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소리는 떨림이다.1) 물체가 흔들릴 때 생기는 파동이 공기를 가로질러 귀에 도달하면, 사람은 소리를 듣는다. 떨림이 빠를수록 소리는 커지고, 느릴수록 소리는 작아진다. 떨림의 폭이 커지면 소리는 세지고, 작아지면 소리는 약해진다. 공기처럼 형체 없는 소리에 모양과 규칙을 입히면, [사랑]은 '사랑'이 되고 [너]는 '너'가 된다.

사람은 소리를 듣지만 소리를 볼 수도 있다. '보는 소리' 수어手語는 소리를 닮았다. 손가락과 팔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로지를 때, 사람은 소리를 본다. 무의미해 보이는 손가락과 팔의 움직임·위치·방향은 소리의 골격이 되고 말의 자모가 된다.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들어올린 두 주먹이 "안녕하세요"가 되는 것처럼.

사단법인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소보사) 김주희 대표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다수인 세상에서 '소리를 보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리고 '보는 소리'를 가르친다. 농아聾兒와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을 이르는 말 - 편집자 주)를 위해 한국 수어를 모국어로 삼은 어린이집과 작은 대안 학교를 10여 년째 운영하고 있다.

소보사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정체성을 갖게 하는 일. 듣는 소리가 유일할 줄 알았던 세계가 사실 반쪽짜리였고 세상에는 다양한 소리와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결핍한 존재가 아닌 '잘 보는 사람'으로 거듭나 꿈을 키워 나간다. 11월 10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소보사 대안 학교에서 김주희 대표를 만났다.

소보사는 아이들에게 반짝이는 꿈을 꾸게 한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소보사는 아이들에게 반짝이는 꿈을 꾸게 한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건강한 농인 정체성 형성 위해
2006년 공부방으로 시작 
"농인들은 결핍된 존재 아냐"

- 소보사는 어떤 곳인가요?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은 이름 그대로 소리를 보는 사람들, 수어를 제1언어로 쓰고 있는 농인들이 함께하는 공동체예요. 보통은 소리를 귀로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소리를 보는 사람도 존재해요. 저희는 이들의 존재를 알리고 보는 소리를 가르쳐 주고 있어요."

- 대안 학교도 함께 운영하신다고 들었어요.

"2006년 소보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작은 공부방 형태로 모였어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2017년 초·중·고 통합 대안 학교를 설립했죠. 공동 육아도 하고 있고요. 저희는 수어 교육도 중요하지만 농아와 청소년의 건강한 정체성 확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어요."

- 올바른 정체성 형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나는 어떤 존재인가' 묻잖아요. 특히 성장기를 맞은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질문이에요.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문제는 아이들이 농인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사회가 청각장애인을 대하는 방식을 오롯이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 어른들의 몰이해와 사회적 편견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군요.

"그렇죠. 저희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기준처럼 '잘 못 듣는' 존재가 아니라, '잘 보는' 사람으로 정체화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잖아요. 어떤 이는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하죠. 두 발로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휠체어로 걷는 사람이 있고요."

- 관점을 뒤트는 거네요.

"아이들이 듣고 말하는 기능까지 결핍한 건 아니거든요. 방식의 차이일 뿐이죠. 소보사에서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경험으로 배워요. 자기와 비슷한 농인 오빠와 언니, 이모와 삼촌들과 수어로 소통하며 자라니까요."

인터뷰 시작 전, 김 대표를 기다리면서 잠깐 소보사 학생들과 교사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는 소리로 대화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는 들을 수 없었지만, 이들이 얼마나 서로 잘 듣고 말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 학생이 동생들에게 수어로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한 학생이 동생들에게 수어로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 수어가 어렵진 않나요?

