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는 종교 혹은 종교인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온갖 상투적인 장면과 클리셰적 인간 군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대개 이기적이고, 광신적이다. 권력과 재물과 쾌락을 탐하고, 범죄를 저지르고도 당당히 '셀프 용서'를 선포한다. 또 무슨 모습이 있을까. 아무튼 전반적으로 가까이 하고 싶지도, 기꺼이 알고 싶지도 않은 모습들이다.

언뜻 보면 미디어가 종교를 향해 "너희는 굉장히 유해하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퇴출 선고를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미디어의 이와 같은 비판적 종교 재현을 두고, 누군가는 종교를 탄압하고 파괴하기 위한 미디어의 '악의적 공작'이라며 음모론을 펴기도 한다. 여기에 '의인은 고난을 받는다', '말세의 징조다', '영적 전쟁이다'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골치가 아프다.

그러나 어떤 이는 미디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종교를 발견하는 핵심 장소라고 주장한다. 또한 미디어의 종교 재현·비판을 보면, 미디어가 종교를 없애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종교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이상적 가치와 새로운 대안을 상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진단한다. 미디어의 종교 비판에서 역설적으로 종교를 향한 기대와 요구, 종교의 필요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에서 '미디어와 종교'를 전공해 이 분야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진규 교수(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는 올해 4월 출간한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컬처룩)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다룬다. 기독교인이기도 한 박 교수는 미디어와 종교의 접점을 살피며, 미디어에 종교를 묻는다. 제도 종교가 쇠락해 가는 현실 속에서 '종교란 무엇이며,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필요는 여전한지, 혹은 어떠해야 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미디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박진규 교수를 5월 24일 만나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박진규 교수를 5월 24일 만나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온 책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는 '미디어가 종교를 통해' 무엇을 상상하는지 면밀히 살핀 작업물일 뿐만 아니라, '종교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점하고 있는 사회적 위치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상상해 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종교도, 미디어로 상상할 수 있다.

박진규 교수를 5월 24일 축제가 한창인 서울여자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만났다. 책 내용을 토대로, 저술 동기와 미디어 속 종교가 보여 주는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진단을 들어 봤다. 이번 인터뷰는 저널리즘에 관한 부분을 주로 다룬다. 영화·드라마·엔터테인먼트 등 훨씬 더 흥미로운 부분(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래퍼 '비와이' 얘기도 나온다!)은 책을 직접 읽을 독자들을 위해 남겨 둔다.

- 자기 소개와 신간 소개를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에서 16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미디어학자입니다. 미디어학 내에서도 마이너한 '미디어와 종교'라는 세부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요. 한국언론학회에 속한 종교와커뮤니케이션연구회 연구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벌써 10년 정도 됐는데 이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아직도 맡고 있네요.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인이기도 합니다. '미디어와 종교를 공부하는 사람이자 신앙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미디어학자로서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역시 신앙적인 배경이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고요. 물론 신앙인 정체성을 갖고 이번 책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현대 한국 사회를 이해하려면 종교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서 여러 사례와 근거, 데이터를 통해 미디어와 종교의 접점을 연구했습니다. 2007년 귀국 후 제가 연구해 왔던 내용 중에서, 일부 서사화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엮어 낸 작업물이 이 책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머리말을 보니 '오늘날 종교는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셨다고요.

아마 개인적인 차원에서 종교의 필요성을 물어보면, 오늘날에도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기 삶에서 종교를 빼면 본질이 흔들리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종교적인 열심을 갖고 자기 삶을 꾸려 가는 사람이 여전히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데 같은 질문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묻는다면, 아무래도 긍정적인 답보다는 부정적인 답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살인·테러·폭력 같은 여러 심각한 갈등의 원인으로 종교가 지목되고 있기도 하고요. 한국 사회도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훨씬 높아졌죠. 어떤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벌써 특정 종교에 소속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60%를 넘는 사회가 됐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종교가 오늘날 사회적인 차원에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필요하지 않다'고 답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저는 학자로서 정말 그러한가를 묻고 싶었습니다.

- 그런데 그 답을 '미디어'에서 찾고자 하신 거군요.

