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평생 공장을 운영해 온 사업가가 신학 서적을 출간했다. 주인공은 신흥지엔티 회장 구자만 장로(76). 정경과 외경, 불교·유교·힌두교 경전을 공부한 결과를 정리해 <하나의 진리, 예수의 가르침 - 도마복음과 사복음서에서 본>(동연)을 썼다.

구 장로는 주경야독의 표본을 보여 준다. 중소기업 생존에 필수처럼 요구되는 거래처 접대와 골프를 마다하고 신학 서적과 경전 읽기에 몰두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종교교육, 강남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경영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부족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4시간 수면 비법>(은광사) 같은 책을 읽기도 했다. 

그에게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은 잘못된 말이다. 신자에게는 믿음이 필요하지만 '믿음만' 필요한 건 아니다. 믿음과 '맹신'은 다르다. 믿음에는 매번 새로 발견하고 알고 다시 믿는 과정이 요구된다. 믿음과 앎이 하나를 이뤄 온전한 사람에 이르러야 한다는 에베소서 본문(4:13)을 구자만 장로는 가슴속에 품고 산다.

그런 그가 수십 년 전 도마복음을 접했고, 몇몇 동양 경전을 함께 읽으며 깨달은 내용을 책으로 냈다. 보수 신학이 강한 한국 교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 장로가 속한 교단이 여성 안수도 불허하는 경직된 신학 기풍을 지닌 곳이라는 점이다. 

구자만 장로를 5월 24일 경기도 안양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실 구 장로는 전날까지 인터뷰를 고사할 생각이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미 몇몇 언론과 인터뷰한 이후, 낯선 기독교인들에게 항의 전화가 걸려 왔다. "기독교인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대화할 줄 모르는 무리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들에게 정중히 토론을 제안했지만 돌아오는 건 일방적인 고성과 비난뿐이었다고 구 장로는 말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오랫동안 공부하며 기록한 메모를 모아 책으로 정리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오랫동안 공부하며 기록한 메모를 모아 책으로 정리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하늘나라 신으로 제한하다

- 흥미로운 책을 내놓았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진리는 하나다'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입니다. 불가분의 진리죠. 그런데 서구적 이원론을 받아들인 기독교는 이분법적 교리를 펼칩니다. 기독교와 타 종교, 유대인과 이방인, 선과 악, 이 세상과 저 세상 등으로 구분 짓고 나누고 있죠. 

저는 현재 기독교가 쇠퇴하는 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동양적 일원론인 하나의 진리로 재해석해서 서구적 이원론으로 왜곡된 현재 교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 책에서 하나님을 '전체성'이라고 묘사했는데요.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을 주객으로 나눈 대상으로 한정해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마복음에서 제자들이 '하나님의 증거가 무엇이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움직임과 쉼이다.' 

저는 이것을 '하나님은 전체성이다'라고 이해했습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기술돼 있습니다.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고, 하나님이 만물에 계시다는 의미이죠. 하나님은 움직임과 쉼, 음과 양, 주관과 객관 이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저는 그래서 하나님을 '창조주' 대신 '창조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무소부재의 하나님, 시공간을 뛰어넘는 분이죠. 과거 서구는 주객을 구분하는 이원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사고관을 지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체성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개념화하고 파편화했습니다."

책에는 좀 더 정제된 설명이 나온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택한 민족으로 사랑하는 편파적인 신이 아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인과 불교인, 선과 악을 똑같이 사랑하며, 시공을 초월한 허공과 같이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은 무량무변한 보편적인 신이다. 마치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人 즉 천지는 만물을 생성화육함에 있어 어진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행할 뿐이다라는 진리와 통한다. 우리는 '선악이란 서로 대립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과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항상 모든 것에 전체적 관점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은 묵상을 통한 부분적 관점이 사라지면 전체적 하나의 신임을 자각하게 된다." (77쪽) 

"하나님(생명)은 모든 곳에 있는 전체성이며, 우리와 하나라는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홀연히 집착을 놓아 버리면 가거나 머무름이 없는 본래의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88쪽)

- 그렇다면 장로님이 생각하는 '믿음', 즉 믿는다는 건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은 헬라어로 피스티스(πίστις)입니다. 체험·관계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죠.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고 말씀합니다. 도마복음 22장에서도 예수님은 둘을 하나로 만들 때 네가 하나님나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시지요. 결국 믿는다는 건, 하나님과 하나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기도할 때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진리와 생명이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죠? 그런데 어째서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을 일상에서는 특정 시점, 특정 장소에 존재하는 대상으로 제한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76세의 나이에도 구 장로는 도마복음과 성경 본문의 장절을 막힘없이 인용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의 눈동자는 나이를 잊은 듯했다. 인터뷰 내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그의 눈동자는 나이를 잊은 듯했다. 인터뷰 내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신학 공부
12년째 매달 자녀들과 독서 토론
"교인들이 변화하는 시대 공부해야"

구 장로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성인이 된 이후 얼마 동안 발길을 끊었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분법적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30대 중반, 성령 체험을 하고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경기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했다. 오순절 교회를 출석하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장로교회로 옮겨 원로장로가 된 지금까지 몸담고 있다.

