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8월 13일, 성령강림 후 열한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05:1-6, 16-22, 45b / 창세기 37:1-4, 12-28 / 로마서 10:5-15 / 마태복음 14:22-33

분명 내 인생인데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철저하게 인생의 주인공에서 저 멀리 밀려난 기분이 들면서, 오히려 '내 인생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관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요. 풍랑 같은 시간은 늘 예기치 못한 때에 들이닥치고, 거센 물결에 철저하게 항복하느라 분주했던 정신은 되레 또렷해지기까지 합니다. 저항은 볼품없고 남은 것은 요란한 정적뿐이지요.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의 처지가 꼭 그렇습니다. 입 안에서는 흙 맛이 느껴지고, 언제 파 놓았는지 모를 축축한 구덩이 속은 바깥보다 서늘하며, 발소리들은 낯설게도 위에서 들려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 말들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형들은 누구와 저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일까요? 흥정이 오고 갈수록 요셉은 자신의 몸과 의지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요셉의 신세는 이렇지 않았지요. 아버지 야곱 앞에서 지난밤 꿈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고, 질투와 시기로 격앙된 형들과 달리 아버지의 태도는 뭔가 절제돼 있었어요. 요셉에게 꾸지람을 주는 말은 있었지만, 그 눈빛은 경청하는 자의 그것이었습니다.1) 본디 눈빛에 담은 것들은 마음속에 차곡히 저장되기 마련이지요. 꿈 이야기를 흥에 겨워 풀어놓는 요셉은 마치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듯했습니다. 꿈꾸는 사람이 보는 세계와 깨어 있는 사람이 만질 수 있는 세계는 확연히 단절돼 있습니다. 두 세계에는 통행할 수 없는 각자의 유니버스가 존재하니, 시간 또한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갑니다. 아마도 그 세계를 읽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꿈을 '꾼 자'와 꿈을 '꿔 봤던' 자 아닐까요?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꿈은 야곱에게 여호와를 만나는 포털과 같은 장소였습니다. 쌍둥이 형 에서에게서 축복과 장자권을 빼앗고 도망하던 시절의 그는 돌을 베개 삼아 누워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까지 아득하게 이어진 계단과, 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던 수많은 천사와, 그 끝에 계신 여호와를 만나지요.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창 28:10-22) 아브라함부터 이어진 신실한 언약이 야곱에게는 '꿈'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그런 그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마 순식간에 '벧엘의 그날'이 소환됐을 것입니다. 지난한 삶을 지탱했던 힘도 꿈으로부터 나왔고, 그 믿음에 힘입어 가나안까지 돌아온 야곱이니, '꿈꾸는 자' 요셉의 명랑한 꿈 이야기는 꿈을 꿔 봤던 야곱으로서는 심상치 않았겠지요. 그 세계를 공유할 수 없는 요셉의 형들은 당연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을 테고요.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 '형들에게 꿈을 설명하는 요셉(Joseph explains his dreams to his brothers)', 바티칸박물관 소장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 '형들에게 꿈을 설명하는 요셉(Joseph explains his dreams to his brothers)', 바티칸박물관 소장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창 37:19)

이 말을 야곱이 읊조렸다면,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감탄하는 말이 됐을 테지만, 형들이 속닥인 이 말 속에는 질투와 빈정거림 그득한 비웃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이 조롱 섞인 말 안에는 형제들이 겪어 온 오랜 관계의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야곱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했던 네 명의 어머니들(레아·라헬·실바·빌하) 사이의 복잡한 구도에서 온 상처는 그 아들들이 고스란히 받아 냈을 것이며, 그들은 저마다 폐허가 된 마음을 지니고 성장기를 보냈을 테니 말입니다. 가슴에 커다란 구덩이 하나씩을 지니고 산 세월은 요셉을 유독 아끼는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이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겠죠. 형들은 요셉만 사라진다면 이 오랜 상처의 시간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가슴에 구덩이 없이 자란 요셉은 이제 빈 구덩이 땅속에 떨어져 있습니다. 채색옷을 입은 채로, 꿈꾸는 채로, 영문도 모른 채로 말이지요. 옥신각신하는 형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한참을 지나 요셉은 구덩이로부터 건져 올려집니다. 은 이십의 몸값을 치르고 채색옷이 벗겨진 채로, 꿈꾸는 자는 이집트에 팔려 가지요. 아무것도 없이 도망쳐 나왔던 야곱처럼, 그 또한 아무것도 없이 낯선 언어가 들리고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관심 없는 낯선 땅으로, 완벽한 이방인이 되어 팔려 가는 신세가 됩니다. '분명 내 인생인데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그때가 요셉에게 찾아온 것이지요. 자기 자신을 장식했던 옷이 벗겨지고 가문에서 떨어져 나와 모든 것을 잃은 요셉이 마지막 벼랑 끝에서 붙잡은 기억은 무엇이었을까요? 꿈은 과연 요셉에게도 삶의 지도가 돼 줄까요?

