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다, 떨어지다, 붙잡다> / 헨리 나우웬, 캐럴린 휘트니-브라운 지음 / 윤종석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 380쪽 / 1만 9500원
<날다, 떨어지다, 붙잡다> / 헨리 나우웬, 캐럴린 휘트니-브라운 지음 / 윤종석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 380쪽 / 1만 9500원

[뉴스앤조이-김은석 간사]현대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영성가 중 한 명인 헨리 나우웬이 생의 마지막 5년간 공중그네 곡예단에 빠져 있었다니! 그는 1991년 4월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별 생각 없이 관람하러 들어간 독일의 한 서커스장에서 '로드레이 공중그네 곡예단'의 10분짜리 공연을 통해 "훈련과 자유, 다양성과 조화, 모험과 안전, 개성과 공동체, 무엇보다도 나는 동작과 잡는 동작이 어우러진 세계”를 만나 전율한다(30쪽).

예순을 앞둔 나이에도 아이처럼 순수했던 이 영성가는 넘치는 '팬심'을 주체하지 못해 그들을 쫓아다닌다. 곡예단원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그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우정은 헨리 나우웬이 단원들의 트레일러에 들어가 "기분 좋게 퍼더버리고 앉아 다정하게 수다를 떨" 만큼 깊어진다(142쪽). 헨리는 5년 넘게 캐나다와 독일을 오가며 그들의 공중그네 공연을 관람하고, 심지어 캠핑카를 빌려 몇 주간 순회 공연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서로에게 최선의 모습을 기대하고, 신속히 용서하며, 자신을 믿었으며, 다시 시도하도록 서로 충분히 지지해 주는 곡예단의 모습에서 헨리는 공동체의 예술성을 목격했다(317쪽). 그는 "로드레이 공중그네 곡예단을 입에 올릴 때마다 눈빛이 반짝이면서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지곤"(321쪽) 했으며, 자신이 공중그네와 사랑에 빠진 것은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것과 서로 관련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198쪽). 이런 고백도 했다. 자신에게 대학이 머리였고 라르쉬가 마음이었다면 공중그네는 몸과 상관된다고, 그런데 그 몸이 영적인 이야기를 한다고(250쪽).

곡예단의 공연과 훈련, 협업이 뿜어내는 영적 은유, 그리고 그들과의 우정에서 길어 올린 통찰은 헨리의 창작열에 불을 지폈다.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위해 논픽션 창작 기법을 공부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6년 9월 네덜란드를 방문한 헨리가 심장 질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이야기는 완성되지 못한다. 

미완성 원고를 보관하고 있던 헨리 나우웬 유작 센터는, 라르쉬 공동체 캐나다 지부 데이브레이크에서 헨리 나우웬과 함께 생활했던 작가 캐럴린 휘트니-브라운에게 미간행 원고를 이어받아 "뭔가 창작해" 달라고 청탁한다(12쪽). 캐럴린은 헨리가 네덜란드 한 호텔에서 심장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이송되는 동안 곡예단과 함께한 시간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지난날을 반추한다는 설정을 착안해 책을 완성해 냈다.

헨리가 곡예단을 처음 만난 직후 나눈 구술을 풀어 낸 녹취록, 이후에 집필한 두 장의 글, 곡예단을 따라 순회하면서 쓴 일기장, 기타 논평과 감상, 메모와 일기 등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 절묘하게 재구성한 이 책은, '날고 떨어지며 붙잡는' 공중그네 곡예단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발견한 삶의 기쁨과 자유, 아름다움의 비밀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낸다. 결국 몸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할 영적 진리를 진실하게 찾아나섰던 영성가의 마지막 삶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만날 수 있다. 

"어느 날 단장인 로드레이와 함께 그의 트레일러에 앉아 공중을 나는 것에 대해 대화했다. 그가 말했다. '날아갈 때 나는 잡는 사람을 완전히 믿어야 합니다. 대중은 나를 공중그네의 대스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짜 스타는 나를 잡아 주는 조입니다. 조가 1초의 착오도 없이 제자리에 있다가 그쪽으로 멀리 날아오는 나를 공중에서 잡아야 하지요.'

 

'어떻게 잡습니까?' 내 물음에 로드레이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잡는 사람이 다해야 합니다. 그게 비결입니다. 조에게 날아갈 때 나는 그냥 두 팔과 손을 뻗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가 나를 잡아서 안전하게 반대편 그네 뒤쪽의 가림막 위로 끌어올려 주지요. (중략) 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상대의 손을 자기가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조를 잡아서는 안 되고 조가 나를 잡아야 합니다. 내가 조를 잡으면 조의 팔목이나 내 팔목이 부러질 수 있고, 그러면 우리 둘 다 끝장이지요.' (중략)

 

로드레이가 확신에 차서 그 말을 하는 순간 섬광처럼 내 뇌리를 스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죽는다는 것은 저편에서 우리를 잡아 주실 그분을 믿는 것이다. 죽어 가는 이들을 돌본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잊지 마세요. 당신이 멀리 날아가면 그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을 잡으려 하지 마세요. 그분이 당신을 잡아 주십니다. 그냥 두 팔과 손을 뻗고 믿으세요. 믿으시면 됩니다.'" (제4부 '잡는 사람을 믿어야 한다', 223~224쪽)

"로드레이 곡예단이 보여 준 모험과 신뢰의 포물선이라는 은유는 헨리의 생각에 모든 인생의 모양이기도 하다. 결국 각 개인은 하나님께 속해 있어 그분께로 돌아가지만, 비행은 인간 공동체가 함께 이루어 내는 일이다. (중략) 사람은 은혜를 모르거나 악할 때가 있다. 경솔하거나 무능하거나 두려울 때도 있다. 누구나 실수를 범한다. 헨리는 로드레이가 강조하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단원마다 각 연기를 솔직하게 평가하고 서로를 비평하되, 잘못은 지적하고 잘한 부분은 인정해 준다고 했다. 그러면 눈부신 망토를 두르고 다음 공연에 입장할 때는 원망이나 두려움 없이 자신감과 신뢰만 남는다. (중략) 계속되는 편지에 그는 이런 관점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조운에게 설명하려 했다.
 

'이것은 다 받아 주고 항상 동조해 주는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잘못을 지적할 줄도 아는 사랑입니다. 다만 조건이 없지요! 그러니까 무조건적인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하는 행동에 다 찬성하는 게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와 의견이 다르거나 내게 반대할 때가 있지요.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럴 때도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며, 우리에게도 서로를 그렇게 사랑하라 하십니다.'" (제5부 '비행', 263~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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