돕는 모든 과정을 회복적 정의라고 합니다."

남 목사는 회복적 정의에 관심을 가진 동네 엄마들과 2017년에 '피스빌딩센터'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두빛나래평화학교'라는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안에서 다양한 회복적 정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언제 어떤 어려움이 찾아올지 예상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피스빌딩센터 안에서도 회원들 간 관계에 어려움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 여파는 피스빌딩센터뿐 아니라 도서관 운영에까지 미쳤고, 남태일 목사가 입은 마음의 상처도 꽤 컸던 것 같습니다. 남 목사는 5년 여간 신나게 운영해 온 도서관을 접고, 작은 사무실이나 하나 얻을 생각을 했습니다(원래 '언덕위광장'은 현재 위치가 아니라, 윗마을 부안초등학교 후문 앞에 있었습니다). 예배 장소는 주일에 대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공간 이전을 준비하다가 뜻하지 않는 기부자를 만납니다.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 권사님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해 어.울림교회를 위해 고액 헌금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친 것입니다. 남 목사는 어리둥절한 마음을 부여잡고 교우들과 이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어.울림교회는 새롭게 도서관을 운영할 공간을 찾아 나섭니다.

이후로 이 글에 다 담아내기에는 너무 긴, 슬프고도 감동적인 우여곡절을 거쳐 '언덕위광장'은 더 넓고 깨끗한 현재 공간에 새로운 둥지를 텄습니다. 피스빌딩센터는 2020년 말 회원 총회를 거쳐 해산했습니다. 남 목사는 뜻이 맞는 몇몇 사람과 회복적 정의 운동을 새롭게 펼쳐 나가기 위해, 비영리단체 '세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화실이었던 도서관 옆 공간을 '세사람'의 활동 근거지로 삼기 위해 추가로 임대했습니다. 돈은 없었지만, 뜻이 있는 데 길이 있다고 많은 분이 보증금 마련을 위한 모금에 참여해 줬습니다. 제가 예배에 참석한 날 광고 시간에는 '세사람'과 '언덕위광장'이 소사중학교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앞으로 소사중학교 안에서 평화교육과 갈등 조정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게 된다고 합니다.

어.울림교회가 2015년부터 운영해 온 '언덕위광장'은 2020년 6월 부천 부안초등학교 후문 앞에서 현재 위치인 괴안동 양지마을로 이전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어.울림교회가 2015년부터 운영해 온 '언덕위광장'은 2020년 6월 부천 부안초등학교 후문 앞에서 현재 위치인 괴안동 양지마을로 이전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지역사회 공공재 되어
공적 역할 감당해 온 8년

남태일 목사는 가족과 청년 2명을 포함해 6명이 개척을 시작하면서 3년 동안 해 보고 어려우면 미련 없이 교회를 접을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9년 차를 보내고 있는 어.울림교회는 현재 아이들 포함해 교인이 40명 남짓입니다. 작은 교회지만 그동안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결코 적지 않은 공적 역할을 감당해 온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공간을 이전할 때 어.울림교회를 다니지도 않는 동네 엄마들이 마음을 모아서 200만 원이나 후원했겠지요. 교회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역 안에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동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독서 문화 진흥 유공 포상 수여자로 남태일 목사를 추천하겠다며 공적서를 써 달라고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남 목사는 "추천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현 정권이 주는 상은 받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어.울림교회 이름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어! 하고 공명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는 언약 공동체.' 이름 뜻에 걸맞게 교회가 지역 주민을 위한 공공재가 되고 담임목사가 지역에서 공적 역할을 감당해 온 것을 교인들은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울림교회를 다녀온 후 교인들에게 서면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답변 내용에 그런 마음이 많이 표현돼 있었습니다. 한 교우는 "기성 교회가 맘몬 앞에 무너져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는데,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 제공하는 게 너무 뿌듯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남태일 관장과 상담해 보라"라는 얘기를 들어 흐뭇했다는 다른 교우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다른 교우는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교회 안에서만 예배했다면 어.울림교회에 와서는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하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설문지에 어느 교우가 교회에 바라는 점으로 적은 내용을 읽을 때는 마음이 좀 뭉클해졌습니다.

