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7월 16일, 성령강림 후 일곱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119:105-112 / 창세기 25:19-34 / 로마서 8:1-11 / 마태복음 13:1-9, 18-23

모니터 안 텅 빈 페이지를 보고 있으면, 깜빡깜빡 글자가 하나씩 나타납니다. 제게 지금 일어나는 일이에요. 깜빡이는 커서는 어두운 문과 같아서, 글자를 데려왔다가 데리고 갔다가 하며 제 안에 기다리고 있던 말들을 흰 도화지 위에 올립니다. 심상(마음의 그림)이었던 것이 글자로 번역되는 과정 안에서 그림은 글로 바뀌며, 과장과 비약을 거추장스럽게 걸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던 어떤 것들의 심상이 기호를 입으며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호한 기운의 감정들이 단어를 찾아 의미를 체득하여 근원을 드러내기도 하니,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번역하는 과정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마음의 번역'이 운율과 은유를 만났을 때를 '시가 쓰이는 시간'이라고 여겨도 좋을까요?

시가 쓰이는 방식
여호와의 말씀이 체현되는 방식

리브가와 이삭의 자손을 향한 오랜 기다림은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품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마른 가지같이 수척한 장막 안의 사라가 불현듯 떠올라요. 이삭은 자기 출생의 이야기를 교훈 삼은 듯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은(창 25:21) 리브가의 자궁을 '언약'의 집으로 삼으십니다.

영국의 설치 예술가 레베카 루이스 로(Rebecca Louise Law)가 2019~2020년 미국 프레드릭마이어가든스&스컬프처공원에서 연 전시 'The Womb'. REBECCA LOUISE LAW 홈페이지 갈무리
영국의 설치 예술가 레베카 루이스 로(Rebecca Louise Law)가 2019~2020년 미국 프레드릭마이어가든스&스컬프처공원에서 연 전시 'The Womb'. REBECCA LOUISE LAW 홈페이지 갈무리

언약은 하늘에 가득한 "뭇별"이었다가(창 15:5),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만난 나그네들 입속의 말이었다가(창 18장), 모리아산 비탈길에서는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였으며(창 22:17), 이제는 "천만인의 어머니"로 복받은(창 24:60) 리브가의 태에까지 도착합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들의 염원은 기다림의 시간을 입고 곳곳에서 가득히 발견됩니다. 그리고 오늘의 장소인 리브가의 자궁은 언약의 시가 쓰여지는 곳이자, 복선을 예고하는 서사가 담기는 곳이 됩니다.

자궁은 태아에게 우주이고, 임신한 여성의 몸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모든 것을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와 숙명을 지니지요. 아이를 품은 여성은 자아가 쪼개지는 경험을 하며 엄마로 진화합니다. 자기 자신 안의 다른 생명을 감각하기도 전에, 신체는 이미 솟아나고 있는 생명의 기운에 온 힘을 집중하며 헌신하고 있지요. 섭취된 음식물은 새로운 생명을 위한 에너지로 전환될 뿐 아니라, 태아를 위한 물리적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몸 안의 장기와 뼈들은 양보를 감행합니다. 이 일련의 시간들은 태아를 품은 어미의 준비보다 앞서니, 리브가가 느끼는 불편은 태초의 여성 하와 때부터 예고된 임신한 여성의 고통인 듯합니다.

"이렇게 괴로워서야 어디 살겠는가!" (창 25:22,공동번역)

리브가는 여호와께 까닭을 물으러 나아가고, 성서는 리브가의 태 속에서 두 민족이 싸우고 있다고 기록합니다. 두 태아가 태 안에서부터 싸우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리브가. 여호와의 응답은 출산을 앞둔 막연한 시간을 사는 그가, 언약이 잉태되는 기이한 방식을 온전히 감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게 만듭니다. 태아가 사는 우주인 자궁과 리브가가 사는 우주인 현실 세계 둘 다를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리브가 자신뿐이니, 하란에서 홀로 떠나온 리브가는 여전히 고독하게 여호와의 말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심상이 기호를 입어 시로 번역되듯, 리브가의 몸을 통해 여호와의 말씀은 체현되는 중인 것이지요.

번역(Translation)

미국 오리건주에서 활동하는 시인 폴란 페터슨(Paulann Petersen, 1942~)은 그의 시 'Translation'을 발표합니다. 이 시는 달을 바라보는 화자가 마음 가득한 달에 대한 심상이 시어로 번역되기까지 기다리는 일의 신비를 다루고 있습니다.

화자는 달이 말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전히 빛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비록 잉크와 펜처럼 글을 쓰는 물리적 도구가 없을지라도, 달은 그 고유한 은빛 아름다움이 쓰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요. 펜의 어두운 획을 통해 오히려 빛이 시어로 승화되는 신비를 믿으며, 마지막 절에서는 달을 '면병(성체)'에 비유해 섬세한 달의 생기가 입 안의 말이 되어 녹는다고 표현합니다.

이 시는 라트비아 출신의 젊은 작곡가 에릭스 에센발즈(Ēriks Ešenvalds, 1977~)의 곡을 입어 합창곡으로 탄생합니다. 무반주 4명의 쿼텟(quartet) 그리고 허밍 5성부 합창으로 이뤄진 이 곡에 사용되는 유일한 악기는 물이 든 유리잔입니다. 이는 작곡가가 별이나 하늘 같은 막원한 초월을 표현하고자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에요.

더크로싱합창단과 악기로 사용된 물이 든 유리잔. TreCrossingChoir 유튜브 채널 갈무리
더크로싱합창단과 악기로 사용된 물이 든 유리잔. TreCrossingChoir 유튜브 채널 갈무리

달을 향한 섬세한 시선, 보이지 않은 심상이 비로소 시의 예술로 승화되는 신비의 번역을 이번 주 '경건한 청음'으로 들려드립니다. 리브가의 몸 안에서 쓰여지는 숭고한 언약의 시. 데자뷰와 복선, 은유와 신비가 가득한 하나님의 심상을 느끼며, '더크로싱합창단(The Crossing Choir)'의 노래로 'Translation'을 함께 들어 보겠습니다.

Translation - Paulann Petersen
 

Empty of words, not empty
of light, the moon's face
awaits the touch of a pen

 

Empty of ink, but not
of silver, that pale
slate that is the moon

 

waits for a sweep
of letters inscribed
in strokes deep as dark

 

in which it floats
Emptied of nothing,
filled with story, the moon becomes

 

a thin wafer1) melting
in the mouth, words
having found their tongue

 

텅 빈 말들, 가득히
빛으로 찬 달의 얼굴, 그 속엔 빛이 넘친다
펜의 접촉을 염원하며

 

잉크는 무색하지만
은빛은 여전히 유려하다
창백한 저 달은 자기 자리를 기다리며

 

글자들이 담길 곳을
간절히 바라보며
깊은 어둠처럼 감미로운 획들을 기다린다

 

그저 공허함으로 차 있을 뿐이지만
이야기로 가득한, 달이 변모한다

 

얇은 웨이퍼가 서서히 녹는 입 안에서
말들이
그 목소리를 발견한다 (번역: 김현지)

1) 얇은 종이같이 둥글고 하얀 빵의 종류. 제병, 면병으로도 불리며 성만찬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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