"수어도 언어예요. 고유한 체계와 문법을 지니고 있어요. 다른 언어처럼 성인이 되어 배우려면 어렵죠. 하지만 청인 아동이 2~3세가 되면 말을 따라하게 되는 것처럼, 수어를 쓰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수어를 자연스럽게 쓸 줄 알게 돼요. 옹알이도 수어로 하고요."

- 정말요? 놀라운 이야기네요!

"제 두 아이가 모두 청인인데 음성언어보다 수어를 먼저 사용했어요. 제가 종일 학교에 있으니까 아이들도 소보사에서 컸거든요. 첫째는 25개월까지 수어만 썼어요."

- 자연 학습이 가능하다니, 수어가 언어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오네요.

"저희 역할 중 하나가 아이들이 수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언어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에요. 한국은 많이 열악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수어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요."

농인 부모를 둔 코다 이길보라 감독은 저서 <반짝이는 박수 소리 - 또 다른 언어, 수어로 말하는 사람들>(한겨레출판)에서 수어 교육 실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학교에 진학하더라도 수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들을 수 없다. 특수교사 자격증은 수화 통역사 자격증이 없어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학교가 이런 상황인데 일반 학교의 상황은 오죽할까. 음성언어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학교교육은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에게 '말'을 배울 것을 강요한다." (39쪽)

이 책이 출간된 2016년 우리나라는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수어를 구어口語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우리나라 고유 언어로 규정하고, 정부가 농인들이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수 있도록 언어 환경을 조성할 책임을 갖고 있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어 교육 문제는 매년 언론에서 단골 소재로 제기된다. "'현재 농교육은 아비규환'…농학생 학습권 심각한 붕괴"(<비마이너>, 2019. 6. 7. 보도), "청각장애인 수어 교육 부실…정식으로 배운 이는 35%뿐"(<연합뉴스>, 2020. 1. 12. 보도).

영아부터 청소년까지
농인·코다 위한 일대일 맞춤형 교육
아이들이 직접 과제 부여해
해결하는 '프로젝트 학습'

소보사에 다니는 학생은 미취학 아동을 포함해 10명이다. 가장 어린 아이가 3세, 가장 큰 아이가 16세다. 교사 6명이 이들을 가르친다. 교사 중 김주희 대표가 유일한 청인이고 나머지는 농인이다. 이들은 모두 소보사에서 성장해 대학을 나왔다.

- 학생 수에 비해 선생님이 많네요. 

"아이들 수준이 천차만별이거든요. 잘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아예 할 줄 모르는 친구도 있어요. 일대일 맞춤형 교육을 할 수밖에 없어요. 학생도 10명까지만 받고 있고요."

- 소보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과목은 아무래도 수어 수업이겠죠?

"수어를 포함해 '농 정체성'을 위한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초·중·고를 거치면서 국어를 굉장히 많이 배우잖아요. 그런데 농인들은 공식 수어 교과목이나 교과서가 없어요. 정부도 수어를 보조 수단 정도로 여기니까, 이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소보사에서는 농인 역사나 문화, 수어를 활용한 문학이나 예술을 가르쳐요. 아이들은 수어가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지 배우고, 수어를 통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죠."

김주희 대표는 대안 학교라는 장점을 활용해 만든 소보사만의 특별한 교육과정을 소개했다. '프로젝트 학습'이다. 학생들이 직접 과제를 정해 함께 해결하는 수업이다.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삶에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쌓게 하기 위해 이런 활동을 만들었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 최근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나요?

"'반짝이 주인 찾기' 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반짝이'는 학생들이 아침마다 산책하면서 알게 된 유기견인데요. 눈이 반짝반짝 빛나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어요. 그런데 애들이 잘 놀아 주니까 어느 날 개가 학교까지 따라온 거예요."

- 아이고,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아이들이 키우자고 하더라고요. 갈 데가 없으니까요. 교사들은 어렵다고 했죠. 학교가 상가에 있거든요. 우리는 중요한 논의 사항이 생기면 공동체 회의로 결정하는데요. 반짝이 주인을 먼저 찾아 주기로 의견을 모았어요."

