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IVP 출판사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가 신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한 아주 좋은 안내서인데, 성공회 교단에 국한된 책으로 여겨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며 제게 서평을 의뢰했습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쉽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책을 보니 출판사의 고민도 공감이 되고, 몇 가지 소개할 만한 내용이 있어 서평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스캇 맥나이트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본기도(Collect)의 상세한 유래와 역사, 구조를 설명하면서 기도의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면을 잘 안내하고 있습니다. 맥나이트는 본디 미국 침례교 배경의 신약학자이고, 초대교회 역사와 전통에 해박한 교수입니다. 최근에 미국 성공회의 일원이 되면서 부제(장로교의 '안수집사'와 같음) 서품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저자가 교회의 전통적 기도들을 성경적이며 복음주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분석할 수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책을 살펴보면서 '영어권 국가도 아니고 성공회라는 교단도 낯선 한국에서 이런 책이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출판사의 바람대로 독자들이 이 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쓴다는 게 꽤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 부담의 이유를 먼저 언급하는 것이 독자들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책에서 기도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본기도(Collect)들은 '성공회 기도서'에 수록된 기도문으로 한국교회 신자들이 접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공동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라고 불리는 성공회 기도서는, 영미권에서는 예배 형식과 기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공회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자료입니다. 한 권의 책 속에 교단의 모든 예식이 들어 있는 성공회 기도서의 전통은 종교개혁 시기에 몇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거의 400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이 동시대에 성공회가 만든 킹제임스성경(KJV)과 함께 애용돼 왔습니다.

한 교단의 모든 예배와 예식·기도 등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와, 성직자와 신자가 모두 함께 보고 소지할 수 있도록 한 교단은 성공회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야 범교단적 전례(예배) 운동이 확산되면서, 미국 장로교를 비롯한 여러 교단이 성공회 기도서와 유사한 내용과 형식의 책들을 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성공회 기도서에 수록된 대부분의 본기도와 예식문이 성공회만의 것이 아니라, 5세기 이전 고대 교회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유산이라는 인식이 공유됐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저자도 언급하듯이 여전히 한국교회 신자 대부분은 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일을 가톨릭·정교회·성공회 같은 전례적 교회의 예배 스타일로 인식하거나, 이러한 행위는 글을 읽는 것이지 성령 안에서 드리는 진정한 기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63-69쪽). 그러나 구약 시대나 초대교회 신자들이 공동 예배 때나 개인 기도 시간에 자주 사용한 기도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도문이나 시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주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주기도'는 신자들이 기도할 때마다 암송했던 대표적인 기도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적어도 하루 세 번씩 주기도를 암송하며 기도했습니다. 여기에 시편 150편을 암송하며 기도하는 관습이 더해지고, 이런 관습이 나중에 '성무 일과(Divine Office)'라 부르는, 시편과 성경 독서와 주기도문 세 축으로 구성되는 수도원의 매일 기도 시간으로 발전했습니다.

'본기도'의 사전적인 정의는 서구의 예배 의식에서 사용되는 짤막한 기도라는 뜻이지만, 어원적으로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함께 모아 모두의 뜻을 담아 공동의 간구를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62쪽). 그래서 한때 가톨릭이나 성공회에서 '모음 기도'라고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모인 모든 회중이 공감하고 '아멘'으로 응답할 수 있는 공동체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고, 간결하고도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동시에 회중들 앞에서 혹은 회중들이 함께 소리 내어 드리는 기도이기에 적절한 문장 길이와 운율을 갖고 있습니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본기도는 정확하고 명료한 표현과 문장의 우아함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의 기도라는 근본적인 의미 외에도, 기도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주기도문처럼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교훈적인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77~78쪽).