세속 사회의 답을 듣고 싶었던 거죠. 세속 사회가 종교에 대해 어떤 합의를 해 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저는 미디어가 좋은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널리즘이든 엔터테인먼트든,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상징 영역에서 종교가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잘 들여다보면, 종교에 대한 세속 사회의 인식이나 종교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를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 / 박진규 지음 / 컬처룩 펴냄 / 268쪽 / 2만 원. 뉴스앤조이 여운송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 / 박진규 지음 / 컬처룩 펴냄 / 268쪽 / 2만 원. 뉴스앤조이 여운송

- 그래서인지 '매개 종교(mediated religion, 미디어 속 종교)'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사용하시더라고요.

현대사회에서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이죠. 우리는 지금 어떤 대상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의미를 만들어 나갈 때 미디어의 매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고 있잖아요. 가령 '2023년 5월 24일 오늘의 현실'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들은, 대부분 미디어가 매개해서 '이게 너의 현실이야'라고 보여 주고 들려준 것들이거든요. 종교도 마찬가지인 거죠. 세속 사회가 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을 찾으려면 미디어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기서 '제도 종교(organized religion)'와 '종교적인 것(the religious)'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요. 우리는 흔히 종교라고 하면 개신교·불교·가톨릭 같은 '제도 종교'들을 떠올리지만, '매개 종교'는 제도 종교뿐만 아니라 훨씬 넓은 의미의 '종교적인 것'도 포함돼요. 제도 종교를 벗어나 있지만 여전히 종교적인 함의를 굉장히 강력하게 갖고 있는 현상들이죠. 이를테면, 세월호나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 제도 종교는 기존의 사회적 위로의 기능을 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매개 종교'로서 그 자리를 채웠죠. 제도 종교가 아닌 언론과 예능, 유튜브 같은 미디어가 '세속 사제(secular priesthood)'로서 대중을 위로했습니다. 종교적인 기능을 하면서 말이지요.

좀 더 학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근대화를 이야기할 때 세속화론을 이야기하잖아요. 제도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렸다고요. 이전에는 서구 사회에 해당하는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죠. 그렇다면 제도 종교가 공적 영향력을 상실했다고 해서 종교 자체의 영향력이 없어지거나 종교가 아예 사라졌을까요? 그건 아니라는 거죠. 제도 종교는 쇠락하고 있지만, 종교가 맡은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니까요. 

그러면 그 종교는 어디에 있느냐.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와 종교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미디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종교를 발견하는 새로운 지점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존 제도 종교가 해 왔던 기능을 매개 종교 현상이 대체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게 본다면, 세속 사회가 합의하고 있는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미디어에 물어보는 것은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종교의 가시성이 크게 높아진 우리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둘째, 향후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전망하는 준거 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셋째, 한국 사회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변화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13쪽)

- 저는 아무래도 미디어 중에서도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요. 세속 저널리즘이 종교를 다루는 방식에서는 어떤 점을 발견할 수 있나요?

우리는 '세속 사회'라고 하면 종교가 아주 배제된, 종교가 없는 상태라고 오해하는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속성이라는 가치와 원리로 운영되고 있는 사회 속에는 종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세속성이 승인하고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속 저널리즘도 종교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루거나 아주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개신교로만 한정지어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저널리즘은 집단으로서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힘이 정치적·사회적 차원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작동하느냐에 관심이 있는 거죠.

개신교라는 일종의 사회제도, 집단의 행위는 저널리즘적인 차원에서 당연히 사회적으로 다뤄야 마땅한 주제입니다. 더군다나 개신교는 그러한 '사회성'에 더해서 '권력성'까지 갖고 있잖아요. 권력 친화적이기도 하고, 스스로 권력 집단이 되기도 했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본령으로 삼는 자유-다원주의 한국 저널리즘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예민하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본령으로 삼은 세속 저널리즘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권력성'을 띠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다. TBC News 유튜브 채널 갈무리
교회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본령으로 삼은 세속 저널리즘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권력성'을 띠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다. JTBC News 유튜브 채널 갈무리

- 저널리즘의 종교에 대한 비판과 칭찬에서 '기대'를 읽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저널리즘을 포함한 미디어는 대개 종교를 비판적으로 그리지요. 하지만 비판을 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속 사회가 종교에 대해 상정하고 있는 어떤 이상적인 모습과 기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으니까 비판을 하는 것이고요. 우리는 비판을 통해서도 기대를 읽어 낼 수 있는데, 저는 이것을 '소극적 기대' 혹은 '역설적 기대'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적극적 기대'인데요. 저널리즘이 종교 혹은 종교인을 칭찬하는 경우에 나타납니다. '종교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이것이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은 이것이다' 하는 세속 사회의 기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대들을 분석하면서 도출한 또 다른 핵심 개념이 '상상'입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 다른 가치와 질서로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상상이 종교를 통해 이뤄지고 있더라는 겁니다.

