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교회 성폭력 △목회자 성폭력 △성폭력특별법 △피해자 섹슈얼리티 △피해자 담론 △젠더화된 신앙생활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올해 2월 발표된 어느 석사 학위논문이 초록抄錄에서 밝히고 있는 주제어 목록이다. 하나같이 한국교회가 놓쳐서는 안 되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담은 키워드들이다. 그래서 논문을 다 읽었다. 홍익인간이라 했던가. 이로운 것은 되도록 많은 사람과 나눠야 한다. 연구자를 찾아 나섰고, 흔쾌히 연재 약속을 받아 냈다.

연재 필자는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 강은정 활동가. 그는 시민단체에 몸담고 지역사회 여성운동에 참여한 지 15년이 된 잔뼈 굵은 현장 활동가다. 대한성공회 소속 교회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란 강 활동가는, 2020년부터 교단 내 양성평등위원회 전문위원으로 교회 성차별·성폭력 관련 자문·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21년 성공회대학교 시민평화대학원에 입학해 실천여성학을 공부했다. 그 결과물이 위에서 말한 논문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피해자 섹슈얼리티 연구 - 각 교단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다.

강 활동가의 논문은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와 맥락을 '각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운동이 만들어 낸 담론의 성과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안한다. 그는 연구를 위해 운동 주체 8명을 만나 심층 면접하고, 교계 기구와 교단들이 발간한 성폭력 관련 문헌 자료를 망라해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쌓아 온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전개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노정했던 몇몇 한계점을 짚어 냈다.

강은정 활동가를 4월 26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나눔여성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운동에 투신해 온 선배들과, 구조적 억압에 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 온 성폭력 피해자들을 향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담론이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과연 어떤 부분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인터뷰를 통해 논문에 대한 설명과 연재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들어 본다. 연재는 5월 말 첫 번째 글을 시작으로, 10회에 걸쳐 격주로 발행된다.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 강은정 활동가를 4월 26일 만났다. 그는 5월 말부터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 강은정 활동가를 4월 26일 만났다. 그는 5월 말부터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그 흔적들을 살펴보다

- 실천여성학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여성운동을 해 오면서 가장 관심 있었던 분야가 '몸'이었어요. 몸에 대해 내가 혹은 이 사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재단하는지가 근본적인 질문이었거든요. 특히 여성의 몸, 그중에서도 성폭력 피해자의 몸이 어떻게 보여지고 해석되는가에 관심을 갖게 됐죠.

저는 대한성공회 모태신앙으로 자랐는데요. 교회에서의 경험도 한몫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학습·체화된 교회 안의 젠더 규범이 있어요.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요구를 받잖아요. 그렇게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이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어느 순간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한국사회 맥락 안에 있는 여성의 몸과 삶에 더해, 교회와 신앙생활 안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젠더 권력·억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생각해 보면, 저 또한 교회 성폭력 피해자이기도 한데요. 결정적으로는 양성평등위원회 전문위원으로 교회 여성과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상담하는 과정에서 한계와 답답함을 많이 느꼈어요. 그런 여러 가지 경험과 필요 속에서 실천여성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 한국교회 각 교단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피해자 섹슈얼리티'를 연구하셨죠. 논문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실천여성학을 공부하는 2년 동안 기독교·교회 내에서 논의된 성폭력·젠더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어요. 도서관이나 논문 사이트를 뒤져 가며 대부분의 연구 논문을 살펴봤는데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도 연구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게 없더라고요. 그만큼 예나 지금이나 교회 현장이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동시에 교회 성폭력을 다룬 그동안의 연구가 주로 '가해 목회자'에게 집중해 윤리적 책임이나 처벌의 당위성을 강조하거나, 개념·유형을 정리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한계를 보게 됐어요.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차원, 목회 상담이나 기독교윤리적·기독교교육적 측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거죠. 심지어 성폭력을 목회자 개인의 일탈, 가해자 심리 분석 차원에서 보는 연구들도 있었고요.

