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Fontes. '근원으로'라는 뜻을 지닌 이 명제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부흥의 원동력이었을 뿐 아니라 성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함으로써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됐다. 종교개혁 이후 50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교회가 종교개혁의 유산과 가치를 되새기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Ad Fontes' 정신, 좀 더 종교개혁스러운 표현으로 하자면 'Sola Scriptura(오직 성서)' 정신은 실상 목회 현장과 신학교의 슬로건으로만 남아 있을 뿐 찾아보기가 어렵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서를 보다 더 잘 해석하기 위해 고전어(성서 원어)를 공부했고, 그 결과로 성서 번역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신학교에서 히브리어·헬라어는 졸업을 위해 필요한 요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신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이 '내가 정말 이 길을 가야 하나' 처음 고민하게 되는 시기는 아마 히브리어·헬라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가 아닐까 싶다. 필자의 경우 학부 때 헬라어 스터디를 자주 지도했고, 많은 학생을 가르쳐 왔기 때문에 원어 공부가 학생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서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목회자가 될 사람에게 원어 공부는 필수적이다. 평신도 중에서도 성서와 배움에 열정이 있는 분들은 신학교 수업이나 원어 스터디에 지원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신학교를 졸업한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면, 이처럼 열정 넘치는 평신도들이 원어에 대해 질문할 때 답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는 최소한 돼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중에 나와 있는 설교집·주석서를 참고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회자·신학자는 단순히 다른 사람의 성서 해석을 그대로 답습하면 안 된다. 사도행전 17장에 등장하는 베뢰아 사람들이 성서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치열하게 비평하고 질문했듯이, 목회자·신학자는 다른 이의 성서 해석과 설교를 받아들이더라도 적절한 비평을 거친 후에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비평과 판단의 기준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원어'를 통한 성서 해석이다.

<신약 그리스어와 주해의 보석> / 벤자민 L. 머클 지음 / 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288쪽 / 2만 2000원
<신약 그리스어와 주해의 보석> / 벤자민 L. 머클 지음 / 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288쪽 / 2만 2000원