그렇게 결성된 '반짝이 원정대'는 강북구 일대를 들쑤시고 다녔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경찰서를 찾아가고, 소방서에도 방문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유기견 보호소. 직원은 학생들에게 반짝이를 보호할 수 있지만 2주 후에도 주인이 안 나타나면 안락사한다고 설명했다고 했다.

"제가 수어 통역을 맡았어요. 안락사 이야기를 전해 주자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뒷걸음질 치더라고요.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직접 주인을 찾아 나섰어요. 전단지를 만들어 곳곳에 붙였는데 3달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더라고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쉼터에 반짝이를 맡길 수 있었어요. 아이들이 매달 한 번 방문해 일을 돕고 있고요."

김주희 대표는 농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라는 건강한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해 소보사를 세웠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주희 대표는 농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라는 건강한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해 소보사를 세웠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관공서와 관련 기관을 방문하고, 기약 없는 연락을 기다리고, 낯선 사람과 인스타그램 DM이나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는 모든 과정을 아이들 스스로 주도했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청각장애인들은 손말이음센터에서 제공하는 통신 중계 서비스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 

"꼭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활동만이 공부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갈등과 어려움을 마주쳐요. 저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용한 정보를 탐색하고 얻는 모든 과정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프로젝트 학습은 꼭 필요한 활동이에요. 아이들이 지금 내가 마주한 어려움이나 문제를 과제로 내놓고 해결하는 법을 배우니까요. 특히 이 친구들이 성인이 되면 비장애인 중심적인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에 부딪치겠어요? 지금부터 근력을 쌓아야죠." 

학교 지키려고 임금 반납한 교사들
"국내 유일 100% 수어 교육"
학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이 소수자 되는 것

- 학생 수가 적은데 학교 운영은 어떻게 하세요? 재정이 빠듯할 것 같아요. 

"어려운 대로 살아요. 보통 대안 학교가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운영하려면 학부모님들이 내는 교육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요. 저희는 부모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아이들 교구나 교재, 활동, 식사 비용은 중요하니까 이를 줄일 수는 없고 대신 다른 데서 아꼈죠."

- 인건비군요….

"맞아요. 저를 포함해 교사들이 인건비를 포기했어요. 사실 거의 자원봉사 개념으로 학교를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게 운영하고 있어요. 만약 교사들이 없었다면 소보사를 유지할 수 없었을 거예요."

- 선생님들께서는 소보사 출신이라 그렇게 헌신하시는 건가요?

"꼭 그런 이유라기보다, 선생님들은 선경험이 있거든요. 수어 수업이 없는 학교를 다녔고, 수어를 쓸 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어요. 수어 교육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잘 알고 있죠.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스스로가 하나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경험으로 깨달았고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소보사가 어떻게든 운영되길 바라고 있어요."

- 재정난을 해결할 방안이 없을까요?

"올해 초만 해도 서울시가 추진한 '서울형 대안 교육기관 전환 사업'에 기대를 걸었어요. 교육청으로부터 인가받지 않는 대안 교육기관이 시에 정식 등록할 경우, 운영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이에요. 대안 학교 학생들도 헌법이 보장하는 학습권을 갖고 있으니, 서울시가 이를 책임진다는 의미로 매우 파격적인 정책이었죠. 그런데 관련 예산이 올해 9월 아무 설명 없이 갑자기 삭감됐어요."

-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올해 초만 해도 시는 2022년부터 소보사를 포함한 50여 대안 학교를 지원하겠다고 했거든요. 사실 대다수 학교가 서울시 등록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무리해서 사단법인으로 전환하고 정원과 교사 수를 늘렸어요. 그런데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고 나서 시 입장이 180도 달라졌어요."

