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9월 17일, 성령강림 후 열여섯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 (클릭)
시편 114 / 출애굽기 14:19-31 / 로마서 14:1-12 / 마태복음 18:21-35

히어포드 대성당의 세계 지도 중 홍해 확대 부분. 사진 출처 asor.org

놓여진 길을 꾸역꾸역 걷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지요. 뒤돌아볼 여지도 없이, 두리번거려도 결국 걸어야 할 길은 그저 눈앞에만 펼쳐져 있습니다. 아득한 길의 끝을 알 수 없으니, 끝나는 시간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아는 것은 그저 걸어야만 한다는 것, 그것만 알고 걷는 길은 두렵습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를 때면, 떠나온 자신을 꾸짖으며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소용없음을 깨닫고 터덜터덜 걸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지요. 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시절이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이기도 하겠지요. 때로는 각자의 직업과 공부 안에서 경험하기도 하고요. 운동을 배우거나 아이를 키우는 것과 우정을 나누는 일, 그리고 신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모두 겪습니다. 

연주자인 저는 음악을 완성해 가는 과정, 어려운 악보를 읽는 데에서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바흐의 치밀한 푸가의 악보를 처음 만나는 시간에는, 천천히 악보에 적혀 있는 길을 따라 손가락 번호를 적으며 따라가 봅니다. 오른손 먼저 가는 길을 왼손이 더듬더듬 따라오며 어떤 관계가 형성되는데, 그것은 어떤 공간이 되어 걷는 길의 공기가 느껴지게 하죠. 뻗어 나가는 악보의 줄기에 따라 길을 차츰차츰 걷다 보면 안개 속인 듯, 어둔 밤인 듯 이 길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호합니다. 앞에 나왔던 음형이 다시 반복되는 일에 반가움을 느끼고, 반복이 주는 안정감에 머물렀다가 예상을 비트는 불안한 전개를 맞이하기도 하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 봅니다. 악보를 읽고 난 후, 표현의 단계로 넘어가는 연습에 당도해도, 이 걷는 시간은 여전히 아득합니다. 호흡하는 곳을 찾고, 강조할 곳을 찾으며 이 곡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이야기에 닿기 위하여 고군분투합니다. 그렇게 작곡자의 마음을 만나는 길은 길고도 험합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걸어 보는 거지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온 '연습하는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제게 남아 있기에 그 마음을 믿고 걸어 보는 겁니다. 무수히 반복하면서, 무수히 실수하면서, 무수히 헤매면서도요. 안타까운 것은 그것들 대부분은 혼자만 겪는 고독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홍해를 건너다'. 사진 출처 chagallpaintings.com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홍해를 건너다'. 사진 출처 chagallpaintings.com
물음에 대답하며 걷는 길

모세에게 이끌린 이스라엘 사람들은 430년 동안 이집트 종으로서의 삶을 뒤로 하고 홍해 앞에 섰습니다. 생애 전부를 일구며 살았던 터전으로부터 그 모든 것을 뿌리째 솎아 내어 길을 나선 것은, 진짜 뿌리가 내려져야 할 땅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홉 번의 재앙을 통해 그들의 하나님인 여호와의 존재를 보았고, 마침내 어린양의 피를 통해 구원을 경험한 유월절의 밤을 맞으며 이집트로부터 나와 가나안을 향합니다. 광야를 지나 낯선 땅바닥 위에서 잠을 청하고, 다시 떠나는 길, 요셉의 유골도 함께합니다. 유골은 단지 죽은 자가 남긴 흔적뿐이 아니었지요.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어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까지의 서사가 그들의 걷는 길목마다 말을 걸었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당연한 질문, '나를 이끄는 존재'에 대한 처절한 질문들 말입니다. 그건 이미 모세가 떨기나무 앞에서 경험한 시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야곱이 새벽에 어떤 사람과 씨름하던 시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삭이 모리아산을 향해 걷던 시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여호와가 부르신 곳으로 걷던 길의 시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걷는 길, 노래하며 걷는 길

그러니 홍해는 그들에게 닥친 미래를 향하는 길에 불과합니다.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처음 보는 알 수 없는 무서운 길입니다. 두려운 길을 걷는 그들 뒤에는, '그들의 과거'가 말과 병거들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향해 일제히 추격합니다. 과거는 길을 걷는 이의 속도를 늦추지요. 과거는 걷는 이의 어깨를 열어젖히며, 진정 가는 게 맞느냐고 묻지요. 과거는 또 묻습니다. 과연 그 길이 옳은 것이냐고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찰나는, 멈춘 사람들에게만 교묘히 찾아오는 강력한 징벌입니다. 그들의 원성은 극에 달하게 되지요. 우리를 이끌어 낸 것이 겨우 여기서 죽게 하기 위해서였느냐,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게 그보다 낫지 않느냐며 부르짖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 있는 모세를 향해 여호와는 대답하십니다. "부르짖지 말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출 14:15)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야 할 곳은 대지가 아니고 바다네요. 모세의 손은 철썩이는 바다의 물들을 밤새도록 동풍에 이끌려 물러가게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걷습니다. 두려워하며, 서로를 의지한 채. 의심하면서도 이집트를 떠나온 처음의 나를 데리고 그저 걸어갑니다.

