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충청남도 인권기본조례와 학생 인권조례가 폐지 위기에 놓였다. 조례 폐지 청구안을 낸 사람은 충청남도기독교총연합회(충남기총) 총회장 안준호 목사(열매맺는교회). 안 목사는 지난해 8월 22일 인권기본조례가 "잘못된 인권 개념을 추종하고 있다"며 폐지를 청구했다. 인권기본조례가 기반한 '충청남도 도민 인권 선언(2014년 제정)'이 다양한 가족 구성,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제1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안 목사는 학생 인권조례와 관련해서도 "담배·술·음란물 등 지도가 곤란하고, 동성 섹스, 임신, 출산, 교사·부모 고발, 교실 산만, 학력 저하를 조장"한다며 "다음 세대의 성장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게 하고 부모와 교사에게 순종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행태는, 부모로서도 신앙인으로서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두 조례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청구안을 심의할 충청남도 도의회 의석 중 75%를 국민의힘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국민의힘 36석, 더불어민주당 12석).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2018년 5월 충남 인권조례를 폐지한 전력이 있다. 전국 광역 자치단체 중 인권조례가 최초로 폐지된 사례였다. 이 당시 충남기총은 조직적으로 집회를 열어 도의원들을 압박했다. 현재 발의된 청구안은 같은 해 10월 더불어민주당 도의원들 주도하에 다시 제정된 '충남 인권기본조례'를 폐지해 달라는 것이다. 2월 25일까지 충청남도 인구 180만 2291명 중 1/150인 1만 2016명의 온·오프라인 서명을 받으면, 상임위원회 심의를 거쳐 본회의 표결에 부치게 된다.

2018년에 이어 또다시 인권조례 폐지에 나선 충남기총에 공개 토론을 제안한 이들이 있다. 노동당 충남도당 이백윤 위원장, 안창준 사무처장이다. 이들은 지역 주민들의 인권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판단에서 공개 토론을 요청했다. 충남기총이 토론 제의를 공식 수용하면서, 양측은 현재 토론회 날짜·방식 등을 조율하고 있다.

이번 공개 토론을 놓고, 일방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교계와 토론하는 게 타당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애당초 동성애는 찬반 토론의 대상이 아니고, 교계가 내놓는 주장 중에는 허위·왜곡도 포함돼 있는데, 이런 내용이 공개 토론을 통해 확산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토론을 기획한 두 사람은 우려되는 지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혐오 선동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동시에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공개 토론의 실익이 크다고 봤다. <뉴스앤조이>는 1월 12일 노동당 충남도당 이백윤 위원장과 안창준 사무처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노동당 충남도당 이백윤 위원장(사진 오른쪽)과 안창준 사무처장. 뉴스앤조이 나수진
노동당 충남도당 이백윤 위원장(사진 오른쪽)과 안창준 사무처장. 뉴스앤조이 나수진
혐오에 무방비로 노출된 지역

이백윤 / 제가 오늘 울산에서 올라왔는데, (한 기독교인이) 천안아산역 앞에서 성소수자 혐오 전단지를 나눠 주고 있더라고요. 주말에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에도 그런 선동을 하는 분이 계세요. 교회 앞에는 차별금지법 반대 현수막이 몇 달씩 붙어 있고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일상적으로 있고, 도민들은 거기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어요. 그런 장면을 성소수자들이 보고 상처를 받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개인이 차마 대응하지는 못하죠. 그래서 지역 전체적으로 좀 보수화해 가는 경향이 발생하고 있어요. 이런 현상이 일어난 데는 충남기총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이백윤 위원장과 안창준 사무처장은 지역 주민들의 인권이 '위기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지역 보수 교계를 중심으로 한 혐오가 주민들에게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일상화한 혐오가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인권조례·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였다.