소보사가 학부모들에게 받는 교육비는 매달 35만 원이다. 보청기를 착용하거나 인공와우(청각 신경에 전기 자극을 주어, 손상·상실된 유모 세포의 기능을 대행하는 장치 - 편집자 주) 수술을 받은 청각장애 아동들이 매주 40~50분씩 받는 언어 치료(청각 재활) 수업비가 보통 회당 5~10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은 가격이다. 김 대표는 "학비는 어떻게 보면 학부모님들이 소보사의 철학에 동의한다는 일종의 약속 같은 개념이지, 학교 운영에 큰 기여를 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김주희 대표는 국내에서 100% 수어 교육을 하는 곳은 소보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김주희 대표는 국내에서 100% 수어 교육을 하는 곳은 소보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 수업비를 올릴 계획은 없나요? 

"학무보들은 소보사에 오기까지 굉장히 큰 산을 넘으신 분들이에요. 지금도 넘고 계시고 있고요. 그런 분들에게 부담을 더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 큰 산이요?

"많은 부모님이 '내 아이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 아이가 행복하게 살려면 잘 듣고 잘 말해야 해'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분들이 '잘 들어야 돼'에서 '잘 봐도 돼'로 생각을 전환하는 건 어마어마한 관점의 변화거든요. 소보사에 보내 놓고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분도 있어요. '이렇게 키워도 정말 괜찮을까?', '나중에 아이가 비장애인과 어울릴 수 있을까?', '시야가 좁아지는 거 아니야?' 하면서요."

- 그런 분들에게 기부금이나 입학금, 고액의 수업비를 요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군요.

"쉽지 않죠. 누군가는 아이를 국공립 특수학교에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농인 학교에 가면 보청기를 착용하거나 인공와우를 한 아이들이 더 많아요. 학교 입장에서는 대다수 아이가 구화를 쓰는 상황에서 소수의 아이를 위해 100% 수어 수업을 하기 어렵죠.

하지만 수어를 쓸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어요. 조건이 안 돼 인공와우 수술을 받을 수 없거나, 수술해도 청력이 나아지지 않거나, 자신 혹은 부모의 의지로 수어를 선택한 아이들이 있거든요. 이들에게도 정부가 인정한 수어 교육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데, 아직까진 그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 수어 교육이 왜 중요한지 알겠지만 한편으론 아이를 소보사에 보내는 걸 주저하는 부모님들 심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대표님이 지금까지 만난 학부모님들은 어떤 부분을 가장 마음에 걸려 하셨나요?

"음…. 아이들이 사회에서 소수자가 되는 거요. 사실 부모는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어요. 소리를 귀로 듣든 눈으로 듣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자식이잖아요. 그 자체로 소중하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들처럼 이 아이를 사랑해 줄지, 다들 걱정하세요. 이분들은 먼저 살아 봤으니 잘 알고 있는 거죠. 대한민국 사회가 가진 거대한 편견을요.

보청기를 착용하든 수어를 쓰든, 중요한 건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도 그대로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하다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미성숙하고, 사람들 인식도 부족한 것 같아요. 결국에는 사회가 달라져야 하는데, 지금은 이런 편견의 몫을 부모와 아이 개개인이 떠안고 있는 상황이에요."

소보사를 시작하기 전 
마주한 회의와 절망
'우린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을까?'
"정상·비정상 나누는 기준 달라져야"

김주희 대표는 고등학교 CA 활동 시간에 수어를 처음 배웠다. 어느 날 학교는 수어반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장애인의날 기념행사에 세웠는데, 수어 공연을 하면서 알게 된 농인 친구들이 이후 김 대표의 삶에 큰 영향을 줬다.

- 처음에는 취미로 수어를 시작하신 거군요?

