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그대를 아십니다."
"태초부터 그대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대를 보시며 참 좋았더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창조 섭리 안에서 나는 내 방식대로 아름답고 존엄합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무지개 깃발로 장식한 좁은 천막 안.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기도문을 참가자와 함께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이어 참가자와 맞잡은 손 위로 무지개색 꽃잎을 한 장 한 장 건넸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상에 함께하신다"며 축복한 뒤, 참가자의 손 위로 정성스레 성호를 그었다.

제15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가 6월 17일 '우리는 이미'를 주제로 동성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렸다. 거리에는 성소수자 인권 단체, 각국 대사관 등이 설치한 부스 38개가 마련됐다. 이들은 프리 허그를 하고, 기념품을 참가자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축제가 시작한 정오부터 무지개색 깃발을 두르거나 형형색색 장신구를 착용한 인파로 북적였다. 33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에도 수천 명이 참가해 축제를 즐겼다.

6월 17일 대구 동성로 대중교통지구는 제15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하려는 수천 명의 시민으로 북적였다. 이날 오전 대구시는 행정대집행을 예고했지만, 축제는 예정대로 개최됐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6월 17일 대구 동성로 대중교통지구는 제15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하려는 수천 명의 시민으로 북적였다. 이날 오전 대구시는 행정대집행을 예고했지만, 축제는 예정대로 개최됐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은 함께 사진을 찍고 부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축제를 즐겼다. 아이들과 함께 축제에 참석한 이들도 눈에 띄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은 함께 사진을 찍고 부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축제를 즐겼다. 아이들과 함께 축제에 참석한 이들도 눈에 띄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축제에는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개신교인들도 함께했다. 큐앤에이·로뎀나무그늘교회는 부스를 열고 '무료 타투' 등을 하며 참가자들을 만났다. 이동환 목사는 큐앤에이 부스 안에서 참가자 한 명 한 명과 손을 포개고 '도란도란 축복식'을 진행했다. 축복식에 참여한 20대 개신교인 영(활동명)은 기도문을 교독하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영은 "설교 도중 한 번씩 나오는 혐오 발언 때문에 교회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기독교 동아리에서 퀴어 축제 관련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가 간사님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아는 언니가 다니는 교회 청년부 단톡방에는 '퀴어 축제 반대 집회' 참석자를 모집하는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주류 기독교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존재를 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기독교에서 말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축제에서 큐앤에이·로뎀나무그늘교회는 개신교 부스를 마련해 참가자들을 맞았다. 큐앤에이 이동환 목사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축복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번 축제에서 큐앤에이·로뎀나무그늘교회는 개신교 부스를 마련해 참가자들을 맞았다. 큐앤에이 이동환 목사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축복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축제는 도로 위 부스·무대 설치를 막으려는 대구시 공무원 500여 명과 적법하게 신고된 집회를 보호하려는 경찰이 이례적으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공무원들이 스스로 철수하면서 예정대로 개최됐다.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개막식에서 "폭염이 쏟아지는 날씨에 공무원들이 곳곳에 서 계셔서 무슨 국가 재난이 일어난 줄 알았다. 법원의 집회 금지 가처분 기각결정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시장의 혐오 정치 때문에 반헌법, 반행정, 반인권적인 행정대집행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불법인 사람들이 아니다. 홍준표 시장은 1%의 사람들 때문에 99%가 불편을 겪어야 하느냐고 말하지만, (성소수자가) 0.0001%더라도 대구 시민이고, 0.1%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라고 말했다.

각 지자체의 방해를 겪고 있는 퀴어 문화 축제 조직위원회들도 연대 발언에 나섰다. 경남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민규 위원장은 "올해는 유독 어느 지자체에서 퀴어 문화 축제 방해를 더 잘하는지 겨루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무너지고 물러설 우리가 아니다. 전국 모든 지역에 무지개가 펼쳐지는 그날을 위해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홀릭 위원장은 "적어도 민주주의국가에서 성소수자 축제를 막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공공의 영역을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퀴어한 장소로 만드는 역사 속에 있다"고 외쳤다.

축제가 열리는 동안 동성로 곳곳에서는 보수 교계의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지만, 축제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축제가 열리는 동안 동성로 곳곳에서는 보수 교계의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지만, 축제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보수 교계와 반동성애 단체들은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이건호 대표회장)·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다음세대지키기학부모연합·기독교가치수호연합·대구대현동국민주권침해범국민대책위원회 등은 대구백화점 앞 광장 및 동성로 곳곳에서 서너 시간 동안 집회·시위를 진행했다. 성덕교회·경산중앙교회·충성교회·동신교회·범어교회 등에서 나온 교인 수백 명은 '퀴어(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라고 적힌 흰색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 일렬로 서서 피케팅을 진행했지만, 퀴어 문화 축제 장소와는 다소 떨어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반대 집회 진행자는 참가자들에게 "퀴어 축제와 충돌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퀴어 문화 축제는 퍼레이드로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세 대의 트럭과 함께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대구 도심을 힘차게 행진했다. 반대 개신교인들이 혐오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따라오며 촬영하는 등 훼방을 놓았지만, 참가자들은 이들을 향해 "사랑하세요"를 연호했다. 행렬을 끈질기게 따라온 반대 개신교인 몇 명이 난입을 시도했지만, 곧바로 경찰에 제지당했다. 경찰은 "집시법에 따라 집회 방해를 못 하게 돼 있다"면서 욕설을 하거나 퍼레이드를 방해하는 이들을 차단했다. 평화롭게 행진을 마치고 돌아온 참가자들은 "우리는 혐오에 지지 않는다"며 서로를 격려한 뒤 축제를 마무리했다.

경찰의 보호 아래 참가자들은 대구 도심을 한 시간가량 평화롭게 행진했다. 보수 개신교인들이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오며 촬영하는 등 방해 행위를 벌이자, 참가자들은 "사랑하세요"를 연호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경찰의 보호 아래 참가자들은 대구 도심을 한 시간가량 평화롭게 행진했다. 보수 개신교인들이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오며 촬영하는 등 방해 행위를 벌이자, 참가자들은 "사랑하세요"를 연호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