"모두들 하는 일이 잘되고 성도 수도 늘어 목사님이 자비량으로 사역하지 않고, 교회가 사례금을 줄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하시려는 사역 마음껏 펼치고, 우리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면 좋겠어요."

네. 교회가 이런 일들을 해 올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남태일 목사의 헌신이었습니다. 남 목사는 지금껏 거의 자비량으로 목회해 왔습니다. 그는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부천 학원가에서 잘 나가던 강사였습니다. 부교역자 생활을 할 때도, 교회를 개척한 후에도, 부업으로 학원 강사 일을 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그가 두려움 없이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2017년 2월에 학원 강사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후 용접 기술을 배우고, 방수 공사 현장을 다니며 주 2~3일은 노동 현장에 나가 생활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작은 교회의 빤한 재정이 자신의 급여가 아닌 지역사회를 섬기는 데 쓰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올해부터는 회복적 정의 활동에 주력하고자 노동 현장에 나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남태일 목사는 매 주일 성도들과 예배하며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방향을 확인 시간이 가장 기쁘다고 말합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남태일 목사는 매 주일 성도들과 예배하며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방향을 확인 시간이 가장 기쁘다고 말합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나그네 된 하나님 백성들이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개척교회 담임목사, 도서관 관장, 회복적 정의 활동가, 육체 노동자…. 이렇게 바쁘고 고단한 삶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지나온 그의 목회 여정에서 동력이 된 게 무엇인지 궁금해 물었습니다. 목회하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냐고요.

"매 주일 성도들과 만나 예배하면서 일주일간 힘들었던 삶을 서로 위로하고 한 주 또 잘 살아 내자고 격려할 때죠. 저는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단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한 강도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그의 삶에서 방향이 바뀌었다는 얘기잖아요. 우리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 살아갈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 삶의 에너지가 그 방향으로 쓰이고 있는가. 일주일간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것 같더라도 그 방향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게 될 때 참 기뻐요."

교우들을 진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읽혔습니다.

그동안 어.울림교회는 주일예배 외 교회 내부적으로 모이는 활동은 많지 않은 편이었는데, 요즘 분위기가 좀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몇 달 전에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게 아쉽다는 의견이 나와서 수요 독서 모임을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침에 온라인으로 만나 말씀 묵상을 나누자는 제안이 들어와서 투표 중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남 목사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저야 뭐, 교우들이 하자고 하면 하는 거죠"라고 하면서도 교회 공동체의 구심력이 강화되는 분위기를 반기는 듯했습니다.

교회가 더 좋은 공간으로 이전한 뒤 도서관 운영도 안정돼 가고, 회복적 정의 활동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어.울림교회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어떤 상을 그려 놓고 있지 않아요. 저와 우리 교우들이 그저 지금 모습에서 변질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어떻게 살아가는 게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요. 나희덕 시인의 시 '산속에서'를 보면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내용이 나와요. 길을 걷는 나그네는 그저 멀리 빛이 있다는 것만으로 힘을 얻는다는 거예요. 그 빛이 크고 밝지 않더라도 말이죠. 저는 우리 교회 규모가 더 커지거나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아, 저기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열심히 고민하는 교회가 있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 하나 남길 수 있다면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그런 질문 가지고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남 목사는 "어.울림교회가 영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그저 자기보다 위로 10년, 아래로 15년 정도 차이 나는 사람들과 고민하고 분투하는 목사로 살다가 그들과 같이 지구 별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세대 목회는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 두고서 말입니다.

돌아오면서 그의 말이 현실에 뿌리 내린 작은 교회 목회자의 나그네 영성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남 목사가 소개해 준 나희덕 시인의 시를 찾아 읽었습니다. 교회가 꼭 성장하고 열매 맺어 다음 세대까지 존속하지 않더라도, 오늘 어둠이 짙은 시대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향해 한 길 걷는 나그네들이 계속 걸을 수 있게 하는 빛이 되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소명을 감당하는 것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비) 중에서

"어.울림교회가 영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남태일 목사의 말에서 작은 교회 목회자의 경쾌한 나그네 영성을 느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어.울림교회가 영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남태일 목사의 말에서 작은 교회 목회자의 경쾌한 나그네 영성을 느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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