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송파구에 살고 있던 세 모녀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장애를 안고 있던 두 딸은 수입이 없었다. 어머니의 식당 일로 살아가고 있던 이들은, 낙상 사고로 어머니마저 식당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세 모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봉투에는 월세·공과금과 함께 유서와도 같은 글귀가 써 있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세 모녀는 마지막까지 밀리지 않고 집세를 냈지만,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죄송한 마음이었다. 세 모녀는 무엇이 그토록 죄송했을까?

오늘날 한국 사회는 모두가 입시·취업·승진 등 끊임없는 경쟁과 생존의 환경에 놓여 있다. '각자도생'의 생존 환경 속에서 '능력'이라는 개인의 역량에 온 사회 구성원이 몰두하고 있다. 승자는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느끼고, 패자는 수치심 속에서 자신의 열등함을 탓한다. 많은 이가 공정한 경쟁이라는 잣대를 계속해서 요구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열망은 좀처럼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능력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가난한 자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오로지 개인의 책임이다. 가난한 자는 '내가 지질하고 능력이 없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탓하며, 한없이 위축되고 고립된다. 승자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를 당연시 여기며, 자신이 누리는 삶과 지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부심 가득한 마음에 가난한 자가 느끼는 수치심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패자가 자기 삶의 존엄과 가치를 발견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소유한 자본의 크기에 따라 생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에 "모든 생명이 귀하고 사랑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존재가 있다. <기쁨의 편지>(바람이불어오는곳)의 저자 고 이신근(1978~2022)이다. 그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경쟁의 기회조차도 가질 수 없었다. 희귀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죽음의 언저리에서 삶의 가치를 스스로 묻고 또 물었던 그는, 누구보다도 삶의 가치에 깊은 회의를 느끼던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고백을 이 책에 남겼다. 그는 어떻게 깊은 절망에서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된 것일까.

<기쁨의 편지 - 오늘, 기쁨의 날禧年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 이신근 지음 /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 224쪽 / 1만 4000원
<기쁨의 편지 - 오늘, 기쁨의 날禧年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 이신근 지음 /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 224쪽 / 1만 4000원

고 이신근은 어릴 때부터 알 수 없는 지병을 앓아 오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비운동성섬모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대학 졸업 후 건강이 악화돼 힘든 시기를 보낸 그는,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에서 지원 수련을 받았다. 예수원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했고,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준 '희년함께'를 만났다.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함께 성경의 희년 정신을 실천하기를 소망하는 희년함께 활동가로 일하면서, 희년 사회와 성경의 토지법, 기본 소득과 관련한 여러 편의 글을 썼다.

<기쁨의 편지>는 고 이신근의 절절한 고백이 담긴 책이다. 그는 자신의 생이 직면한 고통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자신의 생이 살 가치가 있는지 치열하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책에 담았다. 그는 자신의 삶이 계속돼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30년 신앙생활을 하며 알아 온 하나님께 진지하고도 치열하게 질문한다. 희귀병으로 고통받으며 주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생의 의미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내가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응답은 의외로 일상 속에서, 화장실을 나오는 순간 찾아왔다.

"신근아, 네가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야."

그 순간 그는 그때까지 몰랐던 구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구원을 받는 이유는 내가 공부를 잘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일을 잘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랑을 받고 있어서구나' 하고 고백하게 된다. 그 후로 기적처럼 건강이 조금씩 회복됐고, 사랑하는 이와 결혼도 하고 예쁜 두 딸도 얻었다. 또한 모든 생명이 귀하다는 성경의 희년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2022년 2월 45세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희년함께'에서 활동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할 생명은 없다."

그의 메시지는 생의 밑바닥에서 자신에게 들린 사랑의 음성이다. 사랑받을 만한, 모든 사람이 가치 있다고 여길 만한 조건에서 들린 음성이 아니었다. 절망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또 찾다가 만난 생생한 음성이었다. 생을 포기할 정도로 고통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는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러니 살아가십시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자신의 생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하나님을 만났기에, 고 이신근은 "어느 누구도 사랑받지 못할 생명은 없다"고 말한다. 그의 신앙과 사상은 구체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모든 생이 가치 있고 사랑받지 못할 생명이 없다는 진리를 모든 사람이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기본 소득 운동과 희년 운동에 집중했다.

"나의 남은 삶을 고통받는 사회를 향해 그동안 외면받아 온 공의를 외치는 데 쓰고 싶다."

그는 하나님이 당신을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세상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모든 생이 소중하다고 여겼기에, 자신의 남은 삶을 고통받는 사회, 고통받는 이웃 모두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공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데 바쳤다. 그의 고백과 실천은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된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그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고립되고 위축된 모든 생명이 귀하다고 말한다. "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사랑의 음성이었다. 저마다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 사회에서, 살아 있는 것 자체로 가치 있다고 말하는 그의 메시지는 능력주의 사회에 저항하는 희망의 몸부림이다. 고 이신근의 생을 건 고백이, 절망 속에서 생의 의미를 물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숨을 불어 넣는 '기쁨의 편지'로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김덕영 / 희년함께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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