저널리즘이 종교를 다룰 때는 어떤 패턴들이 나타나는데요. 먼저 현실에 대한 굉장히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평가, 예를 들면,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이 전제된 이후에 종교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가 세상과는 다른 어떤 대안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라는 거죠.

그래서 미디어는 비관적인 세속 사회의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인 가치, 방식, 질서에 대한 상상을 종교를 통해서 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 모습을 보여 주는 종교를 칭찬하고 환호합니다. 반면에 세속 사회와 다를 바 없이 물질주의적이고, 강자의 편에 서고,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종교에 대해서는 아주 신랄하게 비판을 하는 것이지요. 결국 여전히 종교는 필요하다는 것이 세속 사회의 합의이고, 그 역할의 핵심에는 대안과 상상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저널리즘은 현재 한국 사회가 비인간적 경제 모델과 사회적 모순이 만들어 낸 각종 문제로 신음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종교는 그러한 모순에 저항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고, 이들을 향한 위로와 치유에 적극적으로 나설 뿐 아니라, 물질주의적 지배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비물질적 영역과 정신적, 영적 가치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점도 분명히 드러난다. 결국 현재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절망적인 지배적 가치와 질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가치, 질서, 지향점을 제공하는 '대안성'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세속 사회가 종교에 기대하는 사회적 역할의 핵심이다." (167~168쪽)

- 하지만 미디어의 종교 비판에 대한 보수 개신교의 반응은 주로 '억울하다', '일부의 문제일 뿐 실제로는 저렇지 않다', '악의적이다' 따져 묻는 식인데요. 심지어 '영적 전쟁'이라며 '세속 문화'인 미디어를 보지 말라고 얘기하기도 하잖아요.

물론 신학적이고 영적인 논의가 따로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미디어학자의 눈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보수 개신교인들의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한 게 사실이죠. 일부 보수 개신교인은 세속 미디어의 비판을 음모론적으로 받아들이고, 제작자 개인이나 방송국이 마치 악의를 갖고 공격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저널리즘이든 엔터테인먼트든, 미디어가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나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문직주의를 생각하면, 그런 설명은 전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의 경우는 본령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수행하는 것이고, 엔터테인먼트는 애초에 상업성을 목표로 삼고 있는 시스템이거든요. 개인의 악의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상업성과 이윤을 추구하는 구조에서 '종교'를 건드린다는 건 사실 굉장한 리스크를 동반하는 일이에요. 게다가 다수의 신도를 보유한 종교를 건드리는 일은 상업성과 대중성에 엄청난 훼손을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가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런 비판이 이미 사회 일반 대중들의 보편적인 인식에 맞닿아 있다는 확신이 있다는 얘기거든요. 이건 종교가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해야 하는 지점이죠.

미디어를 바라보는 개신교의 다양한 방식 중에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자는 겁니다. 소통은 상호작용이니까 말하기 이전에 잘 듣는 것이 핵심이죠. 그 듣는 통로로서 미디어는 너무나 유용하고요. 다들 소통, 소통 얘기는 많이 하는데, 그런 주장을 잘 들어보면 결국 요점은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을까예요. 소통의 abc를 잘 모르는 겁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교회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들을 수 있고, 동시에 세상의 결핍과 필요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를 배제하고 화내고 억울해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돌아보고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미디어와 종교의 충돌을 사탄이 장악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가 어떤 맥락에 있기에 저런 매개 종교 현상이 나타날까 성찰하고, 귀 기울여 듣고, 반성과 갱신의 기회로 삼아야 하는 거죠.

박진규 교수는 교회가 미디어의 비판을 잘 듣고 소통, 반성, 갱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박진규 교수는 교회가 미디어의 비판을 잘 듣고 소통, 반성, 갱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그렇다면 제도 교회는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세속 저널리즘의 기대에 맞춰 나가야 할까요?

'세상의 소리를 들어라', '그들이 교회에 무엇을 원하는지 잘 읽어 내야 한다'는 말이 반드시 세상이 원하는 것을 다 충족시키고 그에 따라야 한다거나, 의존적이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그 소리를 들을 때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죠. 세상에서 하는 이야기를 다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저도 동의하는데요.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교회가 추구하는 바 사이에 뭔가 접점이 있다면, 혹은 그것이 완전히 다른 방향이 아니라면, 이 얘기를 그냥 비판과 비난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찰을 위한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는 겁니다.

