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은 교직 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과 교권 보호를 요구하는 전국의 교사 수만 명이 한 달 넘게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서이초 교사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정되는 '악성 민원'에 대한 경험담도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경기도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 교사 두 명이 6개월 사이 잇따라 숨진 사건도 알려지면서, 교사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름 내내 아스팔트를 교실로 삼았습니다." 정성식 교사(전북 이리고현초등학교, 실천교육교사모임)는 익산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시위에 참여했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저녁 8시에 들어오곤 했어요. 그래도 갔다 오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동료 교사들과 같이 외치고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치유가 일어난 거죠. 교사들의 시위는 교실을 살리고자 했던 우리의 몸부림입니다." 24년 경력의 초등학교 교사이자 실천교육교사모임을 만든 정성식 교사는 8월 30일 한국회복적정의협회 회복적정의연구소(이형우 소장)가 마련한 RJA(Restorative Justice Academy)에서, 교육이 가능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정성식 교사는 2015년 실천교육교사모임을 만들고 2020년까지 회장을 맡았다. 줌 화면 갈무리
정성식 교사는 2015년 실천교육교사모임을 만들고 2020년까지 회장을 맡았다. 줌 화면 갈무리

교사들의 현실은 수치로 드러났다. '교직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23년 1월 기준 23.6%에 불과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는 70% 정도를 유지해 왔는데, 이후 심각하게 곤두박질친 것이다(한국교총 설문 조사).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이 학교의 처분에 불복하고 행정심판을 청구한 건수도 2011년까지는 0건이었는데, 2012년 175건을 시작으로 해마다 증가해 코로나19 전인 2019년 최고 893건을 기록했다. '아동 학대 행위자'로 등록된 교사도 2019년 2309명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이 중 기소된 비율은 1.5%(35명)에 불과했다. 2016~2021년 재직 중 사망한 교사는 687명이었는데 이 중 76명(11%)이 자살이었다. 이는 2021년 한국 전체 사망자 중 자살 비율(4.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정성식 교사는 학교가 이렇게 돼 버린 결정적인 이유로,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한 2012년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훈령을 지적했다. 이때부터 가해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게 됐다. 이에 못지않게 2014년 9월 시행된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도 교사들에게는 악재로 작용했다. 아동 학대 혐의로 신고당하는 것 자체가 위협이 되기에 악성 민원이 판을 치게 되는 역효과를 낳은 것이다. 정성식 교사는 "학교에 우호적이었던 학부모도 자기 자녀가 학폭에 연루되면 이성을 잃는 경우를 봐 왔다. 나도 인권위에 고발당해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덤덤하게 대응했지만 조서를 쓰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 내 갈등을 크게 네 가지 △아동 학대 신고 △교권 침해 △학교 폭력 △악성 민원으로 정리했다. 교육부는 교사들과 시민사회의 규탄이 계속되자 대책을 내놨는데, 대부분 교육부의 재량을 벗어난 법 개정의 영역이었다. 또 '중대 교권 침해는 학생부에 기재한다'는 내용은, 2012년 학폭 가해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한 것과 같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정성식 교사는 "교육부는 회심의 카드라고 생각하며 내놨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않는다. 예방 효과를 기대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학교를 소송의 소용돌이에 빠뜨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인권조례'를 운운하는 것은 교사들의 죽음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다. 생각해 보자. 가정에서 자녀들의 인권이 신장되면 나의 인권이 추락하나. 내가 이주호 장관에게도 '교사들의 인권이 신장되면 장관님의 인권은 추락하느냐'고 직접 물었다. 왜 이런 논리를 펴는가. 그리고 조례 개정은 지자체의 권한이다. 자기 권한도 아니면서 학생 인권조례가 문제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21년 <같이 읽자, 교육법!>(에듀니티)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그는, 작금의 학교 상황을 바꾸려면 결국 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학폭 가해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은 상위법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교육부 훈령이기 때문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고, 아동학대처벌법도 현실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어느 법에도 '교권'에 대한 정의가 없어 해석이 천차만별이라며, 교사들의 '시민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이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교사들의 공분을 일으킨 주요 원인은 악성 민원이다. 학교에 공식적인 민원 창구가 없는 탓이다. 지금 교사들은 개인 휴대전화로 걸려 오는 학부모들의 민원을 업무 시간 외에도 응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성식 교사는 "학교는 민원에 대해 너무나 무방비하다"며, 하루빨리 전자 민원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는 법을 바꿔야 하지만, 법이 만능은 아니다. 안전하게 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교육 당사자'인 교사·학생·학부모가 지속적인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RJA 참여자는 150명에 달했다. 한 참가자는 "서로 공감할 수 있게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이 함께 인권 교육을 받으면 어떨까"라는 의견을 냈다. 다른 참가자는 "학기 초에 교사·학생·학부모 간 역할과 책임에 대한 충분한 대화 모임과 존중의 약속을 만들어 지켜 나가는 전통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직 교사인 다른 참가자는 "우리 학교에서는 이번 기회에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평화·인권 관련 연수를 하려고 한다. 구성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서클을 계획하고 있고 학교 안 생활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려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지금도 존재하는 계급사회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갑,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을. 교육을 함께 협력해야 하는 공동체로서의 책임이 아닌 교육 서비스로 여기다 보니,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사는 일종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교육계뿐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사회 분야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정성식 교사도 최근 <창작과비평>에 쓴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교육은 시장이 아닙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의 수요자가 아니고, 교사는 교육의 공급자가 아닙니다. 교육기본법에서는 학습자(제12조), 보호자(제13조), 교원(제14조)을 모두 일컬어 '교육 당사자'로 밝히고 있습니다. 수요자가 아닌 당사자 관점으로 교육을 바라봐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교원 단체들은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다음 주 월요일(9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선포하고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일선 교사들은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의 비협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사건의 진상 규명과 교권 보호를 위해 이날 집단행동을 벌일 계획이다. 회복적정의연구소 이형우 소장은 "지금 교사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주의 깊게 듣고, 집회에 참가하는 교사들을 응원하고 함께 힘을 보태는 것도 중요한 일 같다.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이 중요한 기점이 될 것 같은데 우리가 관심을 갖고 응원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서이초 교사를 추모했다. 한국회복적정의협회 회원들이 보내온 메시지를 함께 봤다. "첫 교직 생활, 버겁고 힘들었을 무게를 함께 덜어 주지 못하고 황망하게 보내게 되어 무거운 마음입니다. 이렇게까지는 몰아내지 말았어야 합니다", "교권이 무너지고 교사가 온갖 민원의 희생양이 된 작금의 시대에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고 그곳에서는 행복하시길", "교육 공동체로서 생전에 선생님의 힘듦과 아픔을 함께하지 못해 너무나 죄송스럽습니다. 선생님을 괴롭히지 않는 학부모가 되겠습니다", "선생님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학교를 변화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를 읽으며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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