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서평 요청이 들어왔을 때, 연말에 이런저런 일정으로 바쁜 터라 수락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책 제목을 보고 요청을 수락했다. 필자가 전부터 갖고 있던 '성서학자들은 조직신학자들의 어떤 부분이 불편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 책을 펴기 전에 사람들이 조직신학(혹은 조직신학자들)에 대해 갖고 있을 법한 이미지들을 생각해 봤다. '조직신학자들은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 '조직신학은 딱딱하고 어렵다', '조직신학은 건조하고 복잡하다', '조직신학은 실천적이지 않으며 현실과 거리가 멀고 지나치게 사변적이다!'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이 책의 중요한 문제의식은 조직신학에 대한 이와 같은 선입견에 있지 않고, 성서학과 조직신학의 '관계'에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관계에 관한 성서학자의 제언이다.

필자는 책을 읽는 내내 저자 스캇 맥나이트가 신학자들, 특히 조직신학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했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책의 결론 부분에서 제시된다.

"조직신학이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은 오래된 주석적 결론들에 대한 융통성 없는 고집이다. 실제로 성서학자들도 더 오래전의 조직신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전에 조직신학을 형성했던 신약(그리고 구약) 본문에 대한 이해는 때로는 크게 발전했다. (중략)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가장 최근 연구를 계속 따라잡는 일이 필수는 아닐지라도 이전의 해석적 결론에 심각하게 손상을 입히며 큰 기여를 한 연구들 - 은혜에 관한 바클레이의 연구, 이야기에 관한 N. T. 라이트의 연구, 신약성경의 사회적 배경에 관한 특별한 연구들 - 은 조직신학 안에서도 훨씬 더 큰 역할을 해야만 한다." (252쪽)

<성서학자가 신학자에게 바라는 다섯 가지> / 스캇 맥나이트 지음 / 정은찬 옮김 / IVP 펴냄 / 276쪽 / 1만 6000원 
<성서학자가 신학자에게 바라는 다섯 가지> / 스캇 맥나이트 지음 / 정은찬 옮김 / IVP 펴냄 / 276쪽 / 1만 6000원 

요점은 간단하다. 조직신학적 진술의 출발점 혹은 뒷받침이 되는 성경에서 도출된 개념과 내용을 성서학의 연구를 참고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신칭의'가 그러하다. 만약 어떤 개신교 조직신학자가 제임스 던을 비롯한 신약학자들이 이룩한 바울 연구의 주요 결과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 행함과 믿음의 관계를 논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는 자신의 신학적 전통에 속한 종교개혁자들의 칭의 개념에 근거해 '율법의 행함'을 믿음과 대립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제임스 던에 의하면, 바울이 주장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움(이신칭의)'의 원래 의도는 그렇지 않다. 바울은 율법을 행하는 것이 복음을 믿는 것과 상반된다거나, 율법이 믿음보다 열등하므로 폐기하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율법에 근거한 '민족적 특권 의식'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신약학 연구들은 조직신학자들이 당연하게 상정하는 신학적 전제와 개념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수정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복음의 일관성과 체계성을 갖춘 '조직적인' 신학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서학과 조직신학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조직신학자를 향한 저자의 다섯 가지 제언을 이해하기가 한결 더 쉬울 것이다. 저자의 제언들은 다음과 같다.

"(1) 신학은 끊임없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2) 신학이 성서학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신학은 역사에 기반한 성서학을 알아야 한다. (4) 신학은 더 많은 서사를 필요로 한다. (5) 신학은 살아 낸 신학이 되어야 한다." (39쪽)

가장 먼저 논의할 문제는 신학자가 성경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 1장에서 '성경 중심적 태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필자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한다. 그것이 단순히 성경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을 넘어, 성경 해석과 신학적 진술 간의 역동적인 해석학적 상호작용을 의미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성경에 접근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신학을 가지고 있고, 반대로 우리가 신학을 구성하기 전에 성경이 이미 우리의 신학을 구성한다. 우리는 이 둘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의 성경 해석과 신학적 선이해가 그만큼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는 조직신학뿐 아니라 다른 모든 신학 분과의 연구가 성경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경험을 이어 주는 계시적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성경이 가진 궁극적 권위는 '문자적으로' 오류가 없다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어 주기에 충분하며 완전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긴장이 있다. 한편으로 성경 중심적 태도가 어떻게 '성경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신학이 어떻게 성경과 무관한 '신학 아닌 신학'이 되지 않으면서, 그 해석적 다양성과 확장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는 신학자가 성경에 접근하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이에 관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신학자들, 특히 성서학자들이 성경을 다루는 방식으로, 회귀 모델(retrieval model)과 확장 모델(expansive model) 그리고 이 둘을 종합한 통합 모델을 제시한다. 저자는 통합 모델을 통해, 성경에 충실한 주석적 연구와 더불어 성경의 해석적 확장성을 갖춘 신학 연구의 바람직한 예를 보여 주려 한다. 특히 잘못된 "성경주의"를 비판하는데(76쪽), 이것은 성경 연구와 신학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성경과 단지 성경에만" 집중하는(79쪽), 다시 말해 다른 신학에 대해 폐쇄적인 "집굴뚝새"의 신학 연구 방법이다(81쪽).