세속 저널리즘이 종교에게 갖는 역설적 기대, 대안성, 상상도 결국은 '세상과 다른 탈물질주의적 삶의 모습, 가치, 질서, 공동체를 보여 달라'는 건데요. 이건 복음이 얘기하는 바와 다르지 않잖아요. 성경을 보면, 초대교회 공동체가 세상의 호감을 산 것도 탈물질적인 삶의 실현이 가능한 것을 보여 줬을 때였고요. 그래서 저는 미디어가 보여 주는 매개 종교의 모습이 소통과 교회 갱신을 위한 접점으로서 굉장히 훌륭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미디어의 종교 재현과 비판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 우리 또 왜곡하는구나', '우리 또 욕하는구나' 이렇게 치부해 버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제도 종교는 세속을 따라갈 것인지 혹은 자신의 종교적 가치에만 충실할 것인지라는 선택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내부적으로 신학적, 정치적 갈등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다양한 매개 종교 현상들을 더 깊이 있게 분석하면, 이는 단순한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다. 종교의 가치와 세속의 가치가 서로 만나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세속을 벗어나 완전히 고립된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면 이 둘의 접점을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종교와 세속의 의미 있는 소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세속 사회 속 종교의 바람직한 역할을 발견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길이 된다." (237쪽)

- 지금까지 세속 저널리즘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요. <뉴스앤조이>와 같은 종교 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일단 종교 저널리즘은 세속 저널리즘과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뉴스앤조이>도 마찬가지이고요. 저는 <뉴스앤조이>가 세속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두지 않고 복음적이면서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근본주의적 보수 일변도의 해석이 아닌 복음주의적인 해석이 중심이 된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있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세속 저널리즘과는 분명히 다르죠. 그러나 세속 저널리즘이 중요시하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기능도 충실히 하고 있죠. 저는 종교 저널리즘도 그런 기본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게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 역할이 있다면, 아까 이야기했던 '상상'과 '대안성'의 발굴입니다. 그건 <뉴스앤조이>가 해 주셔야죠.(웃음)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상상이 필요하거든요. 평신도들이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말에 부화뇌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음을 스스로 읽어 내고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생각해 낼 수 있는 힘이 길러져야 해요. 한국교회 현실에 대한 비관적인 진단에 그치고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기독교 공동체를 떠나지 않기 위해서도 더 나은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상상이 필요하고요. <뉴스앤조이>가 그 상상을 실제로 살고 있는 개인과 공동체들을 더 많이 발굴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대로 가면 제도 종교는 비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무관심의 영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종교와 미디어' 분야 혹은 '미디어와 교회'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제도 종교에 대한 기대는 곧 사그라들 겁니다. 제도 종교에 소속된 신도 수가 줄어든 것도 있지만, 2021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종교를 갖지 않느냐'라고 물었을 때 '관심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54%로 가장 높았어요. 그 비율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관심이 줄어든다는 것은 제도 종교 입장에서 비판보다 훨씬 더 두려워해야 하는 일입니다. 비판은 관심과 기대가 전제돼 있는 것인데, 그 관심마저 사그라든다면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을 거라는 얘기죠.

그러나 동시에 매개 종교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종교 자체가 해야 하는 역할과 기대는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제도 종교가 아닌, 미디어가 매개하는 종교적인 것 혹은 문화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통한 충족을 추구하는 현상은 앞으로 더 많아질 거고요. 그만큼 제도 종교 입장에서는 지금이라도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철저히 쇄신해 나가야겠죠.

박진규 교수는 오늘날 종교의 가치와 필요는 다른 세상·가치·질서를 낳는 '상상'과 '대안성'에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박진규 교수는 오늘날 종교의 가치와 필요는 다른 세상·가치·질서를 낳는 '상상'과 '대안성'에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제도 종교가 사회 속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읽어 내고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 자리는 더 위협받을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종국에는 다른 존재에 내줄 수밖에 없다. 제도 종교의 위기가 곧 종교의 위기는 아니다." (85쪽)

-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일단 학술적인 목적을 갖고 연구한 사례들을 엮어서 책으로 냈지만, 이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바가 단순히 학술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만 유용하지는 않을 겁니다.(웃음)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싶은 일반 대중이 이 책을 통해 미디어에 드러나는 매개 종교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종교 혹은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도 같이 이야기하고 토론할 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진단하는 데 있어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에게 하나의 인사이트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