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7주기 여성주의 연합 예배가 5월 16일 서울 중구 YWCA회관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7주기 여성주의 연합 예배가 5월 16일 서울 중구 YWCA회관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사건 이후 7년 동안 매해 여성 혐오 범죄의 근절을 위해 기도했지만, 여성 혐오 범죄 사건은 갈수록 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못해 실의에 빠지고, 답답해하는 사이에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을 놓친 것은 아닌지, 고통의 현실을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기억하며 죄를 회개합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강수빈 연구원이 착잡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읽어 내려갔다. 참가자들 사이로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7주기 여성주의 연합 예배에 참가한 약 100명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에 잠겼다.

여성주의 시각으로 드리는 연합 예배가 5월 16일 서울 중구 YWCA회관에서 열렸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에서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올해로 7년째 이어지고 있는 예배다. 교계 여성 단체 24곳이 준비한 이번 예배 주제는 '감히, 사랑!'이었다. '생명'을 상징하는 녹색 옷을 입고 모인 참가자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차별을 당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여성들이 안전한 일상을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예배당 중앙에는 그간 진행된 여성주의 연합 예배 포스터, 참가자들이 문구를 적은 종이 돛단배 등이 놓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예배당 중앙에는 그간 진행된 여성주의 연합 예배 포스터, 참가자들이 문구를 적은 종이 돛단배 등이 놓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여학생회장 방소연 씨는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가 벌어진 이후에도 여성을 향한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꿈과 기대를 안고 캠퍼스 생활을 하던 여학생은 잘못된 욕망과 무력에 희생당해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스러졌다. 심지어 죽음 이후에 가해진 2차 폭력은 끔찍했다. 또한, 안전하게 일을 해야 할 직장에서 스토킹 살인 사건이 일어나 세상이 들끓었다. 수차례 용기를 내 소리 지른 여성들은 오히려 이상한 대우를 받거나, 쉽게 내뱉는 동료의 말, 개선되지 않은 처우와 환경 속에서 위협당하며 지내기도 했다. 묻지 마 여성 혐오 범죄가 또 강남에서 일어나 사회적 공분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여성 폭력을 정당화하는 등 사회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지만, 저항과 연대를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방 씨는 "교회는 사회보다 훨씬 더 뒤처지고 있다. 이웃 사랑을 말한다고 하는 종교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 폭력을 정당화한다. 신의 권능이라는 이름으로 목회자의 그루밍 성폭력, 교회 내 위계질서와 권력관계, 성차별과 성 역할의 강요가 정당화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 만연한 차별과 악함을 계속 드러내고, 저항하며 소리 지르려 한다. 더욱 당당하게 연대하며 용기를 내려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한국YWCA연합회 김나경 목사는 차별과 폭력으로 억압당한 여성들이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기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손수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다 하신 생명, '하와'의 몸과 삶은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었다. 하와의 뒤를 이은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불완전하고 부끄러운 존재로 느끼도록 억눌린 삶을 강요받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때로는 부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죄 없는 자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요 8:7)고 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외치신 차별 없는 하늘나라의 복된 소식은 누군가가 독점하는 비밀이 아니다. 돌과 비난이 아니라 빵과 위로를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우리는 괜찮다"고 말했다.

이민희 목사는 분노를 넘어 사랑으로 나아가자고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민희 목사는 분노를 넘어 사랑으로 나아가자고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설교를 전한 옥바라지선교센터 이민희 목사는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가 여성들이 공동으로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을 말할 수 있게 해 준 사건이라고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비로소 여성들이 '율법주의'와 같은 제도·정책·통념을 꾸짖고 비판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그리스도인은 성서 전체 이야기 속으로 그 사건을 가지고 와 해석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 희생과 아픔이 성서와 우리 전통 안에서 공명하도록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구약의 예언자들 목소리를 빌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 따라, 또 예수와 그가 만난 많은 인물의 목소리로, 우리는 혐오 범죄를 기억하고 다양하게 해석해야 한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미래의 디딤돌을 그리스도교가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여성주의'란 여성성을 모든 조건보다 우선하면서 나머지를 배제하거나 편을 가르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해 모든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이제 여성이라서 살해당하는 사건마저 사랑의 틀로 해석하기를 시도한다. 혐오를 사랑으로 승화하고자 애쓴다. 우리는 맹렬한 분노도, 두려움과 불안도, 우리를 향한 공격과 오해도, 연대와 인간성 확장의 씨앗으로 사용한다. 반복되는 우리의 이 추모가, 매년 기억해 내어 새롭게 해석하는 과거의 사건이, 미래를 열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예배에서 참가자들은 성찬을 나누고, 모든 생명의 치유와 회복을 염원하는 '엘름 댄스'를 함께 추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예배에서 참가자들은 성찬을 나누고, 모든 생명의 치유와 회복을 염원하는 '엘름 댄스'를 함께 추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1시간 반가량 진행된 예배는 여성주의 시각으로 된 기도문·찬양으로 가득 채워졌다. 참가자들은 2021년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5주기 예배 때 발표한 '여성들의 주기-도문'을 읽고, 찬양 '엘리사벳의 노래', '사랑이 이긴다'를 힘차게 불렀다.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펴낸 <한반도에서 다시 살아나는 여성 시편> 6편 '여성 공동체의 기도'를 함께 읽기도 했다. 생명을 위협받고, 젠더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탄원하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특별히 여성 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조력하는 일에 나서겠다. 우리가 외칠 때 더 많은 존재가 안전하고 숨 쉬게 됨을 깨달았다. 세상의 많은 백래시에 함께 맞서며 용기 있게 나아가자"고 외치며 예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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