"학교 CA 활동으로 수어를 배웠어요. 그런데 장애인의날 행사에서 수어를 쓸 줄 아는 또래 친구들을 보니까 그렇게 반갑더라고요. 배운 걸 얼마나 써먹고 싶었겠어요.(웃음) 그때는 핸드폰도 없고 삐삐도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몇몇 친구들 집에 팩스가 있어서 그걸로 소통했어요. 한 달 전부터 약속 잡고 같이 놀러 다녔죠. 몇몇은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요. 그런데 친구들을 오래 사귀면서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됐어요."

- 어떤 모습이었나요?

"어떤 농인 친구는 길거리에서 수어를 쓰는 걸 아무렇지 않아 했어요. 저를 보면 맨날 '너는 왜 이렇게 수어가 안 느냐. 연습 좀 하라'고 구박하기 바빴죠.(웃음)

그런데 또 다른 친구는 수어를 하려고 하면 제 손을 붙잡고 못하게 하는 거예요. 사람들 시선을 의식했던 거죠. 그리고 저를 매번 부러워했어요. '너는 들을 수 있어서 좋겠다', '우리 서로 귀 한 짝씩 바꾸자'면서요. 마음이 무거웠어요.

같은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서로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어요. 결국에는 정체성에서 답을 찾은 것 같아요."

소보사 아이들이 특별 활동으로 곤충 채집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소보사 아이들이 특별활동으로 곤충 채집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 스스로를 어떻게 정체화하느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거군요.

"저는 어릴 때 운이 좋게도 '농인은 무언가를 극복하거나 고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야', '수어는 또 다른 고유 언어야'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하는지 가까이서 볼 수 있었어요. 그 친구들을 보며 농인들이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메시지를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결국 소보사를 만들게 됐어요."

'사람은 하나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 김주희 대표는 이 단순 명료한 '진리'를 하루라도 빨리 농인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들은 비장애인보다 열등하고 모자란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소보사를 세우기 직전 그는 몇몇 사건을 계기로 농인들에게 전할 메시지에 확신을 잃었다고 했다.

-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교회 예배 시간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을 불렀어요. 한 가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정말 그런가?' 제 농인 친구들을 보면 사회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았거든요. 일례로, 그때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대학에 갈 수 없었어요. 지금처럼 수어 통역사를 구하기 어려웠으니까요."

눈앞에 실재하는 차별을 매 순간 마주하는 이들에게 김 대표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 우연히 어느 교회 장애인 주일 기념 예배에서 들은 설교는 김 대표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목사는 두 다리나 두 눈을 잃은 장애인들도 굳세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며, 비장애인 교인들에게 회개와 감사를 촉구했다고 했다.

- 어떻게 그런 설교를…. 충격적이네요.

"솔직히 그 설교를 듣고 하나님을 더 이상 믿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제가 믿었던 하나님은 그렇게 비열하지 않았거든요. 피조물로부터 감사와 찬양을 받기 위해 다른 존재를 이용하다니요. 

이 일을 계기로 저에게는 큰 기도 제목이 생겼어요. 정말로 장애인들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게 맞는지 알고 싶었고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장애인을 창조하셨는지 듣고 싶었어요. 그때 저는 이 답답함이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어요."

김 대표가 찾던 답은 요한복음 9장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고 예수와 제자들이 대화하는 내용이다. 제자들은 예수에게 그가 누구의 죄 때문에 맹인이 됐는지 묻는다.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본문을 묵상하던 김 대표는 장애인은 그 자체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존재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 그 자체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존재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이 본문이 지닌 의미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 여러 번 읽고, 다른 번역본과 영문 성경과도 비교해 봤는데요. 오랜 시간 농인을 만나면서 깨닫게 된 건, 우리는 장애인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하나님 형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인간이 하나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라고 말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 소위 비장애인처럼 말하고 들으시는 분일까요? 아니에요. 문을 닫거나 거리가 멀어진다고 해서 하나님 음성을 못 듣는 건 아니잖아요.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하나님이 사람처럼 귀로 우리의 기도를 듣는 것도 아닐 거고요. 그렇다면 진짜 하나님의 말하심과 들으심은 무엇일까요."

