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결과가 공개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투표 결과가 공개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강연홍 총회장)도 반동성애 광풍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기장 107회 총회 둘째 날인 9월 21일 오후 회무 시간에는, 때아닌 '성평등' 용어 논란으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총회 사회부(김찬수 부장)는 안건 16개를 심의해 총대들에게 보고했다. 사회부장 김찬수 목사가 안건을 읽으면 총대들은 별다른 논의 없이 "허락이오"라고 말하며 통과시켰다. 안건이 연달아 통과되는 가운데, 15번째 안건에서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양성평등위원회가 헌의한 '교단 내 성평등 문화 확산과 개선을 위한 기장 여성 인권 실태 조사의 건'을 허락해 달라는 안건이었다. 한 총대는 급하게 발언을 신청하며 "왜 자꾸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쓰나. 이 용어 때문에 몇 년 전에도 총회가 뒤집어졌다. '양성평등'이 맞다. 양성평등으로 바꿔서 통과시키자"고 말했다.

김찬수 목사는 "사회부 심의 과정에서도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성평등'이라는 말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굳이 확대해석할 필요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 양성평등위가 이렇게 올렸는데 우리가 바꾸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김희헌 목사(서울노회)도 "성평등은 사회에서 사용되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용어다. 솥뚜껑만 보고 놀라는 것 같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교단이 자기 검열 때문에 이런 용어조차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부끄럽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서울노회 향린교회 김희헌 목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서울노회 향린교회 김희헌 목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하지만 일부 총대는 끈질기게 '성평등'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고 아우성쳤다. "성평등은 동성애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이 안건은 표결까지 가게 됐다. 기장 여성 인권 실태 조사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단지 '성평등'이라는 용어 하나 때문에 표결까지 간 것이다. 표결 결과는 188 대 189, 단 1표 차이로 용어를 바꾸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자 성평등 용어 사용을 반대했던 총대들은 이 안건 자체를 폐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원안을 두고도 찬반 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양성평등위원장 박인숙 목사는 "반대가 더 많으면 이 안건은 폐기되는 것인가. 우리 교단이 70주년을 맞아 여성 인권 실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왜 폐기돼야 하나"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일부 남성 총대는 "그만 해!", "들어가!"라고 외치며 비난했다. 

찬반 투표 결과 216 대 160으로 원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기장 총회는 '성평등'이라는 용어 하나 때문에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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