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각본> / 김지혜 지음 / 창비 펴냄 / 248쪽 / 1만 7000원 
<가족 각본> / 김지혜 지음 / 창비 펴냄 / 248쪽 / 1만 7000원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를 통해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폭로한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의 신간. 이번에는 호주제 폐지 이후에도 한국 사회를 공고히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적·이성애주의적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파헤친다. 저자는 "가족 안에서 우리의 관계와 역할은 왜 성별로 규정되며, 애초에 이 역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11쪽) 물으며, 진정한 평등을 위해서는 경직된 가족제도를 해체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 될까 △결혼과 출산의 절대 공식 △초대받지 않은 탄생, 허락받지 못한 출산 △역할은 성별에 따라 평등하게? △가족 각본을 배우는 성교육 △가족 각본은 불평등하다 △ 각본 없는 가족 등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성별화된 가족 용어·역할, 결혼과 출산의 필요충분조건적 관계, 재생산과 양육의 자격, 가족 이념 수호 도구로서의 성교육, 성별 분업 관념 및 부양의무 제도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보수 개신교계가 전통적(혹은 성경적) 가족제도의 '해체'를 막겠다며 수호자 격으로 사회 전면에 드러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붙들고 있는 진짜 '가족'이 무엇인지"(14쪽)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오히려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는, 이 사회가 평등을 추구한다면 맞서고 해체해야 했을 가족 질서가 뿌리 깊게 남아 있음을 간접적으로 일깨운다. 이 구호를 들으며 성소수자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면, 먼저 며느리는 여자, 사위는 남자여야 한다는 관념을 의심하고 질문해 보면 좋겠다. 며느리의 역할을 남자가 하면 왜 안 되며, 사위가 여자이면 무엇이 문제인가? 며느리와 사위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인가? 원치 않는 며느리나 사위를 반대할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은 지키고 보존해야 할 불변의 가치인가?" (1장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 될까', 40쪽)

"성차를 자연적이고 고정불변이라고 여기는 성별본질주의(gender essentialism)의 관점이 교육의 이름으로 지속된다. 우리는 모두가 지구상에 평등하게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고 여길 만큼 성별에 따라 다른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는 모순된 메시지에 길들여진다. 성별본질주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지금 보이는 성차가 형성된 사회적·역사적 맥락이 지워진다. 대신 가부장제를 위해 설계된 성 역할을 '원래 그런 것' 혹은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왜 성별을 이유로 역할이 배정되어야 하는지 질문하기를 잊게 된다. (중략)

 

성교육의 목표가 사람들이 성을 권리로 실천하는 일을 막고 사회가 정한 가족 질서를 따르도록 개인을 압박하는 것이었다면, 꽤 충실하게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성교육'이 아니라 가족 이념을 수호하기 위한 '가족 이념 교육'을 받아 왔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5장 '가족 각본을 배우는 성교육', 132~133쪽)

"역사적으로 가족은 상이한 생활 조건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가족이 변해 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중략) 이 사실을 두고 가족의 '위기'나 '해체'라고 묘사하는 것과, 가족의 '변화'나 '다양성'의 증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의 '위기'와 '해체' 담론은 특정 가족 형태를 '옳다'고 전제한 진단이다. (중략)

 

'위기'와 '해체'의 담론은 공포를 조장하고 과거로 회귀하게 만든다. 반면 '변화'와 '다양성'의 담론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여 새로운 제도를 만들게 한다. 전자는 기존의 가족 질서에 맞추어 살도록 개인을 통제하고 압박하지만, 후자는 모든 사람의 가족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대안적 제도를 고안하도록 한다." (7장 '각본 없는 가족',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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