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월드컵 시기 가장 뜨거운 말입니다.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16강 진출이라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이 태극기에 적어 보여 준 인터넷 밈(meme)이 계속 회자되며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기나긴 팬데믹의 터널 끝자락에서 <교회를 선택한 사람들>(IVP)을 읽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은 시대입니다. 내·외부에서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들려옵니다. 솔직히 이제 지치기도 합니다. 사회와의 단절과 배타성, 목회자의 비윤리적 삶 등 비판할 거리는 많지만 희망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꺾이지 않는 마음'만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를 선택한 사람들>은 2020년 여름, 교회에 출석한 지 5년 이내인 새 신자 458명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듣고 엮은 책입니다. 정재영·김선일·송인규·이민형·정지영 등 복음주의 지식인과 사회과학 연구의 대가들이 모여 다각도의 자료·도표를 제시한 이 책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저자들은 새 신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 데 방해가 된 요인으로 "교회의 부정적 이미지", "교인들의 배타적 태도"가 높게 나왔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이 책의 메시지는 희망적입니다. 그럼에도 새 신자는 계속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이들을 통해 새 신자 사역과 전도 사역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교회를 선택한 사람들 - 탈교회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회심하고,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정재영 외 지음 / IVP 펴냄 / 236쪽 / 1만 5000원
<교회를 선택한 사람들 - 탈교회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회심하고,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정재영 외 지음 / IVP 펴냄 / 236쪽 / 1만 5000원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신자 유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교회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탈교인의 수만큼은 아니라도 매년 일정 정도의 새로운 신자들이 교회를 방문하고 있다." (12쪽)

야, 너도 전도할 수 있어

이 책을 읽고 나니, 전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전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황당하게도 애써 전도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저자들에 따르면, 새 신자들은 전도지를 통한 일방적 전도가 아닌 가족 및 친척을 포함한 '관계 전도'를 통해 기독교인이 됐다고 합니다. 이 책은 소그룹 모임을 통한 전도 등 새로운 길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관계'라는 것이죠.

교회 밖으로 향하는 행사에 집중하기보다, 교회 안에서 교인간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된다면 인력이 작용할 것입니다. 거기에 이웃을 향한 관심 한 스푼만 더 얹으면 됩니다. 교회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 이웃에게 하나님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리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새 신자로 말하게 하라!"(113쪽)는 구절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는 무언가를 계속 주려고 합니다. 목사님이 설교하고, 성도들은 듣습니다. 위에서 가르치고 훈계하면, 아래에선 그 말을 듣고 반성하며 자기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새 신자들의 목소리가 경직된 교회 문화에 균열을 내고 환대의 문화를 형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이 말에 적극 동의합니다. 다름을 수용하고 기다리는 공동체는 하늘이 아닌, 땅에서부터 출발하니까요.

또 새 신자들은 성경 공부가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아무도 권하지 않았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고인 물' 신자 입장에서는 성경 공부가 낡고 지루한 것일 수 있지만, 새 신자에겐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가는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믿음을 가지게 된 데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특정한 것보다는 전반적인 교회 사역과 생활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성경 공부'가 도움이 되었다는 비율이 19.5%로 가장 높았는데, '복음의 유익과 믿는 방법의 논리적 설명'(7.7%)까지 더하면 '공부'가 27.2%로 여러 방법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41~42쪽)

신자들은 전도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전도를 할 만큼 내 신앙이 깊지 않아서"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어느 정도 다녀 본 사람이라면, 이 겸손의 멘트가 어떤 뉘앙스로 사용되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전도는 늘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공동체를 세우는 일의 중요성을 말하며 "야, 너도 전도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줍니다.

회심과 공동체
역사를 돌아보고 내일로 나아감

책의 후반부는 회심에 대해 말합니다. 저자들은 한국교회의 회심관이 개인의 특별한 사건에 집중한 탓에 즉각적 회심만이 강조됐고, 신앙이 지나치게 사사화됐으며, 교회교(churchianity)적 풍토 아래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합니다. 한국교회에서 회심은 '개인'만의 것이고 결과물은 '교회'만의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가 강조되지 않는 것이죠. 신앙의 사사화는 개인의 회심이 사회적 책임감으로 연결되고 하나님나라 시민으로 사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야말로 교회 중심주의입니다. 이 책은 한국교회가 조직체로서의 교회에만 신경 쓰고, 모이는 공동체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교회의 양적 성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뼈아프게 지적합니다. 사사화된 회심과 교회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을 재고하게 만들고, 하나님나라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소개합니다.

"물론 회심관과 관련한 이 과제는 쉽지 않고 또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목표와 방향이 선명하게 드러난 이상 주저하거나 회피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171쪽)

<교회를 선택한 사람들> 마지막 부분에서는 한국교회 회심 담론의 변천을 시대별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출판계 서적들을 소개합니다. 국내 기독 출판의 역사를 통해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죠. 이 책에 따르면, 1970년대 산업화·도시화와 함께한 성장의 시대에는 우치무라 간조, 존 번연, 찰스 피니 등 개인의 회심에 집중한 책들이 소개됐습니다. 1980년대에는 민주주의의 성장과 함께 한국교회 안에도 존 스토트와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소개되며, 개인의 회심뿐 아니라 사회 선교가 논의됩니다. '총체적 선교'라는 개념이 이때 등장합니다. 그러나 199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한국교회는 세상을 좇다 흔들리게 되는데, 이 시기에는 마틴 로이드 존스로 대표되는 복음주의의 내면화, 회심주의로 회귀하게 됩니다. 후에 C. S. 루이스도 소개됐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2000년대에는 영성화·탈교회화가 이뤄지는데, 이 시기 대표작으로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꼽고 있습니다. 번영 추구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시기입니다. 2010년 이후에도 회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업화부터, 사회 선교, 번영, 개인주의와 영성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한국교회의 회심 서사도 변해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사회와 함께 변해 왔습니다. 

"태생적으로 복음주의 DNA를 갖고 태어난 한국교회는 역사 속에서 그 정체성에 맞는 발언과 행위를 해 왔다. 때로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하고 때로 돛을 내리지 못한 배처럼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216쪽)

어제의 역사를 돌아봤다면, 이제는 오늘의 길을 걸으며 내일을 봐야 할 때입니다. 다원화한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줄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팬데믹 이후 극심해진 우울감을 극복하게 해 줄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에는 해야 할 일이 많고, 우리는 작은 희망이라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선택한 사람들>은 차가운 방법론을 통해, 따뜻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선교학·전도학이 심리학·사회학 같은 타 학문과의 대화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양적 성장에 대한 요구에 지친 이들에게, 교회를 포기한 이들에게 '그래도 복음이 있지'라고 용기를 줍니다. 일차적으로는 목회자를 위한 책이지만,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교회에 희망을 품고 있는, 품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요.

구선우 / 교회 사역은 잠시 포기했지만, 그래도 교회를 살리고 싶어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사람. <배트맨 크리스천>(세움북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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