이런 측면에서, 최근 출간된 벤자민 L. 머클의 <신약 그리스어와 주해의 보석>(감은사)은 말 그대로 보석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헬라어를 공부하면서 늘 고민스러웠던 점은 기초 헬라어 수업을 막 마친 학생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책이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 대니얼 월리스의 <월리스 중급 헬라어 문법>(IVP)가 시중에 번역돼 나왔지만, 필자가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중급 헬라어 교재 중에는 번역된 책이 없었기 때문에 월리스의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를 원서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기초 헬라어 문법책을 2번 되풀이해 공부했지만 여전히 헬라어 문법 체계 전체 맥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우리말이 아닌 원서로 된 중급 헬라어 책을 보는 일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신약 그리스어와 주해의 보석>은 나의 오랜 고민을 해결해 줄 만한 책이다. 기초 헬라어를 공부한 이후 중급 헬라어 책들을 읽기 전에 참고한다면 매우 튼튼한 가교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일단 각 챕터가 짧고, 문법도 간결하게 잘 설명돼 있을 뿐 아니라, 성서 본문 예시가 함께 있어 가독성이 높다. 언어 공부는 무엇보다 자주 들여다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설명도 간결하고 책도 가벼워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반복해 보기에도 좋다. 각 챕터에서 다루는 성서 원문을 찾아 비교하고, 책이 안내하는 해석 사항을 적용하고, 어떤 것이 더 적절한 해석일까 생각하며 읽는다면, 빠른 시간 안에 헬라어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헬라어 뉘앙스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논의 대부분을 담아내고 있다. 그 예시로 몇몇 챕터를 소개해 보자면, 첫 번째로 명사의 '격'을 다루는 3~7장이다. 해당 챕터는 헬라어에 사용되는 '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하고 있다. 헬라어 기초를 마치고 처음 원어 성서를 펴면, 우리가 기본 문법에서 다룬 '소유격(~의)', '여격(~에게)', '대격(~를)'만으로 해석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여격의 경우 '~에게'뿐 아니라 '장소(~안에서)', '이익 또는 불이익의 방향성(~을 위해)' 등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모든 예시를 다룰 수는 없지만 기초 공부를 마치고 원어 성서를 폈을 때, '격' 해석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넘어서는 데 이 책의 해당 챕터가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18장에서 다루는 '가정법', 21~23장에서 다루는 '분사', 24장의 '부정사'에 대한 정리다. 학생들이 기초 헬라어를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분사의 경우 외워야 하는 표의 양이 많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해석의 가능성이 너무 넓다는 점이다. 그만큼 어렵지만 역설적으로는 헬라어 공부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챕터이기도 하다. '분사', '가정법(ινα)절', '부정사절' 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니, 현재 번역돼 있는 한국어 성서의 문자를 넘어 해석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물론 마구잡이식 해석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신학적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신약 그리스어와 주해의 보석>는 헬라어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어, 성서 본문과 함께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세 번째는 단어의 의미에 대한 연구 방법을 다루는 부분이다. 사실 우리는 원어의 어원 등을 파헤쳐서 그 단어 자체가 가진 심오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때가 많다. 그 방법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해당 성서의 저자가 그 단어를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작업이다. 더 나아가 70인역(LXX)과 신약성서에서 해당 단어가 어떤 맥락,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한국어 성서 히브리서 11장 21절은 야곱이 '지팡이 머리'에 의지해 경배했다고 번역하고 있다. 번역된 단어 자체만 보면 '야곱이 나이가 많을 때까지 하나님께 예배했나 보다' 생각하고 무심코 넘길 수 있다. 하지만 70인역의 창세기 47장 31절에 '침상 머리'로 번역된 단어가 '지팡이 머리'로 번역된 히브리서의 단어와 같은 헬라어 단어라고 한다면, 기존에 우리가 느끼던 감성과는 조금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헬라어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단어 연구를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원어 공부를 어려워하는 신학도들에게 그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얻었던 팁들을 공유하고 서평을 마치려 한다. 첫 번째로 매우 당연한 얘기지만 원어 읽기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언어는 계속 써먹어야 실력이 향상된다. 희망적인 점은 우리가 바울처럼 헬라어로 편지를 쓰거나, 설교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냥 읽을 수만 있으면 된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면 되고, 파싱이 어렵다면 성서 주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심지어 신약성서 전체가 파싱된 무료 어플리케이션도 있다).

기초 헬라어 문법을 2회 정도 공부하고 나면, 과감하게 요한복음을 펴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1장부터 떠듬떠듬 읽어 가라. 만약 당신이 포기하지 않고 요한복음 21장까지 도달하게 된다면, 헬라어를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친숙한 성서 해석 도구로 여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두 번째로 문법 체계에 지나치게 함몰되지는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우리의 목표는 헬라어로 성서를 읽고 성서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지, 헬라어 '문법'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문법 공부가 아니라 해당 문법이 가진 문맥적 의미를 파악하는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이때 <신약 그리스어와 주해의 보석>의 도움을 받고 좀 더 고급 문법서들을 참고한다면 보다 실용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목회자·신학자는 늘 신앙의 원천인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의 해석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말고 성서와 치열하게 씨름해야 한다. 물론 원어를 잘하는 것만이 좋은 목회자· 신학자의 판단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원어를 통해 우리의 언어가 가진 한계를 넘어 외연을 확장할 수 있고, 보다 탄탄한 근거에 기반해 성서를 정교하게 해석할 수 있다.

원어를 공부함으로써 그동안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겠다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원어를 공부하며 느끼는 생생한 뉘앙스를 통해, 성서 저자들이 가졌던 교회를 향한 마음을 느끼고, 그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바다. 그 걸음의 디딤돌이 돼 줄 <신약 그리스어와 주해의 보석>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다.

김태영 / 신학교 졸업 후 세법을 공부하고 있는 고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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