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강연홍 총회장) 교단의 여성 인권 실태와 성평등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됐다. 기장 양성평등위원회(박인숙 위원장)는 2월 24일 서울 초동교회에서 양성평등정책협의회를 열고 '교단 내 여성 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2010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양성평등 실태 조사 보고서'가 발간된 지 12년 만에 이뤄졌다. 기장 양성평등위원회는 지난해 9월 21일 107회 총회에서 기존 조사가 시행된 지 시간이 오래 흘렀고, 교단 내 성평등 문화를 확산·개선해야 한다며 실태 조사를 허락해 달라고 헌의했다. 당시 일부 총대들은 '성평등'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며 항의했지만, 표결 끝에 그대로 결의됐다.

지난 9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진행된 이번 조사에는 기장 교단 소속 교인·목회자 1455명(교인 1011명, 목회자 439명, 무응답 5명)이 참여했다. 세부적으로는 20대 6.2%, 30대 8.2%, 40대 20.1%, 50대 36.2%, 60대 이상 28.9%, 무응답 0.3% 등으로, 40대 이상 응답자가 85.2%를 차지했다. 신뢰 수준은 95%에 표본 오차는 ±2.6%p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양성평등정책협의회가 2월 24일 서울 초동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기장 양성평등위원회는 교단 내 여성 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참가자들과 토론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국기독교장로회 양성평등정책협의회가 2월 24일 서울 초동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기장 양성평등위원회는 교단 내 여성 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참가자들과 토론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장은 보수 색채가 강한 한국교회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사회참여를 중시해 '인권 교단'이라고도 불린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장 소속 교인·목회자는 인권·평등 의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을 중요한 신앙적 가치로 생각하는 응답자가 94%에 달했다. 교회 내 인권 의식 수준이 높다고 답한 응답도 10명 중 6명(61%)이었다.

성소수자·차별금지법, 임신 중지 등 주요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비교적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성소수자가 성 정체성에 따라 다름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응답은 53.2%로 나타났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은 25.2%였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57.5%로, 반대(19.7%)보다 높았다. '임신 중지는 여성 당사자의 권리이기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문항에는 53.4%가 동의했다. 반대는 29.6%, 모르겠다·기타·무응답은 17.1%였다.

기장 소속 교인·목회자는 교회 내 성평등 수준이 높다고 인식했다. '교회 내 의사 결정이 성평등하게 이뤄진다'는 응답은 59.7%로 나타났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19.7%였다. '교회 안에 성차별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48.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응답은 30.8%였다.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어떤 성별을 선호하는지'에 대해서는, 67.5%가 성별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부교역자 청빙 시에도 81.8%가 특정 성별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여성 목회자가 업무적·정서적으로 남성 목회자와 동등하게 존중받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10명 중 5명(53%)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25.6%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직분별로 상반된 응답이 나왔다. 교인과 담임목사는 각각 33.2%와 39.3%가 교회 내 성차별이 있다고 답한 반면, 부교역자·기관목회자는 67.5%가 성차별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 목회자의 처우에 대한 문항도 교인·목회자 간 응답이 갈렸다. 교인 59.1%는 여성 목회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답한 반면, 담임목사는 45.4%, 부교역자·기관목회자는 31.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기장 소속 교인·목회자들은 성소수자·차별금지법 등 주요 사회 이슈에 대부분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사진 출처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양성평등위원회
기장 소속 교인·목회자들은 성소수자·차별금지법 등 주요 사회 이슈에 대부분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사진 출처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양성평등위원회

기장은 여성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매년 여성 총대는 소수에 그친다. 지난해 107회 총회에서도 총대 630명 중 여성은 66명으로 10.5%에 불과했다. 이러한 총대 현황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응답은 66.8%로 나타났다. 적합한 여성 할당제 비율에 대해서는 응답자 중 44.7%가 30%라고 답했고, 42%가 50%라고 답했다.

목회자의 출산·육아 여건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절대다수가 동의했다. '목회자 출산휴가·육아휴직 제도를 실행해야 한다'는 응답은 88.3%에 달했다. '여성 목회자의 임신·출산 기간 시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응답도 94.4%로 높게 나타났다.

이외에도 성폭력을 예방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교회 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74.6%로 나타났다. '목회자들이 성폭력을 예방하고 상담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93.5%가 동의했다.

이영미 교수는 교단 내 평등 의식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실제 여성들의 참여도는 낮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영미 교수는 교단 내 평등 의식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실제 여성들의 참여도는 낮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조사 결과를 분석한 한신대학교 이영미 교수는 교단 내 여성 인권 의식과 성 인지 감수성이 높게 나타났지만, 실제로는 여성 총대가 소수에 불과하는 등 인식과 실천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했다. 그는 "2010년 양성평등 실태 조사 보고서 발간사에서 한국염 목사는 '우리 교단의 평등 의식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러나 여성 참여도는 비참하리만큼 낮은 현실이다. 우리 기장인들이 신앙 의식과 신앙생활에 괴리가 있음을 뜻한다'고 했다. 그런데 12년 전 문제의식이 제도와 정책에 반영돼 개선된 점은 발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례로 응답자 ⅔ 이상이 교역자를 청빙할 때 특정 성별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실제 여성 목회자들이 교회 안에서 가장 차별을 느끼는 영역은 '목사 청빙'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목회자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은 12년 전 조사에서도 높게 나왔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제도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나 은퇴한 목사에게 6개월간 제공하는 '생활 보장 기금'을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받는 여성 목회자들에게도 지급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교회 내 성폭력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게 나온 것을 두고서는, 이미 교단 내에 마련돼 있는 성폭력 대응 매뉴얼과 의무 예방 교육이 개교회에서 잘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미 교수는 "내가 속한 노회만 해도 성폭력 예방 교육을 진행한 적이 없다. (총회가) 의무화했지만 권고 사항처럼 돼 있는 상황이다. 총회가 지자체의 성폭력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이수한 뒤 확인증을 받게 하고, 미제출할 경우 발언권을 제한하거나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등 강제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응답자 과반이 성소수자 인권 관련 문항에 긍정적으로 답한 것은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교단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총회 안에서 이뤄지는 반대 의견이 과대 포장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별금지법·성소수자 이슈 때문에 기장이 망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준다"고 말했다.

여성 할당제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정옥진 장로(강남향린교회)는 "기장 교인 수가 20만 8307명인데, 여성이 12만 3495명으로 59.3%를 차지한다. 할당 비율이 50% 미만인 것은 의미가 없다. 남녀 동수로 해야 한다. 그것도 싫으면 교인 성비대로 하라"고 말했다.

기장 청년회 전국연합회 김정현 총무도 "2년 동안 언권회원으로 총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매번 처참하다. 나이 많은 남성 목사 위주로 구성되고 다른 목소리는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교계에는 더 이상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늦었기에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총무는 "교인이 2600만 명에 달하는 독일개신교회(EKD)는 2021년 여성 의장이 선출됐는데, 당시 나이가 25세였다. 우리 교단이 독일개신교회처럼 20대 여성 의장을 세울 수 없다면, 전체 총대 중 50%를 청년·여성으로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양성평등위원회 박인숙 위원장은 이날 정책협의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종합해 논의한 뒤, 108회 총회 헌의안으로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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