'짙은 밤안개 속 혼자 걷는 듯 그림자조차 내 곁에 없네. 이따금 어둑서니 찾아보지만 밤안개 속 달빛조차 흐리네.'

언제 덮어도 이상하지 않을, 벽처럼 서 있는 그들 좌우의 물 사이를 걸으며 어쩌면 그들은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무서우면 노래를 부르니까요.  내 손아귀에 두려움을 이길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에는 우리는 노래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노래를 내뱉기 위해 숨을 들이키고, 떨리는 목소리가 내 귀를 다시 진동하는 사이, 심장은 전보다 진정을 찾고 마음은 전보다 안정을 데려오니까요.

'아직도 깊은 밤 꽃은 없지만 나는 여전히 이 길을 걷네. 아득한 길 위에서 부르는 노래 그대가 나의 의미 되어 주오.'

걷다 보면 알게 되는 길
패리 알딘(Fahri Aldin), '바벨론 유배'. 사진 출처 aquarianminyan.org
패리 알딘(Fahri Aldin), '바벨론 유배'. 사진 출처 aquarianminyan.org

오늘 함께 들어 볼 경건한 청음은 김혜령이 2020년 발표한 '아몬드꽃의 노래' 앨범에 수록된 '걷다 보면' 입니다. 작곡가 김혜령은 예레미야 29장의 바벨론 포로기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묵상하며 작곡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절망의 시간을 보내는 포로기의 백성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그 시기에 자신들의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출애굽 조상들의 신앙과 신학을 재정립하며,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하지요. 아득한 고통의 시간을 살아 내는 그들에게 예레미야는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열매를 먹고, 자녀를 낳으며 일상의 삶을 꿋꿋이 살아갈 것을 당부하며 편지합니다(렘 29:5-6). 그저 주어진 삶과 길을 곧바로 걸으라는 편지는, 뒤에도 옆에도 꽉 막힌 홍해의 길을 그저 걸으라는 여호와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포로기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을 길 위에서 보고 있고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길을 걷는 우리가 쳐다보고 있는 하나님도 동일하겠지요. 

이 곡을 부르는 진소영의 음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온전히 걷는 자의 담담함이 떨림과 함께 담겨 있습니다. 막연한 현실의 벽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초연함이 단촐한 피아노와 노래만으로 전개하다가, 희망을 잃지 않고 부르는 노래가 새벽 종소리가 되어 울리길 소망하는 대목에서 굵고 강인한 첼로의 선율이 자신감 있게 선율을 타고 등장합니다. 용기를 듬뿍 담은 첼로의 대선율이 마치 여호와의 눈빛인 듯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벽의 문을 열리라는 언약의 미래를 노래하지요. 4분 28초경 새벽의 문이 열리기 전 피아노의 네 번에 걸친 상승하는 아르페지오는 다가올 미래를 향하여 서두를 것 없이, 그러나 반드시 열릴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그것이 비록 내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홍해를 걷는 이스라엘의 자손들,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의 사람들, 그리고 저마다 주어진 아득한 길을 걷는 경건한 청음의 독자님들과 함께 손잡고 걸으며 듣고 싶습니다. 김혜령의 '걷다 보면'을 진소영의 목소리, 김혜령의 피아노, 박혜림의 첼로로 듣습니다.

짙은 밤안개 속
혼자 걷는 듯
그림자조차 내 곁에 없네
이따금 어둑서니
찾아보지만
밤안개 속 달빛조차 흐리네

달빛 따라 걷다 보면
혹시라도 새벽을 보려나
어둔 길도 또 걷다 보면
가끔 꽃이라도 만나려나

그래도 저 달빛과 새벽의 달빛이
나를 둘러싼 공간과 새벽의 공간이
하나라면 하나라면
비록 새벽 어스름 내 것 아녀도
밤안개 친구 삼아 살아 보려나

아직도 깊은 밤
꽃은 없지만
나는 여전히 이 길을 걷네
아득한 길 위에서
부르는 노래
그대가 나의 의미 되어 주오

달빛 따라 걷다 보면
혹시라도 그대 만나려나
어둔 길도 또 걷다 보면
새벽 어귀라도 만나려나

그래도 이 밤이 지나고 새벽 오면
내가 부르던 노래 새벽 종소리 되어
언덕 위에 울리리라
언덕 위에 울리리라
언덕 위에 울리리라

비록 새벽 어스름 내 것 아녀도
내 노래 새벽의 문을 열게 되리

김혜령 1집 '아몬드꽃의 노래-고통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중 3번 트랙 '걷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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