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현지의 경건한 청음'은 교회음악·예배학 전공자 김현지 교회음악가(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교회력 '공동 성서 정과(RCL)'에 맞춰 신자들의 묵상과 영성 생활을 돕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2023년 7월 9일, 성령강림 후 여섯째 주일 공동 성서 정과 본문(클릭)
시편 45:10-17 / 창세기 24:34-38, 42-49, 58-67 / 로마서 7:15-25a / 마태복음 11:16-19, 25-30

어떤 시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전환되는 삶의 경계, 고이 접힌 그곳에는 고스란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유식을 하던 때를 가끔 떠올려요. 아기의 주식이 모유 혹은 분유에서 밥으로 넘어가던 사이의 시간들 말입니다. 이유離乳, 젖으로부터 떠나는 시기. 그 전환을 돕기 위해 엄마는 고운 쌀미음부터 단계적인 이유식을 준비하게 되지요.

생후 6개월부터 시작되는 이 시간은 아기가 어른의 밥을 어느 정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숟가락으로 떠먹이는 방식을 처음으로 접하고, 오물오물 씹는 것을 연습하며 아기는 새로운 세계를 맛봅니다. 엄마의 젖으로부터 서서히 떠나는 동시에 밥의 세계를 맞이하는 구간, 아기는 잇몸이 간지러워 밤새 이앓이를 하느라 끙끙대기도 하고, 다리에 힘이 생겨 걸음마를 시도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이때쯤 생애 첫 신발을 신게 되기도 하지요! 밥의 세계와 걷기의 세계를 동시에 맞는 아기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간의 전개를 마주하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넘어가는 길

한 세대가 저물고 다음 세대로의 이양이 시작되는 바탕 한가운데 어떤 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에셀. 이삭이 태어나기 한참 전,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마음에 두고 있을 정도로 그를 신뢰하고 있었습니다.(창 15:2) 하지만 그가 상속자가 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다음 세대인 이삭의 반려자를 찾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은 자신의 주인에게 충실한 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길 정도로 신뢰했을 테지요. 그는 아브라함의 인생을 곁에서 빠짐없이 목격하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더불어 삼으며, 그 누구보다 아브라함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우정과 신뢰가 버무려진 이 둘의 관계가 창세기 본문 24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전령을 받아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낙타를 이끌고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떠납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말이지요.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종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그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물동이를 이고 오는 리브가의 모습이 보이거든요. 익숙한 태도로 자신뿐만 아니라 낙타에게까지 환대를 베푸는 리브가를 보는 종의 눈빛에는, 이 장면을 보고 흡족해할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선도 함께 서려 있습니다. 엘리에셀은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창 24:27)

밤하늘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별을 보여 주신 여호와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시간에서 이삭의 시간으로 서서히 전환되며 눈부신 빛의 조각을 더합니다. 거기에는 "천만인의 어머니"(창 24:60)가 될 리브가가 있지요. 그리고 그 빛을 조명해 주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그 길 위에 있습니다.

엘리에셀은 리브가와 그의 아버지 브두엘, 오라버니 라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리브가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남편이 될 이삭을 향해 낯선 길을 씩씩하게 떠나고, 그 길 위에서 엘리에셀은 이삭을 가리켜 "내 주인이니이다"(창 24:65)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행한 일을 이삭에게 모두 아뢰는 장면이 이어지지요. 이렇게 보면,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의 전령에서 시작해 이삭에게 도달하는, 두 세대 사이의 '전환'이 일어나는 장인 것이지요. 그 전환의 한복판에는 충실한 종 엘리에셀이 있었던 것이고요.

낯선 만남을 통해 이어지며 영원을 얻는 것들
미사 탱고를 연주하는 콰이어. Cairo Celebraion Choir 유튜브 채널 갈무리
미사 탱고를 연주하는 콰이어. Cairo Celebraion Choir 유튜브 채널 갈무리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사이를 흐르는 라플라타강 유역에서 태동한 음악 '탱고(Tango)'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 선착장에서 들려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바이올린, 더블베이스, 피아노, 반도네온(Bandoneon,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에서 주로 사용하는 아코디언 - 편집자 주)으로 구성된 악기들이 연주를 하며, 기본적으로 4분의 2박자의 리듬을 갖고 있지요. 무엇보다 열정적인 탱고 춤이 곁들어지는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음악 장르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이 탱고 음악이 '미사 음악'과 만나 낯설고도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게 돼요.

전례를 위한 오래된 기도로부터 생성된 미사 음악은 그리스어·라틴어로 고정된 가사(미사통상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악곡 형식은 보통 아래와 같은 6개 형식으로 이뤄지지요.

"키리에(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글로리아(Gloria in excelsis Deo, 하늘 높은 데서는 하나님께 영광), 크레도(Credo in unum Deum, 나는 믿나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 상투스(Sanctus, 거룩하시도다), 베네딕투스(Benedictus,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아뉴스 데이(Agnus Dei, 하나님의 어린양)"

이렇게 구성된 노래들은 따로 떼어져 '미사 음악'으로 연주되곤 합니다. 가사는 고정된 채로 사용되지만 음악적으로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며 존재하는 거죠. 열정적인 탱고와 장엄한 미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세계는 희한하게도 음악 안에서 버무려지며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해 냅니다. 그레고리오성가로부터 단순한 형태의 예배 음악이었던 미사 음악이, 대륙을 건너고 시간을 넘어 탱고의 옷을 입고 오늘로 이어집니다.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연주자. Cairo Celebraion Choir 유튜브 채널 갈무리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연주자. Cairo Celebraion Choir 유튜브 채널 갈무리

오늘 경청할 경건한 청음은 마르틴 팔메리의 '미사 탱고(Misa Tango; Misa a Buenos Aires)'입니다. 아르헨티나 작곡가 마르틴 팔메리(Martin Palmeri)는 인터뷰를 통해 "이 곡은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의 정신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통해 구체화되는 서로 다른 것들이 조우하는 장소"라고 말하죠. 1000년 이상 보편적으로 불려 왔던 미사통상문의 가사가 반도네온이라는 호소력 있는 악기와 만나 또 다른 생명력이 더해집니다. 반도네온 연주 속에서 탱고의 아버지인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의 숨결이 느껴지고, 탱고 특유의 슬프면서도 역동 있는 정서 속에 예수의 고난과 부활 서사가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지요.

탱고 음악과 미사곡 형식, 오케스트라와 반도네온이 만나 연주되는 교회 바깥으로 나간 '미사 탱고'를 들어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언약의 빛이 세대가 저문다고 사라지지 않고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어졌듯이, 여전한 운동력으로 영원을 향해 회전해 가는 미사 음악을 보내드립니다. 2022년 이집트 헬리오폴리스노트르담성당(Basilique Notre Dame d'Heliopolis)에서 연주한 실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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