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너의 방 문 앞에 두었어

 

긴 잠 실컷 자고 나오면
그때쯤엔 예쁘게 피어 있겠다(중략)

 

내게 기대어 조각 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 아이유, '겨울잠' 중에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목사님의 부고 전화를 받고부터 이 노래 이 구절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어요. 그날이 봄이 시작되는 입춘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봄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분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함께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분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언제나의 일상처럼 깨어나 우리에게 말을 건네주시길 내심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슬픈 상실의 자리에 목사님이 안 계시다는 게 생경합니다.

2월 4일 별세한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사진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2월 4일 별세한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사진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황망히 목사님을 보내고 빈소에 꽤 긴 시간 앉아 있었어요.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밀려드는 조기와 조화의 이름들을 가만히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여러 교회들, 목사님과 함께 공부한 학교 동문들, 성소수자 단체들, 강정마을의 싸움을 함께한 이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동료들, 사무실을 함께 썼던 그리고 이다음 공간을 함께 그리던 인권재단사람 식구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여성 단체, 다 열거하지 못한 인권 단체와 시민단체, 유기견 보호 활동을 하는 사람들, 가톨릭 사제님들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까지.

당신은 얼마나 많은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과 우정을 나눴던 걸까요. 또 불현듯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차별금지법 농성장에 연대하던 이들의 면면과 놀랄 만큼 닮았더라고요. 목사님의 삶은 단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함께했던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차별금지법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세상의 어떤 사람, 어떤 현장도 가리지 않았고, 나아가 어떤 동물도 가리지 않았으니까요.

2월. 겨울이 떠날 채비를 하고 봄이 인사하는 이 달력에 우리는 또 기일을 적습니다. 목사님, 먼저 가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천국은 우리가 꿈꾸던 세상인지 문득 궁금합니다. 구럼비를 닮은 아주 크고 멋진 바위와 그 앞에 일렁이는 바다, 목사님의 별칭 같은 초록나무들이 우거지고 뭇 생명이 존재의 위협 없이 뛰어노는 그런 곳이겠죠. 마음껏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이 모두 함께 웃겠죠.

목사님, 저희가 잘하는지 지켜봐 달라거나, 당신이 떠나서 슬픈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거나 하는 말씀은 안 드리려고요. 발언 요청, 농성장 방문, 기도회 집전 같은 연락만 드렸던 것 같아서,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려서 이제 아무 부탁도 안 드릴 거예요. 이렇게 목사님 이름을 여러 번 부르는 것도 마지막일 겁니다.

아, 그러나 딱 한 번은 꼭 당신 이름을 부르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마침내 차별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순간이요. 그때 딱 한 번만 저희를 내다봐 주세요. 저희가 차별금지법을 만들고 당신 이름을 부르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농성장 앞에 있는 임보라 목사와 반려견 찹쌀이. 사진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농성장 앞에 앉은 임보라 목사와 반려견 찹쌀이. 사진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저와 목사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눈 카카오톡 대화에서 목사님이 하신 마지막 말이 뭔지 아시나요?

"우리는 우리가 지킨다! 우리가 이긴다!!"

'이긴다' 뒤에 느낌표를 두 개나 찍어 주셨어요. 당신 없는 세상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한 적이 없어서 이다음이 잘 그려지지 않지만, 당신이 마지막으로 찍어 주신 느낌표 두 개의 확신에 기대어 우리는 다시 평등한 세상을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애통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장예정 드림

장예정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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