저자는 이러한 잘못된 성경주의가 개인적 성경 연구를 절대화함으로써 오히려 각각의 신학적 주장만 난립하는 "신학적 무정부주의"를 가져온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82쪽). 이 부분에서 성경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성경에 충실한 해석은 신학(혹은 조직신학), 곧 "교회의 신학적 지혜를 따라 형성되고 신학적 무정부주의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90쪽). 우리는 저자의 주장을 통해, 성경 연구가 신학적 지혜에 귀를 기울인다면 성경 중심적 신학을 구성할 수 있음은 물론, 그 해석적 다양성과 확장성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다음으로 성서학과 조직신학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직신학자든 성서학자든 다른 신학 분과에도 폭넓은 관심을 갖고 연구 동향에 기민해야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신학자는 자기 분야만 해도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더 나아가 오늘날 신학 연구자들은 신학만 연구하지 않는다.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ty)라 해서, 신학 외에 다양한 학문 분과와 대화하고 연구하는 데도 힘을 쏟는다. 그래서 정작 신학 분과들(특히 조직신학과 성서학) 사이에서 활발하게 소통·협력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조직신학·성서학 연구자들이 서로 필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저자는 2장과 3장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조직신학은 성서학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조직신학 역시 성서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제언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신약학과 조직신학의 연구 내용들을 풍부하고 면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2장에서 저자는 성서학에 "교회의 신앙"(95쪽), 곧 니케아 신경과 칼케돈 신경으로 표현되는 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제임스 던, 래리 허타도, 리처드 보컴 등 주요 신약학자들의 기독론 연구 동향을 살펴보고, 웨슬리 힐, 매튜 베이츠, 매디슨 피어스와 같이 성서학과 조직신학 사이의 관계에 크게 기여한 학자들의 연구 내용도 제시한다.

저자는 특히 삼위일체 교리에 주목한다. 초기 기독론 연구에 중요한 전환을 가져온 웨슬리 힐을 예로 들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기독론을 이해할 때 성자의 성부에 대한 종속이 아닌 삼위일체론적 관계망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바울서신보다 뒤늦게 성립된 삼위일체 교리가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역으로 바울서신 본문을 해석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저자는 3장에서 "조직신학에는 주해와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지나치게 적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조직신학이 주목해야 할 최근 성서학 연구 성과들을 제시한다(135쪽). 이러한 연구 성과들은 조직신학 연구의 방향과 성격을 바꿀 만한 것들이다. 4장에서는 3장의 주장을 더 밀고 나가, 조직신학에 더 많은 '서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저자가 제안하는 서사란 성경을 근거로 한 "신정 시대, 왕정 시대, 그리스도 통치 시대(하나님이 다스리심, 왕이 다스림, 그리스도가 왕으로 다스리심)의 세 장면으로 구성된 서사"를 말한다(187쪽).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살아 낸 신학이 아닌 신학은 충분하지 않음을 주장"한다(201쪽). 이 부분은 이 책에서 성서학의 활약이 가장 돋보이는 지점으로, 저자는 특별히 로마서 12장 1~2절을 해석하면서 "삶의 방식을 구체화하지 않는 어떤 신학도 신학이 아니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뒷받침한다(250쪽).

종합하자면, 성서학자가 조직신학자에게 전하는 이 다섯 가지 충고가 가리키는 바는, 이 두 신학이 서로를 향해 귀 기울여 듣는 관계의 필요성과 가능성이다. 저자는 단순하게 성경이 중요하니 성서학으로부터 배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서학 역시 조직신학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성서학의 발전에 조직신학이 우선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조직신학 역시 성서학의 도움으로 계시적 원천이 되는 성경의 내용을 더 분명히 알 수 있으리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통해서 기존에 당연하게 여겼던 신학적 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수정하는 자세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것은 마치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잠 27:17).

성서학과 조직신학은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이 세계에 전달하는 '신학'에 봉사한다는 점에서 서로 같다. 이렇게 다르면서 같은 두 분과가 맺는 '관계'를 인식할 때, 각자의 전문성을 날카롭게 하면서도 우리의 그리스도교신학을 빛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스캇 맥나이트의 책 <성서학자가 신학자에게 바라는 다섯 가지>에서 배운 교훈이다.

안규식 / 연세대학교에서 조직신학·문화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이며 생명사랑교회 교육목사로 일한다. 번역한 책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다 - 고린도전서>·<바울이라는 세계>(이레서원), <신학의 역동성>(대한기독교서회, 공역)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Ⅱ>(도서출판100, 공저)가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