문제는 정작 가장 중요한 피해자의 모습은 언제나 똑같이 그려진다는 거였어요. '목회자 성폭력'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구성된 개념과 담론들이, 오히려 피해자를 단순화·일반화하고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었죠. 그래서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맥락을 살피며, 그 안에서 피해자의 위치·행위성·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재현되거나 전제돼 왔는지 연구하는 데 집중하게 됐어요.

강은정 활동가는 목회자 중심의 성폭력 담론이 오히려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강은정 활동가는 목회자 중심의 성폭력 담론이 오히려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 연구는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피해자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본격적 연구와 적극적 논의를 통해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담론이 더 이상 '약자 보호'를 외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독교 여성 주체들의 미투를 재해석하여 급진적으로 운동 담론을 모색하는 공론장을 여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걸어왔던 맥락과 역사적 가치를 한국 여성운동의 맥락에서 재평가하고, 연구자를 포함한 향후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주체가 될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운동 담론 구성 및 운동 방향 설정에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데에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5쪽)

-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에 헌신해 온 분들을 직접 만나 심층 면접하고, 각 교단·기구가 발간한 문헌 자료를 분석하셨죠. 활동가이시도 하니까, 지난 운동의 흔적들을 마주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면접과 자료들을 통해 운동 선배들과 주체들이 참 많이 애쓰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운동 과정에서 쟁취하고 구성해 낸 단어·개념 하나하나에 활동가들과 피해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맺혀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 안에 담긴 고민과 투쟁의 자취들을 살펴보고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컥하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했어요. 이런 통렬한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디지만 그래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역시 '교회 성폭력은 목회자 성폭력이다'라는 개념 설명이 마음에 걸렸어요. 운동을 해 오신 분들도, 교단·기구가 발간한 매뉴얼·지침서도 모두 그 부분에 주목하고 있었거든요. 여러 마음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그럼 목회자에 의해 발생한 성폭력이 아니면 교회 성폭력이 아닌 걸까', '유독 목회자 성폭력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부분은 왜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 그 지점이 논문에서 지적하는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한계'일 텐데요. 학술적이고 건설적인 비판이지만, 의도와는 달리 가열한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해소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물론 언제나 '역사'를 재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현시점에 있는 연구자·활동가의 몫이지만, 제가 감히 선배들의 운동의 역사를 함부로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는 없죠. 역사의 맥락을 살펴보면, 운동 현장에서 그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거든요. 진일보한 성과를 내기도 했고, 무엇보다 피해자를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고요.

한편으로는 교회 현실과 관련된 고민도 있었어요.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인데, 제 논문은 지금의 반성폭력 운동 담론만으로 그쳐선 안 되고 더 급진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니까요. 한마디로 '과연 지금 한국교회 실정에서 이 논의를 하는 게 맞는가' 하는 문제였는데요. 논문 지도교수님과 심사위원들도 조심스러워하셨던 부분이에요.

그래서 과연 이 논의가 운동 현장에서 쉽게 받아들여질까, 운동에 대한 비판이 혹시 운동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고생해 오신 운동 선배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도 당연히 있었고요. 그래도 '지금 내가 안 하면 교회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이야기는 누가, 언제 하겠나' 하는 생각으로 논문을 썼죠. 사실 지금도 조금 걱정이 되긴 하네요.(웃음)

뉴스앤조이 여운송
올해 2월 발표된 강은정 활동가의 논문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피해자 섹슈얼리티 연구 - 각 교단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 뉴스앤조이 여운송
운동의 시작과 가열한 투쟁,
그리고 의도치 않은 한계들

- 본격적으로 논문 이야기를 해 볼까요.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어떻게 태동했고, 운동이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1980년대 중·후반 서구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교회 여성들도 2등 시민으로 존재했던 위치를 자각하고, 구조적 부조리를 인식하게 됐어요. 때마침 엄청난 목회자 성폭력 사건들이 터져 나왔고요. 피해를 피해라고 말하기 시작했던 여성들의 폭로가 있었죠.

