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순교 - 전남 동부 개신교 전래사 1984~1960> / 최경필 지음 / 아세아 펴냄 / 432쪽 / 2만 원 
<완전한 순교 - 전남 동부 개신교 전래사 1984~1960> / 최경필 지음 / 아세아 펴냄 / 432쪽 / 2만 원 

[뉴스앤조이-박요셉 사역기획국장] 전라남도 동부 개신교의 역사를 다룬 책. 미국 남장로교 선교개척단이 호남에 첫발을 디딘 1894년을 시작으로 1960년대까지 근현대 시기 교회 모습을 담았다. 나라가 바뀌고 이념을 놓고 민족이 대립하던 때였다. 이 책은 3·1운동과 신사참배를 포함해 제주 4·3 사건, 여순 사건, 한국전쟁 등 혼란스러웠던 시기 속에서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 준다.

저자 최경필 작가는 지역 언론사에서 20년간 취재기자로 근무했다. 여순 사건 민간인 피해자 조사와 진실 규명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여러 교회사·노회사 자료집과 논문, 선교사들이 남긴 편지, 현장 답사와 증언 등을 토대로 책을 썼다고 밝혔다.

특히 저자는 3·1운동에 참여한 전남 동부 지역 기독교인의 참여와 희생, 신사참배에 찬동한 목회자와 교회의 모습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여순 사건 진압 과정에서 군경에 희생된 교인들의 피해도 새롭게 발굴했다. 여순 사건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어떻게 학살에 가담했는지와, 정치적으로 대립한 두 교회의 갈등이 애꿎은 교인들을 희생시킨 정황도 다루고 있다.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동인·동신 형제의 죽음에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형제의 죽음도 좌익과 기독교의 갈등으로 지나치게 왜곡 조장해 이승만 정부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한국 사회에 주입시키는 도구로 이용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부록에는 1920년까지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에 기록된 초기 교회 현황과 전남 동부 지역 개신교 연대표가 정리돼 있다. 손양원·양용근·이기풍·황보인 등 전남을 대표하는 목회자들에 관한 기록도 자세히 볼 수 있다.

"목사들은 시국이 변하자 시류에 편승하고 대세를 따랐다. 4월 22일에는 전북의 200개 교회가 참배를 수용했다. 4월 29일에는 전남의 60개 교회와 순천노회가 완전히 굴복했다. 결국 6월 초가 되자 전남노회, 전북노회, 청주, 서울, 평북노회는 신사참배를 허용했고, 평안노회, 안주노회, 황해노회, 경남노회, 경북노회는 동방 요배부터 황국신민 서사, 국기배례까지 허용했다. 의주에서는 참배 반대 목사들이 투옥되고 교회에서 추방되었다. 김익두 목사는 감옥에 있었다." (2장 '일제강점기 수난사 - 배반의 역사, 신사참배', 115쪽)

"중앙교회 장로인 황두연 제헌의원과 매산학교 교장 김규당 목사가 한민당 4인조에 의해 부역자로 모함을 당해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가 선교사들의 증언으로 풀려났고, 역시 중앙교회 집사였던 박찬길 검사가 모함으로 총살을 당했다.

 

순천 탈환 후 독실한 신자인 매산중학교 교사 최창수, 김옥태를 비롯해 학생 최승수, 최승모, 박이만 등이 연행되어 군경에게 억울하게 총살당했다. 교사들의 희생은 체벌을 가했던 학련 출신 제자의 모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보더라도 당시 좌우 양측이 꼭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죽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과 정치적 라이벌 제거용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남한에서 좌익이나 공산당이 기독교인을 적으로 삼은 것은 6·25전쟁에서 인민군이 점령하면서 시작됐다." (3장 '해방 이후 개신교 피해사 - 여순 사건과 6·25의 참화', 210~211쪽)

"안재선은 그가 죽였음을 극구 부인했다. 손동희의 증언이나 책에서도 안재선이 오빠를 죽였다는 내용은 없고, 안용주의 <사랑의 원자탄>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그런데 나덕환 목사와 손동희가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두 형제를 죽였다고 한 사람은 살아날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안재선은 동신을 확인 사살했다고 자백하면서, 동인과 동신을 죽인 '살해범'이 되었다. 그리고 살아났다. 나머지 사선에 섰던 4명의 학생은 끌려가 총살됐다." (3장 '해방 이후 개신교 피해사 - 여순 사건과 6·25의 참화',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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