김 대표는 농인들과 함께하면서 진짜 하나님의 말하심과 들으심을 묵상했다고 했다.

"농인들은 소리를 안 내고 귀로 듣고 있지 않는데도 너무나 잘 말하고 잘 들어요. 듣고 말하지 않지만, 듣고 말하고 있는 거죠.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에요. 보지 못하지만, 우리와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봐요.

자폐 아이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발달장애 아동이 주변을 인지하는 방식,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공간을 이동하는 방식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신체 기능과 감각에만 몰두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보고, 듣고, 말한다'의 진짜 의미를 장애인들은 몸소 보여 주고 있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시고, 우리를 어루만지는 하나님, 그분의 형상의 본질에 닿아 있다고 했다. 

"이런 것들이 저는 우리가 장애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울러 그들이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요." 

누가 사진 찍는다고 시켰을까. 아이들이 산딸기를 뽐내고 있다. 김 대표는 농인을 통해 하나님의 들으심과 말하심의 본질을 깨닫는다고 했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누가 사진 찍는다고 시켰을까. 아이들이 산딸기를 뽐내고 있다. 김 대표는 농인을 통해 하나님의 들으심과 말하심의 본질을 깨닫는다고 했다. 사진 제공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 소보사 사역에 관심을 보이거나 후원하는 교회는 없나요? 

"코로나19 이후로 교회들이 많이 어려워져서 후원이 조금 끊기긴 했지만 몇몇 농인 교회가 적게나마 후원해 주고 있어요. 다른 지역 교회들도 도와주는 곳들이 있는데 넘어야 할 산이 조금 있어요." 

- 혹시, 소보사 학생들에게 수어 찬양 특송 같은 걸 부탁하나요? 

"그런 것까진 아니고요. 큰 행사를 앞두고 교인들에게 수어 찬양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요. 그러면 저는 굉장히 고리타분한 말을 꺼내죠. '농 정체성'이나 농인 문화를 먼저 배울 생각이 있다면 가르쳐 드릴 수 있다고요.(웃음)

그런데 수어 찬양은 농인들이 싫어해요. 교회에서는 예뻐 보여서 그런지 수어를 '천사의 언어'라고 수식하기도 하는데, 수어와 국어는 어순이 달라서 농인에게 크게 와닿지 않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가 이제는 수어 찬양 좀 그만하고 수어로 성경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정체돼 있는 거 같아요." 

- 그래도 장애인 사역을 하는 교회가 꽤 있어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교회마다 장애인 부서를 두고 있고요.

"계속 부정적으로 이야기해서 죄송한데요. 가끔 교회가 장애인을 소비하는 방식에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몇몇 교회를 보면, 장애인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모습으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 같거든요.

우리가 연약한 자들을 돕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쌀과 생필품 갖다 주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눈물 흘려 기도하는 일이 교회가 할 일의 전부일까요? 진정 이들과 함께한다는 게 무엇인지 영리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 그렇다면 비장애인 교인들이 장애인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저는 그리스도인만큼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선교사 짐 엘리엇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기꺼이 버리는 삶"을 사는 이들이잖아요. 비기독교인이 봤을 때는, 눈에 보이는 좋은 재물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재물을 쌓는 헛된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런 우리들이 어째서 유독 장애인을 바라볼 때는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하고 그 형상에 국한해서 결핍과 부족에만 주목하는지 모르겠어요."

김주희 대표는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려면 장애인들의 삶에 담겨 있는 하나님 형상을 묵상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굉장히 크신 분이에요. 풍성한 하나님이 허락한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그리스도인은 들리지 않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이들이에요. 그런 우리들부터라도 보이는 모습 때문에 받게 되는 평가를 배제하고 이들을 대해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와 다르게 듣고 다르게 말한다 해도 이들이 얼마든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세요."

1) 김상욱, <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동아시아),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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