교회 여성들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성평등을 말하기 시작한 순간과, 권력을 이용해 지속적·반복적으로 성폭력을 저질러 온 목회자들의 범죄행위가 사회적으로 가시화한 때가 차례로 겹친 거예요. 그렇게 '교회 성차별 철폐 운동'의 맥락 속에서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태동했어요. 그중에서도 1998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교회 내 성폭력의 실태와 과제'라는 주제로 개최한 공청회가 공식적인 '교회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 법으로는 1994년에 이미 성폭력특별법(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어요. 이 법을 제정하는 데 교회 여성들도 엄청난 기여를 했고요. 그런데 모두의 힘을 합쳐 만든 이 법이 정작 교회 안, '목회자 성폭력'에는 적용이 안 되는 거예요. 특별법은 강제성, 협박, 물리적 폭력이 있어야 작동하는데, 목회자에게는 특별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보니, 교회가 법의 사각지대가 된 거죠. 그래서 결국엔 '교회법'으로 만들 수밖에 없겠다, '제왕적'이라 할 만큼 큰 목회자의 권력은 교단이 줬으니 교단이 책임지고 이를 치리할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을 만들어라 하는 운동이 벌어진 거예요. 여기서 '제왕적'이라는 말은 제가 아니라, 연구 참여자들이 사용한 단어라는 점이 중요하고요.

"최초의 공청회로부터 약 25년간 추진되어 온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을 위한 '각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과 이를 위한 '여성 대표성 확보'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어 왔지만 여전히 운동 주체들이 제안한 원안 형태의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이뤄 낸 교단은 없다." (46쪽)

- 1998년이면 벌써 25년이나 지났는데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한 교단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운동 주체들은 차선책으로 대안적인 형태의 운동들을 벌여 왔어요. 예를 들면 '교단 헌법 개정 운동'이 있는데요.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기존 교단 헌법에 성폭력 관련 '단서 조항'이라도 하나씩 추가해 가자는 전략이었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데 가장 시급한 것들부터요.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늘린다든가, 성폭력을 범과에 명시한다든가 하는 내용을 하나둘 추가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 '성폭력특별법'이라는 독립적인 형태로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략이었던 거죠.

'성폭력 예방 교육 의무화'와 성폭력 관련 '지침서·매뉴얼 발간'도 하나의 대안 운동이었어요. 변화가 가장 느린 곳이 교회라고 하잖아요. 사회는 이미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화한 곳이 많은데, 교회는 정말 사각지대였죠. 그래도 운동 주체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대안 모색을 통해, 목회자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시행하고 현장 지침서를 발간하는 교단이 늘어나고 있어요. 물론 얼마나 실효성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죠. 아직은 대다수가 '예방 교육'의 횟수나 대상에 따른 의무화 규정 등 보완이 필요하고, '지침'은 강제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에요.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유는, 교회가 이미 제정된 사회 법의 사각지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23년 현재까지도 성폭력특별법은 제정한 교단은 전무하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유는, 교회가 이미 제정된 사회 법의 사각지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23년 현재까지도 성폭력특별법은 제정한 교단은 전무하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어쨌든 운동 주체들은 '목회자 성폭력'에 집중해 왔죠. 사회 법의 사각지대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텐데요.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운동이 목회자 성폭력을 주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는 것, 지금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에 제가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교단들이 훨씬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할 문제인 것이 분명하고요. 하지만 가해자의 유형을 단일하게 생각하게 되면, 피해자도 한 유형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돼요. '제왕적 권력을 가진 목회자'와 그에 취약한 '요보호 피해자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생기는 거죠. 저는 그게 가장 불편했어요. 공동체 전체에서 발생하고 있는 성폭력 문제를 단지 심한 폭력/약한 폭력, 능동/수동, 주체/객체, 가해/피해로만 보게 됐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를 봐야 한다는 거죠.