- 성령 체험 이후 뜨거운 신앙을 갖게 됐는데, 신학 공부도 그때부터 시작한 건가요? 

"작은 개척교회를 다니면서 교회학교 교사를 했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성경을 더 잘 가르쳐 주고 싶어서 연세대 종교교육 석사과정을 밟았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공장과 가까운 대한신학교에서 출강하게 됐는데 대학생들과 토론하다 보니 공부가 더 필요하겠더군요. 강남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해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에게 영향을 준 사람 중 한 분이 <수운과 화이트헤드>(지식산업사)를 쓴 한신대 김상일 교수님입니다.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 교수님과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을 알게 됐죠. 비슷한 시기 도마복음과 불교·힌두교 경전과 노자·장자 등을 공부하면서 '진리는 하나다'라는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진리는 하나다'라는 건 진리가 모든 것을 다 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체 안에서 저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죠.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불이不二의 진리에 이르는 데는 정해진 길이나 방식이 없다는 겁니다."

- 기업을 운영하면서 언제 그렇게 공부를 했나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그때는 공장을 여러 곳 운영하고 있을 때라 시간이 많이 부족했죠. <4시간 수면 비법> 같은 책도 보면서 밤 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공부했습니다. 그때 공부한 게 아까워서 지금도 매일 영어 신문을 읽습니다. 

중소기업이니 여기저기 다닐 일이 많았습니다. 지하철과 승용차 안에서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죠. 지금 생각하면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기업 대표가 외부 인사들 만나면서 접대하고 골프도 치고 그래야 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했으니까요.

마태복음 6장 33절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하나님나라와 진리를 구하는 게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과정에서 거래가 끊임없이 들어와 50년간 기업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장로는 오랜 독서와 공부 끝에 얻은 깨달음을 조심스럽게 한 자락씩 풀어냈다. 그도 자신의 이런 생각을 기독교인들이 좋게 보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이미 경험하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모르는 이들로부터 '어떻게 예수님과 부처를 비교할 수 있느냐'는 항의 전화가 사무실에 걸려 오기 시작했다. 출간 소식을 들은 친구 교인들은 '정신 차리라'고 했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완고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았다. 인자한 미소를 띠며 교인들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다들 자기 한계 속에 머물러 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라며 언제든지 이들과 대화할 마음이 있다고 했다.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의 태도는 진리에 가까워 보였다.

- 책 내용을 교계가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뭐라고 안 하나요? 

"형과 동생 모두 장로인데 일부러 책을 안 보냈습니다. 담임목사님에게만 '학문적인 접근'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책을 전달했는데 실제로 읽어 보셨는지 잘 모르겠네요. 아직까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친구들인 교회 장로들에게도 출간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하더군요. 다들 '정신 차려라', '그러면 안 된다', '벌 받는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저는 '알았다', '미안하다'고 답하고요." 

- 친구 장로님들이 화가 좀 나신 것 같네요.

"몇몇 친구들에게는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할 말이 없는지 '새벽 기도 잘 나가고 있냐'고 묻더군요. 안 나간다고 대답하면 그것 보라고 새벽 기도나 빠지지 말라고 합디다. 왜 우리 신앙의 성숙도를 예배 참석 여부로 재단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해를 위해 공부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실천과 행동으로 나아가야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함께 진리에 대한 책을 보고 공부하자고 하면 화부터 냅니다. 이래서 독선이 제일 무섭습니다. 대화를 아예 차단하니까요.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옳은지 답변 기회조차 허락해 주지 않아요. 무작정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그렇게 묘사할 수 있느냐고 다그치죠."

- 그런 모습을 비단 장로님 주변뿐 아니라 교계 전반에서 쉽게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문상을 위해 어느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교단 총회장까지 지낸 분인데, 그 교회는 화장을 못 하게 하더군요. 부활 때문이죠. 시대가 어느 때인데. 총회장까지 배출한 교회가 그런 정도이니, 문자주의와 맹신이라는 게 이리 무서운 것 같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호 4:6)'는 말씀이 틀리지 않습니다. 신앙은 '무작정 믿음'이 아닙니다. 진리는 '앎(깨달음)'입니다. 알아 가는 과정이지요. 저도 제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도 공부합니다. 12년 전부터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 저녁, 세 자녀와 각 배우자들과 책 한 권을 놓고 토론해요."

- 12년 동안 매달이요? 자제 분들이 더 대단하신 거 같은데요. 

"맞습니다. 고맙죠. 가끔 생각이 달라 부딪치는 부분도 있고, '예수님이 어떻게 구름 타고 오냐', '어린아이가 왜 죄인이냐',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냐', '나는 누구인가', '성경의 영적 해석' 같은 질문도 받습니다. 결론이 안 나가기도 합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저 같은 경우에는 젊은 사람들 생각을 배울 수 있으니 큰 유익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지금은 유튜브 시대이지 않습니까. '믿음'만 강조한다고 믿어지는 시대가 아니지요. 이해와 납득이 필요합니다. 현대물리학(에너지 일원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존의 이원적 교리에 도전하는 이론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인 '하나(One)의 진리'를 열심히 공부하고 폭넓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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