"맞아요. 아크(Ark)는 당신을 운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당신이 바라지 않던 미래라 해도." - 베아트리스

MMORPG 게임 '로스트아크(Lost Ark)'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베아트리스. 사진 출처 
MMORPG 게임 '로스트아크(Lost Ark)'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베아트리스. 사진 출처 

2019년 출시된 MMORPG 게임 '로스트아크(Lost Ark)'는 다차원적 판타지 세계로, 생명의 별 '아크라이사와' 어둠의 별 '페트라니아'를 둘러싼 세계에 다양한 종족과 문명이 공명하며 '아크(태초의 빛)'라는 힘을 사용해 위협에 맞서 싸워 나가는 세계관 위에서 펼쳐집니다. 오늘의 경건한 청음은 로스트아크 시즌 2의 엔딩곡으로 소향이 부른 'Sweet Dreams, My Dear(예쁜 꿈을 꾸어요, 그대여)'입니다.

이 곡은 게임 내에서 '트리시온(세상의 끝이자 아크의 힘을 개방하는 곳)'을 완전히 개방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엘가시아' 대륙의 엔딩곡이기도 하지만, 이 게임의 초대 디렉터인 금강선이 게임 유저들에게 바치는 선물로서 의미가 큰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의 여정을 설명해 주면서 결국은 우리가 꾸어야 할 꿈, 즉 '신뢰·창조·예지·희망·지혜·헌신·영원(아크에 부여된 이름들)'을 짊어진 자로서 계속 그 꿈을 꾸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을 지닙니다. 이 곡은 빛 바랜 곳에 홀로 있을지라도 꿈꾸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부탁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저 사소했던 기억의 조각조각들이 결국 꿈을 꾸고 날아오르게 한 소중한 힘이었다고 고백해요.

이제 이방인으로서 요셉의 삶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개척해 가는 시간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꿈들을 기억하고 소환하는 시간, 그리고 계속해서 꿈꾸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요셉 자신으로 창조돼 갈 것이고요. 지나간 꿈들 속에 아버지 야곱의 선연한 눈빛이 가득하고, 형제들과의 아프고도 명랑한 시간들이 나란하겠지요. 요셉은 자신이 꿈에서 보았던 해와 달과 열한 별의 의미를 곱씹고, 꿈을 주신 이를 향한 신실한 신뢰를 더욱더 공고히 할 것입니다. 때마다 주시는 꿈에 따라, 꿈을 주시는 이에게 묻는 것을 멈추지 않고, 꿈을 '꾸는 자'를 넘어 꿈을 '해석하는 자'의 지혜를 복으로 얻어 살게 될 것이고요.

꿈을 계속 꾸는 것은 과거로부터 온 시간을 응시하는 것으로 시작해 도달하지 않은 미래를 현재에 품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노래를, 이집트로 끌려 가는 요셉의 옆에서 함께 듣고 싶습니다. '로스트아크' 시즌 2의 엔딩곡 'Sweet Dreams, My Dear'를 소향의 목소리로 한국어 버전, 그리고 영어 버전으로 들어 보겠습니다. 

Sweet Dreams, My Dear
작사 금강선 / 작곡 장여울 / 노래 소향 / 번역 김현지

 

들리나요 저 투명한 선율이,
고통의 조각까지 담은 그 선율
삶은 이따금씩 내일의 온기를 약속하죠
어스름한 해질녘의 찬란함처럼 말이에요

 

그저 지나가듯이 들려왔던

그 속삭임을 기억해요
나는 기억해요 그 콧노래,
우리가 그토록 참았던 눈물들,
내가 잃었던 그 모든 꿈들,
귀한 날들까지도요

 

꿈을 꾸세요 그저 계속 꿈을 꾸세요
빛이 바래 버린 천국에서 홀로 있을지라도
세상을 밝혀 준 당신의 마음은
나를 찬란한 여명의 새벽으로 데려다줘요

 

보이나요 내가 머물러 왔던 자리
당신이 나를 부르길 기다리면서 있었던 그곳
삶은 이따금 빛을 내는 별빛 같아서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해요

 

꿈을 꾸세요 그저 계속 꿈을 꾸세요
의심 때문에 당신의 날개 접지 마세요
소중한 기억의 조각 하나하나가
당신이 날아오를 수 있게 해 줄 거예요
나는 그대 기억에 있을 거예요
달고도 어여쁜 꿈을 그대여 꾸어요



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 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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