'제왕적 목회자 권력에 의한 극악한 피해'에만 집중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저 같은 피해자는 말을 못하게 돼요. 제가 경험한 폭력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거든요. 여러 피해 간에 위계가 생기게 되는 거죠. 폭력이 발생한 맥락을 조금 더 교차적·중층적·복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한국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성적 억압을 비롯해, 성적 자기 결정권과 섹슈얼리티 침해 문제를 훨씬 더 다층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이 일부 목회자 개인의 문제가 돼 버려서 구조적 문제로 공론화하기 어려워져요. 전략적으로는 성폭력특별법을 만드는 데도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고요.

생각해 보면, 미투 운동 이후에 보수적이던 교회와 목회자들도 드디어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잖아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단순히 몇몇 사람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일상에서 경험한 혐오·폭력을 인식한 숱한 여성들이 폭로하기 시작하니까 비로소 꿈쩍이라도 한 거잖아요? 심각한 목회자 성폭력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상적으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다양한 층위의 성폭력이 드러나는 것이 우리 운동에도 훨씬 더 유리해요.

"요보호 피해자와 목회자 성폭력 담론의 연결은 제도와 사회가 보호할 만한 피해자와 피해를 선별하여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할 성폭력에서부터 덜 강력하게 처벌해도 되는 소위 '성희롱'에까지 폭력을 위계화하게 되는 문제가 있어, 전형적인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에 부합하지 않는 피해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확률이 감소하거나 아예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게 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중략) 일상에 만연한 크고 작은 성폭력들을 비가시화시킨다는 것이다." (79쪽)

"과거 기독교/교회 성폭력 운동 담론에서 과대표되었던 목회자 성폭력을 기독교 조직 내 수많은 섹슈얼리티 침해 중 하나로 유형화하고 '더 많은 폭력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목회자 성폭력 사건'만'을 효과적으로 치리하기 위한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을 넘어, 조직 구성원 전체를 보호하고 피해를 위계화·사소화·파편화하지 않을 수 있는,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섹슈얼리티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문화 실현을 위한 운동 담론이 필요하다." (129쪽)

- 운동 주체들이 '목회자 성폭력'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친족 성폭력' 개념을 차용한 점에 대해서도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셨어요.

목회자 성폭력은 언제나 '꽃뱀', '간통', '불륜' 같은 화간 논쟁에 휘말려야 했어요. 다 큰 성인 여성이 물리적 폭행이나 협박도 없이 그리 오랫동안 반복적·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했을 리가 없다는 거죠. 당시에는 신뢰·친밀 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최근에 얘기되는 '그루밍', '가스라이팅' 같은 용어도 없던 시기였으니, 오히려 피해자가 질타를 받는 상황이 반복됐죠.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진짜 피해'로 인정받기 위한 '인정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화간 논쟁 상황을 전복하기 위해 운동이 꺼낸 대안 담론이 '친족 성폭력' 개념이에요. 목회자 성폭력을 친족 성폭력에 빗댄 전략에는 여러 이점이 있었는데요. 먼저, 교회라는 공동체의 가족 같은 친밀함과 신뢰, 목회자와 교인이 갖는 위계적 관계성을 잘 설명할 수 있고요. 피해자들이 본인의 피해 사실을 쉽게 밝히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도 적합했죠. 가족 경제를 책임지는 가부장의 지위가 위협받거나 흔들리면 친족 전체가 영향을 받잖아요. '그러면 곤란하니 네가 입을 닫고 참아라' 하는 방식으로 피해 사실을 은폐하는 교회 조직 문화를 설명하기도 용이했던 거고요.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충격을 줄 수도 있었죠. '친족 성폭력이라고? 아버지가 딸을? 말도 안 돼' 같은 방식으로 '목회자 성폭력이라고? 영적 지도자가 교인을?' 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죠.