충남 인권조례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2012년 처음 제정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보수 교계와 반동성애 진영의 공격을 받았고, 2018년 결국 폐지됐다. 그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이 충남기총이었다. 지역 개신교 연합 단체인 충남기총은 인권조례 폐지 기도회를 수차례 개최하고, 보수 성향 도의원들과 만나 인권조례 폐지 필요성을 알렸다. 보수 개신교를 등에 업은 도의원들은 이들의 반대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정치권이 지역 보수 교계의 주장에 그대로 편승하는 모습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후보 시절 '구국 기도와 반성경적 악법 제정 반대 결의 대회'에 참석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인권조례를 손보겠다고 했다. 취임 후에는 조직 개편안을 내고 인권증진팀을 없애기도 했다. 인권조례 폐지 청구안과 관련해 '논란'이 있다는 이유였다. 박정식 충남도의원은 충남기총의 학생 인권조례 폐지 청구안과 별개로 의원 발의에 나서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백윤 위원장은 보수 교계를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 혐오가 지역 주민들에게 일상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받았다는 성소수자 혐오 전단지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성소수자인 안창준 사무처장은 고등학생이던 2018년, 보수 교계의 주장을 정치권이 그대로 받아 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밀리더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밀리지는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위원장은 주민들에게 오염된 정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권조례를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노동당이 충남기총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혐오 세력에 마이크를 쥐어 주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두 사람도 이 같은 고민을 안 한 게 아니다. 토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공개 토론을 보면서 토론을 제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토론을 통해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이 대중에게 좀 더 알려졌고, 일부나마 우호적인 여론을 이끌어 낸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안창준 / 혐오를 적극 주장하는 이들이 스피커를 아예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한다', '인권은 오히려 더 확산돼야 할 가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어요.

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동성애 반대' 논리와 맞닿아 있다.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한다는 식이다. 이는 시민사회에서 이미 여러 차례 기각된 바 있다. 이 위원장과 안 사무처장도 인권조례 폐지 주장은 편견·왜곡에 기반한 선동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토론회의 목적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있지 않다고 했다.

이백윤 / 보수 교계를 설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지역 주민들이 혐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잖아요. 보수 교계의 성소수자 혐오는 자극적인 언사로 반복되고 있는데, 구체적인 근거나 논리적 정합성이 제대로 다뤄진 적은 없어요. 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주민 모두가 볼 수 있는 공론장에서 다룬다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릴 수가 있겠죠. 주민들이 성숙한 판단을 내리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까지 사라진다면

전국 지자체에 제정된 인권조례는 지역 주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각 항목을 살펴보면 지자체가 인권 보장 업무를 하기 위한 포괄적인 실무 지침에 가깝다. 여기에는 보수 교계가 우려하는 '성소수자' 표현이 나와 있지 않다. 차별 행위를 금지할 규정력·강제력도 부족하다.

그런데도 보수 교계와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틈만 나면 조례 제정을 막고, 폐지 운동에 나선다. 이 위원장과 안 사무처장은 이들이 실제 조례로 피해를 봐서가 아니라, '인권 제도'라는 기표를 공격 대상으로 삼아 줄어드는 교인들을 결속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백윤 / 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 등 사회에서 소수자로 존재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는 결국 실제로 선동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의 차별을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가게 돼요. 그런 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개신교의 혐오 선동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조례는 지역 주민들의 삶과 인권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 지자체에서는 정권에 따라 인권조례를 비롯해 인권 관련 부서·기관을 축소·폐지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전환할 방법은 없을까. 이 위원장과 안 사무처장은 지역 주민들이 혐오 정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고 했다.

안창준 / 이제는 어느 정당이 도의회에서 의석을 얼마나 차지하느냐 같은 차원의 문제보다, 지역 주민들이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게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보수 정치권과 극우 진영의 선동은 사실 오래 이어져 온 일이라, 일순간에 극복할 방안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주민들이 정치를 견제할 수 있는 기획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진보 정당과 대안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안창준 사무처장은 인터뷰 도중 주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안창준 사무처장은 인터뷰 도중 주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몇몇 시민단체는 인권조례가 폐지되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조례를 다시 제정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위원장과 안 사무처장은 인권조례 자체보다, 조례를 제정·폐지하는 과정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 사무처장은 "제도 하나가 폐지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 일부 구성원들이 고통받고 점점 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계기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창준 / 인권조례만큼이나 조례가 만들어지고 폐지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봐요. 인권조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권에 대한 합의 수준이 올라가기도 하고, 폐지되는 과정에서 무너져 내리기도 하니까요. 특정한 집단을 타깃으로 삼아 인권을 후퇴시키는 공격이 또다시 성공하는 사례가 생긴다면, 그다음에는 누가 공격의 대상이 될지 모르죠.

이들은 이번 공개 토론을 통해 지역 내 성소수자들이 '함께할 사람들이 있구나', '괜히 목소리 냈다가 나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겠구나'라고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면서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백윤 / 그동안 약자와 함께하는 종교, 몸소 실천하는 종교인의 자세를 보면서 존경스럽기도 하고 본받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요. 일부 교회가 그것에 정면으로 반하는 방식으로 혐오를 노출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덧붙이자면, 저희가 충남기총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지만 개신교 전체에 책임을 따져 물으려는 건 아니에요. 개신교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혐오에 반대하는 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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