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8월 27일, 성령강림 후 열셋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24 / 출애굽기 1:8-2:10 / 로마서 12:1-8 / 마태복음 16:13-20

작자 미상, 강에서 발견된 모세(Moses Found in the River). 3세기 시리아 두라-에우로포스 회당에서 발견. 국립다마스커스박물관 소장 중.
작자 미상, 강에서 발견된 모세(Moses Found in the River). 3세기 시리아 두라-에우로포스 회당에서 발견. 국립다마스커스박물관 소장 중.

흔들흔들 아기 모세가 담긴 갈대 상자가 나일강 위에서 떠내려갑니다. 이 아기는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지났으니 낮과 밤의 구분도 생겼고 제법 엄마와 눈도 마주치며 웃을 수도 있지요. 얼마 전 뒤집기에 성공해서 가족들은 기뻐했더랬습니다. 아기는 뒹굴뒹굴 이리저리 탐색하고 자기 발도 쥐어 만져 볼 수도 있을 정도로 많이 컸어요. 엄마는 아기에게 젖을 듬뿍 먹이고 곤히 자는 아기를 담뿍 안아 갈대 상자에 넣었습니다. 엄마 내음이 짙게 배어 있는 옷가지로 아기를 덮고, 손에는 익숙한 장난감 하나도 쥐어 줬지요. 아기의 눈썹 위에 평화가 내려앉았습니다. 한편 남자 아기들의 무덤이 된 나일강은 오늘도 파라오의 무자비한 폭정에 어미들의 울음소리가 들끓어 댔습니다. 갈대가 무성한 강물 위에 아기를 담은 상자는 넘실대는 물결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죠. 상자가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쫓다가 엄마는 그저 주저앉아 넋을 잃고 가슴을 치는 것밖에 도리가 없어요.

비극과 순응 사이

가혹한 학대와 고된 노동으로 노예의 삶을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파라오의 제국에 속해 그들의 정체성은 모호하게 살아가죠. 성서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렸다고 서술하지만(출1:8) 요셉을 알거나 모르거나 이스라엘 사람들 또한 전승된 옛 조상들의 이야기는 전설 속 먼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비극적인 노예의 삶이지만, 그것은 가족이 먹고사는 것을 보장받는 일이고, 주어진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도는 달리 없기에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불평하면서도 기여하며, 분노하면서도 협력하며. 서민의 삶은 무력하고 모순적이지요. 불어나는 인구에 위협을 느낀 애굽의 왕은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수많은 아기의 죽음은 민족 전체를 비극이자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제국의 질서에 저항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파라오의 세계 아래 있는 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 중 '지혜 있는 반역자들'이 등장하죠.

균열을 내는 자들

그들은 다름 아닌 산파들과 파라오의 딸, 그리고 모세의 엄마와 누이입니다. 여인들의 출산을 돕는 산파는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고(출1:21) 지혜로웠지요.1) 생명이 잉태되는 과정을 두 손으로 받는 이 여인들은 생명만큼 죽음의 무게를 알터, 그들은 생명을 주시는 여호와를 거역하는 행위를 할 수 없어, 왕의 뜻을 거스릅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의 아기들은 다시 나일강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이제는 왕의 뜻을 산파가 아닌 백성들이 이어받아 서로를 고발하고 아이들을 몰살시키는 데 동참하게 되는 참상이 벌어집니다(출1:22). 그런 가운데 모세는 나일강에서 건져 올려지게 됩니다. 모세의 엄마, 요게벳은 부디 엄마 뱃속 가득 찬 양수 안에서 유유히 생명을 만끽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눈물을 바른 갈대 상자를 띄웠지요. 가여운 생명은 휘청대며 떠내려가다 어떤 한 손에 의해 건져집니다. 파라오의 딸은 히브리인의 아기인 줄 알면서도 그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아들로 삼아 키우기로 하죠. 그것을 지켜본 영특한 모세의 누이는 요게벳을 유모로 대령하고요. 아기 모세의 생명은 이렇듯 잇따른 여인들의 손길에 구원을 얻습니다.

아이는 잠들고

고요히 흔들리는 요람 속 모세는 바로의 궁정에서 잠을 자요. 건져진 줄도 모른 채, 죽을 뻔한 것도 모른 채. 생명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갔다 온 줄을 알 턱이 없는 아이는 그저 요람의 느긋한 박자가 편합니다. 나일강은 어제와 같이 죽음으로 물들고 있지만, 그곳을 비껴 와 가까스로 다다른 이곳에 엄마의 품은 여전합니다. 잠든 아이를 고운 눈길로 바라보는 중에 듣는 이 곡은, 로버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어린이 정경 Kinderszenen, Op. 15> 중 열두 번째 노래, '아이는 잠들고 Kind im Einschlummern'입니다.

'아이는 잠들고'의 도입부.

2/4박자의 느긋한 박자로 시작되는 이 곡은 마단조의 차분하고 약간은 침울함 가운데 시작됩니다. 주제 선율이 테너와 주고받으며 응답하듯이 데칼코마니를 이루어 흔들흔들 요람의 잠잠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곧이어 마단조는 딸림화음을 밟고 마장조로 화사한 전개로 이어 가지요.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듯, 애굽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의 정체성이 흔들리 듯, 유모인 진짜 엄마의 품과 이제 막 엄마가 된 낯선 엄마의 품 사이에서 흔들흔들 움직이는 듯합니다. 이윽고 원래의 조성인 마단조로 돌아오는데, 결국은 안전한 종지로 도달하지 못하고 불완전하게 여운을 남기며 다소 불안하게 곡을 맺습니다. 마치 할 말이 더 있는 듯 가시지 않은 정취만을 남기고 음악은 끝납니다.

왼손, 오른손의 느긋한 16분음표가 주고받는 선율 사이사이에는 비화성음(화성에 속하지 않는 음, Non harmonic tone)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협화음에 균열을 내면서 동시에 다음 화성으로 견인을 하는 중의적 역할을 해냅니다. 불안정한 찰나는 화음에 대한 일탈이고 반역으로 보이지만, 경과음(passing tone)이나 이웃음(neighboring tone)은 다음의 서사로 가고 싶게 만드는 충만한 암시를 지닌 존재로 성실한 자기 몫을 수행합니다. 산파들과 누이가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던 것이 오히려 파라오의 명령 질서에 균열을 내며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내듯이 말입니다.

오늘의 경건한 청음은 아기 모세의 요람 옆에서 듣습니다. 갈대 상자가 도착한 곳이 피의 정점이었던 파라오의 왕실이라는 역설의 불안을 가지고, 그리고 살아남은 아기의 천진난만한 고요를 응시하며 함께 듣습니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 op.15> 중 열두 번째 곡, '아이는 잠들고 Kind im Einschlummern'를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의 연주 그리고 랑랑(Lang Lang)의 연주, 두 가지 버전으로 들어 보겠습니다. 

 

1)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출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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