그런데 한계도 있어요. 친족 성폭력 개념을 가져와서 피해자를 '상간녀'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피해자는 '가장 연약하고 순결하고 불쌍한 피해자성'을 입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해야 가해와 피해가 분명해지고 약한 상대에게 심각한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당위성을 말하기 쉬워지니까요.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주체성이 납작해지고 삭제되는 역설이 발생했어요. 피해자를 매우 위험하거나(상간녀) 불쌍하고 연약한(친족 성폭력 피해자) 존재 사이의 긴장적 위치에 놓는 딜레마. 저는 이것이 교회 성폭력을 '제왕적 목회자의 권력형 성폭력'으로, 그것을 또다시 '친족 성폭력' 개념으로 담론화하는 방식의 한계라고 봐요.

강은정 활동가는 운동 주체들이 목회자 성폭력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차용한 '친족 성폭력' 개념이 한편으로는 유용했지만, 피해자를 '요보호 대상'에 머무르게 하는 필연적인 한계 또한 노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강은정 활동가는 운동 주체들이 '목회자 성폭력'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차용한 '친족 성폭력' 개념이 한편으로는 유용했지만, 피해자를 '요보호 대상'에 머무르게 하는 필연적인 한계 또한 노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굉장히 어려운 문제네요.

어렵고도 첨예한 문제죠. 일반 시민사회 여성운동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문제인데요. 당장 내 옆에 있는 피해자도 지키지 못하는데, 최소한의 권리 보장과 처벌도 못 하고 있는데, 성적 자기 결정권과 섹슈얼리티까지 논하는 게 맞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죠. 게다가 교회 여성들은 여기에 신학·신앙이라는 요소,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교회 문화라는 맥락이 더해지니까 더 어려워지는 거예요. 저도 뚜렷한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운동 내부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최소한 운동 주체들은 성폭력을 처벌과 보호의 관점으로 보는 데만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근본적으로 안전이란 무엇인가, 목회자 성폭력으로부터만 안전하면 되는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재현·인식·해석되는가 고민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구조적 젠더 권력 문제나 성적 억압, 몸에 관한 편협한 생각을 해체할 수 없어요. 결국엔 또 몇몇 극악한 가해자와 몇몇 요보호 피해자의 문제만으로 납작해지는 거죠. 그러니 운동이 피해자를 피해자로만이 아닌, 경험의 맥락과 다양한 주체성·행위성을 입체적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이런 맥락에서 피해자의 피해 경험을 운동의 자원으로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윤리적인 고민도 병행해야 하고요.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넘어
'성적 주체'로서의 가능성으로

- 결과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피해자를 섹슈얼리티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지닌 '성적 주체'로 보는 것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의식이군요.

전혀 안 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그 부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물론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피해자라고 해서 24시간 피해자로만 사는 건 아니잖아요. 성폭력 가해/피해 자체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와 성적 자기 결정권의 측면까지 살펴서 여성의 성적 억압의 경험을 다양하게 드러내야, 운동이 더 많은 기회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성폭력 피해뿐만 아니라, 교회 여성들이 경험하는 젠더화된 신앙생활 전반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봐요. 사실 여성신학의 젠더 관련 담론들은 매우 급진적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교회 현장에 적용하라고 만든 교단·기구 성폭력 관련 지침·규범은, 여전히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을 말하기보다 '피해자가 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일례로 주요 지침서 내용 중에는, 교회 성폭력을 '친밀 빙자형', '결혼/애정 빙자형', '종교 체험 빙자형', '치유 빙자형', '교육/상담 빙자형' 등으로 유형화해 놨어요. 각 유형별로 구체적인 사례까지 넣어 뒀고요. 저는 처음 이 내용을 봤을 때 무슨 '충격 요법'인가 싶었어요. 이러한 유형화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줄까요? 여성은 교회와 연결되는 신앙생활 전반의 모든 활동에서 항상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이런 유형화에서는 성적 주체로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섹슈얼리티의 자리를 찾아볼 수가 없죠. 그만큼 운동 현장이 안 변한 문제도 있겠지만, 운동이 기존 담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지점도 있다는 거예요.