출판사에서 제게 보낸 이 책을 받는 순간, 우리말 표지 제목 아래에 인쇄된 원서 제목 'To You All Hearts Are Open'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문장이 매주 성공회 성찬 예배 때 첫 기도로 드리는 '정심 기도(정결한 마음을 구하는 기도)'의 문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성공회 기도서의 번역과는 다르지만 전형적인 본기도의 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기도문으로(원문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소리 내어 기도할 때 그 내용과 운율이 잘 어울리는 시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 성찬례 시작에 이 기도를 모든 회중과 함께 소리 내어 합송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그분의 능력을 상기하며,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순서로 이어지는 이런 유형의 본기도에 대한 설명은, 저자가 구약 시대 기도로부터 초대교회 전통과 그 구조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므로 제가 덧붙여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저는 성공회의 성직자들과 신자들도 이 책을 보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본기도의 깊이를 새삼 느끼면서, 마음과 정성을 들여 소리 내어 하나님께 기도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본기도는 대부분 종교개혁 이전부터 만들어졌거나,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다듬어져 수세기 동안 사용된 전통적인 기도문입니다(66, 77쪽). 다시 말해 성공회만의 유산이 아니라, 기독교 전체의 신앙적 유산입니다. 바른 기도를 배우기를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모범적이고 유익한 기도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몇몇 본기도의 구조와 내용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구조가 필요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자의 설명에 기초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도는 자신이 믿는 신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종교에서 기도는 기도자 자신의 부족함과 필요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 기도한다면 이는 올바른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기도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이 믿는 신을 이용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악행들은, 실로 신의 이름을 내세운 인간들이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던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기도, 즉 성숙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신의 성품을 닮아 가는 방향으로 변화됩니다. 기독교 신자를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그러한 예입니다. 신자는 이 세상 속에서 작은 그리스도가 되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의 기도는 저자의 말처럼 '신학(Theo-logy)', 즉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요구하게 됩니다(163쪽). 다른 말로 하면, 기도는 성경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께서 듣기를 원하고 기뻐하실 내용인지를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2. 기도는 배우는 것이다.

목회를 하다 보면, "저는 기도할 줄 몰라요"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일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처음에는 울음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익히면서 점점 엄마와 깊은 소통을 하게 됩니다. 그렇듯 우리도 일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면서 동시에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물론 어떤 때는 아기 울음처럼, 기도가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정심 기도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님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우리 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에는 언어 이전에 간절한 마음의 갈망이 있어야 하지만, 주님에 대한 믿음이 성장할수록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필요에 앞서, 우리가 기도하는 그분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이 갈망이 약해지면 우리 기도의 방향이 빗나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신앙이 성숙한다면 떼를 쓰는 기도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개인 기도가 아니라 공동 기도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함께 모인 공동체 모두가 그 기도에 '아멘'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기도에 대한 배움과 올바른 기도의 형식이 요구됩니다. 성경 속의 많은 기도나 시편, 주기도, 본기도들을 통해서 우리가 기도를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개인 기도에서는 기도가 깊어지면 언어와 형식도 요구되지 않는, 우리가 잘 아는 묵상기도를 넘어선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는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영적 지식의 기반이 충분히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의 명상과 기독교의 관상기도는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3. 본기도로 간구 기도를 배우는 것은 올바른 기도를 훈련하는 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본기도의 구조와 그 신학적인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이러한 패턴을 통해 개인의 간구 기도를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합니다(11장).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기도나 전통적 교회의 기도들은 모두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체험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이 하실 일을 기억합니다. 주기도문의 전반부가 우리 번역에서는 기도자의 간구처럼 보이지만, 실은 '존칭 명령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속히 이루어 주시기를 기원(invoke)하는 내용입니다.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주기도문을 번역하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미래에 약속하신 일,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가장 먼저 상기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먼저 기억한 후에 우리의 간구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서 시작되고, 마지막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문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로 끝납니다.

본기도 구조 분석을 토대로 올바른 간구 기도의 형식을 정리하고, 개인 기도나 공동 기도를 할 때 이 형식을 염두에 두고 기도하는 훈련을 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이 책이 분석한 본기도의 구조를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인식하고, 그분의 약속과 행하신 일에 기대어 우리의 간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간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숙한 열매를 위한 것임을 스스로 확인합니다.

끝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의 기도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드리는 중보 기도가 되도록 주님을 통하여 기도합니다. 영어 본기도 문장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Through Jesus Christ)'라는 문장을 씁니다(10장). 이런 구조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주님을 닮아 가고자 하는 열망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96, 156쪽).

어쩌면 출판사에서 원하는 서평은, 한국교회 신자들이 이 책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 글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공회 기도서가 익숙한 저는 이 책이 성경과 교회 전통을 기반으로 본기도를 너무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를 암송하며 아름답게 낭독하듯이 기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한국교회의 예배 관습이, 기도 형식에 대한 이 책의 세세한 설명을 다소 낯설게 하는 것으로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전통'이라는 말을 인간이 만든 관습, 즉 성경과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에게, 고대 교회는 전통을 교회의 오랜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성령의 발자취'로 보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성경을 읽을 때 머리로만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입과 귀로 읽는 것이 좋은 방법이듯, 본기도도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담아 소리 내어 기도할 때, 그리고 그런 행동이 습관처럼 반복될 때, 지금 이 자리에서 드리는 나의, 우리의, 교회의 기도가 됩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드리는 개인 기도도 이런 본기도의 본을 따라 드리는 훈련을 지속한다면, 복음적이고 영적인 기도의 습관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장창경(베레기아) / 대한성공회 은퇴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