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9월 3일, 성령강림 후 열넷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05:1-6, 23-26, 45b / 출애굽기 3:1-15 / 로마서 12:9-21 / 마태복음 16:21-28

그는 떨기나무 앞에 신을 벗은 채 서 있습니다. 시간은 얼어붙었고 구름도 멈추었습니다. 아득하게 먼 곳에서 들리었던 젖은 바람의 소리도 잦아들었습니다. 그의 눈은 한곳을 응시하죠. 갈색의 눈동자 안에는 타오르는 불꽃이 쉬지 않습니다. 떨기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형형한 불이 타오릅니다. 불꽃의 형상은 일정하지 않아요. 춤추며 타오르는 불의 형상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다 이내 감추어 버리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반복합니다. 무한하게 생성되는 불의 탄생은 곧이어 불의 죽음을 데려옵니다. 무한함은 소생과 소멸을 거듭 반복하는 가운데 존재하니, 미동 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그것은 어떤 충만함을 만들어 시간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불이 닿는 곳에는 마땅히 그 자취가 변하기 마련이나, 사그라지는 곳에 재가 남지 않고 연기도 홀연합니다. 그렇게 불의 광경은 무언가를 태우지 않고(출3:3) 거룩한 곳에서 펼쳐져 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음성이 천둥처럼 호렙의 산을 커다랗게 흔들며 들립니다.

요시 로젠스타인(Yossi Rosenstein),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Moses and the Burning Bush Ⅰ)'. 사진 출처 singulart.com
요시 로젠스타인(Yossi Rosenstein),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Moses and the Burning Bush Ⅰ)'. 사진 출처 singulart.com
반영과 공명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선조들의 익숙한 이름을 듣자, 모세 내면의 눈이 번쩍 광채를 냅니다. 선조들의 이름에 깊은 곳 어디선가 반향이 일어나죠. 자기 자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흔들리는 요람의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정체성은 내면의 거울 안팎에서 요동을 겪어 왔습니다. 히브리인의 아기로(출2:6) 발견되어 애굽 사람으로(출2:19) 보였고, 미디안의 사람들 속에서(출2:21) 살았으니 말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아무리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다시 고단한 삶을 개척하여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잊으며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내면 속 쪼개진 자아는 서로를 생경하게 바라보며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으며, 무한히 생성되는 반영이 마주한 곳, 그곳은 굴절과 왜곡이 더욱 더 모세 자신을 파악하기 까다롭게 만들었습니다. 얼굴을 가리는 그의 행동은(출3:6), 어쩌면 그의 내면 속 깨진 자아의 거울들을 가지고 절대자 앞에 마주 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대개 두려움의 근원은 '자신을 알 수 없음'에서 기인하니까요.

하지만 모세를 향한 여호와의 시선과 모세 자신의 시선은 매우 다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한 불꽃으로 모세를 조명하고 있음을 알려 주죠. 과거에 그의 선조들인 아브라함·이삭·야곱과 함께했던 시간과 더불어 앞으로 애굽으로부터 건져 내어 젖과 꿀의 땅, 가나안으로 데리고 갈 미래의 시간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로부터 했던 오래된 약속,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는 말씀을 하시며 현재의 시간에도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음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마치 꺼지지 않은 떨기나무의 불꽃이 시간을 얼어붙게 만들어 영원을 바라보게 만들었듯이 말입니다.  

요람 라난(Yoram Raanan),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서 있는 모세(Moses Stands at the Burning Bush)'. 사진 출처 chabad.org
요람 라난(Yoram Raanan),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서 있는 모세(Moses Stands at the Burning Bush)'. 사진 출처 chabad.org
들으시는 하나님 보시는 하나님

스스로 존재하는 자(출3:14)는 피조물과 관계를 맺는 사이에 계십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았다고 말씀하시지요(출3:9). 관계는 오래된 기억을 재료 삼아 층층이 쌓아 갑니다. 아브라함이 아브람이었을 시절, 여호와는 해질녘 그에게 말씀하시죠.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창15:12).'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출2:24-25).' 

이스라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들으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에 응답하시기로 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모세를 미디안의 광야에서 부르시게 된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와는 떨기나무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묻고 대답합니다. 깨어진 자아의 거울 위로 여호와의 빛이 조명되는 순간이고, 그로 인해 모세는 자신을 발견할 뿐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이의 귀 있으심과 눈 있으심을 철저하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들으시며 보시는 하나님은 이제 모세에게 보내시는 하나님이 되시지요. 하나님의 빛을 받은 반사체는 그의 빛을 반사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깊은 빛이 내리쬐는 곳은 어디일까요? 

슈스터+모슬리(SHUSTER+MOSELEY), '내면의 시네마 Cinema of the Inner Eye'. 사진 출처 shustermoseley.com
슈스터+모슬리(SHUSTER+MOSELEY), '내면의 시네마 Cinema of the Inner Eye'. 사진 출처 shustermoseley.com
거울 속의 거울

극도로 섬세한 빛이 스며들었지만 그 빛은 마주 본 거울로 인해 소멸되지 않고 반사됩니다. 그 빛은 절제되어 가느다랗고 백색의 빛을 띄고 반사체에 부딪칩니다. 소리는 아우성이 되어 마주 본 거울을 향해 직진하고 부딪치고 반사합니다. 과연 그 끝은 어디까지 일까요? 백색의 빛이 향하는 곳을 귀로 따라가다 보면, 시간도 빛의 향연처럼 무한한 곳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들을 경건한 청음은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 '거울 속의 거울 Spiegel im Spiegel'입니다. 이 곡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2중주를 위해 작곡한 것인데,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Vladimir Spivakov)의 의뢰를 받아 만들게 됩니다.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는 최소한의 음악적 소재를 가지고 정연한 질서 위에 음악을 작곡합니다. 피아노의 섬세하고 단아한 3화음이 반복되는 가운데, 바이올린의 절제된 현의 소리는 듣는 이의 귀를 묘원하게 이끕니다. 그리고 저 근원의 빛이 울리듯 피아노의 저음부에서 들려오는 깊은 종소리 같은 음은 사라지지 않는 오래된 염원처럼 미래를 향해 울리게 되지요.

이제 우리도 우리의 신을 벗고 떨기나무 앞으로 다가가 사라지지 않는 불꽃을 마주해 볼 차례입니다. 거울 속에 거울의 빛이 영원하듯, 오래된 미래를 향해 반사되는 언약의 빛을 들어 보시지요. 피아니스트 길람 벨럼(Guillaume Bellom)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푸숑 (Renaud Capuçon)의 연주 버전과, 피아노와 첼로 버전은 허버트 슈츠(Herbert Schuch)와 레온하르트 로체크(Leonhard Roczek)의 연주로 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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