결국 기독교적 규범과 문화, 신앙생활 안에 여성이 자신을 성적 주체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메커니즘 전반에 관한 연구와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한, 교회 여성은 계속 성적으로 취약한 존재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몸'만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보면서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기독교 조직 전반의 가부장적·남성적·위계적 문화에 도전하지 않는 한, 교회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일상적 신앙 행위와 젠더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비판하지 않는 한, 그리고 기독교 신학 전체를 젠더 관점에서 재해석하지 않는 한 한국적 맥락의 유교적 성 규범과 기독교 전통적 성 이해가 교차하면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이중 삼중으로 작동하는 억압과 폭력을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궁극적으로 여성을 '성폭력 피해자'로, '요보호 대상'으로만 전제하거나 귀결시키지 않고, '성적 주체'로서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침해된 것으로서 성폭력을 개념하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쟁취해 나가는 저항운동이 되도록 더 적극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 (121쪽)

-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이 '성적 주체'로 발화하기 시작한 '미투 운동'을 매우 유의미하게 바라보셨더라고요.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확실히 달라진 것은, 페미니즘이 교회 현장에서 불편하면서도 반가운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는 거예요. 실제로 성폭력이나 젠더 이슈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얘기되고 있잖아요? 각 교단이 이렇게까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회의 테이블에 앉아서 뭔가 논의한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현장에서 미투 운동 덕을 많이 보기도 하죠.

강은정 활동가는 한국교회와 운동 주체들이 미투 운동 이후 발화하기 시작한 '성적 주체'들의 급진성에 더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강은정 활동가는 한국교회와 운동 주체들이 미투 운동 이후 발화하기 시작한 '성적 주체'들의 급진성에 더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피해자들도 이전과 다르게 훨씬 대담해졌어요. 연구 참여자들에 의하면 '왜 내 얼굴과 이름을 가리려고 하느냐, 그대로 내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피해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 주체성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요.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들이 오히려 운동의 선구자죠. 제 생각에 운동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뒤에서 쫓아가지, 앞에서 문을 열 수는 없어요. 피해자의 경험과 맥락에 기반해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고민하는 거죠.

운동이 그런 선구자들을 단지 '피해자'의 자리에 두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가 납작해지지 않도록, 또 그들의 급진성에 잘 부응하도록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말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결정이나 선택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말해야죠. 앞으로는 성적 주체로서 발화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해요. 운동이 '여성의 몸·행위성·주체성' 관해 더 급진적인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피해자들도 더 다양한 이야기를 발화해 주지 않겠어요? 그것이 반성폭력 운동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 아닐까요?

-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진행하실 텐데요. 이번 연재를 통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일단 성폭력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없는, 쉬쉬하는 분위기를 깰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성폭력이라고 하면 '심각하고 극악한' 것들만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쉽게 말하기 어렵고 수치스러운 문제로 여기는데요.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 성폭력은 우리 일상 전반에 걸쳐서 일어나는 문제거든요. 교회 안에서는 이미 성별을 막론하고 물리적으로든 언어로든 시선으로든 구조로든 여러 방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성적 권리 침해가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들을 다루기 어려워하고 있잖아요.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소위 '작은' 성폭력을 쉬쉬하는 공간에서 '심각하고 극악한' 성폭력도 쉽게 일어나요. 문화이고 구조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성폭력을 가해로든 피해로든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우리가 누군가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등에 관한 얘기를 더 많은 자리에서 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성폭력에 대해 말하지 않을 때, 우리가 잃게 되는 기회가 너무 많거든요.

개인적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이런 논의가 필요한 자리에 저를 불러 주시면 좋겠고요. 모쪼록 이번 연재가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에 관심을 갖고,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성적 권리 침해에 대해서도 편안히 말할 수 있게 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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